큰 그릇은 늦게 만들어진다’가 아니라, ‘큰 그릇은 테두리가 없다’는, 노자의 철학 .대기만성(大器晩成)은 노자 도덕경 41장에 나오는 말이다. 이 말은 유명해져서 이 땅에서도 일상어처럼 쓰인다.
한자말대로 풀면 ‘큰 그릇은 늦게 이뤄진다’이다. 지금 비록 실패를 거듭하거나 성과가 지지부진하더라도 인내와 용기를 잃지 않고 나아가면 늦게라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격언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노자는 후대의 수많은 루저들을 격려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한 게 아니다. 말하자면, 뒷사람들이 스스로 듣고싶은 말로 바꿔 들어왔을 뿐이다.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大方無隅 大器晩成 大音希聲 大象無形 道隱無名 (대방무우 대기만성 대음희성 대상무형 도은무명). 세상의 끝모퉁이에는 사실상 모퉁이가 없고, 세상의 큰 그릇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며, 세상의 큰 소리는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며, 세상의 큰 형상은 형태를 지닌 것이 아니다. 세상의 진실은 이름 없음 속에 감춰져 있다.
저게 무슨 얘기냐 하면, 우리가 논의하는 수준의 큰 땅, 큰 그릇, 큰 소리, 큰 형상은 모서리와 둘레와 소리와 모양을 지니지만, 노자께서 말씀하시는 ‘큰 것’들은 무한대의 무엇이라는 것을 라임을 맞춰 강조한 것이다.
그중에 있는 말인 대기만성은, 큰 그릇은 테두리가 없어서 형상이 없다는 뜻일 뿐이다. 이것은 공자의 말인 ‘군자불기(君子不器)’와 비슷한 뜻이다. 그릇의 크기를 따지는 것은 인간의 감관과 분별의 저울 안에서나 생겨나는 잣대일 뿐이며, 도(道)와 같은 본질적인 차원에서는 ‘둘레가 없는 그릇’이 가능하다. 우주는 둘레가 없는 그릇이다.
과연 ‘늦을 만(晩)’자를 그렇게 해석할 수 있을까. 도덕경 문장의 전후를 따진다면 무(無)와 만(晩)과 희(希)는 모두 부정어 용법으로 쓰였다는 걸 알 수 있다. 논어에 연말연시의 추위를 겪은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 것을 안다(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也)는 말이 있다.
여기서 후조(後凋)는 뒤에 시드는 것이 아니라, 시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후(後)와 만(晩)이 ‘늦게’라는 의미를 지니기에 부정어로 쓰인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대기만성형의 인간은, 진짜 대기만성형이 아니다.
노자는 그런 뜻으로 말한 적이 없다. 거듭되는 실패와 좌절로 무릎이 꺾인 이 시대의 청년백수들을 치어럽하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
유감스럽지만 사실인 걸 어떡해.
‘진짜 큰 그릇의 인간은 아예 테두리를 치지 않는다.’ 이게 더 호쾌한 말이 아닌가. 대기만성형의 인간은, 자신의 자아와 삶과 비전을 우주까지 확장한 ‘자연아(自然兒)이다. 조물주를 닮은 우주인(우리도 이 우주에 살고 있으니 틀림없는 우주인이다)에게 붙여줌직한 형용어이다.
– 대기면성?
현대에 알려진 ‘대기만성’은 필사 과정에서 잘못 옮겨진 것으로, 원래는 대기면성(大器免成)이 맞는다는 주장도 있다.
‘노자’제41장에서, 大方无隅, 大器晚成, 大音稀聲, 大象无形를 통해 “대기만성(大器晚成)”으로 알려진 이 사자성어 자체도 사실은 “대기면성(大器免成)”이 맞는다는 말이 제기되고 있다.
“大器晚成”의 해석에서 논점이 되는것은 晚자인데, 왕필본을 비롯한 대부분의 현존 판본에 그대로 존재한다. 이를 그대로 읽으면 큰 그릇은 늦게 이뤄진다고 해석되는 게 맞는다.
그러나 해당 글자를 면(免)으로 읽어야한다는 주장이 있었고 한묘에서 발굴된 이른바 백서본에서 실제로 免자로 표기되어있음이 확인되어 “큰 그릇은 완성되지 않는다”는 뜻의 해석이 신빙성을 얻었다.
또 곽점초묘에서 발굴된 전국시대의 죽간에서는 해당 글자가 만(曼)으로 표기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는데, 중국어언학회 이사장 둥롄츠(董莲池) 화동사범대학 교수는 曼이 선진 시기에 ‘없다’라는 뜻으로 쓰였음을 들어 ‘大器免成’ 쪽에 힘을 실었다.
첫댓글 도올 김용옥님도 대기만성을 "큰그릇은 둘레가 없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너무 크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지요.
지구든 우주든...
하지만, 거대한 변화가 오고 있다는 건 뭔진 몰라도 다들, 아실겁니다.
다스뵈이다 136회 : https://youtu.be/vsTS5lqL1GA?t=3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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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ssem 감사합니다~
옳은 해석이십니다~^^
큰 그릇은 너무 커서 그 완성된 모양이나 경계를 알 수 없다...
멋진 해석에 경의를 표합니다.
지구촌의 우리 인간들이
태상노군 노자님께서 도덕경을 읊어주신 그 까닭을 아신다면
오늘날 처럼 우왕좌왕 설왕설해 하다가 생을 마치지는 않겠지요.
안타까운 세상 속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동네 노는 이들은
건강한 남성을 어미한다 던대
무슨 암호처럼 너무 어려워요~
알아듣기 쉬운 말로 얘기 나누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