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avel, La Valse
라벨 ‘라 발스’
Maurice Ravel
1875-1937
Daniele Gatti, conductor
Gustav Mahler Jugendorchester
Royal Albert Hall
BBC Proms 2012
프랑스인이 작곡한 빈 왈츠는 어떤 음악일까? 궁금하다면 라벨의 <라 발스>를 들어보라. 어슴푸레한 음향 속에서 3박자의 왈츠 리듬이 서서히 피어오르면 현란한 춤곡의 소용돌이가 펼쳐진다. 그 소용돌이에 휩쓸리는 순간 끊임없이 계속되는 춤의 환영을 떨쳐버릴 수 없을 것이다. 마치 한번 신으면 죽을 때까지 춤을 추어야 하는 ‘분홍신’처럼 <라 발스>의 음악이 멈출 때까지 우리는 그 기괴한 왈츠를 받아들이도록 강요된다. 과연 이 음악이 빈 왈츠의 우아함과 흥겨움을 닮았다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프랑스의 작곡가 라벨은 자신의 작품 <라 발스>를 가리켜 ‘빈 왈츠의 예찬’이라 불렀다.
라벨이 자신의 방식대로 ‘빈 왈츠의 예찬’을 구현해내기까지는 14년이란 긴 세월이 필요했다. 1906년에 <라 발스>를 처음 구상하기 시작할 당시 라벨은 장 마르놀에게 보낸 편지에 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에 대한 존경을 담은 왈츠를 작곡할 계획이라 밝히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이 멋진 리듬에 대해 내가 얼마나 공감하고 있는지 당신도 잘 아실 겁니다. 또한 춤으로 표현된 환희에 대해서도….” 그러나 왈츠 리듬의 환희를 담은 작품은 곧바로 완성되지 못했다. 1914년에 라벨은 다시 노선을 바꿔 이 작품을 ‘교향시 빈’ 이라 명명하고 “일종의 빈 왈츠의 신격화”이자 “환상적이고 운명적인 소용돌이”라 말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작품은 완성되지 못했다.
환상적이고 운명적인 춤의 소용돌이
그 후 라벨은 곡명을 ‘라 발스: 발레를 위한 시’로 바꾸고 1920년 봄에 마침내 작품을 완성했다. 그리고 이 작품을 무도회 장면에 비유했다. “소용돌이치는 구름 사이로 왈츠를 추는 남녀들이 어렴풋이 보인다. 점차 구름은 흩어지고 왈츠를 추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홀을 볼 수 있다. 장면은 서서히 밝아진다. 이윽고 포르티시모에서 샹들리에의 불빛이 휘황찬란하게 빛을 발한다. 그곳은 1855년경 한 황실의 궁전이다.”
<라 발스>에 대한 라벨의 설명 가운데 특히 “환상적이고 운명적인 소용돌이”라는 표현은 소설가 에드가 앨런 포의 <붉은 죽음의 가면>(1842)의 한 구절과 비슷하다. 포는 이 소설에서 “가장 기괴하고 화려한 가면무도회... 그 방탕하고 화려한 연회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라고 쓰고 있다. 그 때문에 포의 작품이 <라 발스>와 관련이 있다고 지적하는 학자들도 있다. 포의 문학작품이 프랑스 상징주의 작가들의 영감을 자극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라벨이 포의 작품에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라 발스>는 포의 상징적이고 기괴한 소설만큼이나 독특하고 개성적인 음악이다.

‘빈 왈츠의 템포’라 지시된 도입부는 라벨 자신의 설명대로 춤추는 남녀들의 ‘소용돌이’를 묘사하는 듯하다. 다만 그 소용돌이는 작품의 초반에는 아직 완전한 모습을 갖추지 않은 채 단편적인 왈츠 리듬과 선율의 조각이 드문드문 들려올 뿐이다. 그것은 마치 옆방에서 열리는 화려한 무도회의 음악 소리가 문틈으로 흘러들어온 듯 불분명하고 어렴풋한 소리다. 이윽고 선율과 리듬이 좀 더 확실해지면 여러 가지 왈츠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본격적인 ‘빈 왈츠의 예찬’이 시작된 것이다. ▶라벨은 빈 왈츠의 우아한 매력에다가 자신만의 기괴한 상상력을 결합시켰다.
언뜻 듣기에 <라 발스>는 어지러운 왈츠의 연쇄로 들린다. 하지만 이 음악은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거대한 크레셴도(crescendo: 점점 크게 연주하라는 악상 지시어)와 같다. 여린 소리로 시작된 선율의 단편이 점차 형태를 갖추는 동안 오케스트라의 악기들이 하나 둘 연주를 시작하며 서서히 분위기를 고조시키면 이윽고 무도회장의 모습이 드러나면서 첼로와 클라리넷이 미끄러지듯 구불거리는 음형으로 춤추는 이들의 빠른 발놀림을 나타낸다.
비올라와 바순이 처음에는 조용히 왈츠 선율을 연주하지만 화음은 점차 풍성해지고 여러 선율들이 복잡하게 얽히며 왈츠 리듬은 더 강렬해진다. 어둠은 사라지고 승리에 찬 3박자가 계속 되풀이되면서 분위기는 점차 고조된다. 라벨이 “샹들리에의 불빛”이라 칭했던 부분에 이르면 트라이앵글과 탬버린, 심벌즈, 큰북 등 타악기들이 샹들리에의 반짝임처럼 화려한 음향을 뿜어내고, 저음 현악기들은 줄을 짚은 왼손가락을 끌어내리며 사이렌처럼 끄는 소리를 만들어낸다. 그때 관악기와 바이올린은 힘찬 리듬을 연주하며 무도회장의 열기를 전해준다.
Martha Argerich/Nelson Freire - Ravel, La Valse
Martha Argerich, 1st piano
Nelson Freire, 2nd piano
Grosses Festspielhaus, Salzburg
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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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은규(음악평론가)....퍼왔습니다.
첫댓글 아주절제된 리듬의 왈츠곡이네요

잘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장백님 덕분에 이 밤 귀와 눈이 호사를 누립니다.
왈츠 공부하고 갑니다.편한밤 되십시요.감사드려요.
옆방에서 문틈으로 들려오는 음악에 이끌려 그 문을 열고 들어가게 만드는군요.
라벨의 왈츠... 장백님 덕분에 처음 접합니다. ^^
줄감 하였습니다 .
편한 마음으로 쉬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