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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추홍(社燕秋鴻)
'봄 제비와 가을 기러기'라는 뜻으로, 잠깐 만났다가 이내 헤어짐을 비유하는 말이다.
社 : 토지신 사(礻/4)
燕 : 제비 연(灬/12)
秋 : 가을 추(禾/4)
鴻 : 큰 기러기 홍(鳥/6)
출전 : 송진목지담주(送陳睦知潭州) 소식(蘇軾)
사연(社燕)이라 함은 사일(社日)의 제비이고, 추홍(秋鴻)은 가을의 기러기라는 뜻으로, 얼핏 만났다 곧 헤어짐을 의미하는 말이다. 사연(社燕)은 제비가 춘사일(春社日) 경에 왔다가 추사일(秋社日) 쯤에 남으로 가기에 쓰는 말이다.
제비는 기러기와 함께 대표적인 철새의 일종이며, 일반적으로 봄에 찾아와서 가을에 떠난다. 중국에서는 봄과 가을의 촌제(춘사(春社), 추사(秋社))경에 해당하므로, 사연(社燕)이라고도 한다. 철새를 노래한 소식(蘇軾; 東坡)의 송진목지담주(送陳睦知潭州)이다.
送陳睦知潭州 / 蘇軾
송진목지담주 / 소식
무인년 상원절에 옛사람의 시에 답하다
華清縹緲浮高棟, 上有纈林藏石甕.
一杯此地初識君, 千巖夜上同飛蝱.
君時年少面如玉, 一飲百觚嫌未痛.
白鹿泉頭山月出, 寒光潑眼如流汞.
朝元閣上酒醒時, 臥聽風鸞鳴鐵鳳.
舊遊空在人何處, 二十三年真一夢.
我得生還雪髯滿, 君亦老嫌金帶重.
有如社燕與秋鴻, 相逢未穩還相送.
마치 봄 제비와 가을 기러기처럼, 만나자마자 다시 이별이구나
洞庭靑草渺無際, 天柱紫蓋森欲動.
동정호의 푸른 풀 아득해 끝이 없고, 하늘 기둥 자색 덮개 빽빽하니 움직일 듯하다
湖南萬古一長嗟, 付與騷人發嘲弄.
호남에서 길게 한 번 슬퍼져, 시인에게 전하다 비웃음만 샀도다
문장가 소식이 오늘날 중국의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인 담주(潭州)로 부임하는 친구 진목(陳睦)을 위해 지은 시이다. 얼핏 만났다 곧 헤어짐을 뜻하는 '사연추홍(社燕秋鴻)'이란 사자성어가 여기서 나왔다.
사연(社燕)이라 함은 사일(社日)의 제비이고, 추홍(秋鴻)은 가을의 기러기다. 사일은 입춘(立春)과 입추(立秋)가 지난 뒤 다섯 번째 무일(戊日)을 말한다. 올해의 춘사일은 3월 18일, 추사일은 9월 24일이었다.
사(社)는 땅귀신이다. 곡식의 신과 함께 사직(社稷)단에 모신다. 고대 중국 민간에서는 사일에 한데 모여 땅귀신에게 사제(社祭)라는 제사를 지냈다. 사회(社會), 결사(結社)가 예서 나왔다.
봄에 와 가을에 떠나는 제비와 가을에 와 봄에 떠나는 기러기와 백조는 일 년에 두 차례 스치듯 만난다. 둘은 서로 목적지가 반대다. 만나면 언젠가 헤어짐을 회자정리(會者定離)라 한다. 만남의 시간이 짧아지면 '사연추홍'이다.
철새는 한자로 후조(候鳥)다. 철새는 바쁘다. 삶의 터가 계절마다 바뀌기 때문이다. 10년 전 교수들이 뽑은 한 해의 한자가 이합집산(離合集散)이었다. 그해 대선을 앞두고 철새 정치인들의 당적 바꿈이 잦아서였다는 설명이 덧붙었다.
송임주사사환경사(送林主事使還京師) / 이숭인(李崇仁)
이숭인(李崇仁)이 사절로 왔다가 중국 경사로 돌아가는 임주사를 전송하며 쓴 오언배율의 시이다. "오는 길은 봄 제비를 따라왔다가, 돌아가는 말고삐는 가을 기러기와 짝하여 가는구나(來塗隨社燕, 歸轡伴秋鴻)."
帝道經綸密 天心眷顧隆
황제의 도는 경륜이 주밀하니, 하늘의 마음이 그를 깊이 돌보았네.
眞符歸正統 大度御群雄
진부가 정통으로 돌아가서, 큰 도량이 군웅을 통어하실 새.
雨露霑濡遍 山河氣勢崇
우로가 천하에 골고루 젖고, 산하의 기세가 높디높을사.
時雍文致理 載戢武收功
문으로 평화로운 정사를 닦고, 무공을 거두어 쉬었네.
萬國車書混 三韓貢賦同
만국의 거서가 하나로 되고, 삼한도 공부를 드리게 되니.
輿情唯拱北 世職卽釐東
민심은 북쪽으로 쏠려 향하고,
대대로 동방에 구실 주셨네 / 世職卽釐東
每遺人馳奏 何期路阻通
사람을 보내어 아뢸 때마다, 길 막히고 통함을 구애했으리.
郞官今奉命 父老喜趨風
낭관께서 명 받자와 이곳에 오니, 부로들 기쁨으로 맞아 모셨네.
箕子祠平壤 宣尼謁泮宮
평양에서 기자사에 참배를 하고, 반궁에서 선성(공자)께 절해 뵈었네.
周諮懷靡及 餘事句還工
국정을 두루 살펴 빠친 데 없고, 여사로 시를 지어 걸작 보이니.
二闕芳逾遠 西湖澤不窮
이궐에 꽃다운 이름 더욱 오래며, 서호의 혜택이 한 없었네.
郊迎賓禮盛 館待享儀豐
들에 나가 영접할 제 성대한 예식, 관사의 대접은 풍부한 잔치.
尊酒波搖綠 檠燈焰吐紅
푸른 물결 출렁이는 술병 앞, 붉은 불꽃 토하는 촛대 아래서.
從容酬酢際 傾倒笑談中
조용히 말씀을 주고 받을 제, 피차의 흉금을 탁 털어 놓아.
會面猶遲暮 分襟更遽匆
늦게야 만났음을 한하였더니, 총총히 이제 또 나뉘단 말가.
來塗隨社燕 歸轡伴秋鴻
오는 길은 봄 제비를 따라왔더니, 돌아갈 젠 가을 기러기 짝하여 가네.
岊嶺橫靑黛 銀灘瀉白虹
절령은 푸른 눈썹 가로 그린 듯, 백은탄은 흰 무지개 쏟아 놓은 듯.
贈行言款款 惜別恨忡忡
떠날 때 간곡히 주고 받는 말, 이별을 아끼는 섭섭한 마음.
臣節無夷險 皇恩保始終
신하의 도리는 이험 없는것, 황제의 은혜는 시종이 같도록.
憑君對淸問 爲我達孤忠
그대 가서 위에 복명하올 제, 날 위하여 고충을 아뢰어 주소.
追和戊寅歲上元 / 蘇軾
추화무인세상원 / 소식
무인년 상원절에 옛사람의 시에 답하다
賓鴻社燕巧相違(빈홍사연교상위)
白鶴峰白頭板扉(백학봉백두판비)
기러기와 제비가 어긋나는 것처럼, 백발 되어 백학봉에 판자문집 지었더니.
石建方欣洗牏厠(석건방흔세투측)
姜龐不解嘆蟏蝛(강방불해탄소위)
석건 같은 아들은 아비 옷을 빨겠다 나서고, 강방 같은 며느리는 외로움 잘도 참아내네
一龕京口嗟春夢(일감경중차춘몽)
萬炬錢塘憶夜歸(만거전당억야귀)
금산사 노닐던 날 봄에 꾼 꿈만 같고, 횃불 밝힌 전당강 밤중 귀로를 생각하는데.
合浦賣珠無復有(합포매주무부유)
當年笑我泣牛衣(당년소아읍우의)
합포에서 팔던 진주 더 있을 것 같지 않아, 쓴웃음 지어가며 거적 덮고 울고 있네
(注)
▶ 追和(추화) : 후대 사람이 옛사람의 시에 화답하는 것을 가리킨다. 소식은 '和陶歸去來兮辭'의 서문에서 '子瞻謫居昌化, 追和淵明歸去來辭(자첨이 창화현에 유배되어 있을 때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대한 답시를 지었다)'라고 했다.
▶ 上元(상원 : 정월 보름, 즉 상원절(上元節)을 가리킨다. 元宵節이라고도 한다.
▶ 賓鴻(빈홍) : 기러기. 賔鴻으로 쓰기도 하고, 春鴻으로 쓴 자료도 있다.
▶ 社燕(사연) : 춘사(春社) 무렵에 와서 추사(秋社) 무렵에 떠나는 제비를 가리킨다.
▶ 相違(상위) : 기러기와 제비가 길이 어긋나게 오가는 것처럼 소식이 백학봉에 새 집을 마련하고 함께 살게 되자마자 담주(儋州)로 옮겨가게 된 것을 가리킨다. 소식은 '送陳睦知潭州'란 시에서도 '有如社燕與秋鴻, 相逢未穩還相送(제비와 기러기 봄 가을로 길 어긋나는 것처럼 / 만나자마자 이내 다시 헤어져야 하는구나)'이라고 했다.
▶ 石建(석건) : 만석군(萬石君) 석분(石奮)의 아들로 나이 예순을 넘어 낭중령(郎中令)으로 있을 때도 한결같이 부친의 옷을 몸소 빨아 입혔다고 하는데, 소식이 아들 소과(蘇過)를 석건에 빗대어 말한 것이다.
▶ 白鶴峰(백학봉) : 소식이 혜주(惠州)에 유배되어 있을 때 집을 지었던 산이다. 소식이 '遷居'란 시에서 '已買白鶴峰, 規作老終計(백학봉에 땅을 조금 사둔 게 있어 / 죽을 때까지 지낼 요량으로 집을 지었네)'라고 했다.
▶ 牏厠(투측) : 측간. 변기. 속옷을 가리키기도 한다. 여기서는 (똥오줌 묻은) 옷으로 새겨 읽었다.
▶ 姜龐(강방) : 고대 중국의 이십사효(二十四孝) 중 한 사람으로, 여기서는 담주로 유배되는 부친을 따라 홀로 섬으로 들어가는 남편을 붙잡지 않고 규방의 외로움을 감수해낸 소과(蘇過)의 부인 범씨(范氏)를 강방의 효행에 빗대어 말한 것이다. 탄소위(嘆蟏蝛)는 규방의 적막함을 탄식하는 것을 가리킨다.
▶ 一龕京口(일감경중) 두 구절 : 一龕京口(일감경중)은 유자옥(柳子玉)과 함께 들렀던 금산사(金山寺)로 새겨 읽고, 萬炬錢塘(만거전당)은 항주(杭州) 시절 전당강의 장관 대조(大潮)를 구경했던 때를 가리키는 것으로 새겨 읽었다.
▶ 合浦(합포) : 지명. 진주(珍珠)의 명산지로 이름을 날렸다. 후한서(後漢書) 순리전(循吏傳) 맹상(孟嘗)에서 '"한나라 때 맹상이란 사람이 합포군 태수가 되었다. 합포는 바닷가 마을이라 곡물이 나지 않고 대신 진주가 많이 나왔다. 그런데 이전에 태수로 왔던 관리들이 욕심 많고 혼탁하기까지 해서 백성들을 속여 진주를 모았는데,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라 진주가 점차 군계를 넘어 교지로 옮겨가 버렸다. 그리 되자 상인들이 오지 않게 되었고, 합포 사람들은 돈을 마련할 수 없게 되어 가난해진 사람들이 길가에서 굶어주는 사람까지 생겼다. 맹상은 태수로 부임한 후 이전의 폐단을 혁파하여 백성들에게 이익이 갈 수 있게 했는데, 채 일 년이 되지 않아 떠났던 진주가 돌아오고 백성들도 돌아와 이전에 하던 사업을 벌여 물건과 돈이 유통되기 시작했는데, 백성들이 그런 맹상을 하늘이 보낸 사람이라고 하였다(漢孟嘗, 爲合浦太守. 郡不産穀食, 而海出珠寶. 先是宰守多貪, 詭人采求, 不知紀極, 珠漸徙於交阯. 由是行旅不至, 貧者餓死於道. 嘗到官, 革除前敝, 未逾歲, 去珠復還, 百姓漸反其業. 商貨流通, 稱爲神明)"고 했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거나 떠난 사람이 돌아오는 것을 뜻하는 合浦還珠(합포매주)란 성어가 이로부터 유래되었다.
▶ 泣牛衣(읍우의) : 부부가 함께 가난하게 사는 것을 가리킨다. 한서(漢書) 왕장전(王章傳)에서 "왕장이 서생으로 장안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아내와 함께 지냈는데, 장이 몸이 아파 이불도 없이 거적을 덮고 잠을 자다가 마주보던 아내와 함께 울었다(章爲諸生學長安, 獨與妻居. 章疾病, 無被, 臥牛衣中, 與妻決, 涕泣)"고 했다. 무인년이면 동파가 해남도(海南島)에 있던 소성(紹聖) 5년 또는 원부(元符) 원년(1098)이다.
전반부 네 구절은 혜주(惠州) 백학봉에 집을 마련하자마자 바다 건너 해남도로 가게 된 것과 아들(과過)이 부인을 육지에 남겨둔 채 부친을 모시기 위해 유배길을 따라 나선 내력을 말한 것으로, 그리고 후반부 네 구절은 자신의 좋았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다시는 그런 날이 오지 않으리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토로한 것으로 새겨 읽었는데, 제5,6구절이 다소 억지스럽게 읽히는 것을 어찌하지 못했다.
◈ 소식(蘇軾, 1037~1101)은 북송(北宋)의 문학가이자 서법가로, 자는 자첨(子瞻), 화중(和仲)을 썼고,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이다. 미주(眉州) 미산(眉山; 현재의 쓰촨성四川省 미산眉山) 사람이다. 인종(仁宗) 가우(嘉祐) 2년(1057)에 아우 소철(蘇轍)과 함께 진사가 된 뒤 벼슬을 살다가 중앙에서 쫓겨나 오랫동안 변방에서 고초를 겪었다. 시(詩), 사(詞), 문(文), 서(書), 화(畵)에 두루 능하여 중국 역사상 드물게 다방면에 걸쳐 예술적 성취를 이룬 인물이다.
구양수(歐陽脩)의 뒤를 이어 북송의 문단을 이끌었고, 부친 소순(蘇洵) 및 아우 소철과 함께 세 부자(父子)가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자리를 차지하며 가문의 문풍을 날렸다. 사(詞)에서는 신기질(辛棄疾)과 함께 소신(蘇辛)으로, 시에서는 황정견(黃庭堅)과 함께 소황(蘇黃)으로 병칭되었으며, 서법에서도 황정견, 미불(米芾), 채양(蔡襄) 등과 함께 송사가(宋四家)로 불렸다. 작품집으로 '동파칠집(東坡七集)'과 '동파악부(東坡樂府)' 등을 남겼고, '동파전집(東坡全集)' 150권이 전한다.
次韻孫巨源, 寄漣水李, 盛二著作, 并以見寄五絶.
손거원이 연수현의 이와 성, 그리고 내게 보내준 시의 운을 빌어 지은 절구 5수
其一
南岳諸劉豈易逢 相望無復馬牛風
남악에 있는 유씨들 만나기가 쉽지 않아,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소식을 듣지 못하였네
山公雖見無多子 社燕何由戀塞鴻
산중에 살면서 여러 사람 만날 수는 없지만, 제비가 무슨 일로 기러기를 보고 싶어하겠는가
이 시는 신종(神宗) 희녕(熙寧) 8년(1075), 소식이 밀주지주(密州知州)로 가던 도중에 손거원을 만났을 때 지은 것인데, 소식은 시문 아래 아래와 같은 자주(自注)를 달아두었다.
昔與巨源, 劉貢父, 劉莘老相遇於山陽. 自爾契闊, 惟巨源近者, 復相見於京口.
이전에 산양에서 손거원과 유공부, 유신로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이후 오래 헤어져 지내다가 손거원 한 사람만 가까운 경구에 있어서 다시 만났다.
거원(巨源)은 북송 때 관리이자 사인(詞人)이었던 손수(孫洙)를 가리킨다. 손수는 어려서부터 글에 능하여 약관에 이르기도 전에 진사로 발탁되었는데, 그가 일찍이 포증(包拯), 구양수(歐陽脩), 오규(吳奎)와 함께 제과(制科)에 응시했을 때 그가 올린 책오십편(策五十篇)을 읽은 한기(韓琦)가 탄식하면서, '소리라도 내면서 울고 싶은 심정이다(慟哭流涕). 천하사를 논하는 데 있어 간절함과 분명함이 극에 이르러(極論天下事) 오늘날의 가의(賈誼)라 할 만하다(今之賈誼也)'고 하였다.
소식이 쓴 다섯 수 가운데 제2수에서 '재능이 많아도 늦게까지 귀하게 써주지 아니하여(高才晩歲終難進) 다툼만 많은 조정에서 과감하게 물러났네(勇退當年正急流)'라고 한 것을 보면, 손거원은 이때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내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正月二十日與潘郭二生出郊尋春忽記去年是日同至女王城作詩乃和前韻
정월 스무날 반(潘), 곽(郭) 두 사람과 함께 교외로 봄나들이 갔다가, 작년 같은 날 여왕성에서 지은 시가 생각나 그 시의 운으로 답시를 쓰다
蘇軾
東風未肯入東門, 走馬還尋去歲村.
봄바람 동문으로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말을 달려 작년에 간 곳을 찾아 나섰네
人似秋鴻來有信, 事如春夢了無痕.
사람은 기러기처럼 오가는 소식이 있지만, 지난 일은 봄날 꿈처럼 자취 없이 사라지네
江城白酒三杯釅, 野老蒼顔一笑溫.
강가의 주점에서 술을 마시는 우리를, 시골 노인이 웃으면서 따뜻하게 맞아주네
已約年年爲此會, 故人不用賦招魂.
해마다 이렇게 봄나들이 즐기기로 하였으니, 벗들이여 나를 위해 '초혼'을 읊으려 하지 마오
원풍(元豊) 4년(1081) 정월 스무날, 황주(黃州)에 있던 소식이 기정(岐亭)에 있는 진조(陳慥)를 만나러 갔을 때, 반병(潘丙), 고경도(古耕道), 곽구(郭遘) 등이 여왕성 동선원에서 그를 전송해 줬는데, 이듬해 같은 날인 이 날도 반병, 곽구 두 사람과 함께 성 밖으로 봄놀이를 가서 한 해 전 여왕성에 지었던 시에 화답하는 의미로 이 시를 지은 것이다.
여왕성은 황주성 동쪽 시오리 되는 곳에 있던 성터로, 소식은 '기황주고오국(記黃州故吳國)'이란 글에서, '황주성 동쪽 시오리 되는 곳에 영안성이 있는데 사람들이 여왕성이라고 부르면서 하는 말들이 조잡스럽다(今黃州東十五里許有永安城, 而俗謂之女王城, 其說甚鄙野)'고 했고, 황주부지(黃州府志), 고적(古迹), 영안성(永安城)에서는, '초왕이 딸에게 그곳을 봉토로 주고 살게 하면서 먼저 성을 쌓았다. 성 안에 흙으로 쌓은 곳이 많아 사람들이 여왕성이라고 불렀다(或云楚王封其女之地, 遂城而居之, 乃楚所先筑也. 城中多土堆, 俗呼女王城)'고 하였다.
제3, 4구절의 '人似秋鴻'과 '事如春夢'이 눈에 들어온다. 사람이 오가는 건 가을에 남쪽으로 왔다가 봄에 북쪽으로 가는 철새 가을 기러기 같고,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일은 마치 봄날 꾸는 꿈과 같다는 뜻일 것인데, 필화사건을 겪고 유배까지 당하게 된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며 그것을 지나간 일로 치부해 버리고 싶은, 그러나 없었던 일이 되지 못하여 글로 적어야 하는 아픈 속내를 드러낸 것일 테다.
마지막 구절의 '초혼'은 송옥(宋玉)이 지은 '招魂'을 가리키는데, 흔히 죽은 사람의 혼을 불러내는 것을 '초혼'이라 하는 것과 달리 살아 있는 사람의 혼을 부르는 것으로 해석하는 아래와 같은 견해도 있다.
招魂者, 宋玉之所作也 (…) 宋玉憐哀屈原, 忠而斥棄, 愁懣山澤, 魂魄放佚, 闕命將落. 故作招魂, 欲以復其精神, 延其年壽.
초혼은 송옥이 지은 것으로, 굴원이 충신이면서도 조정에서 내쳐져 답답한 마음으로 산천을 헤매며 정신이 흩어지고 목숨이 다할 지경이 된 것을 불쌍히 여긴 송옥이, 굴원이 정신을 회복하여 더 오래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초혼'을 지었다.
- 왕일(王逸)의 초혼(招魂)에 대한 제해(題解) 중에서
자리를 함께한 벗들이 자신을 위해 동분서주 하는 것을 알고 있는 소식은, 황주에서 보내는 날들이 마냥 나쁜 것만이 아니고 또 해마다 함께 봄나들이를 함께하기로 약속까지 했으니, 자신을 조정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너무 애쓰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 테지만, 그렇게 말하는 소식의 속내가 정말로 편안한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 社(모일 사/토지신 사)는 ❶회의문자로 토지(土)의 신에게 제사(示) 지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제사를 지내다는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社자는 '모이다'나 '행정단위', '토지 신'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社자는 示(보일 시)자와 土(흙 토)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示자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을 그린 것으로 여기에 土자가 결합한 社자의 본래 의미는 '토지의 신'이었다.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는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제물을 바친다. 그래서 社자는 '토지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모였다는 의미가 확대되면서 후에 '모이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고대 중국에서는 적은 수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작은 행정단위를 社라고 했다. 그래서 社(사)는 (1)회사(會社), 통신사(通信社), 신문사(新聞社) 등을 줄여 이르는 말 (2)조선시대 때 지방 행정 구역의 하나. 주(州), 현(懸)의 아래, 동(洞), 이(里), 촌(村) 보다 높은 행정 단위로 함경도(咸鏡道)에 많았음. 우두머리는 사장(社長)임 (3)고대(古代) 중국에서 토지(土地)의 수호신(守護神) 및 그 제사(祭祀), 또는 그 수호신(守護神)을 중심으로 한 스물다섯 집의 부락(部落). 원(元)나라 때에는 오십 집을 단위로 하여 권농을 중심으로 한 촌락(村落) 자치제 (4)옛날, 대만(臺灣)의 행정 구역의 최하급(最下級) 등의 뜻으로 ①모이다 ②제사(祭祀)를 지내다 ③땅귀신 ④토지신(土地神) ⑤단체(團體), 모임 ⑥사창(社倉: 각 고을의 환곡(還穀)을 저장하여 두던 곳집) ⑦사학(社學) ⑧행정(行政)의 단위 ⑨어머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모을 모(募), 모일 총(叢), 둥글 단(團)이다. 용례로는 모든 형태의 인간의 집단적 생활을 사회(社會),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을 사원(社員), 회사의 사업을 사업(社業), 회사나 결사의 주인이 되는 사람을 사주(社主), 회사의 규칙을 사규(社規), 같은 사에 근무하는 동료를 사우(社友), 사원이 지켜야 할 회사의 방침을 사훈(社訓), 여러 사람이 모여 서로 교제함을 사교(社交), 조선시대에 환곡을 저장해 두던 각 고을의 창고를 사창(社倉), 숨어 사는 쥐란 뜻으로 어떤 기관이나 사람의 세력을 의지하여 간사한 일을 하는 자를 이르는 말을 사서(社鼠), 상행위를 목적으로 두 사람 이상이 설립한 사단법인을 회사(會社), 자기가 소속해 있는 회사를 자사(自社), 지국이나 지사에 대하여 그 본부를 본사(本社), 회사 등에 취직하여 들어감을 입사(入社), 회사를 처음으로 세워서 엶 또는 그 일을 창사(創社), 사원이 퇴근함 또는 회사의 직원이 그 회사를 그만두고 물러남을 퇴사(退社), 회사에 근무하고 있음을 재사(在社), 다른 회사를 타사(他社), 회사나 신문사 등에 찾아옴을 내사(來社), 나라의 안위를 맡은 중신을 일컫는 말을 사직지신(社稷之臣), 사직이 폐허가 되었다는 뜻으로 나라가 망하는 일을 이르는 말을 사직위허(社稷爲墟), 성곽에 사는 여우와 사단에 사는 쥐라는 뜻으로 임금 곁에 있는 간신의 무리를 이르는 말을 성호사서(城狐社鼠) 등에 쓰인다.
▶️ 燕(제비 연)은 ❶상형문자로 㷼(연)은 본자(本字), 鷰(연)은 동자(同字)이다. 제비가 나는 모양을 본떴다. 음(音)을 빌어 주연(酒宴) 또는 쉬다의 뜻으로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燕자는 '제비'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燕자는 제비를 그린 것이다. 燕자의 갑골문을 보면 긴 꽁지가 특징인 제비가 그려져 있었다. 집 처마 밑에 집을 짓고 사는 제비는 우리나라나 중국에서는 길조로 인식되었다. 제비는 겨울이 오기 전에 따뜻한 중국 남부와 동남아로 떠나는데, 이전에는 중국 남부를 강남 지방이라 불렀기 때문에 '강남 갔던 제비'란 말도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燕(연)은 (1)주대(周代)의 제후국(諸侯國). 무왕 때 소공석이 지금의 하북(河北)을 영토(領土)로 하여 북경에 도읍(都邑)했음. 점차 북동으로 발전하여 전국시대(戰國時代)에는 칠웅(七雄)의 하나로 됨. 기원전 222년, 진(秦)나라에 망함 (2)4~5세기에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 중 선비(鮮卑)의 모용씨(慕容氏)가 세운 나라. 전연(前燕; 337~370), 후연(後燕; 384~409), 서연(西燕; 385~394), 남연(南燕; 398~410)의 네 나라가 있었음 (3)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의 하나. 북연(北燕)이라 불리었으며, 후연(後燕)을 정복하여 건국했음 (4)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제비(제빗과의 새) ②잔치, 향연(饗宴), 연회(宴會) ③연(燕)나라, 나라의 이름 ④잔치하다 ⑤즐겁게 하다 ⑥편안(便安)하다 ⑦예쁘다, 아름답다, 얌전하다 ⑧함부로 대(對)하다, 업신여기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면과 면을 맞추기 위하여 문짝 따위 기구의 모서리를 을모지게 엇벤 곳을 연구(燕口), 잠깐 들러 쉬게 베풀어 놓은 방을 연실(燕室), 하는 일없이 집에 한가히 있음을 연거(燕居), 하는 일없이 집에 한가히 있음을 연식(燕息), 일을 하지 않고 편안하게 있음을 연석(燕席), 주연을 베풀고 놈을 연유(燕遊), 아무 근심 걱정이 없고 몸과 마음이 한가함을 연한(燕閑), 조상이 자손을 편안하게 도움을 연익(燕翼), 제비의 꼬리를 연미(燕尾), 제비의 집을 연소(燕巢), 제비의 발을 연족(燕足), 제비와 참새를 연작(燕雀), 제비의 새끼를 연추(燕雛), 볏과에 딸린 한해살이 또는 두해살이 풀을 연맥(燕麥), 제비가 날아올 즈음 기러기는 떠난다는 뜻으로 사람이 서로 멀리 떨어져 소식 없이 지냄을 이르는 연안대비(燕雁代飛), 자손을 위하여 숨겨 놓은 계책을 일컫는 말을 연익지모(燕翼之謀), 소인의 무리를 일컫는 말을 연작지도(燕雀之徒), 안심하고 있어 재앙이 닥쳐오는 것도 모름을 이르는 말을 연작처당(燕雀處堂), 편안히 지내느라 장차 화가 자기에게 닥칠 것을 깨닫지 못함을 비유한 말을 연작처옥(燕雀處屋), 제비 같은 턱과 범 같은 머리라는 뜻으로 먼 나라의 제후가 될 생김새나 후한의 무장 반초를 이르는 말을 연함호두(燕頷虎頭), 봄과 가을에 엇갈리는 제비와 기러기처럼 서로 반대의 입장이 되어 만나지 못함을 한탄하는 말을 연홍지탄(燕鴻之歎), 제비가 날아올 즈음 기러기는 떠난다는 뜻으로 사람이 서로 멀리 떨어져 소식 없이 지냄을 이르는 말을 연안대비(燕雁代飛), 영 땅 사람의 글을 연나라 사람이 설명한다는 뜻으로 도리에 맞지 않는 일을 억지로 끌어대어 도리에 닿도록 함을 이르는 말을 영서연설(郢書燕說), 물고기의 눈과 연산의 돌이라는 뜻으로 두 가지가 옥과 비슷하나 옥이 아닌 데서 허위를 진실로 현인을 우인으로 혼동함을 이르는 말을 어목연석(魚目燕石) 등에 쓰인다.
▶️ 秋(가을 추/밀치 추)는 ❶회의문자로 秌(추), 鞦(추)의 간자(簡字), 秌(추)가 본자(本字), 龝(추)가 고자(古字)이다. 禾(화; 곡식)와 火(화; 불, 말리는 일)로 이루어졌다. 秋(추)는 곡식을 베어서 말리는 뜻에서, 그렇게 하는 계절(季節)인 가을을 말한다. ❷회의문자로 秋자는 '가을'이나 '시기'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秋자는 禾(벼 화)자와 火(불 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래서 秋자는 가을에 곡식이 익어가는 모습을 火자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하곤 했다. 그런데 秋자의 갑골문을 보면 禾자가 아닌 메뚜기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메뚜기를 구워 단백질을 보충하던 시기를 표현한 것이다. 그러니까 본래 '가을'은 메뚜기를 구워 먹는 계절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소전에서 메뚜기가 아닌 禾자가 쓰이면서 수확의 계절인 가을을 뜻하게 되었다. 그래서 秋(추)는 (1)시기(時期)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가을 ②때, 시기(時期) ③세월(歲月) ④해, 1년 ⑤여물다 ⑥날다 ⑦근심하다(속을 태우거나 우울해하다) ⑧시름겹다 ⑨추상(秋霜)같다 ⑩밀치(마소의 꼬리에 거는 나무 막대기) ⑪그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봄 춘(春)이다. 용례로는 우리나라 명절의 하나로 음력 8월 15일 한가위를 추석(秋夕), 가을에 익은 곡식을 거둬 들이는 일을 추수(秋收), 가을 밤을 추야(秋夜), 가을에 거두는 모든 곡식을 추곡(秋穀), 가을철에 느껴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생각을 추사(秋思), 가을 빛이나 가을의 경치를 추색(秋色), 가을의 구름 낀 하늘을 추음(秋陰), 가을의 서늘한 기운을 추량(秋涼), 가을 경치를 추경(秋景), 가을의 찬 기운을 추랭(秋冷), 가을 밤의 달을 추월(秋月), 가을날 또는 그날의 날씨를 추일(秋日), 가을 하늘을 추천(秋天), 맑게 갠 가을날을 추청(秋晴), 가을철의 잔잔하고 맑은 물결을 추파(秋波), 가을갈이로 다음 해의 농사에 대비하여 가을에 논밭을 미리 갈아 두는 일을 추경(秋耕), 가을 바람을 추풍(秋風), 가을에 내리는 서리라는 뜻으로 백발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추상(秋霜), 가을철에 털을 갈아서 가늘어진 짐승의 털이란 뜻으로 몹시 작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추호(秋毫), 익은 보리를 거두어 들이는 일을 맥추(麥秋), 봄과 가을을 춘추(春秋), 가을의 석 달 동안을 삼추(三秋), 늦가을을 만추(晩秋), 가을이 한창일 때라는 뜻으로 음력 8월을 달리 이르는 말을 중추(仲秋), 초가을을 조추(肇秋), 늦가을을 모추(暮秋), 늦은 가을을 심추(深秋), 다음에 다가오는 가을로 내년 가을을 내추(來秋), 가을이 깊어감에 따라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뜻으로 좋은 계절인 가을을 이르는 말을 추고마비(秋高馬肥), 가을철에 털갈이하여 가늘어진 짐승의 털끝이라는 뜻으로 매우 가는 것을 이르는 말을 추호지말(秋毫之末), 가을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이라는 뜻으로 세력 따위가 갑자기 기울거나 시듦을 이르는 말을 추풍낙엽(秋風落葉), 마음이 아주 깨끗하고 청렴하여 조금도 남의 것을 범하지 아니한다는 말을 추호불범(秋毫不犯) 등에 쓰인다.
▶️ 鴻(기러기 홍/원기 홍)은 ❶형성문자로 鸿(홍)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새 조(鳥; 새)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크다의 뜻을 가지는 江(강, 홍)으로 이루어졌다. 큰 새의 뜻으로 쓰인다. ❷형성문자로 鴻자는 '큰 기러기'나 '크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鴻자는 江(강 강)자와 鳥(새 조)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기러기는 물가에서 먹이 잡기를 하니 江자와 鳥자의 결합은 적절한 조합으로 보인다. 그러나 갑골문에 나온 鴻자를 보면 工(장인 공)자와 鳥자가 결합한 형태였다. '기러기'를 뜻하기 위해 工자가 발음역할로 쓰인 것이다. 후에 소전에서는 工자가 江자로 바뀌면서 오히려 기러기의 특성과 더 잘 어울리게 되었다. 鴻자는 때로는 '크다'는 뜻으로 쓰이는데, 鴻자가 다른 새들보다 큰 기러기를 뜻하기 때문이다. 이보다 작은 기러기는 雁(기러기 안)이라고 한다. 그래서 鴻(홍)은 ①기러기, 큰기러기 ②홍수(洪水), 큰물(비가 많이 와서 강이나 개천에 갑자기 크게 불은 물) ③원기(元氣) ④성(姓)의 하나 ⑤크다 ⑥넓다 ⑦성하다, 번성하다 ⑧굳세다, 강하다 ⑨같다, 같게 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기러기 안(雁)이다. 용례로는 배운 것이 많고 학식이 넓은 사람을 홍학(鴻學), 큰 기러기와 작은 기러기를 홍안(鴻雁), 기러기의 털을 홍모(鴻毛), 큰 뜻을 홍지(鴻志), 큰 행운을 홍희(鴻禧), 넓고 큰 은혜를 홍은(鴻恩), 크나 큰 공로를 홍공(鴻功), 크고 작은 기러기들이 돌아옴을 홍귀(鴻歸), 넓고 큰 덕 또는 그런 덕을 가진 사람을 홍덕(鴻德), 크고 넓은 계획을 홍도(鴻圖), 큰 명예나 더 없이 밝음을 홍명(鴻明), 큰 기러기의 우는 소리를 홍성(鴻聲), 넓고 큰 은혜를 홍자(鴻慈), 큰 절조를 홍절(鴻節), 뛰어나게 잘된 글을 홍필(鴻筆), 배운 것이 많고 학식이 넓음을 홍박(鴻博), 큰 사업을 홍적(鴻績), 큰 은혜를 홍택(鴻澤), 큰 기러기와 고니라는 뜻으로 곧 큰 인물을 비유한 말을 홍곡(鴻鵠), 큰 기러기가 아래로부터 차차 위로 올라간다는 뜻으로 차례를 따라 벼슬이 올라감의 비유한 말을 홍점(鴻漸), 큰 기러기와 고니의 뜻이라는 뜻으로 영웅 호걸의 뜻이나 원대한 포부를 비유해 이르는 말을 홍곡지지(鴻鵠之志), 점점 높이 날아 하늘위까지 날 수 있는 큰기러기의 날개라는 뜻으로 점차 높은 자리에 오르는 유위한 재능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홍점지익(鴻漸之翼), 글을 배우면서 마음은 새를 잡는 일 따위를 생각한다는 뜻으로 마음이 엉뚱한 곳에 있어 일이 몸에 배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홍곡장지(鴻鵠將至)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