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황 총동창산악회와 함께한 수락산 산행은 조촐했다. 추석을 앞두고 성묘를 가야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재국은 수락산 입구에만 들렸다가 바로 대구로 성묘를 떠났다. 전날 과음한 친구들도 많았다. 과음한 태호는 늦은 뒷풀이에 참석했다.
우리끼리만의 산행에 익숙해졌고 그 즐거움이 더 큰 탓인지 부인들은 한분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촐한 산행의 즐거움과 의미는 컸다.
수락산 중턱은커녕 밑자락 계곡 아늑한 곳에 우리끼리의 터를 잡고 환담을 나누었다. 영중이 ‘이제는 맛있는 거 친구들과 나누어 먹는 재미로 살겠다’며 가져온 와인과 치즈, 병진이 항상 소지하고 다니는 꼬냑만으로도 단촐한 인원의 취기를 오르게 하기에 충분했다. 거기에 막걸리까지 곁들였으니 이야기의 깊이와 흥취가 더할 수 밖에 없었다.
세상 떠난 관식과 세상 머물고 있는 그의 아내와 가족에 대한 걱정을 했다. 그리고 각자가 생각하는 저승세계, 앞으로 살아가야할 삶의 태도 등에 대해서 진지하게 속을 털어놓았다. 말없던 경복도 가세했고 윤식은 불교적 관점에서 이야기를 펼쳤다. 서로 다른 인생관, 사생관, 가치관을 갖고 생활하지만 갑론을박하지 않고 모두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모습이 좋았다. 대자연 숲속 술기운이 가져다주는 여유와 너그러움이었다. 세상 나와서도 이런 자세를 갖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세파에 얽히다 보면 아웅다웅하게 되니 산속 술자리에서나마 그런 넓은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을 감사하게 여겨야겠다. 그러다보면 나이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여유있고 너그러워지지 않을까.
이야기가 무르익어 가는 가운데 어느덧 하산하는 팀들이 이어졌으며 그들 대열에 합류했다. 우리끼리만의 산행이 즐겁지만 가끔은 이렇게 동창산악회에 합류해 서로서로 힘이 되는 것도 괜찮다 싶었다. 경황산악회의 열악한 형편에 12회가 기증한 기념타월으로 경황산악회에서 대우를 받았으니 개인이건 단체건 열심히 형편을 살려 베품의 즐거움도 만끽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매년 해왔던 경산회 원정 산행 계획을 이야기했다. 이일 저일 핑계로 슬쩍 넘어갔으면 했는데 역시 전통은 지켜야겠다는 각성을 불러 일으켰다. 10월 중순이후 계룡산 갑사-금산리공원-산불봉 4K 코스의 원정산행이 거론됐는데 지난해 문경새재 코스가 너무 좋아 그와 비슷하게 진행하자는 의견들이다. 가을 단풍 구경도 겸해서.
총동창회서 마련해준 2차 술집서 일부 참석한 선후배들과 즐거운 담화를 마친 다음 귀가길 지하철에 마주 앉은 친구들의 모습이 점점 더 나이들어 보였다.안타까웠지만 그 나름의 멋이 있어 좋았다. 깊이있는 인생관, 사생관, 가치관을 이야기할 수 있는 연륜들이 묻어 났다.
첫댓글 우리 12회 경산회장인 민형과 회원들이 이번 총동창회 주체 산행 모임에 참석했구나..이제 우리 기수도 제법 선배 대접 받을 자리였을텐데..여튼 우리도 인생관 가치관 사생관 나눌 나이들이 되었지..뜻 깊은 산행한 친구들이 부럽다~~
^^
내가 꼭 참석하여 배워야 하는 자리인데... 쩝!....
언제든 초순에 귀국하시면 합류해 등산로 초입길에 멍석깔고 앉아 귀한 말씀 들려주시게.
지난 4일 일요일 새벽 목욕탕에 가 앉아서 면도를 하려고 거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는데... 내가 아닌 듯한 초로의 노인(?) 모습에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드랬지... 그런데... 내가 어느새 두 아이의 할아버지가 되어있더라구... 민형의 마지막 글귀에 깊은 동감을 하면서... 짙어가는 가을 오후에...멋있게 늙자꾸나... 친구들아...
자네 수염과 느긋한 행동도 멋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