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제 돌아가리라!
‘지키지 못할 약속이라면 아예 하지를 말고 약속을 했으면 뼈가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그 약속을 지켜라!’ 하셨던 사부님의 말씀이 아직도 나에게 회초리를 겨누고 계신다.
그 때 그 분의 말씀이 너무나도 황망하고 현실성이 없어서 늘 원망하며 어깃장을 놓았었다.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데 왜 저만 그렇게 해야 합니까?’ 하는 나의 항변 앞에서 사부님은 ‘아무나 그렇게 할 수는 없지만 언젠가 누군가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네 스스로 그 일이 무엇인지 깨달아 행하며 배우고 익혀서 반드시 성취해라.........’ 하시는 말씀 뿐 ‘그 일’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시지 않으셨다.
‘장부는 스승을 따로이 정하지 않고 배움터를 달리 갖지 않는다.........’ 하심이 그 분의 훈육 방침이셨기에 무엇을 강요하거나 넘겨짚고 보채고 따지며 싸우는 일을 절대로 금기시 하셨다.
‘무시하고 미워하는 것이 모든 죄와 벌의 근본이니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어떤 일도 절대로 무시하거나 미워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또한 대장부이니라.........’
정말 유치원, 초등학교 어린이 수준에서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도 없었고 당시 상황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참고 견뎌내면서 자라나야 했었다.
너무나 가난하였다. 당장 끼니를 이을 식량조차 없었던 어려운 시기였기에 사부님께서 공부가 끝나면 주시는 밥을 먹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그 호된 공부를 해야만 했던 아득한 옛날의 아련한 이야기이다.........
“I'll Be Back! 나는 수원 백가 백 창기다.” 이것이 내가 내던진 공직자 사표의 내용이다. 1985년 그 때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조직의 쓴맛을 발견하고 맞서 싸웠었다. 누차 말하지만 대한민국 공직기강 악순환의 고리인 ‘안일무사 업무회피 책임전가 복지부동 구악폐습’을 반드시 해결지어서 대한민국의 공직자로써 정말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그들은 ‘절이 싫으면 중이 나가는 법’을 내세우며 알게 모르게 나에게 압력을 가해왔고 주로 변방에 한직으로만 나를 보내는데 대하여 더는 참을 수 없었고 그대로 그 상황에 익숙해지다가는 내 머리가 터지고 가슴이 폭발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분명한 것은 ‘변화 속에 조화가 있어서 변화를 두려워하고 기피하는 조직과 단체, 나라와 겨레는 반드시 도태되고 만다........’ 는 것이 나의 눈이었고 귀였기에 도저히 그 당시 공직자들의 고정관념과 이기심을 용납할 수 없었고 결국 부모형제와 친구, 동료 직원들의 극구만류에도 불구하고 사표를 던졌다.
‘I'll Be Back! 나는 수원 백가 백 창기다!” 하는 말의 의미는 말 그대로 ‘나는 반드시 돌아온다! 더러운 꼴을 도저히 못 본다!’ 하는 말이었고 한 번 물면 상대의 숨이 끊어질 때 까지 절대로 놓지 않고 물러서지 않는 ‘58년 개띠! 검은 진돗개!’라는 의미를 심어 놓았다는 것을 그들이 알아야만 했다.
‘대인(大仁)은 대용(大用)이요 불인(不仁)은 불용(不用)이라!’ 하시는 말씀이 계신다. ‘크게 거듭나면 크게 쓰이고 거듭나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다.........’는 말씀이시다. ‘걸레도 빨아야 걸레요 지나치게 더러우면 걸레로도 못 쓴다! 빨아서 깨끗해지는 것은 더러운 것이 아니다. 아무리 빨아도 깨끗해지지 않는 것이야말로 정말 더러운 것이다.........’라는 말씀이시다.
이러한 교육과 훈련을 받지 않았더라면 무심코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여러 가지 사회적 병폐현상과 전체적인 모순 그리고 오류투성이의 관행들이었겠지만 ‘아는 것이 병이요 모르는 게 약’이었던 군사독재 시절엔 ‘큰일 낼 놈’이요 ‘아주 위험한 놈’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역으로 ‘아는 것이 힘이다!’ 라는 말이 통하는 시대엔 더 이상 무식이 자랑이 아니고 무례가 무기가 될 리 없다. ‘약 모르고 오용하고 약 좋다고 남용하는 시대........’ 독선과 아집이 판치고 오만과 편견이 난무하는 상황에서는 진실이 밝혀질 리 없고 정의가 통할 수 없는 게 정상이다.
어둠 속에서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게 코끼리다!’라고 아무리 외쳐본들 귀까지 멀어버린 그들이 알아들을 리 없었다는 것을 세상과 부딪치며 깨달았다. 그 어두운 시대에 80년이 넘게 살아오셨던 사부님의 고통이 얼마나 아프고 무거웠는가를 뼈에 사무치게 겪었지만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역사적 오류요 포기할 수 없는 문화적 모순임을 더욱 더 깊고 넓게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때 나를 세상 속으로 내쳤던 당시의 면장, 부면장, 군수가 이제는 오히려 너무나도 고마운 존재임을 새삼 느끼고 있다.
‘처음 개미였을 때는 비둘기가 한없이 두려웠으나 스스로 거듭나서 독수리가 되고 보니 비둘기는 독수리 밥에 불과하더라........’ 하시는 말씀의 의미도 이제는 확연히 알 수 있다.
왜 우리 한겨레 대한민국, 동방예의군자지국이 미국을 ‘빅 브라더’로 받들어 모셔야 하는가? 강원도 촌놈이라고 언제까지 무시당하고 소외당하며 그들의 방귀 냄새만 맡아야 하는가? 왜 중국을 천자의 나라로 받들며 역사적 노예가 되고 문화적 거지가 되었던 그 시절의 습성에서 벗어날 수 없고 식민 지배를 받았던 그 아픈 상처를 언제까지 치유하지 못하고 질질 끌고 가며 그들을, 그들의 후손을 미워하고 무시하면서 한과 원의 응어리를 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것인가?
문제 아닌 것이 없는 그것이 문제인 대~한민국........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보다는 인간적 연민을 부추기고 개인적 사정을 앞세워서 전체적인 진실을 호도하며 사회적 정의를 외면하게 만드는 군중심리, 포퓰리즘, 매트릭스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혼돈과 무질서........
“천심의 분노에는 예외가 없고 역사의 심판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천심의 분노 앞에 두려움을 알고 역사의 심판 앞에 부끄러움을 알라!” 하고 피를 토하며 외쳤던 25 년여의 세월들.........
‘뼈를 깎아 붓을 삼고 피를 짜내 먹물을 삼으며 살가죽을 벗겨내어 종이를 삼으라!’ 하셨던 말씀 그대로 행하였으나 다행히도 그들은 나의 목숨을 끊지도 빼앗지도 못하였고 다만 벌금을 물리거나 잡아가두는 것이 고작이었다.
내가 내 나라의 혼을 되찾아주고 거룩한 역사의 맥을 이으면서 찬란한 전통과 문화를 통해 민족의 기상을 높이겠다는데도 그들은 나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나마 역사를 알고 민족을 아는 사람들은 ‘자꾸 잡혀가지 말라! 밥 굶지 말고 다치지 말아라.......’ 하시면서 걱정은 해주셨으나 막상 일이 터지고 나면 그 누구도 내 옆에 머물러 있지는 않으셨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이해가 되질 않는다. ‘내 뿌리를 모르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며 조국과 민족의 본성을 저버리고 본분을 망각하며 산다는 것이, 인간된 길을 포기하고 살아간다는 일이, 스스로 양심을 버리거나 마비시키는 일들이, 얼마나 두렵고 위험한 일인지를 왜 모르는가?’ 아무리 용납을 하려고 해도 절대로 용납이 되질 않는다.
연전에 지금은 돌아가신 법정스님과 법담을 벌였던 적이 있었다. 나 역시도 한 때 스님이 되고자 불교 경전을 공부하였으나 ‘너무 뜨겁고 강하다. 그 불은 아무도 끄지 못한다........ 차라리 세상 속으로 들어가 하늘의 뜻을 훔치는 큰 도둑이 되고 사람들의 마음을 구걸하는 큰 거지가 되어라...........’ 하셨던 대선사님의 말씀 앞에 스님이 되려는 길에 퇴짜를 맞았던 놈이기에 여러 가지 화두를 놓고 말씀을 나누다가 ‘다 뺏겨도 결코 한민족의 혼은 뺏기지 말 것이며 다 버려도 절대로 군자의 나라, 그 본성과 양심은 버리지 말라.’ 하셨던 옛 사부님의 말씀을 들이댔더니 ‘오금이 저린다.’하시면서도 결국 '한 시대가 흐르고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백선생의 그 꿈이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으니 좀 더 참고 져주면서 기다리노라면 반드시 꿈을 이룰 그 날이 왔음을 저절로 알게 되는 날이 있을 것이다.........’ 하시는 말씀을 주셨던 적이 있었다.
비슷한 말씀은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님도 남기고 가셨으나 김수환 추기경님은 실제로 단군성전에 오셔서 절을 올리시며 천제에 동참을 하셨던 용기 있는 분이셨다.
어차피 어불성설이요 불립문자이니 이만 각설하고 바로 지금, 현재, 실제상황의 문제를 말하고자 한다.
2009년 12월에 나는 나의 한계를 보았다. 더는 ‘별난 애국자 백 창기’로 살아봤자 아무 것도 바꿀 수 없고 가질 수 없으며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그나마 모여들었던 사람들이 눈앞에 보이지 않고 옆에 서서 귀에 들려주지 않으면 모두 잊어버린다는 사실이다. 밥을 먹는지 죽을 먹는지, 병이 들었는지 죽었는지 조차 알 길이 없고 알릴 길이 없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과의 혈연 지연 학연이 아니면 대개가 따로따로 끼리끼리 제멋대로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나라가 있고 일터 혹은 학교가 있으며 가족과 가정이 있어서 나라에는 대통령인 지도자와 공직자, 임금과 신하가 있고 배움터에는 스승님과 제자, 선생님과 학생이 있으며 가족과 가정에는 부모와 자녀, 조상과 후손이 있는데 참지도자를 만들고 참스승을 만들며 참부모를 만들어내야 참된 공직자와 참된 제자와 참된 자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인과의 법칙이요 소통과 화합, 참여와 조화의 원리원칙인데 아무리 연구하고 노력해도, 설령 목숨을 바친다 하여도 그릇된 지도자, 잘못된 스승, 어긋난 부모가 오래도록 굳어진 관습과 가치관을 버리고 올바른 관습과 가치관으로 거듭나기 전에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 깰 수 없는 벽을 보았다. 병아리도 스스로 껍데기를 깨고 나오지 못하면 결코 훌륭한 닭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2008년도 숭례문 화재가 났던 그 날, 내가 세상에 나온 지 50년이 되던 그 날, 나는 하늘에 맹세한 대로 죽었어야 했기에 그 때 나 대신 애매하게 죽어간 친구 ‘고 정 희석’을 따라가기로 마음먹었다.
‘내 나이 50이 될 때 까지 겨레의 혼을 깨우고 나라의 양심을 살리지 못한다면 차라리 내가 죽겠다............’는 각오로 혼신의 힘을 다하여 미친놈으로 살아왔는데도 아무 것도 바꿀 수 없었고 어떤 일도 할 수가 없는 고립무원에 빠져서 병들고 지쳤다.
청와대 앞에 위치한 나의 작은 토굴 같은 방에서 난방을 끄고 약 열흘 이상을 굶으면서 이를 악물고 그래! 죽자!'고 버티니 진짜로 서서히 죽어가는 나를 희미하게 느낄 수 있었다.........
지독한 어둠이었다. 그런데 그 어둠의 저 끝에 엄청나게 뜨겁고 밝은 그 무엇이 있었고 고막을 찢는 것 같은 호령이 들려왔다.
“네 이놈! 나와 약속한 그 일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거늘 네 어찌 그 일을 남겨두고 여기를 오려드느냐! 그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니요 죽어도 죽을 수 없음을 아직도 모른다는 말이냐? 너의 모든 것은 너의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네 맘대로 하는 것이 과연 용서받을 줄 여기느냐! 썩 돌아가서 너의 사명을 완수하고 돌아오너라! 너는 우리가 만들어낸 비각호, 백호가 아니더냐........!”
그랬다......... 봉황도 용도 맥도 그 주어진 임무를 마치고 모두 하늘로 돌아갔으나 백호(白虎)는 절대로 세상을 떠날 수 없는 지구촌 평화의 수호신이었고 세상 모든 사람들을 지켜야만 하는 희망의 파수꾼이었다......... 비각호(飛角虎)는 평화의 뿔을 세우고 희망의 날개를 편 채 하늘을 날면서 진리의 불을 뿜어내는 형상, 우리 아버지가 나를 잉태시킬 때의 태몽이셨다.
덜컥 의식이 깨고 보니 온 몸이 이미 차가운 얼음덩어리가 되어 있었고 무엇 하나 꼼짝 달싹을 할 수 없이 아무 것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뜨거운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런데 단전과 가슴에서 뜨거운 열기가 작동을 하고 있었다. 동물적 본능인가, 육신을 지킨다는 백혼(魄魂)의 작용인가 어쨌든 조금 씩 피가 돌기 시작하며 조금 씩 정신이 들었다.
때마침 핸드폰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한 번의 신호가 그냥 끝났는데 또 소리가 울렸다. 죽을힘을 다해 겨우 전화를 받아보니 때때로 만나는 ‘왕현선사’께서 ‘오늘이 바로 동짓날이니 원구단으로 팥죽을 먹으러 오라.........’고 연락을 주신 것이었다.
얼어 죽었던 몸을 추스르고 혼미한 정신을 가다듬는데 꽤나 시간이 걸렸고 서울 조선호텔 옆에 위치한 원구단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동지팥죽 잔치가 모두 끝나서 한 사람도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 되어 있었다.
비어있는 속은 쓰렸고 너무나도 춥고 외로웠다. 죽지도 못하고 살 수도 없는 군자의 운명이 너무나도 무섭고 힘에 겨운 절대의 고독이요 절명의 고난임을 다시 한 번 더 절감하고 있는 사이에 ‘원주로 오세요........ 여기 오셔서 조금 쉬세요........ 몸이 죽고 나면 영혼과 마음도 일을 할 수가 없어요.........’ 하시는 여인의 목소리......... 원주 치악산 자락에 ‘신시궁’을 열고 구제중생을 하고 계신 ‘일묘연 선생님’의 목소리가 꿈결처럼 들려왔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달랑 지폐 한 장. 숭례문에서 49재를 지낼 때 어느 외국인 관광객이 쥐어 주고 간 20 달러짜리 지폐가 한 장이 있었다. 그 길로 걸어서 인사동의 환전소에서 환전을 하고 보니 원주까지 갈 수 있는 차비는 되었기에 동서울터미날로 가서 무조건 원주행 버스를 탔다. ‘원주로 가고 있다........’고 연락을 하니 현재 내가 머물며 부총관직을 수행하고 있는 원주 치악산 ‘백산소도’ 식구들이 반갑게 맞아 주었고 이미 내가 여기로 오게 되리라고 예상을 했었단다.
‘월광스승님’께서 ‘저 사람은 반드시 소도로 오게 되어 있다........’ 고 말씀을 하셨으며 그 날이 가까이 왔음을 알고 나를 맞이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계셨던 것이었다.
또다시 뜨거운 눈물이 울컥울컥 솟아올랐다. 홀로 인줄 만 여겼는데 여기 ‘백산소도’에서 가녀린 여인들이 ‘신시부활과 한민족 대영광’이라는 사명을 내걸고 혼신을 다해 ‘호국영령 순국열사 무명용사 산업전사 무자조상’에 대한 ‘중천 영혼 천도재’를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지내드리고 계셨던 것이었다.
천하의 무당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돈 밖에 모르고 무식하며 무례하기만 한 줄 여겼는데 여기 ‘백산소도’에서 젊은 신녀들이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 공부를 하면서 단체수행을 하고 있었고 그 옛날 신시배달제국의 천제를 복원하려는 노력과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래. 그랬다.......... ‘지금 당장 네 뜻대로 이루어지지는 않겠지만 어디선가 누군가가 그 뜻을 이루고자 행하며 하늘의 뜻이 펼쳐지고 사람 된 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느니라........’ 하셨던 옛 사부님의 말씀이 귓가에 쟁쟁하게 들려오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2009년 12월 22일에 이 곳 ‘원주 치악산 백산소도’에 왔고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하늘 나라 조상님들이 하얀 눈으로 축복하시는 가운데 천손임을 증명하는 의식을 치렀다. 그 때 나는 분명하게 하늘과 땅을 향하여 외쳤다. "크리스마스는 본래 거발한 천왕 환웅 할아버지의 탄신일인데 그 의미있는 날을 빼앗기고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되찾지 못하는 자손들의 어리석음을 반드시 깨우고야 말겠습니다!" 하였으나 수행이 깊다는 신녀들 조차도 나의 뜨거운 사명감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 이후로 나는 그 간의 공적을 인정받아 졸지에 부총관직을 수여받았고 근 1년을 잘 먹고 편히 자면서 병든 몸을 추스르고 지친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러면서 이 곳 ‘원주’와 ‘치악’이 품고 있는 하늘의 뜻과 사람 된 길을 처절하게 깨닫게 되는 여러 가지 과정이 알게 모르게 주어졌다. 1년을 보낸 시간이 마치 만년의 세월을 보낸 듯이 여겨지는 시간처럼 거칠고 빠르게 흘렀고 백산소도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원주’는 ‘원래의 주인이 누구인가?’ 하시는 하늘의 뜻이었다. ‘민주’가 ‘백성이 주인이다.’라는 우리들의 뜻이라면 ‘원주’는 ‘주인이 주인다워야 한다.’고 조상님께서 밝히시는 의미이다. 주인이 주인다우려면 반드시 주인다운 주인의 정신이 있어야 하고 그 주인 정신을 알려면 역사를 제대로 알고 그 역사 속에 배어있는 조상님의 당부와 교훈을 배우고 익혀야만 한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 아니라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역사적 사명’이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것이 ‘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만드신 ‘국민교육헌장’의 핵심이다.
‘치악(治惡)’은 ‘악을 다스려라!’ 하시는 대천명이셨다. 나라를 망치고 국민을 죽이는 부정부패, 거짓과 불의, 역천과 반역.......... 도끼로 쳐 죽이거나 바늘로 찔러 죽이거나 결국 죽이는 것은 매한가지인데 바늘로 찔러 죽이는 무지와 몽매, 사치와 방종, 혼돈과 무질서가 차라리 더 무서운 우리 내부의 모순이면서 밖으로 드러나면 엄청난 사회적 오류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이제는 모두가 깨달아야만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해도 해도 너무하는 불충과 불효를 더는 용서할 수가 없다.
만주벌판 고구려의 바람이 한파가 되어 세상을 꽁꽁 얼리고 있다. 통제불능의 사회적 모순에서 깨어나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져야 하건만 도저히 통제가 가능한 수준의 생각과 마음을 열지 못하는 우리를 향해 소 돼지가 대신 생매장을 당하며 ‘구제불능’임을 알리고 있지 않은가? 닭과 오리들이 지켜보다 못하여 ‘에라이! 닭대가리만도 못한 인간들아! 차라리 내가 죽어 너희를 깨우마.........’하고 조류독감에 걸려 자살을 하며 살신성인을 하고 있는 자연의 경고, 그 고육지책을 왜 알아듣지 못하고 있는가? 입에 담기조차 두렵고 부끄러운 일들이 버젓이 뉴스 속에서 보이고 들려올 때, 나는 노심초사하며 속으로 대성통곡을 하고 있다.
‘지못미!’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라는 우리 어린이들의 말이다.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왜 어째서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언제까지 ‘지못미’만 되뇌면서 문제를 위한 문제만을 고집하는 정치를 반복하고만 있을 것이며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않을 것인가? 이념대립의 노예가 되고 지역갈등의 포로가 되어서 한 발짝도 못 내딛는 어리석고 후안무치한 정치를 언제까지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소통이 안 되면 불통이 되고 불통의 세상은 먹통이 되며 결국 그 어두운 세상의 백성들은 꼴통이 된다는 사실을 얼마나 더 겪어봐야 깨달을 수 있다는 말인가?
‘문제와 정답은 언제 어디서나 같은 시험지 안에 존재하나 어리석은 자는 문제만 보는 눈과 귀로 문제를 키우다가 결국 그 문제로 인하여 장님이 되고 귀머거리가 되지만 지혜로운 자, 어진 이는 문제를 보는 동시에 해답을 찾아 문제 해결을 함으로써 같은 실수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밝은 귀는 남의 쓴 소리, 된소리를 새겨들을 줄 아는 귀이고 가장 밝은 눈은 자신의 허물을 볼 줄 아는 눈이다...........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요 책임질 줄 아는 것이 용기의 시작이다.........’ 라고 언제까지 목이 터져라고 외치고 독수리 타법으로, 서툰 붓글씨로 써서 보내고 또 보내면서 혼신의 힘을 다 하며 나 홀로 어찌 조국의 혼을 구하고 민족의 양심을 살려야만 하는가? 이 나라의 주인이 과연 나 하나뿐이고 사람다운 사람이 이렇게도 없는가?
‘나라의 미래, 어린이의 장래를 걱정하는 100 만 명의 어머니와 한민족의 혼이 살아있는, 제 정신을 가진 10 만 명의 아버지만 있으면 반드시 나라를 구하고 겨레를 살려 어두운 세계를 밝히는 동방의 등불이 되고 어지러운 인류를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는 동방예의군자지국의 양심, 찬란한 무궁화 꽃을 피워낼 수 있다.’ 고 하신 옛 스승님의 말씀이 결국 어린 제자를 속인 거짓말인가? 우리의 거룩하신 조상님들이 남기신 숭고한 역사와 심오한 문화가 우리 앞에 보이고 들리는 것처럼 모두가 헛소리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이게 다인가? 여기, 지금 우리들의 경박하고 천박스러운 모습이 우리 대한민국과 대한국인이 이루어낼 수 있는 한계치인가? 이대로 천심의 분노 앞에 절망하면서 역사의 심판을 이루어내지 못하고 나 역시 또다시 죽어가야 하는가?
머뭇거리며 주저하다가 이 지긋지긋한 시대적인 상황을 이대로 대물림하면 과연 우리의 아이들이, 후세에 우리의 역사적 사명을 이루어낼 수 있을까? 이대로 간다면 지구인은 아름다운 초록별을 다음 대 까지 무사히 물려 줄 수 있을 것인가?
소중한 이화세계의 원칙으로 깨지지 않는 평화를 이루어내고 홍익인간의 원리로 꺾이지 않는 희망을 일구어낼 수 있을까?
예수님의 말씀을 악용하여 제 주머니 챙기기에만 급급하며 편협한 사랑을 빌미로 전쟁과 파괴를 일삼고 있는 무오류와 무비판의 무리, 무기판매상과 석유업자들........ 부처님의 진리를 오용하고 남용하면서 온갖 부정과 부패를 버젓이 저지르며 사이비 종교을 만들고, 동일시 오류를 일으키는 패악무도한 무리들........ 경박하고 무분별한 개발업자와 천박하고 무책임한 정치세력들.......... 그들의 속내를 가까이 다가가 속속들이 들여다보자니 피가 거꾸로 솟는다.
발 벗고 목숨걸고 나서서 모든 공직자, 성직자, 교직원들 속으로 파고 들어가 진정 우리의 아이들이 희망찬 어린이로 자라나고 자랑스러운 젊은이로 커가며 훌륭하고 쓸모 있는 어른이 될 수 있는 기초적인 인프라, 환경........ 전체적인 의식구조의 공감대와 사회적인 행동양식의 동질성을 확산하고 확립해놓기 전에는 죽어도 죽을 수 없고 살아도 산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그 누구도 반대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누구나가 생각하고 말은 하면서도 막상 행동은 하지 못하고 있으며 더더구나 참여와 조화는 너무나 어렵고 힘들어 멀고 먼 미래에나 가능한 일이라고 핑계를 잡고 있다.
어두운 생각하나 밝은 생각으로 바꾸고 좁은 마음하나 열어서 넓은 마음으로 바꾸자는데, 그 소극적인 생각과 폐쇄적인 마음을 바꾼다는 것이 결국 불가능하다고 하며 오히려 나를 주저앉히려 하고 있다.
배울 만큼 배웠고 가질 만큼 가지고 계신 이 시대의 성직자, 공직자, 교직원. 나름대로는 사회 지도층이라는 분들이 망설이며 주저하는 구경꾼이 되어서 나를 염려해주는 노파지심으로 오히려 시대적 상황을 지연시키려고 하신다.
‘집에 불이나면 주인은 불 속에라도 뛰어드는 법이지만 구경꾼들은 팔짱을 끼고 구경만 하다가 불이 꺼지면 사라진다. 하지만 주인은 끝까지 남아서 타고 남은 재를 뒤지며 혹시나 남아있을 지 모르는 것들을 찾는 법이다. 눈물을 참고 이를 악물며 불 탄 자리를 깨끗이 치워서 새집을 짓는다.........’ 하시던 말씀이 있다. 아마도 나와 같은 시절에 강원도 공무원 교육원에서 교육을 받았던 동기들은 모두가 이 말씀을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다. 무엇이 주인정신이고 누가 구경꾼에 불과한 것인가?
‘하늘의 뜻에는 그 시작이 없으니 누가 처음이라고 따지지 말며 사람 된 길에는 그 끝이 없으니 감히 끝이라고 싸우지 말라!’ 하심이 참 하늘의 뜻이요 새 사람 된 길이다. 참 역사의 참 진실이요 새 문화의 새 정의이다. 이해하자고 들면 이해 못할 것이 없고 따지려 들면 문제 아닌 것이 없는 게 세상사의 이치이다.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무식함이 문제이지 반드시 알아야 할 기본상식을, 지켜야 할 근본의 본성과 본분을, 양심에 따라 말하고 행하는 일이 더 이상은 미친 짓이 돼서는 안 된다.
한겨레의 본성을 되찾아 군자의 나라로써 그 본분을 행하자는 일을 방해하거나 벌금을 물리고 잡아가두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더는 속이지 말고 훔치지 말며 싸우지 말고 죽이지 말자!
화목한 분위기를 깨지 말고 밝고 큰 이미지를 더럽히지 말자! 보채지 말고 넘겨짚지 않으며 강요 하지 말고 따지지 말자! 다만 밝은 생각으로 우리들의 창의력을 깨우고 존중하며 큰마음으로 서로의 의견과 개성을 존중하는 포용력을 갖추고 이 땅에 태어남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하자!
대답 없는 하늘이지만 그 하늘의 뜻을 따라서 벗어나지 말며 받아주지 않는 안타깝고 답답한 세상이지만 그 세상을 위한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 널리 도울 수 있는 사람 된 길에서 절대로 어긋나지 않으려는 노력과 연구를 무시하고 미워하지 말자.
이제 나는 그 약속 그대로 나라를 구하고 겨레를 살릴 수 있는 원리와 원칙을 완성하였기에 다시 돌아가려고 한다.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것이며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죽을 때 까지 놓을 수 없는 ‘천손군자의 사명’이다. 죽어서 백골이 진토가 된다 하여도 끝나지 않을 역사의 명령이며 천심의 바람이요 민심의 원함이다.
촛불집회 현장에서 수많은 나라의 어머니와 어린이들에게 약속한 깨지지 않는 평화와 꺾을 수 없는 희망에 대한 굳은 약속이다. 대자연의 섭리요 사람 된 도리이며 사물의 이치이다. ‘천인지(天人地) 대삼합(大三合)의 대의명분’이며 강원도 평창읍 하리 단위농협 옆에 문을 연 한식당 ‘암행어사 출두야! 대삼합’의 간판이다. 그 곳의 어머니들에게 목숨 걸고 지켜달라고 당부한 간판이다.
결코 길지 않은 4반세기, 25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좀 더 앞당길 수도 있었겠지만 맨 주먹 맨 발의 투쟁은 쉽게 그 일을 허락하지 않았고 세상의 벽은 두텁고 높았다. 지금도 나는 고독과 고난에 맞서 싸우고 있는 천둥벌거숭이요 천덕꾸러기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나는 간다.
1995년 그 때는 세상의 모든 벽을 깨부수려고 했었지만 우리 아이들과 어머니들의 부탁대로 벽을 넘어뜨려 절망과 죽음의 강을 건너는 훌륭한 다리로 삼을 것이다. 쥐 잡자고 독을 깨는 오류를 범하지 않을 것이며 벼룩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모순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보다 더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나라를 구하고 겨레를 살리리라.
간다! 끝까지! 나의 길을 향해서........ 홍익인간의 원리와 이화세계의 원칙대로. 태백의 정기와 고구려의 기상!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강원도의 힘으로........
민주와 원주, 파천황과 치악의 길을 따라서. 조국의 영광과 민족의 명예를 위해.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희망을 위해.
강원도와 대한민국 모든 공직자들의 명예회복과 존재의 이유를 밝히기 위해. 세상의 모든 성직자 교직원들의 자성과 대각을 통한 환골탈태를 위해.
2011년엔 강원도지사를 지나 2012년엔 대한민국 대통령을 거쳐 죽어서도 살아계신 사부님의 준명대로 ‘제 1 대 지구촌 촌장’이 되는 그 날 까지........
~2011. 01. 30. 원주 치악산 신시궁에서 '한겨레지킴이' 평천 백창기⊙ 존명 |
출처: COREA 대인본부 원문보기 글쓴이: 환인의 후예
첫댓글 백 선생님의 말씀 잘 보았습니다. tv에서 몇 번 본적인는데요 솔직히 그때는 좀 유별난 사람 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선생님의 글을 보니 선생님의 학문적 역량과 배움을 조금이나마 가늠 할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오늘을 사는 젊은 이로써 이글을 읽고 나서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오늘 따라 술이 많이 생각 나는 군요
.........!! 지구촌 촌장은 좋은데 한국의 대통령은 하지 말았으면! 개나리 들의 등살때문에 나라 망치는 개독들이 너무 많아서 ....
주인 정신을 찾아야겠습니다. 출마하시면 꼭 뽑아드릴께요....
지구촌촌장이라 어디서 들어본말인것같은데요...좋은 글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