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3 (목) 오늘은 서울의 도심을 둘러보며 서울의 고궁 /창경궁, 창덕궁, 명륜당 과 남산의
곱게 물든 단풍을 즐기며 가을의 진수를 느꼈습니다.
멜로디를 들어며 단풍 나드리 출발~~~
성균관 내에 명륜당 앞마당에 500년 된 은행나무가 노랗게 단풍으로 변신한 모습에 취해 보았습니다.
성균관(成均館)은 조선시대에 인재양성을 위하여 서울에 설치한 국립대 학격의 유학 교육기관으로 명륜당이 있는 곳입니다.
뿌리 깊은 나무-성균관 명륜당 은행나무는 천년기념물 제59호로 나무의 높이 약 21m, 가슴 높이 줄기 둘래 약 7.3m, 가지 퍼짐 동-10.5m, 서-12m, 남-10,0m, 북-12m이다. 이 은행나무는 문묘가 창건된 다음 심어진 것으로 보이며 또한 이 은행나무는 모두 수나무인 것이 색다르다.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서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행단을 상징하여 우리나라 성균관과 향교에서는 모두 은행나무를 심었다.
명륜당 은행나무는 1962년 12월 7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면적은 4만 936㎡이고 수령은 500년으로 추정되는 노거수이다
은행나무 옆에 붉은 단풍나무가 있으니 더욱 색깔이 돋보이네요.
대성전 입구 문 좌우에 500년 된 노란 은행나무의 모습을~~~
성균관 대성전 은행나무(成均館 大成殿 銀杏나무)는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조선시대의 은행나무이다. 2014년 5월 1일 서울특별시의 기념물 제37호로 지정되었다.
수령 측정 결과, 두 그루 모두 450±50년의 노거수로 수형이 아름답고, 승정원일기, 신 증 동국여지승람 등 역사적 기록에도 그 식재 시기와 보존상태 등과 관련된 내용이 확인되고 있으며 일부 외과수술은 이루어졌으나 원형이 크게 변형되지 않았으므로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지정하여 보존할 가치가 있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37호로 지정되는 <성균관 대성전 은행나무> 두 그루는 사적 제143호 <서울 문묘와 성균관> 내의 대성전(大成殿) 앞뜰이자 신삼문(神三門)의 동쪽과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대성전 노란 은행나무의 동영상을~~~
성균관 대성전은 남북으로 4 영(楹), 동서로 5 영의 20칸 규모에 전당후실(前堂後室) 양식이다. 남향으로 직통한 신로(神路) 옆에 어로(御路)가 어삼문(御三門)으로 통했으며, 동계(東階)·서계(西階)가 축조되었다.
동문과 서문이 설치된 대전(大殿) 안에는 대성지 성문 선왕(大成至聖文宣王)인 공자를 정위(正位)로 하여 안자(顔子)·자사(子思)는 동쪽에, 증자(曾子)·맹자(孟子)는 서쪽에 배치하였다.
4성(四聖) 뒷줄로 동쪽에는 민손(閔損)·염 옹(冉雍)·단 목사(端木賜)·중유(仲由)·복상(卜商)·주돈이(周敦頤)·정이(程頤)·장재(張載)를 앞줄에, 설총(薛聰)·안유(安裕)·김굉필(金宏弼)·조광조(趙光祖)·이황(李滉)·이이(李珥)·김장생(金長生)·김집(金集)·송준길(宋浚吉)은 뒷줄에 종향(從享)하였다.
서쪽으로는 염경(冉耕)·재여(宰予)·염구(冉求)·언언(言偃)·전손사(顓孫師)·정호(程顥)·소옹(邵雍)·주희(朱熹)는 앞줄에, 최치원(崔致遠)·정몽주(鄭夢周)·정여창(鄭汝昌)·이언적(李彦迪)·김인후(金麟厚)·성혼(成渾)·조헌(趙憲)·송시열(宋時烈)·박세채(朴世采)는 뒷줄에 종 향해, 공자를 비롯한 이른바 5성(五聖)·10 철(十哲)·송조 6현(宋朝六賢)과 우리나라 18현의 위판을 봉안하고 봄·가을로 석전(釋奠)을 봉행하고 있다.
노란 은행나무와 붉은 단풍나무가 조화를 이룬 가로수의 화려한 가을 풍경에 낙엽은 서서히 떨어지고~~~
자연은 아름다워라~~~
명륜동 골목길은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싸고 먹거리가 많아 입맛을 돋워
나는 맛난 고기만두로 입도 즐겁게 하고서 다음 단풍놀이는 가까운 창경궁으로~~~
창경궁 숲길 속으로 산책로를 걸어며 가을을 즐기는 시민들~~~
과연 왕년에 이조 왕족들이 놀던 창경궁은 무성한 숲에 잘 조성된 숲으로 단풍도 최상급으로 불타고 있고~~~
기나긴 세월 동안 코로나 감염으로 갑갑한 마음을 털기 위해 평일인데도 많은 시민들이 가을을 즐기며
고궁을 거닐고 고운 단풍나무 아래 휴식도 취하며~~~
춘당지는 종로구 와룡동 창경궁 내에 있는 연못으로서, 1909년에 춘당대 앞 귄 농장 자리에 연못을 파고, 춘당대 앞이 되므로 춘당지라고 이름 붙여졌다. 연못가에 수정을 짓고 궁원을 일본식으로 변모시켰으나, 창경궁이 복원되면서 연못으로만 정비되어 있다.
춘당지를 한바퀴 돌면서 물위에 비친 단풍과 그림자가 마주보는듯 환상적이네요.
창경궁 팔각 칠 층 석탑은 현재 춘당지(春塘池)와 소춘 당지 사이의 비탈진 대지에 있는데, 언제 어디에서 어떤 연유로 이곳에 옮겨 세웠는지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
소춘 당지는 사진작가들의 인기 있는 포토죤이지요.
은은한 주황색과 엷은 칼러가 어우러진 단풍은 잔잔한 운치가 있네요.
야간에도 단풍을 느끼겠끔 춘당주 주변엔 조명등이 설치되어 있어 야간 데이트 코스로도 괜찮은 모양이네요.
본래 세종이 상왕으로 물러난 태종의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지은 수강궁이었다. 그 후 1483년 수강궁 자리에 별궁인 창경궁을 건립했다.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1616년 다시 세웠으며, 1624년 이괄의 난으로 소실된 많은 전각들이 1633년에 중건되었다. 1656년에 요화당·난향각·취요헌·계월각 등 4개의 전각을 지었다.
이 궁궐에서 장조·정조·순조·헌종(憲宗) 등 여러 왕들이 태어났다. 조선시대 5대 궁궐 가운데 다른 궁궐은 모두 남향하고 있으나 이 궁궐만은 풍수지리설에 의해 동향하여 있다. 본래 태종이 아들 세종에게 임금 자리를 물려주면서 자신이 거처할 궁궐로 지은 수강궁에서 시작되었다. 그 후 1484년(성종 15) 이 수강궁 자리에 새로이 별궁인 창경궁을 건립했다.
통명전은 창경궁의 정침(正寢), 즉 왕의 침전이므로 궁궐 안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았는데, 왕비의 침전인 환경전(歡慶殿)과 함께 남향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층경궁과 연결된 창덕궁에 들어서니 담장 위에 단풍이 곱게 물든 궁궐
사적 제122호. 창덕궁은 1405년 태종 때 건립된 조선왕조의 왕궁이다. 처음에는 법궁(法宮)인 경복궁에 이어 이궁(離宮)으로 창건되었지만, 이후 임금들이 창덕궁에 머무는 것을 선호해왔고 특히 임진왜란 이후 법궁인 경복궁이 복구되지 못하면서 창덕궁은 고종 때까지 법궁의 기능을 하였다. 이처럼 오랜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사용되면서 다양하고 복잡한 왕실 생활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正殿)으로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등 중요한 국가적 의식을 치르던 곳이다. 앞쪽으로 의식을 치르는 마당인 조정(朝廷)이 펼쳐져 있고, 뒤쪽으로는 북한산의 응봉으로 이어져 있다.
창덕궁은 인위적인 구조를 따르지 않고 주변 지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자연스럽게 건축하여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왕가의 생활에 편리하면서도 친근감을 주는 창덕궁의 공간 구성은 경희궁이나 경운궁 등 다른 궁궐의 건축에도 영향을 주었다. 궁의 동쪽에 세워진 창경궁과 경계 없이 사용되었으며, 두 궁궐을 ‘동궐’이라는 별칭으로 불렀다.
창덕궁 돈화문을 나와서 전철로 충무로역에 하차 후 4번 출구에서 셔틀버스로 남산으로 단풍 나드리를~~~
가을에는 푸르던 나뭇잎들이 누렇게 물들며 떨어진다. 그 때문인지 봄은 밝은 분위기가 나는 반면, 가을은 쓸쓸하고 고독한 분위기이다. 또, 이런 분위기에서는 마음의 양식인 책을 읽기 딱 좋아서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등화가친(燈火可親)의 계절이라며 배움이 권장되는 계절이기도 하다. 바로 이전의 계절이 1년 중 가장 뜨겁고 역동적인 여름이라는 점에서, 최고조를 지난 황혼기에 비유하기도 한다.
평일인데도 많은 시민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남산의 단풍구경과 서울의 모습을 조망하며~~~
서울의 도심 종로구와 명동 하이톨 빌딩 숲을 보면서~~~
한양성곽을 따라서 곱게 물든 가을 단풍 물결을 즐기고~~~
남산타워 빌딩 4층 테라스에 올라서 한강과 강남지역도 조망하고 옆 무료 화랑 전시관도 관람도~~~
강종렬 화백의 작품도 관람하면서~~~
남산 케이블카 하 차장 위의 조망이 좋은 레스또랑에서 맛난 왕돈가스에 테라 맥주로 목을 축이며
저 멀리 북한산 국립공원과 인왕산과 북악산을 품은 서울 도심과 남산 단풍 사이로 가끔 지나가는 케이블카도 즐감하며
식사와 휴식 후 ~~~
쉬엄쉬엄 계단을 내려오며 아름다운 서울 속의 만추의 단풍 나드리를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