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년 전 오늘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였나? - 장상헌 일병 (당시 최전방 GP 소대원)
지금으로부터 47년 전인 1976.8.18일은 미군 장교 2명이 판문점에서 북한군에 의하여 도끼로 무참하게 살해된, 소위 말하는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이라는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 날이다.
이로 인하여 남북한 간에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되었고, 그때 분위기로는 전면전이 불가피하게 보였다.
그 당시 저는 당시 최전방인 경기도 연천에 있는 보병 0사단 예하 수색대 요원으로 GP에서 근무 중이었는데,
GP 내 최고 책임자로서 갓 소위로 임관한 육사 31기 출신의 GP장은 우왕좌왕하는 사병들에게 간결한 메시지로 우리가 처해져있는 상황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그 대응전략에 대하여 단호한 지침을 내렸다.
연이어 그분은 오랫동안 사귀고 있던 성신여대에 재학 중인 여대생과 그간 주고받았던 100통 이상의 연애편지를 불사른 다음, 죽음으로써 우리 GP를 지키자는 영웅적 훈시를 하였던 것이다.
그때 GP장님께서는 "나라가 있고 애인이 있다. 애인은 나라 다음이다" 라며 비장한 모습을 보이셨다.
이렇게 책임 리더가 단호한 의지와 솔선을 보이자, 24명의 GP요원들은 사기가 충천하여 기꺼이 전투태세로 들어갔으며, 너나 할 것 없이 유서들을 쓰게 되었다.
이에 저도 부모님 앞으로 먼저 가는 불효자식을 용서하시라는 취지로, 큰 형님 앞으로 부모님과 저의 뒷일을 잘 부탁한다는 취지로 유서 두 통을 쓰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사태발생 며칠 뒤에 김일성의 공식 사과로 비상사태가 해제되었지만, 위기상황에서의 GP장의 대응자세는 대단히 고무적이고 탁월하였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당시 미국은 항모와 전략폭격기 및 해병상륙부대 등 태평양사령부 전력을 총 집중하여 전투개시 태세를 갖추고 출동 대기 상태에 있었다.
그리고 별도로 전해 들은 이야기이지만 당시 국군통수권자인 박정희 대통령도 청와대 집무실안에 철모와 군화를 가져다 놓는 등 단호하고 강력한 모습의 대응자세를 보였다고 한다.
결과적으로는 최전선의 하급장교에서부터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솔선하는 모습을 보인 특별한 사건이 되었고, 이러한 정신들이 이 나라를 지켜내고 있는 가장 큰 밑바탕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이때 탁월한 지휘능력을 보였던 GP장님은 전북 고창고와 육사 31기를 졸업한 김명수 님으로써 저와는 1975년부터 소위와 이등병으로 첫 인연을 맺은 이후 40여 년간 그 인연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요즘도 종종 만나고 있으며, 상호 간의 호칭은 '소대장님'과 '張戰友'이며, 저는 '장전우'라는 호칭이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여하튼 지금도 그 분과 만나면 生과 死를 함께 하고자 했던 젊은 날의 피 끓는 전우애를 느낀다.
* 난(게시자) 그때 강원도의 모 부대에서 완전무장(가슴엔 슈루탄 2발, M16 소총엔 실탄
가득 장전 및 완전군장 차림)으로 헬기를 탑승하기 위해 연병장에서 대기 중이었는데,
바로 우리 앞의 중대가 이륙하고 난 뒤 조금 있으니 상황이 종료 되고 말더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