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에 없던 폭염과 열대야로 전국이 가마솥이었지만 결국 더위도 입추에 밀려났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며 오곡백과가 길거리 상점에 쌓이는 호시절, 부모사랑 상조의 경민수 과장이 홀로 산행을 즐기러 집을 나선다. 대학 산악부 출신이라 곳곳을 많이 가봤지만 은두산은 처음이라 한다. 지금은 사회생활이 바빠 산행을 자주 못하지만 한창때는 인수봉의 암벽과 설악산 계곡, 지리산 능선을 휘젓고 다니던 때도 있었다.
대성리역에서 보는 은두산은 낮게 엎드린 동네뒷산 같지만 막상 산속으로 들어가면 울창한 나무 때문에 조망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우거진 산이다. 국립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686.3m봉이 은두산 정상이라고 되어있지만 많은 지도와 가평군에서 세운 정상석은 헬기장이 있는 675m봉을 운두산이라 표기하고 있다(산명과 정상 위치, 높이가 헷갈린다).
운두라는 말을 들으면 그릇이나 모자 둘레의 높이가 연상된다. 정상부에서는 청평댐과 북한강의 물줄기를 구경할 수 있고 깃대봉까지 연결 된 능선의 호젓한 길은 도토리가 발에 밟히며 몇 시간 동안 식수가 없는 쉽지 않은 코스다.
도토리 가득 떨어진 능선을 거니다
대성리역 앞의 신호등을 건너 서울 쪽으로 난 도로 옆 춘천닭갈비 식당을 지나면 우측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산길은 대성리 번영회에서 세운 안내판에서 시작된다. 잣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맞을 수 있는 곳으로 서울시학생교육원의 신체단련 코스 안내 표시가 달려있다.
능선에서 만난 멋진 소나무.
능선을 따라가면 길옆의 야생화가 눈길을 받는다. 하지만 야생화의 향기는 때때로 벌을 부른다. 산에서 벌이 나타나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벌에 쏘여 병원에 가는 경우를 자주 봤기 때문이다. 벌은 화장품 등의 향기를 꽃향기로 오인해 접근하기 때문에 자극이 강한 냄새를 풍기지 않는 게 중요하다. 혹시 벌이 접근하면 도망칠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산에서 아무리 빨리 달려도 벌만큼 빨리 갈 수 있겠는가. 그보다 꼼짝 않고 엎드리거나 안 움직이면 벌들이 선회하다가 날아간다고 한다.
능선으로 한 시간 정도 가면 좌우로 빠지는 사거리에 닿는다. 좌측은 유원지, 우측은 승리기도원 방면으로 낙엽송이 아주 멋진 곳이다. 조금 더 오르면 나타나는 첫 번째 이정표에는 ‘정상 2,6km, 원대성리 3.2km’라 적혀있다.
다른 산과는 달리 은두산의 능선은 유난히 도토리가 많다. 참나무 종류의 열매를 보통 도토리라고 부르는데, 상수리나무 열매는 상수리라 부른다. 가을에는 땅에 떨어진 상수리를 모아 묵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임진왜란 때 피난길의 선조가 도토리묵을 먹고 요기를 했고 왜란 후에도 선조의 수라상에 올랐다고 전해진다. 좌우에 있는 큰 나무들이 한폭의 동양화를 만들어내며 땀을 씻게 한다. 447봉 옆에 있는 큰 철탑에서 다리쉼을 하면 좋다.
은두산에서 바라보이는 청평과 북한강 줄기.
447봉을 지나 3분 정도 가면 바위석문이다. 길 양쪽에 바위가 버티고 서있어 석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정표에는 ‘정상 0,9km 원대성리 4,9km’라고 적혀있다.
마지막 비탈길을 20분 정도 오르면 숲 사이로 헬기장이 나타난다. 가평군에서 세운 정상석이 있는 곳이다. 대성리역에서 세 시간 정도 소요되고 산행 중에 식수를 구할 수 있는 곳이 없어 미리 준비해야 한다. 급경사를 오르며 땀을 많이 흘렸다면 그만큼 수분을 보충해야 한다. 요즘에는 수통에 홍초를 타서 마시기도 한다. 홍초는 젖산이라는 피로 물질을 분해하는 효과가 있고 섬유질이 많아 대장기능도 활발해진다고 한다.
산에서 식수 구할 곳 없어, 미리 준비해야
정상으로 오인되는 헬기장에는 잡초가 무성하다. 20분 정도 북쪽의 급경사를 내려 파위고개에서 원적사로 빠질 수도 있다. 은두산 정상은 일부러 찾지 않으면 찾기 어려운 좌측 숲에 가려진 곳이다. 길이 없어 대부분 잘 모르고 지나치는 곳이다. 헬기장에서 깃대봉까지는 3.7km 거리다. 능선의 북쪽 향현리에는 아침고요수목원이 있다.
깃대봉 쪽의 등산로는 능선만 따라가면 된다. 비슷한 높이의 봉을 세개 정도 오르내리면 한얼산기도원 갈림길이 나온다. 기도원 분기점은 은두산 정상에서 약 1시간이 소요된다. 삼거리에서 약간의 오르막을 치고 올라가면 몇 년 전에 설치한 큼지막한 깃대봉 정상석이 있다. 깃대봉 정상석의 높이도 지형도의 높이인 643.5m가 맞는데, 현재의 상석에는 623.6m라고 적혀있다.
전망대에서 경치를 즐겨본다.
깃대봉에서 기상관측시설 겸 전망대까지는 1.1km의 거리로 20분 정도 걸린다. 기상관측시설 옆에 전망 데크까지 만들어져서 청평댐과 청평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화야산과 호명산 줄기도 멋지게 보이는 곳이다. 은두산 산행은 능선을 걷는 즐거움이 있는 반면, 네 다섯 시간 동안 식수를 구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기에 미리 물을 충분히 가져가는 게 좋다.
안테나에서 동쪽의 능선을 따라 고도를 낮추면 이정표가 있다. 가루게는 3.4km, 덕현리 광성교회 쪽은 약 2km 남은 지점이다. 잣의 산지인 가평인지라 잣나무가 많고 땅에 떨어져 뒹구는 곳이다. 잣 향기가 퍼져 코를 상쾌하게 해주는 길을 통과하면 큰길이 나온다. 산길을 걷는 내내 도토리가 등산화에 밟히는데, 멧돼지가 주둥이로 파놓은 흔적이 곳곳에 있어 긴장감을 준다. 먹이가 떨어진 멧돼지들이 마을까지 내려와 주민들이 놀라는 일이 자주 있기 때문이다.
내리막길을 가면 안부에 닿고 근처의 등산로 옆에 철조망이 이어져있다. 돌탑이 쌓여있는 심오암 뒤편으로 내려갈 수도 있다. 근처의 하얀 자작나무도 볼거리를 제공한다. 안부 우측의 몇몇 민가가 점처럼 보인다. 이쪽으로 내려가면 깨끗한 가래울 약수터다. 여기서 2분만 내려가면 심오암을 거쳐 청평 시내로 갈 수 있다. 우측으로 꺾어져 완만한 능선을 가면 가래울 약수터로 내려가는 길도 나온다. 약 20분 정도 길을 가면 청룡사가 보이고 ‘비룡산 청룡사’라고 써진 일주문 옆에 도착한다.
좌측의 큰 길을 따라가면 구 경춘선 철교 아래를 지나면 농협이 나온다. 여기서 청평역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청평역 근처에 있는 수령 3백년의 느티나무가 눈에 꽉 찰 정도로 크다. 둘레도 6m나 되며 가평군의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벼락을 맞아서인지 특이한 형상의 나무도 있다.
*산행 정보
대성리역~MT촌~은두산 안내판~사거리~447봉~석문~헬기장~은두산~깃대봉~전망 데크~갈오현~심오암~느티나무~청평역 (약 15km, 6시간 30분 소요)
아침고요수목원
가평군 상면 행현리에 있는 수목원으로 휴식과 심신의 치료를 목표로 한상경 교수가 1996년에 개원했다. 10만 평 부지에 자생식물 2천 여 점과 외래식물 3천 여 점을 갖췄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화분 만들기 나무목걸이 만들기 등의 체험학습도 실시한다. 개화기 때(4~11월)와 동절기 때(12~3월)의 입장료가 다르며 단체는 할인도 가능하다. 청평역 앞에서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이동해야 한다(전화 031-584-6701)
송어 축제
관광의 도시 가평은 겨울이면 곳곳에서 얼음 축제로 인파를 부른다. 청평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의 청평 얼음꽃 송어 축제장에서는 얼음에 구멍을 뚫어 송어낙시를 하고 눈썰매장도 탈 수 있다. 대성리역에서 도보 10분 거리의 북한강 대성리 송어 축제장에서도 송어 낚시를 하고 낚은 송어를 회나 탕으로 먹을 수 있다.
춘천꼬꼬닭갈비
구 청평역 앞 사거리에 있으며 신 청평역에서 3분 거리다. 직접 반죽해서 막국수를 만둘어 메밀 함량이 많다. 상추, 배추, 쌈 등의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고 참나물, 곰취, 마늘까지 직접 키운
것만 사용한다. 식당 내외부에는 향수 깃든 소줏고리 옹기 가래를 비롯해 홀태, 탈곡기, 옛날 막국수 틀 등이 있어 식당의 품격과 사장님의 인품을 느낄 수 있다. 닭갈비와 보쌈도 맛있고 밑반찬도 좋다. (전화 031-584-0171, 주소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청평중앙로 72번길 2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