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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호마(呼牛呼馬)
'말로 부르든 소로 부르든'의 뜻으로, 자기가 한 일의 시비는 남이 평하는 대로 내버려 두고 자기는 관계하지 아니한다는 의미의 말이다.
呼 : 부를 호(口/5)
牛 : 소 우(牛/0)
呼 : 부를 호(口/5)
馬 : 말 마(馬/0)
출전 : 장자(莊子) 천도편(天道篇)
말로 부르든 소로 부르든의 뜻으로, 자기가 한 일의 시비는 남이 평하는 대로 내버려 두고 자기는 관계하지 아니한다는 말이다. 즉 칭찬하건 헐뜯건 개의치 않는다 또는 누가 무어라고 하든지 상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성어는 주(周)나라 현자인 사성기(士成綺)와 노자(老子)가 대화하는 가운데 노자가 한 말이다. 장자(莊子) 천도편(天道篇)의 내용을 보자.
士成綺明日復見, 曰: 昔者吾有剌於子, 今吾心正卻矣, 何故也.
그 다음 날 사성기는 다시 노자를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어제 나는 당신을 몹시 비방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내 마음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老子曰: 夫巧知神聖之人, 吾自以為脫焉. 昔者子呼我牛也而謂之牛, 呼我馬也而謂之馬. 苟有其實, 人與之名而弗受, 再受其殃. 吾服也恆服, 吾非以服有服.
노자가 말했다. "대개 나는 내 스스로 재주 있고 지혜 있는 신성한 사람에게서 뛰어났다고 생각하고 있소. 어제 그대가 나를 소라고 불렀다면 나는 소라고 했을 것이오. 나를 말이라고 불렀다면 나는 말이라 했을 것이오. 적어도 내게 그러한 내용이 있어서 남이 내게 그러한 이름을 주었는데, 그 이름을 받지 않으려 한다면 그 화를 두 번 받게 될 것이오. 또 내가 남에게 복종하는 것은 항상 변하지 않는 복종으로서, 그 복종은 선(善)이다 하는 마음으로써 복종하는 것이 아니오."
(莊子/天道)
호우호마(呼牛呼馬)
남이야 무어라 하든 개의하지 아니한다.
장자(莊子)의 천도편(天道篇)에 실린 글이다. 춘추시대 초나라의 노자(老子)는 당대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는 성인이다.
士成綺見老子而問曰 吾聞夫子聖人也 吾固不辭遠道而來願見 百舍重趼而不敢息
사성기(士成綺)라고 하는 사람이 노자(老子)를 만나고자 험하고 먼길을 쉬지 않고 걸었다. 신발이 변변치 못하고 길은 험해서 발은 온통 굳은 살이 박히고 갈라지고 엉망이 되었지만 성인을 만난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今吾觀子 非聖人也 鼠壤有餘蔬 而棄妹之者 不仁也 生熟不盡於前 而積斂無崖
그러나 막상 노자(老子)를 만나니 성인이 아닌 것 같았다. 노자(老子)의 집에는 물자가 남아돌고 제대로 관리도 안되어 쥐구멍에도 곡식이 남아돌 정도 였다고 한다. 각종 물건이 잔뜩 쌓여있음에도 계속 재물을 모으고 있는 듯도 했다.
사성기(士成綺)는 요즘 말을 빌리면 돌직구를 날렸다. "쥐구멍에도 곡식이 남아 돌 정도로 물건을 아낄 줄 모르는 것은 성인의 어진 행동이라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각종 물건이 잔뜩 쌓여있는데도 계속해서 부를 긁어모으고 계시니 말입니다"라고 했다. 노자는 냉담한 표정으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勞資漠然不應 士成綺明日復見曰 昔者 吾有刺於子 今吾心正却矣 何故也
다음 날 다시 노자(老子)를 찾아온 사성기(士成綺)가 물었다. "어제는 제가 선생님을 비판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문득 제가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老子曰 夫巧知神聖之人 吾自以爲脫焉 昔者子呼我牛也而謂之牛 呼我馬也而謂之馬 苟有其實 人與之名而弗受 再受其殃 吾服也恒服 吾非以服有服
노자(老子)가 말했다. "지혜가 뛰어난 자는 세상 사람들의 칭찬과 비판의 소리로부터 초탈하여 그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저번에 자네가 나를 소(牛)라고 불렀을 때 내 자신도 소(牛)라고 생각했고, 나를 말(馬)이라고 불렀을 때 또한 말(馬)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면이 있으므로 그런 이름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죄입니다. 나의 행동은 변함없이 한결같으며 결코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바깥 세상의 비방과 칭찬에 흔들리지 앟고 늘 변함없이 한결같을 수 있는 것이지요."
장자(莊子)의 천도편(天道篇)에서 유래되는 고사성어가 호우호마(呼牛呼馬)이다. 호우호마(呼牛呼馬)란 자신에 대한 남들의 실없는 칭찬이나 비방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남이야 무어라 하든 개의하지 아니한다는 뜻이다.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이야기 하는 말이다. 말로 부르든 소로 부르든. 자기가 한 일의 시비는 남이 평하는 대로 내버려 두고 자기는 관계하지 아니 함을 말한다.
일상에서 본의 아니게 비난과 구설수에 오르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상처받고 아파하며 원망도 한다. 동전이란 앞뒤가 달라 보기에 따라 달리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사람에 따라 성향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틀림이 아닌 다름! 이를 지혜로 극복하여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는 정반합으로 나아 갈 수 있어야 진정한 자기주체로서 올바른 실존이 되는 것이다.
우리들이 하는 말들의 의미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들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것 중 하나가 다른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인 것 같다. 특히나 그 말들 중 칭찬보다는 비방의 말들이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그 한마디가 어떤이들에게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무릇 우리들의 입은 먹고, 숨쉬고 하는 이외에 의사소통인 말을 하도록 만들어 놓은 기관으로 서로간의 의사소통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다. 이 세상 모든이들이 성인군자라면 다들 말들을 조심할텐데, 그렇지 않은게 현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칭찬의 말보다는 비방의 말을 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야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낼수 있으니까. '이래서 안된다, 저래서 안된다, 왜 이렇게 했느냐? 등등' 말이다.
격려의 말이 아닌 이상 안하는만 못하다
스스로 생각하며 최선의 방안을 도출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격려의 말을 못해줄 지언정 비방하거나 부정하는 말은 서로간에 악감정만 초래시킨다.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옆의 누군가가 비방의 말들, 즉 훼방을 놓는다면 기분이 어떨까? 상당히 불쾌하다. 그리고 그 불쾌감은 다시 그 사람에게 되돌아간다.
이렇게 아무렇게나 내뱉는 말들이 누구에게는 크나큰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리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나 뿐만 아니라 다들 살아오면서 몇번씩은 그런 말들에 상처를 입어 보았을 것이다. 특히 요즘은 더 그런것 같다.
서로 얼굴을 보면서 하는 말이 아닌 온라인으로 말들을 하다보니 말을 함에 있어 점점 더 신중함이 없어지는것 같다. 옛날처럼 서로 대면하면서 말할때는 상대방의 표정을 살펴가며 조금이라도 타협점을 찾아갈수 있었지만, 요즘의 온라인 대화는 대화의 질과 수준을 정말 많이 떨어뜨려 놓은것 같다. 그러면서 많은 사건,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나에게서 나가는 말은 조심하고 들어오는 말은 흘려 보내야
우리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어떻게 보면 흉기가 될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사람들을 도울 수도 있는 우리들 인생사에 아주 중요한 일부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 우리들이 첫번째 해야 할 일은 우리들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그 통제 방법으로 말하기 전 한번만 더 생각해 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들은 충분히 말들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번째로 논어에서도 말했듯이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듣는 말을 통제하는 것이다. 아무리 우리들이 말을 조심한다 하더라도 우리들의 귀에 들리는 말들이 무조건 좋은 말이 될수는 없다. 그런 말들에 일일이 신경을 쓰다보면 결국 자신의 인생이 아닌 남이 의도한 인생을 살아갈 뿐만이 아니라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아갈수 밖에 없다. 물론 이런 대범한 성격을 가지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조금씩 천천히 한쪽 귀를 열어두는 습관을 갖는 것 또한 대단히 중요하다라고 전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누가 뭐라 해도 개의치 말라' 라는 말과 같이 외부의 요인에 휘둘리지 말며, 자신을 믿고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성공의 지름길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장자(莊子) 천도편(天道篇)
장자(莊子)는 천도편(天道篇)에서 정치에 대한 관심이 더욱 더 강하게 보이고 있다. 노자에 매달렸던 무위자연을 훌쩍 넘어서 유가나 법가에도 접근하고 있다.
공자의 정치 철학은 효(孝)에서 시작된다. 누구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천륜(天倫)이라고 했다. 그 천륜은 임금과 신하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 공자의 정치 철학이다. 장자 역시 천도편에서 군신, 부자, 부부, 장유를 하늘의 길에 비유하고 있다.
天道篇 1
마음이 고요해야 천도를 비친다
천도편의 처음은 천도운이무소적(天道運而無所積)으로 시작된다. 그래서 이 편의 이름도 첫 두글자를 따서 '천도'라고 지은 것이다. 물론 그 뜻은 하늘의 도는 거침이 없이 운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과 하늘은 닮은꼴이다.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자신의 모습으로 창조했는지, 아니면 인간이 신을 자신의 모습으로 상상하고 있는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 어쨌든 결과는 신과 인간은 닮은꼴이라는 것이다. 인간과 신이 모습만 닮은 것이 아니라 그 속성도 닮은꼴이라는 것이다.
신의 속성은 때로는 '이데아'로 나타나고, 때로는 '다르마'로 나타나고, 때로는 '로고스'로 나타나고, 때로는 '말씀'으로, 때로는 '진리'나 '법' 혹은 '도'로 타나난다. 천도편에서 장자는 그 모든 것을 '천도'라고 했다.
천도를 아는 길은 고요한 명상이다. 고전을 해석하는 일은 기술에 속한다. 그러나 고전이 말하고자 하는 진리에 가까이 가려면 명상을 통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침 명상 혹은 새벽기도를 하는 것이다.
고요하고 고요하게 장자를 읽고 또 읽고 그러면 마음이 거울이 되어 세상을 맑고 밝게 비추어주게 된다.
天道運而无所積, 故萬物成.
천도(天道)는 운행에 막힘이 없다. 그래서 만물을 생성한다.
帝道運而无所積, 故天下歸.
제왕의 도는 운행에 막힘이 없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돌아간다.
聖道運而无所積, 故海內服.
성인의 도 역시 운행에 막힘이 없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모두 승복한다.
明於天, 通於聖, 六通四辟於帝王之德者, 其自爲也, 昧然无不靜者矣.
천도에 밝고 성인의 도에 통하고, 제왕의 덕에 정통하여 6방향과 4순서를 모두 아는 사람은 어리숙하며 고요할 따름이다.
聖人之靜也, 非曰靜也善, 故靜也;
萬物无足以鐃心者, 故靜也.
성인이 고요한 것은 고요함이 좋아서 고요한 것이 아니요, 만물 중에 그의 마음을 흔들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고요한 것이다.
水靜則明燭鬚眉, 平中準, 大匠取法焉.
물이 고요하면 그 밝음이 수염이나 눈썹까지 밝게 비치고, 그 평평함은 수준기(水準器)와 같아 목수도 그것을 기준으로 한다.
水靜猶明, 而況精神, 聖人之心靜乎.
물의 고요함이 이처럼 밝은데 하물며 인간의 정신이나 성인의 마음이 고요하면 어떻겠는가!
天地之鑑也, 萬物之鏡也.
그것은 세상을 성찰하는 거울이고, 만물을 비추는 거울인 것이다.
天道篇 2
장자가 말하는 마음의 고요는 무슨 뜻일까? 천도에서 말하는 4가지 고요한 마음은, 첫째 허정(虛靜)은 마음을 비우고 고요함을 지키는 것이요, 둘째 염담(恬淡)은 편안하고 담백함이요, 셋째 적막(寂漠)은 고요하고 조용함이요, 넷째 무위(无爲)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음이다.
이렇게 고요한 마음을 가지면 삶이 바르게 된다고 했다.마음을 모두 비우면 삶이 바르게 된다고는 하지만 마음을 비우는 일은 쉽지 않다. 마음을 모두 비울 수는 없지만 그 방법은 누구나 가능한 일입니다. 한 번에 한 가지 생각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축구선수가 공을 따라가면서 공 생각만 하는 것이 축구 명상이다. 바둑을 두면서 바둑만 생각하는 것이 바둑 명상이다. 요리하면서 요리만 생각하는 것이 요리명상이다. 등산하면서 숨을 헐떡이지만 오로지 올라가는 일만 생각하는 것이 등산명상이다. 만보 걷기를 하면서 오로지 발걸음만 생각하는 것이 걷기명상이다.
마음을 비우는 일보다 한 가지에 몰입하는 일이 쉽기는 하지만 많은 수련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행복한 삶을 위해 한 번은 도전해 볼 가치가 있는 일이다. 한 번에 한 가지 생각을 하면 불면증도 치료할 수 있다. 자리에 누워 온몸을 이완시키고 파란 하늘만 생각하면 1분 내에 잠에 빠져들 수 있게 된다.
夫虛靜恬淡寂漠无爲者, 天地之本, 而道德之至.
무릇 허정(虛靜), 염담(恬淡), 적막(寂漠), 무위(无爲)는 마음을 비우고, 고요함을 지키고, 편안하고 담백하며, 적막하면서 하는 일이 없는 것은 세상의 근본이자 도덕의 최고 경지이다.
故帝王聖人休焉.
그러므로 제왕이나 성인이 돼야 그 경지에서 머무는 것이다.
休則虛, 虛則實, 實者備矣.
그 경지에 머물면 마음을 비우게 되고, 마음을 비우면 결실이 있게 되고, 결실이 있게 되면 모든 것을 갖추게 된다.
虛則靜, 靜則動, 動則得矣.
마음을 비우면 고요해 지고, 고요한즉 변화를 얻게 되고, 변화를 얻으면 모든 것을 얻게 된다.
靜則无爲, 无爲也則任事者責矣.
고요하면 무위하게 되고, 무위하면 제각기 맡은 바 책임을 다하게 된다.
无爲則兪兪, 兪兪者憂患不能處, 年壽長矣.
무위하면 즐거워지고, 즐거워지면 근심과 걱정이 깃들일 수 없어 장수하게 된다.
夫虛靜恬淡寂漠无爲者, 萬物之本也.
무릇 허정, 염담, 적막, 무위는 만물의 근원이다.
明此以南鄕, 堯之爲君也.
明此以北面, 舜之爲臣也.
이것을 명백히 잘 알고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요(堯)가 임금이 되었을 때이고, 이것을 명백히 잘 알고 임금을 섬기는 것이 순(舜)이 신하가 되었을 때이다.
以此處上, 帝王天子之德也.
以此處下, 玄聖素王之道也.
이런 방법을 따라 윗자리에 있는 것이
제왕이나 천자의 덕이고, 이런 방법에 따라 아랫자리에 있는 것이 현성(玄聖), 소왕(素王)의 도이다.
以此退居而, 閒游, 則江海山林之士服; 以此進爲而撫世, 則功大名顯而天下一也.
이런 방법에 따라 물러나 한가하게 노닐면, 강과 바다나 산림에 은거하는 선비들이 따르고, 이런 방법에 따라 나아가 세상을 다스리면, 공(功)이 커지고 이름을 떨쳐 천하가 통일된다.
靜而聖, 動而王, 无爲也而尊, 樸素而天下莫能與之爭美.
고요히 있으면 성인이 되고, 움직이면 임금이 되지만, 무위하면 존귀해지고, 소박하면 천하에 능히 그와 아름다움을 겨룰 자가 없을 것이다.
天道篇 3
훌륭한 인생을 한마디로 하면 즐거운 삶과 즐거운 죽음이다. 그리고 그 즐거움이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작은 즐거움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생겨난다고 했다. 장자는 그것을 인락(人樂)이라고 하였다.
사랑하는 연인은 둘이서 손잡고 걸어가기만 해도 즐겁고 행복하다. 그 연인의 사랑이 지극하여 결혼을 한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처럼 하얗게 변할 때까지 살겠다던 부부의 연이 끊어지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그런 것을 인락이라고 하는 것이다.
진정한 즐거움은 하늘과의 조화, 즉 자연과의 조화에서 생겨난다고 했다. 그것을 천락(天樂)이라고 하였다. 천락을 아는 사람을 성인(聖人)이라고 하고, 성인은 하늘의 뜻에 따라 살고 만물의 변화에 따라 죽는다고 했다.
夫明白於天地之德者, 此之謂大本大宗, 與天和者也.
무릇 천지가 가진 덕의 명백함을 일러, 이것을 일러 모든 것의 근본, 근원이라 하니 하늘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所以均調天下, 與人和者也; 與人和者, 謂之人樂, 與天和者, 謂之天樂.
이른바 천하를 고르게 조화시키는 것은, 사람과의 조화인데, 사람과의 조화를, 인락(人樂)이라 하고, 하늘과의 조화를, 천락(天樂)이라고 하는 것이다.
莊子曰: 吾師乎. 吾師乎. 䪠萬物而不爲戾, 澤及萬世而不爲仁, 長於上古而不爲壽, 覆載天地刻雕衆形而不爲巧, 此之爲天樂.
장자가 말했다. '나의 스승이시여, 나의 스승이시여. 만물을 부수어도 사납다 하지 않으시고, 은택이 만대에 미쳐도 어질다 하지 않으시고, 상고(上古)보다 더 오래 전부터 존재했으면서도 장수라 여기지 않으시며, 하늘을 덮고 땅을 실은 채 온갖 형상을 조각해도 묘하다 하지 않으시니, 이것을 가리켜 천락이라 하십니다.'
故曰: 知天樂者, 其生也天行, 其死也物化.
그리고 또 말하기를, '천락을 아는 자는 하늘 뜻에 따라 살고 만물의 변화에 따라 죽는다.
靜而與陰同德, 動而與陽同波.
고요히 있을 때는 음기(陰氣)와 덕을 같이 하고, 움직일 때는 양기(陽氣)와 움직임을 같이 한다.
故知天樂者, 无天怨, 无人非, 无物累, 无鬼責.
천락을 아는 자는 하늘의 원망을 사는 일이 없고, 사람의 비난을 받는 일이 없으며, 만물에 얽매이는 일이 없고, 귀신의 책망을 듣는 일도 없다.'
故曰: 其動也天, 其靜也地, 一心定而天地正.
그리고 또 말하기를, '움직일 때는 하늘과 같고, 고요히 있을 때는 땅과 같으며, 마음이 하나가 되면 천하에 제일이 된다.
其魄不崇, 其魂不疲, 一心定而萬物服.
몸을 상하게 하지 않고, 그 정신을 피로하게 하지 않고, 마음을 하나로 안정시켜서 만물을 다스린다.
言以虛靜推於天地, 通於萬物, 此之謂天樂.
천지를 밀어 마음을 비우고 고요하게 하고, 만물에 두루 통하게 하니 이를 일러 천락이라고 한다.
天樂者, 聖人之心, 以畜天下也.
천락이란 성인(聖人)의 마음으로 천하를 대하는 것이다.
天道篇 4
소 잡을 때 쓰는 칼과 닭 잡을 때 쓰는 칼이 따로 있다. 장자의 말을 빌리면 무위는 세상을 움직일 때 쓰는 칼이고, 유위는 인간을 다스릴 때 쓰는 칼이다. 그래서 임금은 무위(無爲)로 정치를 해야 하고, 신하는 유위(有爲)로 나라 살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夫帝王之德, 以天地爲宗.
以道德爲主, 以无爲爲常.
무릇 임금의 덕은 하늘과 땅을 근본으로 삼고, 도와 덕을 위주로 하며 무위를 일상으로 여긴다.
无爲也, 則用天下而有餘.
有爲也, 則爲天下用而不足.
무위로 하면 세상을 다스리고도 남지만 유위로 하면 세상을 위해 쓰기에도 모자란다.
故古之人貴夫无爲也.
그러므로 옛 사람은 무위를 귀하게 여겼던 것이다.
上无爲也, 下亦无爲也, 是下與上同德.
윗사람이 무위이고 아랫사람도 역시 무위이면, 아랫사람과 윗사람의 덕이 같아진다.
下與上同德則不臣.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덕과 같으면 신하가 될 수 없다.
下有爲也, 上亦有爲也, 是上與下同德.
아랫사람이 유위이고 윗사람도 역시 유위이면,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도가 같아진다.
上與下同德則不主.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도와 같아지면 임금이 되지 못한다.
上必无爲而用天下, 下必有爲爲天下用, 此不易之道也.
윗사람은 반드시 무위로써 천하를 다스리고, 아랫사람은 반드시 유위로써 천하를 위해 쓰여야 하는데, 이는 바꿀 수 없는 도인 것이다.
故古之王天下者,
知雖落天地, 不自慮也;
辯雖彫萬物, 不自說也;
能雖窮海內, 不自爲也.
그러므로 옛날에 세상의 임금은 천지를 감쌀 만큼 지혜가 있어도 직접 나서서 꾀하려 하지 않았고, 만물에 두루 미칠 정도의 언변이 있어도 직접 나서서 말하려 하지 않았고, 세상을 움직일 능력이 있어도 직접 나서서 하려 하지 않았다.
天不産而萬物化,
地不長而萬物育,
帝王无爲而天下功.
하늘이 낳지 않아도 만물은 변화되고, 땅이 키우지 않아도 만물은 자라나고, 임금이 무위로 있어도 세상이 돌아간다.
故曰莫信於天, 莫富於地, 莫大於帝王.
그래서 하늘보다 신묘한 것은 없고, 땅보다 풍요로운 것은 없고, 임금보다 위대한 것은 없다고 하는 것이다.
故曰帝王之德配天地. 此乘天地, 馳萬物, 而用人羣之道也.
그러므로 제왕의 덕은 천지와 짝이 된다. 이것이 바로 천지를 운용하고, 만물을 구사하며 뭇사람을 부리는 도인 것이다.
本在於上, 末在於下.
要在於主, 詳在於臣.
근본은 위에 있고 말단은 아래에 있듯, 꼭 필요한 것은 임금에게 있고, 자세한 것은 신하에게 있다.
三軍五兵之運, 德之末也.
삼군(三軍)과 오병(五兵)의 운용은 덕의 말단이고,
賞罰利害, 五刑之辟, 敎之末也.
상벌 이해(利害)와 오형(五刑)의 법은 교화의 말단이다.
禮法度數, 形名比詳, 治之末也.
예와 법도, 실제와 명목을 상세히 정하는 것은 정치의 말단이고,
鐘鼓之音, 羽旄之容, 樂之末也.
종과 북의 소리나, 새나 짐승의 털로 추는 춤은 음악의 말단이다.
哭泣衰絰, 隆殺之服, 哀之末也.
소리내어 슬피 울며 상복을 따로따로 갖추어 입는 것은 슬픔의 말단이다.
此五末者, 須精神之運,
心術之動, 然後從之者也.
이 다섯 가지 말단은 모름지기 정신의 작용과, 마음의 활동이 있어야 비로소 따르는 것이다.
末學者, 古人有之, 而非所以先也.
말단에 대한 배움은 옛 사람도 갖고 있었지만 앞세우려 하지는 않았다.
天道篇 5
공자의 우주관은 한마디로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이다.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의 인의(仁義)를 우습게 보았던 장자도 천도편에 와서는 공자의 이러한 우주관을 슬쩍 빌어다 쓰고 있다. 하늘은 하늘다워야 하고, 땅은 땅다워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신하는 임금 뒤를 따라야 하고, 아들은 부모의 뒤를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君先而臣從, 父先而子從,
兄先而弟從, 長先而小從,
男先而女從, 夫先而婦從.
임금이 앞서면 신하가 따르고, 아버지가 앞서면 자식이 따르고, 형이 앞서면 아우가 따르고, 연장자가 앞서면 연소자가 따르고, 남자가 앞서면 여자가 따르고, 남편이 앞서면 부인이 따른다.
夫尊卑先後, 天地之行也.
故聖人聚象焉.
무릇 존귀한 것이 있으면 천한 것이 있고,
앞선 것이 있으면 뒤따르는 것이 있는 것이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이것을 본보기로 삼는 것이다.
天尊地卑, 神明之位也.
하늘은 귀하고 땅은 천하니 이는 신명(神明)의 자리이고,
春夏先, 秋冬後, 四時之序也.
봄, 여름이 앞서고 가을, 겨울이 뒤따르는 것은 사계절의 순서다.
萬物化作, 萌區有狀, 盛衰之殺, 變化之流也.
만물이 자라면서 갖가지 싹이 돋고 성하고 쇠하고 죽는 것이 변화의 흐름이다.
夫天地至神, 而有尊卑先後之序, 而況人道乎.
무릇 세상은 지극히 신묘하여 존귀하고 천한 것과 앞선 것과 뒤따르는 것의 순서가 있으니, 하물며 사람의 도는 어떠하겠는가?
宗廟尙親, 朝廷尙尊, 鄕黨尙齒, 行事尙賢, 大道之序也.
종묘에서는 조상을 존중하고, 조정에서는 상관을 존중하며, 향당에서는 연장자를 존중하고, 일할 때는 현명한 사람을 존중하니 이것이 대도(大道)의 순리이다.
語道而非其序者, 非其道也.
語道而非其道者, 安取道.
도를 말하면서 순서를 말하지 않으면 그것은 도가 아니며, 도를 말하면서 도인을 말하지 않으면 어찌 도를 얻겠는가?
是故古之明大道者,
先明天而道德次之.
그러므로 옛날에 대도(大道)를 밝힌 사람들은, 먼저 하늘을 밝히고 도덕은 그 다음으로 하였다.
道德已明而仁義次之.
仁義已明而分守次之.
分守已明而形名次之.
도덕이 밝혀지면 인의(仁義)가 밝혀지고, 인의가 밝혀지면 분수(分守)가 밝혀지고, 분수가 밝혀지면 형명(形名)이 밝혀졌다.
形名已明而因任次之.
因任已明而原省次之.
原省已明而是非次之.
是非已明而賞罰次之.
형명이 밝혀지면 인임(因任)이 밝혀지고, 인임이 밝혀지면 원성(原省)이 밝혀지고, 원성이 밝혀지면 시비(是非)가 밝혀지고, 시비가 밝혀지면 상벌(賞罰)이 밝혀졌다.
賞罰已明而愚知處宜, 貴賤履位, 仁賢不肖襲情, 必分其能, 必由其名.
상벌이 밝혀지면 어리석은 자와 슬기로운 자가 각기 제 자리를 잡았고, 귀한 자와 천한 자가 각기 제 지위에 올랐으며, 어질고 현명한 자와 못나고 어리석은 자는 각기 그 실정에 따르고, 반드시 그 능력에 따라 나뉘고, 반드시 그 명칭에 따르게 되는 것이다.
以此事上, 以此畜下, 以此治物,
以此修身, 知謀不用, 必歸其天.
이와 같이 윗사람을 섬기고 아랫사람을 보살피며, 이와 같이 만물을 다스리고 몸을 닦으면, 지혜와 계략을 쓰지 않고도 반드시 하늘로 돌아가게 된다.
此之謂太平, 治之至也.
이것을 일러 태평(太平)이라 하고 정치의 극치에 이르는 것이다.
故書曰: 有形有名.
그러므로 옛 글에 이르기를, '형체가 있으면 이름이 있다'고 했다.
形名者, 古人有之, 而非所以先也.
형명(形名)은 옛 사람에게도 있었지만 이를 앞세우지는 않았다.
古之語大道者, 五變而形名可擧, 九變而賞罰可言也.
옛날의 대도를 말하는 사람은 다섯 번째 가서야 비로소 형명을 거론했고, 아홉 번째 가서야 비로소 상벌을 말했다.
驟而語形名, 不知其本也.
驟而語賞罰, 不知其始也.
갑자기 형명을 말하는 자는 그 근본을 모르는 것이고, 갑자기 상벌을 말하는 자는 그 시작을 모르는 것이다.
倒道而言, 迕道而說者,
人之所治也, 安能治人.
도를 거꾸로 말하고 도를 거슬러서 말하는 자는, 남에게 다스려질 뿐 어찌 남을 능히 다스릴 수 있겠는가!
驟而語形名賞罰, 此有知治之具, 非知治之道.
형명이나 상벌을 갑자기 말하는 것은, 정치의 방법을 안다고 하겠지만 정치의 도를 아는 것은 아니다.
可用於天下, 不足以用天下.
천하에 쓰여지긴 하겠지만 천하를 운용하기에는 부족하다.
此之謂辯士, 一曲之人也.
이것을 일러 말 잘하는 한 가지 재주뿐인 사람이라고 한다.
禮法數度, 形名比詳, 古人有之,
此下之所以事上, 非上之所以畜下也.
예와 법을 자주 헤아리고 실제와 명목을 소상히 비교하는 것은 옛사람에게도 있었지만, 이것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섬기기 위한 것이었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기르는 방법은 아니었다.
天道篇 6
장자는 요순시대를 태평성대라고 하면서도 두 임금의 차이점을 지적하고 있다. 요임금은 어리석은 백성을 멸시하지 않고, 가난한 백성을 버리지 않으며, 죽은 자를 슬퍼하고, 고아를 귀여워 해주며, 과부를 가엾게 여겼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다.
순임금은 임금이 하는 일은 사람의 힘으로 할 것이 아니라 하늘의 덕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늘의 덕이 있어야 세상이 평안하고 해와 달이 비치어 사철이 운행되며, 밤낮에 일정한 규칙이 있고, 구름이 일어 비가 내린다는 것이다.
두 임금의 차이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맹자의 말을 보자. ①임금의 권력은 하늘로 부터 온다. ②하늘의 뜻은 민심을 통해 나타난다. 그러니 민심이 천심이다. ③민심의 지지를 받은 임금이 곧 진정한 임금이다.
맹자는 이와 같은 주장을 요와 순의 선양으로 설명했다. 백성들은 요임금의 아들이 아니라, 순을 지지하였다. 즉 백성의 지지를 받는 순이야말로, 진정한 하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이는 당시의 사회 시스템으로 보면 혁명적인 주장이었다.
순임금은 임금이 하는 일을 사람의 힘으로 할 것이 아니라 하늘의 덕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을 맹자의 말로 바꾸면 정치는 임금의 힘으로 할 것이 아니라 민심을 따라 해야 한다는 것이다.
昔者舜問於堯曰: 天王之用心何如.
옛날 순(舜)이 요(堯)임금에게 물었다. '임금은 어떻게 마음을 써야 하는 것입니까?'
堯曰: 吾不敖無告, 不廢窮民, 苦死者, 嘉孺子而哀婦人, 此吾所以用心已.
요가 대답했다. '나는 어리석은 백성을 멸시하지 않고, 가난한 백성을 버리지 않으며, 죽은 자를 슬퍼하고, 고아를 귀여워 해주며 과부를 가엾게 여기니 이것이 임금된 나의 마음씀이다.'
舜曰: 美則美矣, 而未大也.
순이 말했다. '좋기는 하나 위대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堯曰: 然則何如.
요가 물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겠는가?'
舜曰: 天德而土寧日月照而四時行, 若晝夜之有經, 雲行而雨施矣.
순이 말했다. '하늘의 덕으로 세상이 평안하고 해와 달이 비치어 사철이 운행되며, 밤낮에 일정한 규칙이 있고, 구름이 일어 비가 내리는 것입니다.'
堯曰: 膠膠擾擾乎. 子, 天之合也; 我, 人之合也. 夫天地者, 古之所大也, 而皇帝堯舜之所共美也. 故古之王天下者, 奚爲哉, 天地而已矣.
요가 말했다. '시끄럽게 요란하기만 하군. 그대는 하늘과 화합하고 있지만, 나는 사람과 화합하고 있는 것이다. 무릇 이 세상은 예로부터 위대한 것으로서 황제나 요순이 함께 찬미해온 것이다. 옛날 이 세상을 다스리던 임금은 어떻게 했는가 하면 천지의 도를 따랐을 뿐이다.'
天道篇 7
장자에는 공자와 노자가 만난 이야기가 몇 번 나온다. 그럴 때마다 장자는 공자의 생각이 모자란다면서 노자의 손을 들어준다. 장자가 공자를 우습게 보는 장면이다.
인의(仁義)는 인간이 만들어 낸 유위(有爲)의 억지 본성이라는 말이다. 사심을 버리려는 것조차 욕심이라고 한다. 배 위에서 선풍기 바람을 아무리 세게 불어도 배가 움직이지 않는 원리이다. 도는 자연의 바람이고 인의는 배위에서 만들어 내는 선풍기 바람과 같은 것이다.
孔子西藏書於周室.
공자가 서쪽 주나라 왕실에 자신이 편찬한 책을 보관시키려 했다.
子路謀曰: 由聞周之徵藏史有老聃者, 免而歸居. 夫子欲藏書, 則試往因焉.
이 때 자로가 의견을 내놓았다. '제가 듣기에 노자라는 사람이 주나라의 장서를 담당 관리인데 지금은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가서 산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편찬한 책을 보관시키시려면 찾아가서 부탁해 보시지요.'
孔子曰: 善.
공자는 말했다. '좋겠구나.'
往見老聃, 而老聃不許.
공자가 노자를 찾아가 만났으나 청을 들어 주지 않았다.
於是繙十二經以說, 老聃中其說, 曰: 大謾, 願聞其要.
12경을 펼쳐놓고 설명했더니 노자가 말을 끊고 중간에 말했다. '너무 지루하니 요점만 말해보시오.'
孔子曰: 要在仁義.
공자가 말했다. '요점은 바로 인의(仁義)에 있습니다.'
老聃曰: 請問, 仁義, 人之性邪.
노담이 말했다. '그럼 인의란 사람의 본성입니까?'
孔子曰: 然. 君子不仁則不成, 不義則不生, 仁義, 眞人之性也, 又將奚爲矣.
공자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군자는 인이 아니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고, 의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으니 인의야 말로 참사람의 본성이니, 인의을 빼면 무엇이 있겠습니까?'
老聃曰: 請問, 何謂仁義.
노자가 물었다. '그럼 무엇을 일러 인의라 합니까?'
孔子曰: 中心物愷, 兼愛无私, 此仁義之情也.
공자는 대답했다. '마음속으로는 만물과 더불어 즐기고, 남을 두루 사랑하여 사심이 없는 것이 인의의 참모습 입니다.'
老聃曰: 意. 幾乎後言.
노담이 말했다. '아아, 위태로운 말이구나!
夫兼愛, 不亦迂乎.
거듭 겸애를 말하는 것이 도와는 먼 이야기가 아니오.
无私焉, 乃私也.
사심을 없애겠다는 것이 곧 사심이오.
夫子若欲使天下无失其牧乎, 則天地固有常矣.
그대가 만일 세상 사람들을 순박함으로 다스리기 원한다면 천지에는 본래부터 일정한 법칙이 있고,
日月固有明矣, 星辰固有列矣.
해와 달에는 본래부터 밝음이 있으며, 별은 본래부터 위계질서(列)가 있고,
禽獸固有群矣, 樹木固有立矣.
새와 짐승들은 본래부터 무리지어 살고, 나무는 본래부터 설 자리가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夫子亦放德而行, 循道而趨, 已至矣.
그대 역시 덕을 따라 행동하고, 도를 좇아 살아간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오.
又何偈偈乎揭仁義.
若擊鼓而求亡子焉.
또 어찌하여 인의를 내걸고, 북을 치며 잃어버린 아들을 찾듯이 하는 것이오.
意. 夫子亂人之性也.
아아, 그대는 인간의 참다운 본성을 어지럽히고 있는 것이오.
天道篇 8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마주 앉아 했다는 농담은 유명하다. '제 눈에는 대사님이 돼지처럼 보입니다.' '제 눈에는 전하가 부처님으로 보입니다.' '이번엔 헐뜯는 말이 아니니 내가 이겼소.' '아닙니다.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가 보이니까요.'
사성기라는 사람이 노자를 찾아가서 한 말이 이와 같다. '선생이 성인인 줄 알았더니 아니군요.' '나를 소라고 부르면 내가 소가 되겠고, 말이라고 부르면 말이 되겠소.'
士成綺見老子而問曰: 吾聞夫子聖人也, 吾固不辭遠道而來願見.
사성기(士成綺)가 노자를 보고 말했다. '나는 선생이 성인이라는 말을 듣고 먼 길을 마다 않고 찾아뵙고자 왔습니다.
百舍重趼而不敢息, 今吾觀子, 非聖人也.
백일동안 발에 못이 배기도록 쉬지 않고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선생을 만나보니 성인이 아닌 것 같습니다.
鼠壤有餘蔬, 而棄妹之者, 不仁也.
쥐구멍에 먹다 남은 쌀알이 있는데도 거들떠 보지 않으니 이것은 불인(不仁)입니다.
生熟不盡於前, 而積斂无崖.
날 것과 익은 것이 한없이 쌓여 있는데도 재물을 쌓고 거두어 들이지 않습니까?'
勞資漠然不應.
노자는 못 들은 체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士成綺明日復見, 曰: 昔者, 吾有刺於子, 今吾心正却矣, 何故也.
사성기가 다음날 다시 찾아와서 말했다. '어제는 내가 선생을 헐뜯었는데 지금은 내 마음이 가라 앉았으니 무슨 까닭입니까?'
老子曰: 夫巧知神聖之人, 吾自以爲脫焉.
노자가 말했다. '무릇 지혜가 뛰어나고 신성한 경지를 나는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것이오.
昔者子呼我牛也而謂之牛, 呼我馬也而謂之馬.
어제 그대가 나를 소라고 불렀다면 내가 소라고 했을 것이고, 말이라고 불렀다면 나 스스로를 말이라고 했을 것이오.
苟有其實, 人與之名而弗受, 再受其殃.
만일 그러한 사실이 있어 남들이 나를 그렇게 불렀는데도 받아 들이지 않는다면 더 큰 재앙을 받게 될 것이오.
吾服也恒服, 吾非以服有服.
내가 승복하는 것은 떳떳하게 승복하는 것이지 복종하려고 생각하여 복종하는 것은 아니오.'
士成綺雁行避影, 履行遂進而問, 修身若何.
사성기가 기러기 날 듯 비스듬히 뒤를 따르며 노자의 그림자를 밟지 않도록
천천히 걸어 다가가서 물었다. '어떻게 몸을 수신해야 합니까?'
老子曰: 而容崖然, 而目衝然, 而顙頮然, 而口鬫然, 而狀義然, 似繫馬而止也.
노자가 말했다. '그대의 얼굴은 깎아지른 절벽같고 눈은 튀어 나왔으며, 이마는 높이 솟았고 입은 크게 벌어져 있으며, 모습은 오만스러워 달리는 말을 억지로 매어 놓은 것 같소.
動而持, 發也機, 察而審, 知巧而覩於泰, 凡以爲不信. 邊竟有人焉, 其名爲竊.
움직이고 싶은 것을 참고 있으나 튀어 나가기만 하면 쇠뇌같을 것이고, 살피는 바가 자세하여 지식과 재주가 뛰어나니 교만함이 보이니, 이 모든 것이 믿을 수 없는 것이다. 그대와 같은 사람이 변경에 있는데 그 이름을 도둑이라 부르고 있소.'
天道篇 9
도를 한 마디로 하면 역시 노자 1장, 첫머리의 정의를 따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도를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도가 아니다(道可道非常道)'고 했다. 도라고 이름을 붙였대서 항상 도라고 불러야 하는 것은 아니다(名可名 非常名).
장자는 도는 깨우쳐서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니 도란 넓고도 넓어서 다 이룰 수가 없는 것이고, 또한 아무리 작은 도일지라도 그것을 우습게 보고 버려서는 안된다고 했다. 도란 우리가 노력해서 이루어내는 결과물이 아니다. 도란 길을 가는 것처럼 끊임없이 걸어가야 하는 삶의 길이라고 했다.
夫子曰: 夫道, 於大不終, 於小不遺, 故萬物備.
노자가 말했다. '무릇 도란 크게 깨우쳐도 끝이 없고, 작은 도라도 버릴 것이 없으니 모든 것을 갖추어야 한다.
廣廣乎其无不容也.
淵淵乎其不可測也.
도는 넓고도 넓어 포용하지 않는 것이 없고, 깊고도 깊어 헤아릴 수가 없다.
形德仁義, 神之末也, 非至人孰能定之.
형덕에 의한 정치나 인의에 의한 교화는 근본 정신에 비하면 지엽말단이니, 지인(至人)이 아니면 누가 본말을 정하겠는가.
夫至人有世, 不亦大乎.
而不足以爲之累.
무릇 지인이 세상을 다스림이 위대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지인은 그것에 얽매이면 안된다.
天下奮棅而不與之偕, 審乎無假而不與利遷, 極物之眞, 能守其本.
천하가 권력을 다투어도 그에 휩쓸리지 않고, 거짓이 없는 진리를 깨달아 만물과 함께 변하지 않으며, 만물의 진실을 깨달아 그 근본을 지킨다.
故外天地, 遺萬物, 而神未嘗有所困也.
그러므로 천지를 벗어나 만물을 버려도, 근본 정신은 결코 고통 받는 일이 없다.
通乎道, 合乎德, 退仁義, 賓禮樂, 至人之心有所定矣.
도와 통하고 덕과 일치되면, 인의를 물리고 예악을 배척하여도, 지인의 마음은 안정된 곳에 있게 된다.'
天道篇 10
도(道)를 전하는 최고의 방법은 마음과 마음이 서로 맞아 전하는 이심전심이다. 이심전심의 최고봉은 꽃을 들어보였던 부처님과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고 미소를 지었던 가섭이 만들어 낸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일 것이다. 수레를 만들던 목수가 감히 책을 읽고 있는 제후에게 찌꺼기 같은 글을 읽는다고 말을 했다. 환공이 엄하게 꾸짖었다.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순간 목수가 말했다. 목수는 자신이 수레 만드는 일을 글로 써서 자식에게 전할 수 없어 70 나이에 아직도 직접 수레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 죽고 없는 옛 사람의 글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이다.
桓公讀書於堂上, 輪扁斲輪於堂下, 釋椎鑿而上, 問桓公曰: 敢問公之所讀爲何言邪.
환공이 어전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목수 윤편(輪扁)이 어전 뜰에서 수레바퀴를 깎고 있다가 연장을 놓고 어전에까지 올라 와서 환공에게 물었다. '지금 읽으시는 책에는 누구의 말씀이 적혀 있습니까?'
公曰: 聖人之言也.
환공이 답했다. '성인의 말씀이 적혀 있다.'
曰: 聖人在乎.
윤편이 말했다. '그 성인이 지금 살아 계신가요?'
公曰: 已死矣.
환공이 말하기를, '이미 돌아가신 지 오래이다.'
曰: 然則君之所讀者, 古人之糟粕已夫.
윤편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전하께서 읽고 계신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糟粕)로군요.'
桓公曰: 寡人讀書, 輪人安得議乎, 有說則可, 無說則死.
환공이 말했다. '과인이 글을 읽는데 수레 고치는 네가 감히 그런 말을 하다니 그만한 이유가 있으면 모르되, 그렇지 않으면 너는 살아남지 못할 줄 알아라.'
輪扁曰: 臣也, 以臣之事觀之.
윤편이 말했다. '소신은 소신이 하는 일을 두고 드린 말씀이옵니다.
斲輪徐則甘而不固, 疾則苦而不入.
나무를 깎아 바퀴에 맞출 때 너무 잘 들어가면 헐거워지고, 너무 꼭 끼게 하려면 볼이 채서 잘 들어가지가 않습지요.
不徐不疾, 得之於手,
而應於心. 口不能言.
너무 헐겁지도 않고 너무 끼지도 않게 하려면, 비록 다 같은 손으로 하는 것이긴 하지만, 역시 영감이 작용하게 되옵니다. 말로는 표현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有數存焉於其間, 臣不能以喩臣之子, 臣之子亦不能受之於臣.
그러한 특기란 것은 소신이 자식에게도 가르쳐 줄 수가 없었고, 자식도 소신에게서 배울 수가 없었습니다.
是以行年七十而老斲輪.
그래서 소신은 나이 70에도 이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古之人與其不可傳也死矣.
옛 성인들도 돌아가신 뒤에는 그 재주를 전해줄 수 없지 않겠나이까.
然則君之所讀者, 古人之糟粕已夫.
그러므로 전하께서 읽고 계신 것도 옛 사람들의 생각의 찌꺼기 밖에 될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 呼(부르짖을 호)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입 구(口; 입, 먹다, 말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乎(호; 내쉬는 숨소리)로 이루어졌다. '숨을 내쉬다'의 뜻과 또 음(音)을 빌어 큰소리로 '부르다'의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呼자는 '부르다'나 '(숨을)내쉬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呼자는 口(입 구)자와 乎(어조사 호)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乎자는 지금은 '어조사'와 관련된 뜻으로 쓰이고 있지만, 본래는 도끼 찍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었다. 呼자는 이렇게 소리가 울려 퍼지는 모습을 표현한 乎자에 口자를 결합한 것으로 말이 넓게 퍼져나간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呼(호)는 ①부르다 ②(숨을)내쉬다 ③부르짖다 ④호통치다(크게 꾸짖거나 주의를 주다), 큰소리를 지르다 ⑤슬프다 ⑥아! 탄식(歎息)의 소리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부를 소(召), 읊을 음(吟), 부를 창(唱), 부를 환(吸),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마실 흡(吸), 응할 응(應)이다. 용례로는 팔거나 사려고 물건의 값을 얼마라고 부름을 호가(呼價), 이름을 부름을 호명(呼名), 어머니라고 부름을 호모(呼母), 아버지라고 부름을 호부(呼父), 부르는 소리를 호성(呼聲), 억울하고 원통한 사정을 관청이나 남에게 하소연하는 것을 호소(呼訴), 원통함을 부르짖어 말함을 호원(呼冤), 부름에 따라 대답함을 호응(呼應), 소리를 높이어 부름을 호창(呼唱), 불러냄을 호출(呼出), 불러 일컬음 또는 이름을 지어 부름을 호칭(呼稱), 형이라고 부름을 호형(呼兄), 사람이나 동물이 코 또는 입으로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는 기운을 호흡(呼吸), 외침이나 말로 부름을 구호(口呼), 목소리를 크게 하여 부름을 대호(大呼), 계속하여 부름을 연호(連呼), 기쁘고 반가워서 고함을 지름을 환호(歡呼), 떠들며 부름을 훤호(喧呼), 원통한 사정을 호소할 곳이 없다는 말을 호소무지(呼訴無地), 썩 가까운 벗의 사이에 형이니 아우니 하고 서로 부름을 이르는 말을 호형호제(呼兄呼弟),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형을 형이라고 부름을 이르는 말을 호부호형(呼父呼兄), 불러 오고 불러 간다는 말을 호래초거(呼來招去),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름을 이르는 말을 호부호모(呼父呼母), 사람을 불러 왔다가 다시 그 길로 곧 돌려 보낸다는 말을 호래척거(呼來斥去), 원통한 사정을 호소할 곳이 없다는 말을 호소무처(呼訴無處), 손짓하여 부르면 대답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를 이르는 말을 지호지간(指呼之間), 기뻐서 소리치며 날뛴다는 말을 환호작약(歡呼雀躍), 몹시 슬프거나 분하거나 할 때 하늘과 땅을 향해 울부짖는 일을 이르는 말을 규천호지(叫天呼地),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소리 지른다는 뜻으로 좋은 기회를 터서 일을 시행하면 이루기가 쉽다는 말을 순풍이호(順風而呼), 한 사람이 소리내어 외치면 여러 사람이 이에 따른다는 말을 일호백낙(一呼百諾) 등에 쓰인다.
▶️ 牛(소 우)는 ❶상형문자로 뿔이 달린 소의 머리 모양을 본뜬 글자로 소를 뜻한다. 뿔을 강조하여 羊(양)과 구별한 글자 모양으로, 옛날 중국에서는 소나 양을 신에게 빌 때의 희생의 짐승으로 삼고 신성한 것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에 글자도 상징적이며 단순한 동물의 모양은 아니다. ❷상형문자로 牛자는 '소'를 뜻하는 글자이다. 牛자의 갑골문을 보면 뿔이 달린 소의 머리가 간략하게 그려져 있었다. 갑골문에서부터 소전까지는 이렇게 소의 양쪽 뿔이 잘 묘사되어 있었지만, 해서에서는 한쪽 뿔을 생략해 '절반'을 뜻하는 半(반 반)자와의 혼동을 피하고 있다. 농경 생활을 하는 민족에게 소는 매우 중요한 동물이었다. 느리지만 묵직한 힘으로 밭을 갈거나 물건을 옮길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한편 소는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牛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제물(祭物)'이나 '농사일'과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그래서 牛(우)는 성(姓)의 하나로 ①소(솟과의 포유류) ②별의 이름, 견우성(牽牛星) ③우수(牛宿: 28수의 하나) ④희생(犧牲) ⑤고집스럽다 ⑥순종(順從)하지 않다 ⑦무릅쓰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소 축(丑), 짐승 축(畜)이다. 용례로는 소의 젖을 우유(牛乳), 소의 뿔을 우각(牛角), 소와 말을 우마(牛馬), 소를 부려 밭을 갊을 우경(牛耕), 소를 잡는 데 쓰는 칼을 우도(牛刀), 소의 가죽을 우피(牛皮), 소 걸음이란 뜻으로 느린 걸음을 우보(牛步), 소의 궁둥이로 전하여 세력이 큰 자의 부하에 대한 비유를 우후(牛後), 소의 수컷으로 수소를 모우(牡牛), 소의 암컷으로 암소를 빈우(牝牛), 털빛이 검은 소를 흑우(黑牛), 소싸움 또는 싸움 소를 투우(鬪牛), 식용할 목적으로 사육하는 소를 육우(肉牛), 주로 일을 시키려고 기르는 소를 역우(役牛), 쇠귀에 경 읽기란 뜻으로 우둔한 사람은 아무리 가르치고 일러주어도 알아듣지 못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우이독경(牛耳讀經), 소가 물을 마시듯 말이 풀을 먹듯이 많이 먹고 많이 마심을 우음마식(牛飮馬食),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다는 뜻으로 큰 일을 처리할 기능을 작은 일을 처리하는 데 씀을 이르는 말을 우도할계(牛刀割鷄), 소가 밟아도 안 깨어진다는 뜻으로 사물의 견고함의 비유를 우답불파(牛踏不破), 소를 삶을 수 있는 큰 가마솥에 닭을 삶는다는 뜻으로 큰 재목을 알맞은 곳에 쓰지 못하고 소소한 일을 맡기는 경우를 비유하는 말을 우정팽계(牛鼎烹鷄), 소 궁둥이에 꼴 던지기라는 뜻으로 어리석은 사람은 가르쳐도 소용이 없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우후투추(牛後投芻), 양으로 소와 바꾼다는 뜻으로 작은 것을 가지고 큰 것 대신으로 쓰는 일을 이르는 말을 이양역우(以羊易牛) 등에 쓰인다.
▶️ 馬(말 마)는 ❶상형문자로 말의 모양으로 머리와 갈기와 꼬리와 네 다리를 본떴다. 개는 무는 것을, 소는 뿔을 강조한 자형(字形)이지만 말의 경우에는 갈기를 강조하고 있다. 부수로 쓰일 때 말과 관계가 있음을 나타낸다. ❷상형문자로 馬자는 '말'을 그린 글자이다. 갑골문에 나온 馬자를 보면 말의 특징을 표현하기 위해 큰 눈과 갈기가 함께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소전으로 넘어오면서 머리와 갈기는 간략화 되었고 해서에서는 다리가 점으로 표기되면서 지금의 馬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말은 고대부터 사냥과 전쟁에 이용되었지만 주로 먼 거리를 달리는 용도로 쓰였다. 그래서 馬자가 부수로 쓰인 글자들은 주로 '(말을)타다'나 '가다', 말의 행위, 동작과 관계된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馬(마)는 (1)성(姓)의 하나 (2)말 등의 뜻으로 ①말(말과의 포유류) ②벼슬의 이름 ③산가지(수효를 셈하는 데에 쓰던 막대기) ④큰 것의 비유 ⑤아지랑이 ⑥나라의 이름, 마한(馬韓) ⑦크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마구간을 마사(馬舍), 말의 똥을 마분(馬糞), 말을 타는 재주를 마술(馬術), 말이 끄는 수레를 마차(馬車), 말을 부리는 사람을 마부(馬夫), 말을 타고 떼를 지어 다니는 도둑을 마적(馬賊), 말의 몇 마리를 마필(馬匹), 말의 다리를 마각(馬脚), 말을 매어 두거나 놓아 기르는 곳을 마장(馬場), 경마할 때에 파는 투표권을 마권(馬券), 말을 타고 나감으로 선거에 입후보함을 출마(出馬), 수레와 말을 거마(車馬), 자기가 사랑하는 말을 애마(愛馬), 타는 말이나 말을 탐을 기마(騎馬), 걸음이 느린 말이나 둔한 말을 노마(駑馬), 걸음이 썩 빠른 말 한마를 준마(駿馬), 말에서 떨어짐을 낙마(落馬), 말이 빨리 달리는 것을 겨룸을 경마(競馬), 말을 탐으로 사람이 말을 타고 여러 가지 동작을 하는 경기를 승마(乘馬), 대나무를 가랑이 사이에 끼워서 말로 삼은 것을 죽마(竹馬), 기차를 말에 비유한 일컬음을 철마(鐵馬), 말의 귀에 동풍이라는 뜻으로 남의 비평이나 의견을 조금도 귀담아 듣지 아니하고 흘려 버림을 이르는 말을 마이동풍(馬耳東風), 말의 다리가 드러난다는 뜻으로 숨기려던 정체가 드러남을 이르는 말을 마각노출(馬脚露出), 말의 가죽으로 자기 시체를 싼다는 뜻으로 옛날에는 전사한 장수의 시체는 말가죽으로 쌌으므로 전쟁에 나가 살아 돌아오지 않겠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마혁과시(馬革裹屍), 말이나 소에 의복을 입혔다는 뜻으로 학식이 없거나 예의를 모르는 사람을 조롱해 이르는 말을 마우금거(馬牛襟裾), 달리는 말은 말굽을 멈추지 않는다는 뜻으로 지난 성과에 안주하지 말고 더욱 발전하고 정진하자는 뜻을 이르는 말을 마부정제(馬不停蹄), 말도 갈아타는 것이 좋다는 뜻으로 예전 것도 좋기는 하지만 새것으로 바꾸어 보는 것도 즐겁다는 말을 마호체승(馬好替乘)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