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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0: 34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 요 10: 39 예수를 잡고자
8.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 ( 10: 34-38 )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36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 37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38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
예수께서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는 시편 82: 6을 인용하시면서 ‘율법에 기록한 바’라고 표현하셨다. ‘율법’은 구약성경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는 “성경은 폐하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심으로 시편을 포함한 모든 성경의 신적 권위성을 증언하셨다. 즉 예수께서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폐지될 수 없는 절대적 권위의 말씀임을 증언하신 것이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것은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의 성경관 이며, 예수님 자신과 사도들의 성경관 이었으며, 정통적 기독교회의 성경관 이다.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의 믿음과 행위에 대한 정확무오한 유일의 규칙이다.
예수께서는 인용하신 시편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들 즉 재판관들을 신이라고 부른 것을 언급하시면서, 하물며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셔서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이 어찌 신성모독한 일이냐고 반문하셨다.
유대인들이 예수께서 이렇게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자이심을 안다면, 그들은 예수께서 자신에 대해 하신 증언을 대항하고 반론하지 못할 것이다.
요 10: 34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
율법을 말하는 히브리어 토라는 모세 오경을 말하지만 넓은 의미에선 '성문서', '예언서', '시가서'를 포함하고 있다.
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1) 여기 "율법"이란 말은 시 82: 6을 가리킨다.
* 시 82: 6 -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시편을 왜 율법이라고 하였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곧, 모세의 율법이 구약의 처음 부분에 있는 것만큼,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이 구약 전체의 책 이름을 "율법"이라고 하는 풍속이 있었다.
(2) 성경은 재판장들을 가리켜 "신들"이라고 하였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일을 대행하던 제사장들에게 주어진 '대리자'적인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 시 82: 6 -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 요 12: 34 - 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
* 롬 3: 19 -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 고전 14: 21 -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것은, 재판장들이 신(神)의 시키심을 받아 재판을 대행(代行)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는 말이고, 그들 자신이 영원한 신들이라고 함은 아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의 신격(神格)이나 신자격(神子格) 주장의 정당성을 이 시구에 두셨다. 그것은 얼른 보아 예수님도 순 인간으로서 신의 시키시는 일을 맡은 의미의 하나님 아들이고,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 아들(Ontological Sonship)이 아님을 증거하시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이 시구에 근거한 예수님의 논증 귀결은, 추론의 등위적 이론(等位的理論=Analogical argument)이 아니고 강이유 결론(a fortiori)이니, 보통 인간들도 신의 시키심을 받은 자라면, 그 본질에 있어서는 신(神)이 아니로되 그들을 "신들"이라, 또는 "지존자의 아들들"(시 82: 6)이라고 하였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영원하신 하나님 아들이야 말할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결론이다.
요 10: 35 하나님의 말씀 -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
성경은 정확무오 하므로 폐할 수 없다.
예수는 성경을 완전하게 완성하려고 오셨다.
1]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1) 성경
신약 성경 저자들은 구약 성경을 가리켜 '성경', 다시 말해서 '기록된 바'('성경에 이르기를' 또는 '기록되었으되')라고 한다.
* 막 12: 10 -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 요 7: 42 -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의 살던 촌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 마 4: 7 -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신약에서 이 말은 현재 기독교인들이 "구약"이라고 부르는 책들이나, 어떤 때는 이들 책 가운데의 어떤 특별한 구절을 가리킨다.
* 딤후 3: 16-17 –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2) 정경
기독교인들이나 유대교인들이 특별한 권위가 있는 것으로 인정하여 성경으로 정한 책의 모음을 말한다.
정경을 뜻하는 헬라 낱말 '카논'은 '잣대, 표준, 규준'을 뜻한다. 정경은 예배와 교훈에 표준적인 거룩한 책들로 인정된 책들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이다.
히브리어 구약 성경의 정경은 주전 175년경에 본질적으로 마무리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이 때 생긴 책인 집회서(시락서)의 머리말에서 히브리어 성경을 보통 나누듯이 '율법'(모세 오경)과 '예언서'(수, 삿, 삼상, 삼하, 왕상, 왕하, 사, 렘, 겔, 12 '작은 예언서')와 '성문서'(시, 욥, 잠, 룻, 아, 전, 애, 에, 단, 스, 느, 대상, 대하)로 나누어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호수아에서 열왕기하까지 이르는 역사서들을 예언서(본격적인 예언서들인 '뒷 예언서' 또는 '후기 예언서'와 구별되는 '앞 예언서' 또는 '전기 예언서')로 여긴 것은 거기에 예언자들의 활동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고 사람들이 예언자들을 그 저자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 부분의 순서는 각 부분에 해당되는 책들이 정경에 포함될 만하다고 가치를 인정받은 순서와 일치한다. 이리하여 셋째 부분에 속하는 마지막 책들은 구약 성경에서 가장 늦게 정경 안에 들어온 책들이다.
팔레스티나 바깥의 여러 유다 공동체에서는 주전 3-2세기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생긴 그리스어 번역본(칠십인 역본)이 널리 쓰이게 되었다. 이 번역본에는 나중에 생긴 몇 권의 책(유딧, 지혜, 토비, 집회, 바룩, 1마카, 2마카)과 에스더 및 다니엘을 확장한 부분이 덧붙어 있었는데, 주후 1세기 끝 무렵에 팔레스티나에서 유대인들이 정경을 확정할 때는 이것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헬라 및 로마 세계의 여러 그리스도교회에서는 나중에 생겼다고 앞에서 말한 책들이나 확장했다고 한 부분이 포함된 칠십인 역본이 이미 사도 시대부터 정경과 다름없이 존중받게 되었다.
이런 책들 및 확장 부분들은 일반적으로 종교 개혁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교회에서 성경으로 인정받아 왔다.
개신교회에서는 이것들에게 정경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루터는 이것들을 '성경하고 같다고 볼 수는 없지만 쓸모 있고 읽기 좋은 책들'이라고 하면서 '외경'이라는 이름 아래 신구약 사이에 한데 모아두었다.
천주교회의 성경 간행본에서는 칠십인 역본과 불가타(히에로니무스의 라틴어 번역본)를 본받아 외경에 속한 책들이나 확장 부분들을 구약 성경 곳곳에 나누어 각 문학 유형에 상응하는 책 묶음(역사서, 지혜서, 예언서) 가운데 넣었다.
이것들은 '제2 정경의 책들'이라 불리지만, 정경과 같이 존중받고 있다. 그리스도교 성경 간행본에서는 구약 성경 각 책을 불가타의 순서를 따라 배열하고 있는 반면, 칠십인 역본에서는 욥기를 아가 다음에 두고 작은 예언서들을 큰 예언서들 앞에 둔다.
칠십인 역본 및 이를 따르는 불가타에서는 히브리어 정경에서 '성문서'란 범주 아래 묶어둔 책들을 풀어서 역사적인 내용이 담긴 책들은 역사서(룻, 대상, 대하, 스, 느, 에)에, 예레미야애가와 다니엘은 예언서에 넣고, 나머지(욥, 시, 잠, 전, 아)는 독자적인 부분 곧 지혜서로 여겨서 예언서 앞에 두었다.
신약 성경의 정경은 주후 200년경 본질적으로는 오늘의 범위로 확정되었다. 최종적인 결정은 4세기 끝무렵에 내렸다. 그렇지만 요한계시록의 정경성은 10세기에 이르도록 동방 교회에서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구약개론 정경과 외경을 참조하여 주시기를 바란다.
(3)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성경의 정확 무호함을 확인시켜주며 말 바꾸기를 좋아하는 유대인들에게도 변명할 여지를 허락하지 않기 위해서 하신 말씀이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사람 스스로가 신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권위를 부여받은 사람들에게 부여된 것이다.
모세(출 4: 16, 7: 1), 호세아(호 1: 1), 예레미야(렘 1: 2), 세례 요한(눅 3: 2)을 들 수 있다.
요 10: 36 세상에 보낸 자 -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 (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 )
이 말씀은 '내가 구약의 그들보다 못하냐?'라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뜻에 의해서 세상에 오신 예수를 누가 신성모독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1]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들은 그의 신성(神性)의 증거이며 예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의 근거가 된다.
요단강 건너편 요한이 처음에 세례주던 곳에 모였던 많은 사람이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고 증언하자 많은 사람은 예수님을 믿었다.
요 10: 37 아버지의 일 -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치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
예수의 가르침이 하나님의 말씀과 배치하거나 예수가 하나님 아버지의 일을 하지 아나할 때는 예수를 믿지 말라고 증언하셨다.
1]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치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여기 "내 아버지의 일"이란 말은 그가 행하신 이적들을 가리킨다.
예수는, 그의 이적을 행하신 사실을 불신자들 앞에서 도전적으로 내세우신다. 그것은, 그 이적들의 역사성과 진실성에 대하여 천하가 공인한 사실을 지적함이다.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이적들은, 어떤 한 구석에서 되어진 것이 아니고 대중이 주목하는 공석에서 되었으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같은 강퍅한 교권자들이 끈질기게 책잡으려는 무서운 눈초리 앞에서 성립된 일들이다.
요 10: 38 그 일을 믿으라. -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 (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찌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신대 )
이제 예수께서 결론을 내리신다.
유대인들은 예수가 행하는 기적은 믿었기 때문에 그렇다면 믿으라는 것이다.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말씀을 하신다고 그것을 신성모독이라 하는 것은 자신들이 회개를 부정하는 것이요 믿지 않으려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1]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 일은 믿으라.“
이것은 그의 행하신 이적들이 초자연적이고, 사람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 안에 계신 표적인 사실을 믿으라는 뜻이다.
2]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신대
아버지 안에서 행하는 기적을 믿는다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고 하셨다.
원문에는 ginwvskw(기노스코) "느끼다, 이해하다, 깨닫다"의 동사가 두 번 사용되었다.
처음에는 부정과거형으로 나중에는 현재 시상으로 사용되어 '너희가 알게 될 것이며 끊임없이 알게 될 것이다'의 뜻이다.
(1) 내 안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다 함은, 하나님께서 땅에 있는 그의 기관(organ)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성(예수님)에게 하늘의 모든 부요(富嶢)를 충만히 전달시킨다는 뜻이다.
(2) 아버지 안에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아버지(하나님) 안에" 계신다 함은, 그리스도께서 전적으로 자기를 포기 하시므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부요에서 모든 것을 가져오심을 가리킨다(Godet).
예수님의 이적은, 저렇게 땅에 계시면서 하늘에 계시는(3: 13) 오묘를 보여준다. 그것은 내세(來世)의 새 하늘과 새 땅의 영광을 예표하는 것이다.
바빙크(Bavinck)는 말하기를, "내세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완성되는 것이니 거기 의(義)가 거한다. 그 때에는 이적과 자연이 하나가 된다. 그 때에는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가 하나가 된다"라고 하였다(Geref. Dog. Uitgave van J.H Kok Te Kampen 1928, Vol I, p.311).
9. 예수를 잡고자 ( 10: 39-42 )
39 그들이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 40 다시 요단 강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 베풀던 곳에 가사 거기 거하시니 41 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하지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 하더라. 42 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
세상의 역사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나가려는 자와 이를 방해하려는 자의 순환으로 이루어진다.
38절에서의 말씀을 그들을 귀담아 듣지 않고 다시 예수를 잡고자 했다. 공식적인 재판을 열려고 하는 의도에서 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아직은 할 일이 있으셨기 때문이 그곳을 벗어나셨다.
베레아 지방의 베다니(요 1: 28)로 가셨다. 이곳에서 예수님의 사역은 많은 호응을 얻었다. 세례 요한은 죽었으나 그를 통해 많이 준비시켰기 때문이다.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치 아니하였으나 대조적으로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친히 표적을 보여주었으나 믿지 않았다.
요 10: 39 예수를 잡고자 - 그들이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 ( 저희가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 )
아직도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므로 원수들이 그를 해하지 못하였다.
1] 그들이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받아 믿으려는 사람들이 아니다.
예수의 흠집을 찾아내 그를 잡아 재판에 넘기려는 것이다.
* 마 21: 46 – 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그들이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
* 막 12: 12 - 그들이 예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되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두고 가니라.
* 눅 11: 54 -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책 잡고자 하여 노리고 있더라.
* 눅 20: 19 -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
* 요 7: 30, 44 – 30 그들이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44 그 중에는 그를 잡고자 하는 자들도 있으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더라.
2]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
그들이 예수를 붙잡지 못한 것은 아직 하나님 아버지의 보내셨던 일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