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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자정이 지난 새벽 1시 경, 축제에 모인 인파가 돌아가고 꽃으로 둘러싸인 쉬바신의 상이 다시 부미나타 사원으로 들어갈 무렵, 순다람 아이어의 집에서 쉬바가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울음소리를 터뜨리고 있었다. 벤카타라만(Venkataraman), 훗날 세상사람들에게 바가반 슈리 라마나 마하리쉬(Bhagavan Sri Ramana Maharshi)로 불리게 될 사내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그 방에는 눈먼 간호원이 있었다. 그녀는 아이가 태어날 무렵에 황홀한 빛을 느끼고는 아라가말에게 “지금 태어나고 있는 아이는 성스러운 존재임에 틀림없습니다.”라고 말하였다. 벤카타라만은 아라가말과 순다람 아이어 부부의 4자녀 중 둘째로, 아버지 순다람 아이어는 자수성가하여 성공한 변호사였으며 티루출리에서는 자비롭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명망이 드높았다. 그는 밤중에 자신의 마차를 습격한 도적 떼마저도 그를 경외하여 조용히 물러나게 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 그의 아내 아라가말은 부지런하고 성품이 온화한 주부였으며 그녀의 내적인 영혼의 힘은 훗날, 아들의 영적 가르침 아래서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순다람 아이어의 집은 늘 손님들과 순례자로 인해 붐볐는데, 그는 이층으로 집을 지어 반은 가족을 위해 사용했고 나머지 반은 손님과 순례자를 위한 공간으로 할애하였다. 오늘날까지도 그의 생가에서는 매일 의식이 행해지고, 많은 순례자들이 발길을 잇고 있다. 1891년 벤카타라만은 티루출리에서 북쪽으로 70마일 떨어진 딘디굴(Dindigul)에 있는 친척집으로 보내져, 딘디굴 시립 고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가 이 집에서 살기 시작한지 1년이 채 못되어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즉시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귀향한지 며칠 후인 1892년 2월 18일, 아버지의 임종을 맞게 된다. 시신이 화장되기까지, 벤카타라만은 죽음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그는 아버지의 시신과 상관없이 모든 육체적, 정신적 행동에 책임이 있는 어떤 다른 힘이 있다는 생각에 도달하였다. 그것은 아버지의 몸이 아버지가 아니듯이 인간의 몸이 인간 그 자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에게 일깨워 주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가장을 잃은 벤카타라만의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친척집에 얹혀 살게 되었다. 어머니 아라가말과 여동생, 막내 동생은 고향 근처의 친척집으로 갔으며 벤카타라만과 그의 형은 마두라이에 있는 작은 아버지 수바 아이어(Subba Iyer)의 집으로 보내졌다. 마두라이는 미나크쉬(Meenakshi) 사원으로 유명한 북적대는 대도시였다. 벤카타라만은 처음엔 스코트(Scotts) 중학교에 다니다가 아메리칸 미션 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책 읽기나 공부보다는 바깥에 나가 운동과 각종 경기를 즐겨했다. 그는 학업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으나, 그래도 기억력이 남달리 뛰어났던 덕에 보호자인 작은 아버지를 걱정시키는 일은 없었다. 타고난 건강과 힘, 그리고 운동신경이 누구보다 뛰어난 그에게 바이가이(Vaigai) 강에서 수영을 하는 것과 친구들과 운동경기를 하는 것은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의 즐거움이었다. 사실, 그때까지는 그의 인생에 있어 어떤 진정한 의미나 목적은 나타나지 않았다. 두 번 째 전조도 곧이어 나타났는데, 이것은 책으로부터 왔다. 벤카타라만은 숙부가 빌려온 페리아푸라남(Periapuranam)이라는 제목의 타밀(Tamil) 지방의 63명의 성자에 대한 책을 우연히 읽기 시작했다. 그는 책을 읽어감에 따라 그토록 지고한 신앙과 사랑, 그리고 성스런 열정이 인간에게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희열에 찼다. 진실로 아름다운 삶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세상과의 연결을 끊고 신과 하나가 된 성인들의 이야기는 그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로부터 몇 달 후인 1896년 7월 중순 숙부의 집 2층 방에 앉아 있던 벤카타라만은 마침내 생애 최대의 큰 변화를 맞게 되는데, 그것은 그를 소년에서 성자로, 단 한 순간에, 재빨리, 그리고 영원토록 뿌리를 내리게 하였다. 그 절정은 아무런 탐구도, 아무런 노력도, 아무런 의식적 준비도 없이 그에게 일어났다. 그 날 그는 갑작스럽게 설명할 수 없는 죽음의 공포에 압도되었다. 평소에 그는 거의 아프지 않았으며 그날도 그의 건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런 그에게 갑작스럽게 닥친 죽음의 공포는, 전혀 아무 준비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강렬하고 불가사의한 체험으로 다가왔다. 그는 아무 도움도 청할 수 없었으며 다만 “이렇게 죽겠구나”고 느끼고는 죽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의사나, 어른들이나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겠다는 생각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그는 그때 오직 이 죽음의 문제를 그 스스로 그리고 그 자리에서 풀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죽음의 충격에서 오는 이 공포는 그의 마음을 내면으로 이끌고 갔다. 그는 마음속으로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제 죽음이 왔다. 죽음이 무엇인가? 육체의 죽음으로 오는 이 죽음이란 무엇인가? 이 몸은 죽는다.” 그래서 그는 즉시 죽음의 일어남을 드라마틱하게 하였다. 그는 죽음의 탐구를 생생하게 하기 위하여 눕고는 마치 시체가 된 것처럼 몸을 뻗어 뻣뻣하게 하였다. 그는 소리가 입 밖으로 전혀 새어나가지 않도록 입을 꽉 깨물었다. 그래서 그는 다른 말은 물론 ‘나’라는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때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 몸은 죽었다. 이 몸은 뻣뻣한 채로 화장터로 옮겨져 한 줌의 재로 변할 것이다. 그러나 이 몸이 죽는다고 내가 죽는가? 몸이 나인가? 몸은 말이 없으며, 고요하다. 그러나 나는 내 존재의 완전한 힘을 느낀다. 내 몸과는 별개인, 나 속에 있는 ‘나’의 소리조차도 나는 느낀다. 그러므로 나는 몸을 초월한 영(靈:참나)이다. 비록 몸은 죽음에 이르나 몸을 초월하여 있는 영은 죽음의 손길이 닿을 수 없다. 이 말의 의미는 내가 죽음을 초월한 영이라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둔한 생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아무런 사고 과정이 없이, 그에게 직접적인 자각으로 그리고 살아 있는 진리로서 생생하게 섬광처럼 일어났다. 그에게 ‘나’는 분명한 실재로서의 그 무엇이었으며 자기 존재의 유일한 그 무엇이었다. 그의 몸과 관련한 모든 의식적 활동들이 그 ‘나’의 중심에 잡혀졌다. 그와 같은 경험을 한 후에 나, 즉 참나는 스스로 강력한 힘으로 그의 내면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죽음의 공포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 후로 그에게는 ‘참나’ 속으로의 몰입이 끊어짐이 없이 지속되었다. 다른 생각들은 악보의 여러 음표처럼 오가고 하였지만, 그러나 ‘나’는 모든 다른 음표들의 토대가 되어 뒤섞이기도 하는, 바탕으로 있는 스루티(sruti) 음표였다. 몸이 말을 하거나 책을 읽는 등 그 무엇을 할지라도, 그는 여전히 ‘나’에 집중되고 있었다. 이 경험 이전에는 그는 그의 참나를 선명하게 지각하지 못했으며 의식적으로 그것에 끌리지도 않았다. 이 새로운 경험은 그의 인생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그는 더 이상 친구들이나 친척들과의 외적 관계나 운동경기를 즐기지 않고 한적한 곳을 좋아하였다. 이미 그 전부터도 별 흥미가 없었던 학업에는 더 이상 아무런 관심도 보일 수 없었다. 그는 모든 일에 흥미를 잃었다. 새로운 성스러운 깨달음에 휩싸인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나는 몸이다.”라는 생각을 버린 그는 닻을 내릴 신성한 곳을 찾고 있었다. “저는 아버지의 명에 따라, 아버지를 찾아 여기를 떠납니다. 이것은 고결한 모험을 하려고 떠납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이 행동에 대해 슬퍼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을 찾아내기 위해 돈을 쓸 필요는 없습니다. 형의 등록금은 아직 내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2 루피가 동봉되어 있습니다. 절대자는 벤카타라만이 집을 찾아가는 여정을 안내하고 있었다. 기차역에 도착한 그는 요금표에서 재빨리 틴디바남을 찾아냈다. 조금만 더 주의 깊게 보았더라면 티루반나말라이를 발견할 수 있었을 테지만, 기차시간에 맞춰 서두르느라 그에겐 여유가 없었다. 기차표를 구입해 플랫폼으로 뛰어간 그는 아직 기차가 들어오지 않았음을 알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차에 올라탄 그는 승객들 사이에서 조용히 앉아 깊은 명상에 잠겼다. 기차가 몇 개의 역을 지나자, 그의 곁에 앉아 있던 수염을 기른 이슬람교도가 그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왔다. 그와 몇 마디 나누면서 벤카타라만은 티루반나말라이의 접경인 빌루푸람(Villupuram)역에서 기차를 갈아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벤카타라만은 뙤약볕 아래 오랜 시간을 걸었기 때문에 지쳐서 사원 바깥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그때 한 스와미(Swami)가 푸자(Puja)를 드리기 위해 문을 활짝 열었다. 그는 사원에 들어가서 기둥으로 떠받쳐진 홀에 앉았는데, 그리 어둡지는 않았다. 순간 밝은 광채가 온 사원에 퍼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이 안쪽의 지성소에 있는 신상으로부터 나오는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그곳으로 가보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어떤 물리적 근원에서 나오는 빛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 명상하기 위해 앉았다. 그가 만타팜(Mantapam)에 앉아 있는 동안, 먼저 신 아루나찰레쉬바라(Arunachaleswara)가 먼저 빛의 모습으로 다가오다가 나중에는 갸나 삼반다의 모습으로 그에게 나타났다. 그러나 그 당시에 그는 자신이 페리아푸라남에 나오는 63인의 성자 중 한 분인 삼반다(Sambandha)의 상 곁에 앉아 있다는 것을 몰랐다. 명상에 잠겨 있는데, 사원의 요리사가 푸자가 이제 끝났으므로 문을 잠글 시간이라고 하는 소리에 깨어났다. 배고프고 지친 벤카타라만은 사제에게 음식을 부탁하였지만,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하면서 그들이 가는 킬루르(Kilur)에 있는 사원으로 가면 음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요리사와 사제와 함께 그는 두 사원을 갈라놓고 있는 페나이야르(Pennaiyar) 강을 건넜다. 마투크리슈나 바가바타(Mathukrishna Bhagavatar)가 마침 그 무리들 중에 있었다. 그는 너무나 아름다운 용모를 갖춘 이 브라민 소년에게 감동을 받아, 먼 길을 가고 있는 소년의 애처로운 사정을 알고서 벤카타라만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다음날인 8월 31일 월요일은 고쿨라쉬타미(Gokulashtami) 즉, 슈리 크리슈나의 기념일이었다. 자애로운 이 부부는 그에게 음식을 충분히 대접하고 정오까지 머물러 있도록 하였다. 벤카타라만은 브라만 계급의 사내아이들이 몸에 지니는 루비 귀걸이를 하고 있었는데, 그것의 값어치가 20루피는 족히 되었다. 자신의 귀걸이를 기억해낸 그는 집주인에게 그것을 주며 목적지까지 기차표를 살 수 있도록 4루피를 빌려달라고 했다. 집주인은 그가 나중에 다시 귀걸이를 찾아갈 수 있도록 서로의 주소를 교환했다. 그리고 집주인은 슈리 크리슈나에게 푸자로 바쳤던 사탕을 봉지에 싸서 주었다. 순례자 벤카타라만은 다시 기차역으로 향했다. 티루반나말라이로 가는 기차는 다음날 아침에 떠나기 때문에, 그는 그날 밤을 기차역에서 보내야만 했다. 1896년 9월 1일 아침, 집을 떠난지 사흘만에 그는 마침내 목적지인 성스러운 아루나찰라 산이 있는 티루반나말라이 역에 도착했다. 기쁨으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그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단숨에 아루나찰레쉬바라 사원으로 향했다. 마치 그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사원의 세 큰 문을 포함한 모든 문들이 활짝 열려 있었으며, 안쪽에 있는 성소(聖所) 조차도 그러하였다. 성소에 홀로 들어가 빛의 링가인, 아루나찰레쉬바라 앞에 서자 격정이 소용돌이치면서 그는 링가를 껴안았다. “아버지의 명령으로 아버지에게 제가 왔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라고 말함으로써 그의 도착을 고하였다. 벤카타라만은 자신의 아버지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그러자 불길처럼 소용돌이치던 격정이 가라앉으면서 완전한 엑스터시 속에서 아버지와 하나가 되었다. 마침내 합일의 희열 속에서, 그의 여정은 끝을 맺었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나무아미타불_()_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