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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이야기
매우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논산 영창을 거쳐 남한산성에 입소하는 날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의 출입구에서 해병대를 비롯하여 여러 사단에서 온 군기결수들이
무시무시하게 생긴 호송헌병들의 인솔하에 서 있었고, 수속절차가
진행되었습니다.(해병대 헌병이 제일 무서웠음)
서류절차가 끝나고 각지에서 여러 군내 범죄로 이런저런 선고를 받은
기결수 병사들이 허름한 군복을 입고 살을 애는듯한 추위 속에
육군교도소 본 건물까지 행군을 시작했습니다.
포장이 안된 군데군데 얼음이 녹은 질척한 진흙길이었습니다.
워낙 악명높은 곳으로 익히들었던 바 살기가 느껴졌고
공기마저 냄새가 이상했습니다. 그게 기분때문이었는지 실제로
냄새가 이상했던 건지 모르겠지만, 분명 전에 느껴보지 못한 이상한
냄새가 그곳에 있는 두 달 내내 계속되어 절 괴롭혔습니다.
얼마나 악명이 높았던지 이미 논산 훈련소와 영창에서조차 고생할
얘들이라고 봐주라는 식으로 말하는 군인들도 있었습니다.
이윽고 교도소 본관건물에 이르렀는데, 밖에서 본 건물은 붉은 벽돌의
높은 담으로 둘러써인 난공불락의 성곽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건물내부에 들어가보니 중앙홀을 가운데 두고 문어발 뻗어나가듯이
6개 방향으로 사동이 길게 뻗어있는 그런 형태였습니다.
이윽고 우리 기결수 일행은 이곳 생활과 관련된 수속을 밟는
공간으로 이동되었고, 이곳에서 헌병의 감시하에 이곳의 고참 기결수들이
군기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보니 비교적 학력이 높아보이는
헌병들이 직접 기결수들을 터치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습니다.
대신 고참 기결수들이 다른 기결수들의 군기를 강하게 잡는 앞젭이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옛날 일본군 앞젭이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으로 그곳에서의 편안한
생활을 위해 그렇게 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헌병들이 원하는 수준의
군기와 질서유지를 헌병들이 터치하기 전에 자체적으로 잡아놓게 되면
헌병들과 기결수들이 마찰없이 원만하게 자치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이점같은 그런 기능도 없잖아 있었고, 한 기결수 군기반장은 나중에 알고 보니
비교적 괜찮은 사람이었습니다. 군기잡힐때 엄청 얻어맞긴했지만
그런 사정이 있으니 이해해달라며 나중에 개인적으로 사과를 하더군요.
문제는 이 생활관 입소 절차 과정에서 발생했습니다.
헌병에게 화장실 등 용무가 있어 보고를 해야하는 경우,
혹은 이동중 중간에 헌병과 마주치게 되는 경우, "충성"이라고
경례를 해야하는데 생활관 안내를 맡은 기결수 군기반장은
배정된 방에 들어가기 전에 그 날 입소하는 기결수들을 세워놓고 일제히
거수경례를 하며 이"충성"구호를 붙이는 연습을 시켰습니다.
당연히 전 하지 않았고, 하지 않는 것이 눈에 띄자 얻어맞기
시작했습니다. 계속 맞으면서도 충성은 여호와 하느님께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며, 거부하면서 버텼습니다. 이미 많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이곳을 지나갔고
우리 앞에 이미 이곳에 와 있던 여호와의 증인들이 몇몇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이 기결수 군기반장도 여호와의 증인이 당연히 "충성"구호를
붙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것으로 생각했고, 알고서도 시험하기
위해 그러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각이 저녁무렵이었고 저녁 점호시간이 다가온 시점이라 빨리
이 기결수들을 배정된 사동에 집어넣어야 하는데 제가 "충성" 구호를
못한다고 버티는 바람에 시간이 늦어지면서 모두들 곤혹스런 상황에
처해지게 되었습니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이번 기결수 팀엔 저 외에도 2명의 여호와의 증인이
더 있었는데, 이 친구들은 너무나 분위기에 압도되고 얼마나 겁에 쩔었던지
군기반장이 따라하라며 "충성" 이라는 첫 마디 하자마자, 전방을 향해 경례를
하며 "충성" 하더군요. 정말 어이가 없고 미쳐버리겠더군요.
당연히 군기반장이 얘들은 하는데 왜 넌 안해! 라며 다그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되었고, 저만 계속 두들겨 맞았습니다.
저는 지금 생각해봐도 이 두 친구들이 참 웃겼습니다. 최소한 한 번 정도라도
거부하는 시늉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이감온 다른 기결수들보다 더 열심히
폼나게 겁을 잔뜩먹은 얼굴을 해가지고 충성경례를 반복하더군요.
그래도 제가 계속 거부하자, 군기반장이 그러더군요. 너는 참 이상하다.
애네들도 하고 지금 안에 여호와의 증인 6명이 와있는데 걔네들도 다
충성하고 경례를 하는데 왜 유독 너만 하지 않느냐고 따져물었습니다.
저는 그럴리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군기반장과 함께 군기를 잡던
곁에 있던 기결수들이 무슨 소리냐고 안에 얘들 다 하던데, 불러봐줘?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대답도 하기전에 군기반장이 시간없다며 빨리 000 데리고 오라고
지시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는 6명의 여호와의 증인 중 남한산성에서
가장 오래 수감되어있던 고참 형제였습니다. 특이하게도 그는 징역10개월을 받았는데
형을 1년인지 2년인지 그 기간을 넘지 않으면, 그곳에서 형을 마치게 되어 있었고,
이미 6개월 정도 수감생활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친구가 불려왔는데, 이런 아니나 다를까 정말 군기반장이 충성경례를 시키자
"충성"하며 경례를 하더군요. 군기반장이 그것보라며 이래도 안믿기냐며 얘뿐만 아니라
안에 너희 여호와의 증인들 다 경례한다고 하더군요.
저는 몹시 혼란스러웠고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못하겠다고 하자
얼마간 더 맞았는데, 저는 맞는 게 문제가 아니라, 저 때문에 입소를 못하고
있는 기결수 일행과, 헌병들에게 문책을 당하게 될 군기반장과 그의 보조자들을
포함한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상황이 사실 더 크게 우려되었습니다.
막 점호나팔마저 불리는 상황에 맞는거라면 더 맞겠는데,
함께 온 두 형제와 안에서 불려나온 한 형제의 군기잡힌 충성경례와 저 때문에 입소가 늦어져
모두에게 피해를 주게되는 상황에 때문에 급기야 변명조의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제가하는 경례는 절대적인 충성이 아니라 상대적인 충성이니 그렇게 알아달라며
결국 충성경례 연습에 가담하게 됩니다. 상대적인 충성경례? 사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죠.
다음 날인가? 몇일이 지나서인가? 식당에서 점심식사 중에 불려나와 충성경례
모범을 모여준 그곳의 10개월 형 고참 형제를 만나게 되었는데, 충성경례와 관련하여
자신은 "충성"이라 하지 않았고,"추성"이라고 하고 있다고 변명을 했습니다.
그 때는 상황이 절막했고 여린심정에 뭐라 정의내리기 어려웠지만,
후에 그것이 얼마나 말이 안되는지 두고두고 생각이
나곤했습니다. 보통 2개월 정도면 그곳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민간교도소로 이감하게
되는데, 이 친구가 이 곳에서 길게 10개월 동안 생활해야 하다보니, 아마 잔꾀를
생각해냈던 것 같습니다. 상대가 충성이라고 알아듣는데, 이쪽에서 "추성"이라고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 수 있을까요?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친구 때문에 나머지 5명도 입소시 어떤 수난을 당했는지 모르겠지만,
화장실에 갈때 등 헌병에게 보고를 해야 할때, "추성"하고 경례를 하고 있었고,
저 역시 그 과정을 거쳐 비록 "추성"이라고 했지만,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그곳에서 하고야 말았습니다. 누군가 바로잡았어야 했었는데, 절박한 상황에서
뒤에 거쳐갈 수 많은 형제들의 양심을 생각도 않고 그만 그 분위기에 편승하는
두고두고 후회할만한 행동을 해버린 것입니다.
이미 와있던 5명의 형제들 중엔 비교적 여린 한 형제가 있었는데,
중립과정을 마치고 불과 얼마안되서 증인생활을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모르긴 해도 그 일로 순수했던 양심에 상당한 상처를 받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한산성의 생활에 적응하면서 기결수 중에 여호와의 증인에 관심을 보이는 한 장교와
성서와 종교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이 분은 장기수였던 것 같았고,
이미 이곳을 거쳐가는 여호와의 증인들을 지켜보기도 하고 종종 이야기를 나누었던 분 같았습니다.
하지만 장교와 일반 사병은 생활관이 달랐기 때문에 우리가 "추성"경례를
하는 걸 몰랐던 것 같았습니다.
옆에 다른 장교 한 사람도 있었는데 대화도중 자기네들끼리 말하면서
"이 친구들은 충성 경례도 안하잖아"라고 하더군요. 10개월짜리 형제가
잔꾀를 부리는 일이 있기 전의 형제들은 충성경례를 하지 않았던 것이 분명했습니다.
저는 정말 양심이 찔렸고 부끄러워 말이 안나오더군요. 이 분이 계속 모르기를
바랄 수 밖에요.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은 그 안에서 충성경례도 잘하고 논산 영창에서는
단 한 번의 거부도 없이 군인수칙도 복창하면서 양심이 무디고 무뎠던
이 형제들이 나중에 출소후에는 또 그런데로 무난하게 영적인 생활을
잘해나가더군요. 저는 그것이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저는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그 생각만하면 부끄럽고 수치스럽기 짝이 없구요.
지 하나 살자고 물을 흐려놓고 형제들의 입장을 더 어렵게 만들고
결국 스스로 양심을 범하는데 일조한 10개월짜리 그 친구가 생각날때마다
망할자식이라고 저도 모르게 되내이곤 한답니다. 물론 저와함께 남한산성에
입소했던 두 형제들은 10개월짜리와 전혀 상관이 없지만요. 그들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넙쭉넙쭉 시키는 거 다 잘했으니까요.
그래서 아마 나와서도 넙쭉넙쭉 조직이 시키는데로 무난하게
잘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게 천성적으로 몸에 베인걸까요?
저는 태생이 아닌 건 아닌 그런 스타일인데, 문제는 다른 사람들의
입장이 난처해질때 그런 때, 매우 약해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양심은 개개인이 스스로 지키는 것, 모든 건 제 개인
변명에 지나지 않는 다는 걸 잘 압니다.
갑자기 왜 이런 이야길 하느냐구요. 분위기 반전을 위해서?
아닙니다.
나중에 나와 보니, 다른 사단을 거쳤던 아는 지인에게서 자신이 수감중에
겪었던 이야기를 들었는데, 함께 영창에 수감되었던 한 형제는 헌병들의
가혹한 고문들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양말을 꿰메는 바늘로 자신의 눈을 찔러
자해를 하는 소동이 벌어져 그 사단에서 난리가 난 경우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이 모든게 여호와 하느님 외, 인간에게 인간조직에 충성안하겠다고 벌어진 사단 아니겠습니까?
그 황금같은 순수한 청년시절에 그 많은 젊은 청춘들이 그 충성거부 하나에 명운을 걸고
웃고 울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여호와의 증인의 유일한 충성대상인 여호와에 대한 충성이
실수많고 탈많고 인간 베드로처럼 때론 견제와 견책도 받아야 하는 통치체와
워치타워라는 인간조직으로 대체되어버렸습니까?
분명히 봤는데 다시 찾아보려니 어디있는지 잘 안찾기는데요. 한 순회감독자의
파이오니아 강연인가요? 통치체와 조직에 충성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연설 동영상이던데, 뿐만 아니라 최근에 파수대 기사에서는 통치체와 조직에
충성해야 한다는 문구가 노골적으로 표현된 부분을 분명 본 것 같습니다.
그기서 인간과 인간조직에 충성 안하겠다고 수많은 젊은 청춘들이 죽도록 두들겨 맞았는데,
이번에는 말많고 탈많고 많이 틀리고 거짓예언들에 엉터리도 많은 통치체와 파시즘적
종교집단인 여호와의 증인 조직에 충성하라굽쇼~!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립니까?
순종도 과분한데 자신들에 대한 충성까지 요구를 하다니,
이건 정말 참람한 언행이지 않습니까?
1세기 당시 베드로나 요한이, 혹은 사도 바울이, 그리고 예루살렘 회의가
당시 로마제국 전역의 그리스도인들과 각회중에게 자신들과 당시 조직에 충성하라고
그리고 자신들의 명령에 잘 따라한다고 하는 교훈하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경향은 성경에 눈꼽만치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꾸짖어시기 바란다" - 미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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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생하신것 참으로 가상합니다만, 그러나 헛고생하셨습니다. 교단을 잘 못 선택하면 여생을 허비하는 것입니다.
군교도소에서 충성 구호, 교도소에서의 갱생 구호..종종 그냥 하는 친구들이 있었죠. 행동 통일이 안되어서 더 많이 맞았죠. 속으로 [여호와께]라는 말을 한 다음에 충성..이라는 구호를 하기도 하는 코미디도 있었고요....도감 순감들이 동원되어서 통일시키려 했지만, 잘 안되었습니다.무시무시한 분위기를 이겨내기 힘들었던...그 시절...그 어린나이에 무엇을 위해 충성하는지도 잘 모르던 시절인데....아까운 청춘이여...
그러셨군요. 예전에는 저희 때랑 많이 다른거 같습니다. 영창을 거쳐 육군교도소에 있다가 민간교도소로 가신거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