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천 자체 컨텐츠 하나 만들어보련다.
부산이 옛날엔 동래라 불렸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부산과 동래는 서로 다른 지역이고
행정구역으로 부산이 동래군에 속해있었는데
동래군에서 독립하였다가 나중엔 동래군을 흡수한 것이다.
지금이야 교통 통신 기술이 발달하여 하나의 지역으로 느끼지만
옛날엔 동래에서 전철 타고 남포동 가면서 부산 간다고 이야기했었다고 한다.
부산의 중심지로 유명한 서면도 여기서 유래되는 것이다.
서면을 지도에서 찾으면 부전동 또는 전포동이 나오고
서면이란 행정구역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서면은 옛지명으로 동래군의 서면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런식으로 하위지역이 상위지역을 잡아먹은 유사 사례로는
경상북도 구미가 있다.
선산군에 속한 구미면에 경부선 철도가 놓이면서 구미시로 성장했고
선산군과 구미시가 합쳐져 선산읍은 구미시의 하위행정구역이 되었다.
대전도 유사하다할 수 있는데
공주군 산내면 대전리에 경부선 대전역이 건설되면서
리에 불과하던 대전은 광역시로 성장하였고 충남의 중심지이던 공주군은 그 지위를 대전에 빼앗겼다.
다른 점이라면 완전 흡수되진 않았네.
구미와 대전의 성장이 경부선 철도의 힘이었다면
부산의 성장은 당연히 부산항이 성장의 원동력이었다.
다들 잘 알듯
부산의 원도심지역(중구,동구,서구,영도구)은 산지가 대부분이라 사람이 주거하기 참 열악하다.
농사지을만한 땅도 없고 집을 지을만한 땅도 없다.
부산진 전투를 묘사한 위 그림을 보면, 평지가 없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산이다.
임진왜란 당시 부산진성은 빨간색으로 표시한 곳(증산)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을 하고
부산이란 지명도 빨간색으로 표시한 산의 모양이 솥뚜껑 닮았다고 한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파란색은 임진왜란 이후 새로 지은 부산진성
부산진 전투 묘사와 다르게 부산진성이 해안가에서 떨어져있어 그림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지하철라인 밑으로는 거의 매립한 것이라고 한다.
두산위브더제니스 하버시티아파트가 있는 동네 이름이 '매축지 마을'이다. 매립해서 생긴 동네라는 뜻.
부산은 평지가 아예 없던 곳이고 그나마 있는 평지들은 매립한 것이다.
부산역 앞에 지하터널을 뚫는데 계속 바닷물이 들어와서 공사 진행이 어렵다는데, 매립지라서 방법이 없다고 한다.
이런 땅이니깐 조선이 왜구들에게 땅을 내어줬던 것이다.
지하철 부산진역 인근에 '고관 입구'라는 지역이 있는데, 고관은 옛 왜관을 의미한다.
일본인들이 집단거주하고 일본과 교역을 하는 왜관은 몇번 이동을 하는데 초량에도 생겼다 광복동에도 생겼다 한 것 같다.
원래 살기 좋고 농사 짓기 좋은 땅은 외국에 안내어준다.
중국이 영국에 내어줬던 홍콩을 봐도 농사짓고 집짓고 살기 참 힘든 땅으로 보인다.
여기도 평지가 없고 죄다 산지라서 주택난이 심각하지.
홍콩이 아무리 집값이 비싸고 높은 인구밀도 탓에 살기 힘들어도
고임금을 주는 금융사들이 홍콩에 집중되어 있으니
사람들이 모여살 수밖에 없듯이
부산에 일본인들이 집중거주하며 근대적 항구를 건설하여 교역을 하니
일자리가 많이 생길 수밖에 없고
일자리가 많으니 사람들이 모여들 수밖에 없다
지금은 일자리가 없어 다들 부산을 떠난다고 하니 아이러니하긴 하다.
주거환경 자체는 동래군의 중심지였던 동래읍(지금의 동래구)이 훨씬 좋다.
동래는 우리 조상들이 주거지로 선호하던 분지지형으로
얼마나 살기 좋은지 선사시대 때부터 사람들이 집단거주했던 유물들이 다량 발굴되었고
지금도 부산에서 부동산 투자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해수동'(해운대구, 수영구, 동래구)란 말로 통하는 주거 선호지이다.
부산 원도심과 거리가 있음에도 전통적인 주거선호지라서 오래된 부촌도 존재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일본과의 교역이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부산은 계속 성장했다.
이렇게만 말하면
부산은 역시 일본빨이였구만
왜관이 있던 일본인 집단거주지였기 때문에 성장했구만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부산은 그것 외에도 현대 항구로서 지리적 강점이 매우 많다.
먼저 지형을 봤을 때
부산이 산이 많아서 살기 불편하다고 하지만
항구의 입장에서 봤을 때
경사가 심하다는 것은 육지에 가까우면서도 수심이 깊다는 말이다.
배들이 작았던 근대이전에야 수심이 크게 중요하지 않았을 수 있지만
큰 배들이 들어와야 하는 현대에는 수심이 매우 중요하다.
세계1위 항만인 상하이의 구글 위성사진을 보면
수심 때문에 이렇게 항구를 지어놓은 걸 볼 수가 있는데
구글 지도로 거리측정을 해보니 긴 것은 1.4km가 넘게 다리를 이어놓은 곳도 있더라
대규모로 조성한 신항만은 아예 육지에서 멀찍히 떨어뜨려 지어놓았더라
구글지도로 거리 측정해보니 제일 가까운 육지랑 직선거리로 28km
부산은 도심지 바로 앞에 대형 선박들이 들어오는데다가
부산항 앞으로는 영도가 바다를 막아주는 천연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어서
지형적 조건이 좋다.
부산의 허브항구로서의 입지는 스케일을 달리해서 봐야 하는데
동아시아적 스케일에서는 일본이랑 가깝네
그래서 일제강점기 때 일본과 교류가 많아서 유리했겠네 수준으로 이해될 수 있지만
대륙규모 스케일에서는 부산의 입지는 더 뛰어나다.
아시아에서 북미로 가는 최단 항로에 부산이 접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태평양을 가로질러 직선으로 가는 것이 제일 빠르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극지방으로 조금 휘어서 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최단 항로이고
이를 반영하여 아시아-북미 항로를 짜게 되면 부산은 그 항로에 바로 접하게 된다.
일부러 멀리까지 찾아갈 필요도 없이
대륙을 오가는 큰 배들이 지나가는 길에 큰 부담없이 들릴 수 있는 항구라는 것이다.
수출주도 경제성장 모델을 채택한 한국 정부의 전략 때문에 부산항의 물동량이 많았던 정책적 요인도 크겠지만
북미 최단거리 항로에 접한 부산항을 가지고 있어 북미 수출이 더 수월했을 것이다.
이러한 부산항의 강점이 더해져
일제강점기 이후에도 부산은 폭발적인 성장을 한다.
6.25 피란민들의 유입으로 노동력은 매우 풍부했고
수출에 유리한 항구를 가지고 있었으니
수출형 노동집약 산업에 매우 유리했을 것이다.
제일 대표적이었던 게 신발 산업
부산 신발 산업이 매우 유명한데
부산은 아니지만 인근 김해의 노무현 친구 박연차 회장
사망하기 직전 재산이 3조원을 넘겼던 부자인데
뭐로 돈 벌었냐? 신발 팔아서
임금 상승으로 부산에 있던 신발 공장들 동남아로 대부분 옮겼지만
여전히 나이키 등 주요 브랜드 신발 생산에서 부산경남 기업들의 생산 비중이 크다고 한다.
풍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한 노동집약 산업이 흥했으니
당연히 도시에 인구도 많았겠지
그래서 400만 대도시가 형성이 되었다는 것
최근 인천에 바이오기업들이 서로 입주하려고 난리이고
반도체 기업들도 경기도 남부를 떠나려고 하지 않는다는데
항공화물 수요가 많은 기업들이라서 공항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더라
부산항이 부산산업에 미친 영향도 비슷한 것이겠지
문제는 우리나라가 더이상 노동집약 산업 국가가 아니라는 것
국민들의 소득수준에 맞게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산업 전환이 이뤄졌어야 했는데
실패해버렸다.
부산항은 여전히 세계 6위 항만이고
허브항만으로 역할하는 과정에서 일거리가 많이 있겠지만
노동집약 산업들은 다 동남아 가버렸기 때문에 과거만큼 일자리를 제공해주지 못하고
만성적인 일자리 부족으로 몰락하고 있지
부산의 강점을 말하려던게 몰락으로 끝났네
부산시는 금융, 문화, 관광 이런 걸 미는 것 같은데
어떻게해서든 산업전환에 성공하길 바란다
일자리가 있으면 살기 불편해도 사람들은 모여든다.
부산은 과거엔 일자리가 많았고,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끝.
첫댓글 오우 좋은 글 고마워
좋은글이다 감사감사
ㅎㅂ
오 ㅎㅂ
재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