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김희선' 이라는 배우는 대한민국 신세대를 대표하는 한국 최고의 아이콘이었다. 온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추석 황금시간에 <김희선 쇼> 라는 특집쇼가 마련되어 2년 연속 방영되는 전무후무한 일이 벌어졌고, 김희선이 걸쳤다 하면 패션 거리에서 불티나게 팔려 나갔으며, 김희선이 나왔다하면 시청률 40%는 '기본' 이었던 그 때 그 시절. 그 때를 우리는 서슴없이 '김희선 시대' 라 명명했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 '김희선 시대' 는 그야말로 몰락했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김희선' 이라는 이름은 90년대를 풍미한 톱스타의 추억만을 지니고 있을 뿐 더 이상 대중들을 사로잡는 매력을 지니고 있지 않다.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가정' 이라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지만 만약 김희선이 <안녕, 내 사랑> 이후에 충무로 행을 택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영원한 'TV 스타' 로 머물러 있었다면 지금의 김희선은 어떤 위치에 올라 있을까.
2000년부터 2006년까지. 6년여의 세월 동안 그녀가 차버린 '복덩어리' 들을 살펴보자.
<안녕, 내사랑> 을 성공리에 끝마치고 브라운관에서 여전한 인기를 누리고 있던 김희선에게 2000년 들어왔던 작품은 바로 드라마 <가을동화>. 김희선과 <프로포즈><웨딩드레스> 를 함께 하며 돈독한 신뢰를 쌓아온 윤석호 PD는 야심차게 준비한 드라마 <가을동화> 의 '은서' 역할을 김희선에게 제안했지만 김희선은 영화 촬영을 이유로 윤석호 PD의 캐스팅 제안을 거절했다.
김희선의 거절 때문에 후발주자로 투입된 송혜교는 <순풍 산부인과> 의 코믹스러운 '오혜교' 이미지를 완벽하게 떨쳐버리고 <가을동화> 를 통해 톱스타로 승승장구, <가을동화> 는 40%가 넘는 시청률로 이른바 '가을동화 신드롬' 까지 일으키며 2000년을 자신들의 해로 만들었다.
그에 비해 <가을동화> 를 차버리고 영화 <비천무> 를 선택했던 김희선의 운명은 그야말로 쪽박을 찼다. 전국관객 200만명을 모으며 흥행면에서는 어느정도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를 들었지만 연기력, 작품성 면에서는 최악의 평가를 받았고 관객과 평단의 혹평 속에 쓸쓸한 퇴장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김희선이 만약 <가을동화> 를 선택해 브라운관에 컴백했다면 과연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세상 끝까지> <안녕, 내사랑> 의 뒤를 잇는 또 하나의 비극적 멜로 드라마의 여주인공으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지 않았을런지. <비천무> 에서 한 일이라고는 얼굴마담 밖엔 없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다.
<비천무> 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2001년 김희선은 주진모와 함께 영화 <와니와 준하> 에
출연한다. 한층 업그레이드 된 연기력과 성숙한 스타 의식, 진중하고 청순한 이미지로 열연했던 <와니와 준하> 는 분명
김희선이 내놓은 보기 드문 최상급의 작품이었고 그녀의 연기 인생에 일대 터닝 포인트를 마련해 줄 수도 있었던
작품이었다.
비록 이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김희선이 저력이 돋보인다." 는 호의적인 평가가 나온 것도 이 때였고,
<목욕탕집 남자들> 이 후에 김희선과 한번도 호흡하려 하지 않았던 드라마 작가 김수현이 "영화를 보니 김희선이 왜 똑똑한
배우 소리를 듣는지 알겠다." 는 극찬을 한 것도 이 때였다. 김희선에게는 <와니와 준하> 의 흥행실패가 뼈에 사무칠 정도로 아쉬웠을
터.
하지만 뼈에 사무친 일은 흥행 실패 뿐이 아니다. 2001년, 김희선이 <와니와 준하> 때문에 "뻥~!"
차버린 드라마가 바로 <수호천사> 였기 때문이다. <미스터 큐><토마토> 등으로 김희선 시대의 중심에 서 있었던
작가 이희명이 내 놓은 차기작 <수호천사> 는 이희명이 김희선을 주연으로 설정하고 써 놓은, 그야말로 김희선을 위한
드라마였다.
그러나 김희선은 이희명과의 우정에도 불구하고 영화 촬영 때문에 드라마 출연을 거절했고 이 드라마는 공교롭게도
<가을동화> 에 이어 또 다시 송혜교에게 넘어가 40%가 넘는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했다. 아, 이 가혹한 운명의
장난이여!
<와니와 준하> 의 흥행 실패 이 후, 칩거에 들어간 김희선에게 2002년 윤석호 PD는 드라마
<겨울연가> 를 제안했다. 그러나 영화 실패의 충격이 너무 컸었는지 김희선은 "죄송하다." 라는 말로 윤석호의 러브콜을 다시 한번
거절했고 김희선의 대타로 들어온 최지우는 '히트 메이커' 라는 별칭답게 <겨울연가> 를 2002년 최고의 드라마로 만들어내며
명실상부한 한류 스타로 우뚝 서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2002년 김희선이 차 버린 복덩어리는 <겨울연가> 뿐이 아니다. <수호천사> 의
캐스팅 불발에도 불구하고 작가 이희명이 <명랑소녀 성공기> 와 함께 김희선의 브라운관 복귀를 성사시키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김희선은
"이미지에 맞지 않고, 여 주인공의 캐릭터가 유치하다." 는 이유로 <명랑소녀 성공기> 를 고사, 결국 주인공은 <뉴
논스톱> 으로 인기를 끌고 있던 장나라가 대타 투입됐다.
이 드라마 역시 40%가 넘는 시청률로 인기를 끌었던 것은 물론이고, 중국 등지에서 대 흥행을 하며 장나라를 중국의
한류스타로 우뚝 서게 한 발판이 됐다. 만약 김희선이 <겨울연가> 와 <명랑소녀 성공기> 를 선택했다면 한국, 중국,
일본을 아우르는 거대한 스타파워와 90년대를 잇는 '김희선 시대' 의 재건을 노려볼 수도 있었을텐데.
누굴 탓하랴. 그녀의 안목을 탓할 수 밖에.
(참고로 김희선은 2002년 이 두 드라마 뿐만 아니라 인정옥 최고의 작품이라 평가 받고 있는 <네 멋대로
해라> 를 거절하는 '도도함' 을 보여줬다;;)
<겨울연가> 와 <명랑소녀 성공기> 를 거절했던 김희선은 2003년 2년만에 충무로 복귀를
서두르는데 그 작품이 바로 영화 <화성으로 간 사나이> 였다. 순수한 미소가 매력적인 신하균과의 공연으로 기대를 모았던
<화성으로 간 사나이> 는 아쉽게도 연기, 연출, 시나리오, 흥행면에서 모두 만족스럽지 못한 작품이었고 김희선은 오히려 퇴보된
연기력으로 평단의 악평을 사고 말았다.
게다가 더욱 황당한 것은 <화성으로 간 사나이> 의 촬영 일정 때문에 욕심이 나면서도 포기했던 드라마
<올인> 이 50%가 넘는 엄청난 시청률로 그 해 가장 인기있는 드라마로 기록됐다는 것이다. 김희선의 대타로는
<가을동화><수호천사> 에 이어 다시 한번 송혜교가 투입 되면서 질긴 악연의 끈을 이어갔고
이로써 송혜교는 '히트 메이커' 소리를 듣는 최정상의 톱스타로 우뚝 서게 됐다.
잇따른 흥행실패로 자존심에 생채기를 입은 김희선은 2003년 <올인> 을 차버린 대신에 영원한 콤비
이희명의 차기작 <요조숙녀> 에 출연하지만 20% 도 못넘는 처참한 시청률로 브라운관 복귀에도 실패해 처참한 몰락의 길을 걸었다.
반면에 <올인> 의 송혜교는 2003년 SBS 최우수 연기상, 이병헌은 2003년 SBS 연기대상을 수상해 드라마
<올인> 의 인기를 반증했으니 이 어찌 가혹하지 않다고 할 수 있으랴.
2004년 김희선은 세 편의 드라마 출연을 제안받는다. <불새><파리의
연인><미안하다 사랑한다>. 그러나 김희선은 동시에 굴러 들어온 이 복덩어리들을 모두 거절하고 2004년 말에 캐스팅 제안이
들어온 <슬픈연가> 에 출연을 결정한다. 결과는? 익히 알다시피 <불새>와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30%가 넘는
시청률을, <파리의 연인> 은 50%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했고 <슬픈연가> 는 단 한번도 20% 의 시청률을 올리지
못한채 죽을 쑤고 말았다.
특히 <파리의 연인> 김정은은 그해 SBS 연기대상을 수상해 김희선의 속을 더욱 상하게 했고
<미.사> 의 임수정은 영화계 최고의 블루칩으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차버린 작품에 미련을 갖지 않는다는
김희선이지만 자신이 차버린 작품들이 승승장구하고 대타로 나온 주인공들이 연기대상을 타가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편치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이 또한 그녀가 자초한 그녀의 운명인 것을!
2004년 뿐 아니라 2006년에도 김희선의 '도도함' 은 만만치 않다. 2006년 김희선에게 들어온
시나리오는 세 작품. 하나는 <쾌걸춘향> 을 히트시킨 홍정은-홍미란 남매의 차기작이었던 <마이 걸> 로
김희선의 이미지에 어울린다는 이유 때문에 김희선의 이름이 1순위로 오르내렸으나 "너무 코믹물이다." 라는 말과 함께
퇴짜를 놓았다. 대타로 들어간 이다해는 그간의 청순한 이미지를 벗어 던지고 완벽한 '주유린' 으로 거듭나며 최전성기를 구가하기도.
또 한 작품은 주말 10시대를 장악하며 시청률 30% 대를 향해 질주하고 있는 드라마 <사랑과 야망>.
당초 예상했던 '심은하 카드' 와 '이영애 카드' 가 차례로 무산되자 작가 김수현이 세번째로 뽑아든 카드는 파격적으로 '김희선 카드' 였다.
<목욕탕집 남자들> 이 후로 단 한번도 김희선과 접촉하지 않았던 김수현이 김희선에게 보낸 러브콜은 단연 화제 중의 화제.
그러나 김희선은 "김 선생님 작품에 누를 끼칠까 부담이 된다." 라며 출연을 고사했고 결국 네번째 카드였던 한고은이
투입, 최근에 이르러 절정의 연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사랑과 야망> 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자세히 쓸 예정이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한고은의 '김미희' 는 원작에서 차화연이 연기했던 '김미희' 의 이미지를 일정 부분 뛰어넘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문제. 이 작품들을 다 차버리고 김희선이 선택한 드라마는?
어이없게도 평범한 트렌디 물이었던 <스마일 어게인> 이었고 이 드라마는 시청률 뿐 아니라 작품성
면에서도 최악의 평가를 받으며 김희선의 이름값에 생채기를 내고 말았다.
그렇다면 김희선이 거절한 영화 <황진이> 의 흥행은 어떻게 될까. 특히 눈여겨 볼 것은
<황진이> 의 김희선 대타로 송혜교가 투입됐다는 것. <가을동화><수호천사><올인> 에 이르기까지
김희선 대타로 끈질긴 인연을 보여주고 있는 송혜교가 이번에도 <황진이> 를 흥행 시킨다면 한동안 방송가에는 "김희선이 거절하고
송혜교가 출연하면 모조리 뜬다." 라는 흥행공식까지 나돌 듯 하다.
지금까지 재미로 알아 본 김희선의 파란만장 거절 인생사. 그 느낌은 어떠하였는지.
고금의 진리가 그러하듯이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영원한 스타도, 영원한 무명도 없다는 것을 '김희선 왕국'
의 몰락을 보면서 느꼈기를 바란다. |
출처: ♤끄적끄적 이야기♤ 원문보기 글쓴이: 승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