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자!” 청하면 언제든 기꺼이 시간을 내고자 하는 친구가 둘 있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면서 늘 외로움을 타는 친구와 아직도 직장에
다니면서 해외 출장이 잦아 함께하기가 쉽지 않은 친구다. 전화를 받는 즉시 달려 나가면 얼마나 반가워하고 고마워하기까지 하는지 만사 제친 보람을
절로 느끼게 된다. 지난 주말에는 그중 한 친구와 용산의 중앙박물관에서 한껏 여유를 즐겼다. 언제나 볼거리가 기다리고 있는 곳이지만 호숫가
벤치에 앉아 집에서 준비해온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무엇보다 좋았다.
햇살이 등을 간질이며 그렇잖아도 따끈한 커피로 오른 체온을 살짝 더 올린다. 날씨는 더워졌지만 커피는 그래도 김이 모락모락 나야 제맛인
듯하니 이열치열이다. 콧잔등에 땀이라도 솟을라치면 나뭇잎 사이 실바람이 살랑 불어가 버린다. 팔뚝만한 색색의 비단잉어들도 끼어달라는 듯 물살을
가르며 다가온다. 푸릇푸릇한 생명의 약동이 눈앞에 반짝이고, 은은한 커피향이 너와 나 사이에 그득하니 굳이 대화가 없어도 그만이다. 그래도
한마디 “어때?”는 꼭 나온다. 나는 딸이 유학중인 곳에서 보내온 커피의 맛을 친구에게, 친구는 출장지에서 사온 커피의 맛을 내게 물어보는
것이다. 답은 이구동성 “좋네!”
보통은 원두커피, 더러는 인스턴트커피나 향긋한 허브티로 바뀔 때는 있어도 “어때?”와 “좋네!”는 변함없다. 사방이 푸르른 계절에 오랜
벗과 함께하는데 그 어떤 차인들 좋지 않으랴. 그래도 단연 커피가 대세다. 한국인은 밥보다 커피를 더 자주 찾는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지만, 근래 들어서는 특히 60대 이상에서 커피 사랑이 깊어지고 있다는 마당이다. 75세 이상에서도 절반이 하루 한 잔 넘게 커피를 마신단다.
가장 좋아하는 커피는 원두커피로 인스턴트커피며 믹스커피, 커피음료, 자판기 커피를 제치고 있다.
밥값에 맞먹는 커피값
친구와 나도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원두커피를 잘 만드는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을 찾기보다 ‘커피도시락’을 싸갖고 다니기를 좋아한다. 피치
못할 경우가 아니면, 커피를 사서 먹어야 할 때도 전문점보다는 제과점이나 패스트푸드점을 이용하려 한다. 나이 탓인가, 전문점의 커피가 내게는
진한지, 어쩌다 한 잔 마시는 날이면 잠을 설치곤 해서다. 그래서 어떤 선배는 한 잔을 주문해 더운물을 부어서 함께한 이와 나눠먹는다고도 하지만
괜히 눈치가 보일 것 같다. 커피값은 또 왜 그리 비싼지. 이래저래 친구랑은 커피도시락을 즐기고 대신 식사에 돈을 더 쓰려는 편이다.
20, 30대에는 한약처럼 쓴 커피도, 밥값보다 비싼 커피도 개의치 않았건만 이젠 아니다. 연하며 부드러운 커피가 좋고, 밥값에 맞먹을
정도의 커피값은 좀 아깝게 여겨진다. 비싸더라도 밥값은 참을 수 있는데, 커피값은 아닌 걸 보면 역시 나이 탓일까. 아니다. 커피값에서 원재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많아야 10% 수준이란 사실을 알면서부터니까 나이 탓만은 아니다. 요즘 전문점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에 5000원 안팎이니까
4000원 정도를 커피 외적인데 지불하는 셈이다. 아마도 위치와 인테리어 등 매장에 들어가는 부분이 클 터이다.
연애의 무드를 잡아야 한다거나, 노트북이며 책을 끼고 죽칠 일도 없는데 굳이 배보다 배꼽이 훨씬 큰 분위기 값을 내야 하나 싶어진다.
제과점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 1000원대, 비싸야 2000원의 커피면 어떤가. 가격만큼 커피 맛도 낮으냐면 그렇지 않게 느껴진다. 이 또한 미각이
둔화되는 나이 때문인 것 같지만은 않다. 5000원대나 1000원대 커피의 품질 차이가 크지 않고, 일부 대형 커피전문점은 인스턴트커피에 사용된
것과 같은 원두를 납품받아 사용한다는 게 최근 조사에서 밝혀졌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수익이 낮아지고 있어서 고민이라는 전문점들로선 임대료부터
원두의 질, 로스팅 기술에 이르기까지 반박할 이유가 많을 것 같다.
천국의 맛 캐러멜 마끼아또
어쨌거나 커피만큼은 내 마음도 지갑도 편한 대로 마셔야 하지 않을까. 혼자서든 둘이서든, 전문점이든 아니든, 커피도시락이든 간에 차 한
잔의 여유야말로 가슴의 소리를 들으며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시간 아닌가. 더구나 한 잔이 아니라 “하루 3~5잔의 커피는 건강에 해를 주지
않으며 오히려 당뇨병과 심장병 위험을 줄여준다”는 미국 식사지침위원회의 발표도 얼마 전 나온 참이다. 그렇다고 설탕이나 크림이 듬뿍 들어간
커피까지 건강에 득이 될 리는 만무하다. 커피도시락을 챙기면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서 좋다.
도시락용 보온병이나 보랭병도 요즘은 스테인리스 재질 일색을 벗어나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에 사용의 편리함까지 극대화시킨 게 많다. 가방에
넣지 않고 테이크아웃 커피처럼 손으로 들고 다니기에도 손색이 없다. 내 입에 맞춘 맛뿐 아니라 멋까지 더해주니 대학생들도 들고 다니는 모습을
자주 본다. 이 좋은 계절이 다 지나가 버리기 전에 부지런히 커피도시락을 싸들고 집을 나서야겠다. 그 어떤 고급 인테리어의 세련된 커피전문점이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에 안기는 것만 할 텐가. 마음이 통하는 동행인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아이 러브 커피, 아이 러브 티…’가 절로 흥얼거려질 법하다. 정작 노래 제목 ‘자바 자이브’보다 더 유명한 가사 대목이다. 남녀 혼성
그룹이 만들어내는 감미로운 하모니가 딱 캐러멜 마끼아또 맛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커피 위로 잔뜩 올린 우유 거품 또는 휘핑크림에 캐러멜
시럽으로 흔적을 남긴다는 뜻의 이탈리아어 이름 마끼아또. 포근하고도 달콤한 것이 입엔 그야말로 천국의 맛이지만 몸엔 글쎄…? ‘아이 러브 커피,
아이 러브 티…’가 입안을 맴도노라면 커피도시락으로도 캐러멜 마끼아또를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첫댓글 ..
정다운 벗과 함께라면 커피 맛이 대수입니까.
자판기에서 뽑아 마시는 인스턴트커피도 괜찮겠지요.
커피 값 200원이애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