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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일생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자신을 온전히 비우는 것이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빈 심령을 당신의 생명으로 채우시고,
당신의 필요에 따라 다니엘을 고지로, 같은 시대의 에스겔을 미답지로 보내시듯,
우리의 앞길을 친히 인도하실 것이다." p.44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미래란 자기 욕망의 대체어가 아닌, 반드시 이루어질 하나님의 약속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미래를 향한 먼 시선이란, 미래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질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의미한다." p.63
"믿음은 깨달음, 신뢰, 행함의 순서로 전개되고 심화된다. 자신의 죄인 됨과 주님의 구원을 깨닫는 것으로부터 시작된 믿음은
구원의 은총을 베푸시는 주님에 대한 신뢰로 이어지고, 그 신뢰는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삶으로 귀결된다.
바른 믿음이라면
어떤 모양으로든 행동의 변화로 드러나지 않을 수 없고, 행함과 무관한 믿음이란 믿음일 수 없다. 행동의 자립 없이 주님과 동거할 수 없는 까닭이 이것이다.
행동이 뒷받침되지 않는 자의 믿음이란 공허한 말놀이나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p.115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자는 누구에게도 질문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하나님의 소명은 모든 질문을 사라지게 한다."p.129
"어느 시대 어디서나, 절대다수의 사람드은 항상 왜곡의 편에 서 있었다. 소수의 사람들만 엘리야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들의생명을 걸었을 뿐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소수에 의해 인류의 역사는 늘 정화되어 왔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공의는,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함이 없이 자기 삶의 절대 목적으로 삼은 자를 통해서만 이 땅에 성육신(incarnation)되기때문이다." p.163
"순결이 크리스천이 지켜야 할 영적 선도를 의미한다면, 지혜란 세상에서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실력과 능력의 총칭이다."p.327
우리의 생을 드려 하나님을 따른 다는 의미. 그 막연한 문장을 구체적으로 심도있게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지금 나의 신앙과 상태를 점검하고,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인의 모습이 어떠해야하는지 도전하는 책이다.인간은, 실패와 실수 투성이지만, 그럼에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은총으로 인도하신다.
나는 그러한 부르심과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온전한 모습으로 반응하고 있는가?하나님은 살아계신다.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 없음을, 사람은 속여도 하나님께는 감출 수 없음을 기억하라.
국어사전은 ‘올 곧다’라는 말을 “마음씨가 곧고 바르다”로 풀이하고 있다.
<인간의 일생>은 바로 올 곧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추구하는 저자의 자전적 고백이요,
이 땅의 젊은이들을 향한 뜨거운 호소다.
글 첫머리에서부터 오늘의 한국교회를 날카롭게 경고한다.
“교회는 궁전을 구축하는 곳이 아니라, 저마다 집착하고 있는 자기 욕망의 궁전을 허무는 곳이다. 교회의 역할은 단절이 아닌 연결이다.
사람과 하나님을, 사람과 사람을, 생명과 생명을 서로 이어주는 교량 역할이다.
그래서 교회는 본래 썩지 않는 곳이다.
생명과 생명의 교류가 있는 곳엔 부패가 있을 수 없음이다... 교회마다
거대한 욕망의 궁전을 쌓고 있다. 그 궁전이 얼마나 견고한지 하나님과 사람으로부터 단절된 지 이미 오래고, 그속에서 세속적 욕망의 성취를 믿음의 본령인 양 구가하느라 영혼은 날로 피폐해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교회의 몸집은 공룡처럼 비대해졌지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는커녕 자정 능력마저 상실하고 말았다. 교회 외부로부터는 말할 것도 없고 내부에서조차 교회가! 썩었다는 비판과 자탄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음이 그 증거다”(<책을 열며> 중에서).
그래서 이 땅의 사랑하는 청년들에게 부탁하다:
“그대가 그대의 궁을 스스로 허물고 진리의 전을 복원하는 데 그대의 일생을 바치면,
그대는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얻게 될 것이다.
그대가 다윗의 일생을 통해 이 사실을 터득하고 그대 일생의 방향을 바르게 설정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그대 일생을 사랑하고 아끼는 길이요,
그대로 인해 새로워질 조국과 인류의 미래를 사랑하고 지키는 일이다.”
이 책은 5부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역사의 지평> 첫 부분에서는 장례식에 갈 때마다 떠오르는 단상을 풀어내고 있다.
생명용품’의 길과 ‘죽음용품’의 길이 있다고 말한다.
돌은 정원석이 되어 자연미를 뽐낼 수도 있고,
공사장에 동원되어 문명의 이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돌이 비석으로 선택되는 순간 그것으로 끝이다. 이 메시지는 나중에 다시 강조된다.
“그대의 미래는 지금 그대가 추구하고 있는 현재의 삶에 의해 구체화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그대의 미래는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든 현재의 그대가 그대 미래의 책임자다.
그리고 그대의 미래는 그대 개인의 미래로 끝나지 않고 반드시 역사의 지평에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역사의 지평을 뒤흔들되 역사를 허물며 뒤흔들 수도 있고, 새롭게 세우며 뒤 흔들 수도 있다.
이 세상을 70-80년 동안이나 거쳐 가면서도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타인의 미래와 역사의 지평을 허무는 죽음용품으로 공동묘지에서 썩어 버린다면,
그런 자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음만 못하다.
청년이여, 하나님 안에서 그대 자신을 생명용품으로 가꾸어라”(75-76쪽).
저자에 의하면, 미래란 단순히 기다림의 대상이 아니다. 미래는 적극적인 창조의 대상이다.
인생이라고 다 같은 인생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자기 욕망이 이끄는 대로 사는 인생은 죽음용품으로 소진하는 것이다.
저자는 두 여인의 죽음을 언급한다.
1997년, 불과 닷새 간격으로 두 여인이 세상을 떠났다.
그 중 한 명은 영국의 다이애나비다. 교통시고로
사망한 그녀의 나이는 36세였다. 그녀의
장례식은 공허하고 허무하기만 했다.
그녀의 장례식에는 죽음용품만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한편 다이애나비 사망 닷새 후, 인도 캘커타의 테레사 수녀가 숨을 거두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87세였다. 깊이
팬 주름과 깡 말라버린 광대뼈가 유독 두드러져 보이던 그의 삶은 ‘생명용품’ 자체였다.
“사도 바울의 표현처럼, 그녀의 육체는 비록 후패했지만 생명용품이었던 그녀의 삶은 죽어서도 생명을 발하고 있었다”(21쪽)
.
“청년들이여, 잊지 말라. 모든 인간의 삶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반드시 역사의 지평에 영향을 미친다. 그대의 삶도 예외가 아니다.
오늘 그대의 삶에 따라 오늘의 결과인 미래의 모습이 달라진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소망과 두려움이 동시에 존재한다...
나의 그릇된 삶으로 인해 미래의 한 부분이, 역사의 지평이 어떤 의미에서 허물어진다는 것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28-29쪽)
.
2부에서 더불어 사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더불어 살기 위해서 우리는 사소한 교통법규라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82-83쪽).
그리고 더불어 산다는 것은 예의범절의 문제이다.
그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한국인, 특히 젊은이의 무례를 질책한다.
그는 예절이 ‘공생의 건실한 토대’라고 말한다(92쪽).
더 나아가 더불어 산다는 것은 물질을 나누는 것이요,
마음으로 사람을 품는 것이다.
“자신이 마음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품고 있는지 간단하게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
자신의 기도 속에 몇 사람이나 포함되어 있는지를 따져 보면 된다.
“그대의 기도가 품고 있는 자만 실은 그대의 마음이 품은 자요, 그대는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과만 공생하고 있다”(100쪽).
저자는 공생이 삶의 형태나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의 문제라고 말하다. “이 본질에 대한 각성과 자기 훈련이 없이는, 크리스천이 아무리 ‘서로 사랑하자’고 외쳐도 그것은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101쪽).
사람마다 공생의 필요성을 역설함에도 실생활 속에서 공생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공생의 대전제가 홀로 서는 삶(자립)임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경제적 자립, 행위의 자립, 의식의 자립, 그리고 영적인 자립이 필요하다.
특히 영적인 자립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일평생 특정인에게 예속되는 영적인 노예로 살아가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영적으로 자립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 실정이다.
“여기에는 목회자와 교인의 구별이 없다.
목회자는 목회자대로 자기 고유의 목회 철학을 지니지 못한 채 ‘성장 목회’, ‘치유 목회’,‘셀목회’, ‘멘토링’ 등 목회 유행을 쫓아다니기 바쁘고,
교인은 교인대로 자기 인생의 모든 결정을 스스로 하지 못해 일일이 목회자에게 의존하고 있다”(128쪽). 저자는 말한다.
“모든 가치관이 뒤흔들리는 말세에는, 영적 자립 없이는, 타인과의 공생은 고사하고 자기 자신 하나도 지킬 수 없다”(131쪽).
저자에 의하면, 다윗에게는 자립성과 공생성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중심에서 보신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다윗의 자립성은 공생의 텃밭이었고, 그의 공생성은 자립의 열매였다”(141쪽).
성경에서 역사의 지평을 새롭게 하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은 자들은 한결같이 자립과 공생의 사람들이었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남의 탓을 하지도 말아라.
그대가 이 시대의 다윗이 되어라.
그대의 중심을 자립과 공생의 교직판이 되게 하라. 그대의 삶을 자립과 공생의 수틀로 하나님께 드리라”(147쪽).
3부에서는 ‘베레스 웃사’가 중요한 키워드다(삼하 6:6-8 참고).
저자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을 알고 믿는다는 자들, 하나님의 말씀으로 밥 먹고 사는 직업 성직자들에 의해 언제나 왜곡되었다”(173쪽).
저자는 법궤와 관련된 세 사건을 소개하고 분석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의로 왜곡하는 ‘참람한 죄’를 범하는 자들을 예외 없이 치셨다. 다윗은 웃사가 즉사한 현장을 ‘베레스 웃사’라 불렀다.
하나님께서 웃사를 치셨다는 의미이다. “
물론 이 말은 하나님께서 웃사란 이름을 가진 오만한 인간을 치셨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훨씬 심오한 뜻을 품고 있다”(190쪽).
우리 개역성경에서 ‘웃사’로 음역된 히브리어 보통명사 ‘우자’는 본래 힘, 능력, 위엄이란
뜻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것들을 하나님보다 더 귀히 여기고 더욱 신봉하는 인간을 치셨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처럼 자신의 것들을 절대시하는 인간을 치셨다.
자신의 것들을 우상시하고서는,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있기는커녕 도리어 하나님을 왜곡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웃사가 즉사하는 현장에서, 그 모든 과정을 직접 목격했던 다윗의 깨달음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것들을 신봉하면서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보다 높은 곳에 거하려는 인간을 반드시 치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거룩하신 하나님을 바르게 믿기 위해서는 늘, 자기 손으로 하나님 위에 오려놓은 자신의 것들을 자발적으로 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깨달음이었다”(190-191쪽).
따라서 ‘베레! 스 웃사’는 다윗의 결단을 보여주는 고백이다.
즉 자기 욕망의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 아래 거하도록 자발적으로 ‘베레스’(치다)하겠다는 결단의 고백이었다. 크리스천이란 누구인가?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베레스 웃사’를 통해 죽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신 주님을 본받아,
주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날마다
‘베레스 웃사’를 선행하는 자다”(203-204쪽).
그렇다면 교회가 무엇인지도 자명해진다.
교회란 주님의 이름으로 ‘베레스 웃사’를 자발적으로 행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를테면 교회는 ‘베레스 웃사’의 진원지다(205쪽).
말씀을 지키는 삶과 ‘베레스 웃사’는 불가분의 관계다.
4부 에덴과 아단에서 저자는 에덴의 동사형인 ‘아단’이 재귀동사가 되면 그 뜻이 완전히
바뀐다고 설명하고 있다. 재귀동사란 행동의 결과가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동작을 의미한다.
에덴의 재귀동사 ‘아단’의 경우 그 사전적 의미는 ‘주색에 빠지다’이다.
에덴(우아한 기쁨)이 ‘주색의 탐닉’, 곧 영적 패륜으로 돌변해 버리는 것이다.
하나님을 등진 자기중심적 삶은 영적 패륜의 길로 나아간다.
다윗의 타락은 ‘아단’의 결과, 즉 죄의 특징을 보여준다.
저자는 죄의 기민성, 대담성, 결실성, 확산성, 그리고 둔감성을 상술한다.
죄의 결실성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그대 잊지 말아라. 아무리 작은 죄라도 죄는 반드시 죄의 열매를 남긴다. 죄의 특성이 그 결실성에 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행한 죄일지라도, 어느 날 그 죄의 열매는 만천하에 공개적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기 때문이다.”
끝으로 저자는 인생의 ‘바른 퇴장’을 말하면서 이렇게 묻는다:
“일생토록 기분 내키는 대로 아무렇게나 살다가 죽은 뒤에 신문 부고에 십자가를 인쇄하고, 묘비 비석에 십자가를 새겨 넣기만 하면 바른 퇴장이 되는가?” 퇴장 준비는 지금 이 순간에 하는 것이다.
특히 청년의 때는 자기의 내적 가능성의 그릇을 키우는 때이다.
청년의 때에 실력 배양에 실패하면, 평생 빈 깡통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은 순결과 지혜, 영적 선도와 실력이 한데 어우러진 삶에서 나온다. 그것이 진짜 크리스천의 삶이요, 바른 퇴장과 등장을 준비하는 삶이다"(331쪽).
다윗의 생애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 책의 부제는 ‘신앙을 자기 야망의 도구 삼는 시대에
띄우는 마지막 청년서신’이다. 성경의 메시지를 씨줄로 하고, 삶의 현장에서 얻은 깨달음을 날줄로 한 메시지는 오늘의 잠든 영혼들을 흔들어 깨운다.
저자는 이렇게 외치고 싶은 것이다:
“하나님은 군중이 아니라 깨어 있는 한 인격을 쓰신다!”
그리고 저자의 마지막 고백은 이것이다. “
나는, 나의 일생이 다하도록 진짜 크리스천,
프로 크리스천으로 살다가 죽고 싶다.
사랑하는 청년아! 그대 역시 이 길을 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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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철학적 질문을 관념적으로 논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근거한 실제적인 답을 제시하기 때문에, 인생의 가치를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서 존귀한 인생을 살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한다.
다윗의 출생 배경과 전 생애가 기록된 룻기, 사무엘상·하, 그리고 그의 생애 마지막이 기록된 열왕기상을 본문으로 삼은 총 5부의 서사적 메시지로 된 이 책을 통해 독자는 때로 어렵고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 구약 성경을 재미있고 실감나게 읽을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될 것이다.
성경을 바탕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실제적으로 제시하므로, 인생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하고 하나님 앞에 존귀한 인생을 살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해 준다.
사랑하는 청년아, 그대가 만약 욕망의 궁을 짓는 데 그대의 일생을 걸면, 그 궁이 무너지기도 전에 그대 자신이 먼저 모든 것을 잃고 모두와 단절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대의 궁을 스스로 허물고 진리의 전을 복원하는 데 일생을 바치면, 그대는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얻게 될 것이다.-'책을 열며'中“그대의 일생을 그분께 드려라”
특별판 네 번째 책인 《인간의 일생》은 《청년아, 울더라도 뿌려야 한다》, 《참으로 신실하게》, 《내게 있는 것》에 이은 저자의 네 번째이자 마지막 청년 서신이다. 앞의 세 권이 개인적인 영성을 주로 다룬 책이라면 《인간의 일생》은 가정과 사회 속에서의 영성을 다루고 있다. 다윗의 생애를 통해 한 인간의 일생이 역사의 지평을 어떻게 새롭게 하는지 치밀하게 탐사(探査)한 청년 서신 완결편이다.
저자소개
이재철
교회가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도록 교회개혁에 앞장서는 목회자. 각종 교회제도와 전통을 깨는 파격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신앙과 가치를 지켜나가는 목회자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데 대한 탁월한 저서를 쓰는 기독교계 대표적인 작가로 유명하다. 1949년생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를 나와 1974년 홍성통상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주목받는 경영인으로 두각을 나타냈으나,
회사와 개인 삶에 닥쳐온 위기를 계기로 '선데이 크리스천'의 영적 위선을 벗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된다. 1985년 장신대 신학대학원에 입학하여 신학 공부와 목회수련을 거쳐 1988년 주님의교회를 개척했다.
10년간 목회하면서 헌금의 무기명화, 모든 교회 재정의 50% 이상을 교회 내부가 아닌 외부 사회를 위해 사용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그대로 실천하는 등 교회의 개혁에 앞장섰다.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목회자임에도 불구하고 교인들에게 탈세하지 말라고 설교하는 당위성을 찾기위해 스스로 세무서에 가서 세금을 납부하는 등의 실천을 보이는 파격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목회 초기에 약속한 대로 담임목사직을 스스로 사임했다. 그후 장로회(통합) 총회 파송 선교사로 스위스에 있는 제네바 한인교회에서 3년간 목회했으며, 현재 한국기독교선교 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의 부르심을 받아 100주년기념교회의 담임목사(2005년~현재)로 사역하고 있다.
저서로는 『매듭짓기』,『인간의 일생』,『비전의 사람』,『내게 있는 것』,『참으로 신실하게』, 『청년아, 울더라도 뿌려야 한다』, 『회복의 목회』, 『회복의신앙』, 『아이에게 배우는 아빠』, 『새신자반』, 『믿음의 글들, 나의 고백』,『사명자반』 등을 썼고, 요한복음 설교집 『요한과 더불어 5~10』 사도행전 설교집 『사도행전 속으로』와 메시지 북 『비전의 사람』, 오디오 『참으로 신실하게』,『내게 있는 것』가 있다.
『새신자반』은 몽골어와 베트남어로, 『비전의 사람』과 『청년아, 울더라도 뿌려야 한다』는 중국어로 번역되어 현지 교회의 선교 사역에도 쓰이고 있다.
사변적이고 이론적인 내용에 치우치지 않고 기독교 진리를 끊임없이 삶과 관련지어 ‘지성과 신앙과 삶’의 조화를 꾀한다. 또한 본질에 대한 깨달음과 실천을 강조하며 풀어내는 명료한 논리와 특유의 문체로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사랑하는 청년아! 그대 역시 이 길을 가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