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민시은
<기억전달자 / 로이스 로리 / 비룡소>
드디어 제목만 익히 들어온 <기억전달자>를 읽었다. 워낙 유명해서인지 읽기 전에 많은 기대감이 있었는데 그 기대감을 충족시켜주는 책이었다. 결과물캠프를 준비하며 개인도서로 읽어서인지 소설의 줄거리보다 저자의 입장에서 소설을 어떻게 썼을지를 생각하게 읽게 되었다. 그리고 소설을 더욱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주인공 조너스는 열두 살이 되어 앞으로 자신이 어떤 일을 하게 될까 궁금해하면서 가슴을 졸인다. 조너스가 사는 마을은 인간적인 감정과 고통, 선택, 잘못, 피부색이나 언어의 차이, 차별 등 분란을 일으킬 만한 소재는 모조리 제거해 버리고 일정한 규칙과 질서 내에서 직업과 배우자, 아이마저도 통제되는 곳이다. 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여 정의 내리고 순화해야 하며 간밤에 꾸었던 꿈을 공유하며 교정해야 한다. 스피커를 통해 끊임없이 감시당하며 명령을 따르지 않고 세 번 이상 중대한 잘못을 저지르면 ‘임무 해제’를 당하는 삭막한 곳에서 사람들은 이것이 행복이라고 여기며 살아간다. 조너스는 열두 살이 되던 해 마을에 한 명밖에 없는 ‘기억보유자’라는 직업을 부여받고 기억전달자와 훈련을 받는다. 이를 통해 인류의 역사를 받아들이고 색을 보게 되며, 더 넓은 세상이 있음을 알게 된다. 조너스는 그 세상을 모두에게 알리기 위해 임무 해제를 당할 위기를 앞둔 갓난아기 가브리엘과 탈출을 감행한다.
소설 속 마을은 어렸을 때부터 내가 상상해 오던 곳과 매우 유사했다. 전쟁도, 기근도, 불행도 없는 완벽하게 질서정연하고 이상적인 세상은 행복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과연 극단적으로 편안하고 위험도 없는 사회가 인류를 위한 사회인가? 최고의 효율로 가장 많은 것들을 얻어내기 위해서, 각자에게 직업을 부여하고 배우자를 결정하고 아이를 지정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가장 중요한 것들을 잃어갔다. 그것은 당연한 것들이었다. 색, 빛, 감정, 물음표와 같은 것들 말이다.
한편으로는 모든 것이 완전한 세상은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결말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완전하지 못한 인간들이 모여서 서로를 통제하는 마을 역시 삭막하고 생명력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책에서 기억전달자는 과학자들을 향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아는 사람은 누구인가? 모순적이게도 학습된 지식을 아는 사람들이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기에, 아는 사람은 경험한 기억을 다시 느낄 줄 아는 사람들로 그려진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주인공의 말이 가짜 슬픔과 가짜 기쁨만을 느끼는 사람들 사이에서 진짜 감정을 느낄 줄 알고 진짜 기억을 갖고 있는 살아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열두 살 소년이 인류의 마지막 기억을 갖고 마을을 벗어나는 이야기는 자칫 단순하고 식상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다소 찝찝한 열린 결말에도 불구하고 그런 생각 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저 재미의 문제가 아니라 문장 하나하나가 감동을 주었고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소설의 작품성은 물론 독자를 붙잡아 놓는 능력 역시 뛰어나다는 말일 것이다.
첫 개인도서로 어떤 책을 고를지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당연히 <기억전달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워낙 베스트셀러이기도 했지만, 직간접적으로 올해 내가 완성해 낼 소설에 많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SF라는 새로운 장르에, 심지어는 작년까지도 선호하지 않았던 장르에 도전하면서 가장 상반될 수 있는 인류애와 따뜻함, 사랑과 공감에 대한 소설을 쓰고 싶어졌다. 그 본보기를 이번 책에서 잘 보여준 것 같아 이 감동을 잃지 않고 내 소설에서도 담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연구하는 정재훈
<살인자의 기억법 / 김영하 / 문학동네>
제목 : 소름 돋는 반전
오랜만에 추리소설을 읽게 되었다. 이번 결과물에서는 반전 소설을 쓰고 싶어서 비슷한 소설을 찾아보던 중, 김영하 작가님 살인자의 기억법을 골랐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한때 연쇄살인마였던 주인공 김경호가 나이가 들어 알츠하이머병에 걸리게 된 시점으로 진행된다. 김경호는 과거에 죽였던 여자의 딸을 데리고 살고 있었는데,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이후로는 살인하지 않고 딸과 살고 있었다.
(줄 바꿈) 그러던 어느 날 동네에서 연쇄살인이 일어나게 되고, 김경호는 기억을 잃어버린 사이 자신이 살인을 한 게 아닌가 의심하지만 이내 살인범으로 추정되는 박주태라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는 과거 살인자였을 때의 감 덕에 그가 살인범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김경호의 딸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는 한때 자신을 잡기 위해 노력했던 경찰과의 친분을 이용해(경찰은 김경호가 살인범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박주태의 차량번호까지 조회해가며 그와 싸울 준비를 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땐 자신의 손으로 딸을 살해한 후였다. 그리고 결말에서 정말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지는데, 사실 그녀의 딸은 그를 돌봐주던 가정부였고, 딸이라고 생각했던 그 어린아이는 이미 옛날에 그의 부모와 함께 죽였다. 또한, 그를 좇던 경찰 역시 그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허구였다. 마지막으로 박주태는 선량한 경찰 중 한 명이었다.
(줄 바꿈) 이로써 결말을 통해 작품 초, 중반의 이야기를 모두 거짓, 없던 일로 만들어 버리는 김영하 작가님의 실력이 정말 놀라웠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소름이 돋고 결말을 알고 나니 나도 이런 소설을 쓰고 싶다는 충동이 몰려왔다. 작품의 반 이상을 없애버리는 결말을 내 소설에도 적용해서 소름 돋는 소설을 적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