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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대접 심판 1
요한계시록 16:1-7
1 <진노의 일곱 대접> 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
2 첫째 천사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나더라
3 둘째 천사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 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
4 셋째 천사가 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으매 피가 되더라
5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이르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6 그들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그들에게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하더라
7 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하더라
계 16:1-7 / [진노의 대접] 나는 또 큰 음성이 성소에서 일곱 천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제 각기 나가서 하나님의 진노가 담겨 있는 일곱 대접을 땅위에 쏟으라.' 2) 첫째 천사가 성소에서 나와 대접에 든 것을 땅 위에 쏟았습니다. 그러자 짐승의 낙인을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한 자들에게 무섭고 독한 종기가 생겨났습니다. 3) 둘째 천사가 대접에 든 것을 바다에 쏟았습니다. 그러자 바닷물이 죽은 사람의 피같이 되어 바다에 사는 모든 생물이 죽어 버렸습니다. 4) 셋째 천사가 대접에 든 것을 강과 샘에 쏟았습니다. 그러자 강물과 샘물이 피로 변해 버렸습니다. 5) 나는 물을 주관하는 이 천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던 거룩하신 분이시여, 주께서 내린 이 심판은 정당하십니다. 6) 저들은 주님의 성도들과 예언자들을 죽여 이 땅에 피를 흘리게 했습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그들이 성도와 예언자들이 흘린 피를 마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7) 또 제단에서 한 천사가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 하나님의 심판은 정당하고 참되십니다.‘
일곱 대접 심판은 제 일곱째 나팔의 내용입니다. 이 때에 재림과 심판과 구원에 관한 하나님이 비밀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집니다(10:7).
첫 번째 대접의 독한 종기 재앙(1-2) 셋째 화가 예고된 이후(11:14) 드디어 일곱 천사들에 의한 일곱 대접재앙이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독종은 애굽의 열 가지 재앙 중에서 여섯 번째 재앙(출 9:9-10)에 해당하며, 이는 예고된 마지막 재앙인 동시에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이기도 합니다. 첫째 천사가 그 대접을 쏟을 때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이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우상은 땅에서 올라온 거짓 선지자가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을 위하여 만든 것입니다(13:14-15).
두 번째 대접의 피 바다 재앙(3) 두 번째 재앙은 바다가 피로 변하고 모든 생물들이 죽음을 당하였습니다(8:8). 첫 번째 재앙이 육지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두 번째 재앙은 바다에서 일어난 것으로 바다의 모든 생물이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 재앙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당시 애굽에 내린 첫 재앙(출 7:17-21)과 둘째 나팔 재앙(8:8-9)을 연상케 합니다. 애굽에 내린 첫 번째 재앙에서는 나일 강물이 피로 변하여, 물고기가 죽고 악취가 나며 사람이 그 물을 마시지 못하였다고 했습니다(출 7:20-21). 그런데 둘째 나팔 재앙 때에도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로 변하고 생물의 삼분의 일이 죽었습니다. 둘째 대접 재앙은 지엽적인 것이 아니라 바다 전체의 모든 생물이 죽은 것입니다.
세 번째 대접의 핏물 재앙(4-7) 세 번째 재앙은 강과 물 근원이 피가 되므로 모든 사람이 물을 마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애굽에 내린 열 재앙 중에서 첫 재앙이 나일강물이 피로 변해 물고기가 죽고 사람이 그 물을 마실 수가 없고(출 7:20-21), 셋째 나팔은 물 삼분의 일을 쑥이 되게 하였으나(8:11) 이제는 모든 물이 피가 되게 한 것입니다. 목마름은 굶주림보다 더 무서운 재앙이지만, 셋째 대접 재앙을 쏟은 천사는 이 무서운 심판을 진행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그 심판의 당위성을 찬양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반대하는 불신앙의 세상 사람들이 성도와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기 때문에 그들도 피를 마시게 하는 것이 정의의 심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모든 사람들이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 전에 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한 아이가 구겨진 공책 종이를 조심스레 펴서 비행기를 접었습니다. 친구들은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습니다. “새 종이로 접어야 멀리 날지, 그런 건 금방 떨어질걸?” 하지만 아이는 대꾸하지 않고 그저 바람이 불기를 기다렸습니다. 잠시 뒤, 바람이 불자 종이비행기는 휙— 하며 하늘로 솟구쳤고, 누구보다 멀리 날아갔습니다. 구겨졌던 자국은 오히려 날개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모양은 반듯하지 않았지만 꺾이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의 손에 쥐어졌던 시간만큼 그 비행기는 더 높이, 더 단단히 나아갔습니다. 상처 입은 재료도, 진심을 품으면 멋진 비행을 할 수 있습니다.
호크마 주석
====16:1
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 - 성전에서 나는 큰 음성은 사 66:6과 유사하다. 이 '큰 음성'에 대해 혹자는 3인칭으로 언급된 것을 이유로 일종의 천둥이라고 주장하나(Farrer) 하나님의 음성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Morris, Ladd, Mounce). 왜냐하면 15:8에서 일곱 천사의 재앙이 마치기까지 아무도 성전에 들어갈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16:2
첫째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매 악하고 독한 헌데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나더라 - '헌 데'에 해당하는 헬라어 '헬코스'(* )는 출 9:8-11에 나오는 여섯번째 재앙인 '독종'이나 욥의 몸에 난 악창(욥 2:7)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첫번째 대접 재앙은 모세를 통해 애굽에 내려간 여섯번째 재앙과 같은 종류로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았던 애굽 사람들에게 독종이 발생했던 것과 같이 짐승의 표를 받고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도 이런 재앙이 임하게 될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재앙은 이미 욥이 고백한 바와 같이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을 가져다 준다(욥 2:7, 8, 13).
=====16:3
둘째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 - 바다를 피로 변하게 하는 두번째 재앙은 애굽의 하수가 피로 변해 하수의 고기들이 죽고 물에서 악취가 나는 재앙과 유사하며 둘째 나팔 재앙(출 7:20, 21)과도 유사하다(8:8, 9). 그러나 둘째 나팔의 재앙은 바다 피조물 가운데 삼분의 일만 당하는 제한적인 것인 반면에 둘째 대접 재앙은 바다 가운데 거하는 모든 생물에게 미치는 것이다. 바다가 죽은 자의 피와 같이 응고되고 썩어서 악취가 진동하는 상태로 변하게 되면 그 가운데 어떠한 생물도 살 수 없게 된다.
=====16:4
셋째가 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으매 피가 되더라 - 둘째 대접 재앙은 강과 물 근원에 떨어진다. 이 재앙은 셋째 나팔 재앙과 병행을 이룬다(8:10, 11). 또한 이것은 모세를 통해 나일 강과 애굽의 모든 물의 근원을 피로 변화 시켰던 첫째 재앙과도 유사하다(출 7:17-21;시 78:44). 물은 인간의 생존과 직결된다. 이러한 물의 근원과 강을 피로 변하게 하는 셋째 재앙은 인간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것임을 시사한다(Johnson).
=====16:5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가로되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 '물을 차지한 천사'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유대인들이 모든 자연적인 힘 즉 바람, 해, 비, 물 등에 그것을 다스리는 천사가 있다고 생각한 것을 근거로(에녹 1서 66:2) 물을 주관하는 천사라고 해석한다(7:1, Ladd). (2) 혹자는 앞절에 언급된 대접을 쏟는 천사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Lenski). 두 가지 견해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는 어렵다. 한편 천사는 하나님의 심판이 공의로우심을 선포한다.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은 1:4과 병행된다. 이 호칭은 영원히 변함이 없으며 감정닿은 것에 의해서 좌우되는 분이 아니심을 시사한다. 또한 '거룩하신 이'에서 '거룩'은 본절과 15:4에서만 나타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완전하셔서 죄가 없으실 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대한 주권을 소유하고 계심을 시사한다(Morris, Mounce)
=====16:6
저희가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저희로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하더라 - 본절은 하나님께서 악인들에게 내리신 물이 피가 되게 하는 심판(4, 5절)이 의로운 이유이다. 이것은 사 49:26을 반영한다. 여기서 '마시게 하신'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도카스 페인'(* )은 완료형으로 '마시도록 주어진'이란 의미이다. 이 완료형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초래된 결과가 한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임을 시사한다(Mounce). 하나님은 대적자들이 자신의 백성을 괴롭히고 핍박하여 순교의 피를 흘리게 한 대가로 저희들의 피를 흘리게 하는 엄중한 심판을 행하신다.
=====16:7
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하더라 - 제단의 말하는 음성은 하나님의 심판 행위가 정당함을 다시한번 확언한다. 여기서 '제단'은 핍박을 받아 순교당한 영혼의 기도(6:9, 10)와 성도들의 기도와 연관되어 있다(8:3-5). 이 사실은 하나님의 심판이 핍박받는 성도들이나 순교한 자들의 신원에 부응하는 응답임을 시사한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단순한 분노에 의한 것이 아니라 타당성과 정당성을 지닌 것이다(Ladd).
대접을 땅에 쏟는 재앙
계 16장 1~7절 / 김철한목사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재앙의 심판 소리가 요한에게 들려왔다. 이는 세상에 대한 최종적 재앙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임을 말하는 것이다. 일곱 나팔 재앙에서 일곱 번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재앙 대신 구원을 받은 노래(계11:15)를 먼저 보여주었던 해설이 계15:8까지 계속되고 계16:1 본문에서 드디어 대접 재앙이 쏟아진다. 일곱 나팔 환상의 재앙 규모보다 일곱 대접 환상의 피해 규모는 극적이고 더 증가되고 있다. 즉 일곱 나팔 재앙에서는 땅(계8:7), 바다(계8:8~9), 강물(계8:9~11), 해와 달과 별들(계8:12)의 삼분의 일이 훼손된다. 그런데 일곱 대접 재앙으로 땅(계16:2), 바다(계16:3), 강과 물의 근원(계16:4)이 모두 재앙을 입는다.
그런데 여기서 일곱 나팔 재앙과 일곱 대접 재앙의 초점을 말한다면 일곱 나팔 재앙 시리즈는 신실하지 못한 자들을 향한 재앙이며 그들이 돌아서는 회개에 초점을 맞추는데 있다. 그러나 일곱 대접 재앙 시리즈는 다르다. 이어지는 재앙이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짐승과 그를 따르는 자들을 심판하는데 초점이 있다. 이것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니 혼돈을 한다. 그러므로 일곱 대접 재앙은 대상이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에게 향한 것이 아니다. 일곱 대접 재앙의 심판의 대상이 짐승의 보좌와 그의 나라에 임하는 것이다. 그 정점의 하이라이트는 바벨론이 심판을 받아 멸망하는 것이고 그 무너지는 도성 바벨론의 멸망 이야기가 요한계시록 17장과 18장이다. 그것이 요한계시록 16장 자체의 증언이다.
또 일곱 대접 재앙의 이야기가 출애굽기 7~10장에 나오는 10가지 재앙과 매우 유사하다. 우리는 출애굽의 재앙 이야기를 안다. 출애굽 재앙의 특징은 무엇인가? 출애굽 재앙의 특징은 첫째, 애굽인에게만 재앙이 내렸고 애굽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내리지 않았다. 요한계시록의 나팔 재앙, 대접 재앙의 이야기는 애굽에만 재앙이 내리지 않고 애굽을 넘어 온 세상의 1/3을 향한 재앙이고 온 세상 전체를 향한 재앙으로 확대되는 이야기로 애굽을 뛰어넘는 심판으로 설명되지만 출애굽 재앙의 모습으로 심판을 예고한 것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심판 속에서 보여주는 것이다. 즉 출애굽 재앙이 하나님의 백성과 애굽인들을 구별하여 임한 것처럼 재앙 시리즈를 통해 실현되는 하나님의 심판도 하나님의 백성과 사단을 따르는 추종자들을 구분하여 임함으로써 성도들을 해방하고 승리의 노래, 구원의 노래를 부르게 하는 것이 재앙의 실제 목적이라는 것이다.
출애굽 재앙의 특징은 둘째, 과거 히브리 민족의 이야기이지만 오늘 우리의 시대에 거울이 되어주는 이야기이다. 출애굽기는 구원과 해방, 자유의 책으로 마지막 때도 우리를 건져주실 묵시의 책과도 같은 것이다. 요한계시록에서 보여지는 재앙의 시리즈 속에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향하신 목적이 있다는 분명한 출애굽기적 메시지가 있는 것이다. 이것을 거울로 삼고 결론부터 언급한다면 세 종류의 인, 나팔, 대접의 재앙 시리즈는 하나님의 심판이 완전히 심판할 자를 향하여 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접 재앙은 사단과 짐승을 따르는 자에게 임하는 재앙인 것이다. 이제 분명해졌다.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은 재앙에서 제외된다. 그러므로 신자는 하나님을 향한 충절에 대한 믿음과 인내로 서야 한다는 것이다. 배교하지도 않고 아무렇게나 짐승에게 경배하지도 말고 신앙의 사람으로 서야 한다는 것이다. 견딜 이유, 말씀을 지킬 이유, 그리스도인으로 인내해야 할 이유가 분명한 것이다.
그러면, 새로운 눈으로 천사가 대접을 쏟을 때 일어나는 재앙을 보자.
오늘은 일곱 대접을 쏟는 재앙을 다 볼 수 없다. 먼저 첫째 천사의 대접 재앙을 보자.
첫째 천사의 대접 재앙 (계16:2)
계16:2 “그 대접을 땅에 쏟으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나더라.”고 하였다.
우리는 요한계시록 16장에서 “쏟는다”는 단어를 계속 보게 된다. “쏟으라”가 1번, “쏟으매”가 6번, “쏟으니”가 1번 나온다. 이는 “쏟아붓다”의 헬라어 ?κχ?ω은 전문적인 종교적 언어가 아니지만 신에게 바치는 헌주를 쏟아붓는다는 제의적 의미로 쓰였다. 그래서 대접이 쏟아붓는 포도주와 관련이 있다. 대접에 담긴 것이 쏟아부어진다는 것은 환전히 부어지는 것, 거기에 남긴다거나 적당히가 없는 것이다. 대접 재앙은 이런 의미로 언제나 무서운 심판의 그림이다.
렘1:13에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라는 표현은 무엇인가? 렘1: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주민들에게 부어지리라.” 쏟아부어지는 그림이다. 렘7:20 “보라 나의 진노와 분노를 이 곳과 사람과 짐승과 들나무와 땅의 소산에 부으리니 불 같이 살라지고 꺼지지 아니하리라.” 여기서도 부어진다는 것이 강력한 심판, 아주 무서운 심판을 나타낸다. 렘10:25에도 “주를 알지 못하는 이방 사람들과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아니하는 족속들에게 주의 분노를 부으소서.”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붓는다는 것이 곧 심판이다.
그 첫째 심판의 재앙의 대상은 이미 설명해 드린대로 사단에게 속한 이들이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이다. 짐승의 표를 받아야 했던 이유는 짐승의 표 없이는 매매를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또 우상에게 경배를 했던 이유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짐승의 권세를 받은 둘째 짐승, 거짓 선지자가 미혹했기 때문이다. 먹고 살아야 하는 경제가 걸려 있으니 어찌할꼬. 배부름을 위해 영혼을 파는 것이다. 배부름을 위해 거룩을 파는 것이다. 그리고 그럴듯한 권세와 능력을 보이는 이적으로 미혹하니 이마에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 흰 옷 입은 보혈의 능력을 모르는 사람은 거절도 못하고 사단의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심판의 날에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난 것이다.
우리는 미혹을 당하고 유혹에 속아서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해서는 안된다. 이미 계14:11에서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고 하였다. 이 경고는 잊어서는 안된다. 당장 매매를 하게 되는 편리함, 그 손쉬움에 속아버리면 잠깐의 편리함이 밤낮 쉼을 얻지 못하는 곤고함으로 되고 만다. 계16:2에서 그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난다는 것, 그 아픔도 제대로 호소하지 못하는 종기다. 어떤 피부병, 암덩어리인지는 모르나 다섯 번째 천사가 대접을 쏟는 계16:10~11에 가서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아픈 것과 종기로 말미암아 하늘의 하나님을 비방하고...”라고 한다. 이것에 대해 Kraft라는 주석학자는 “첫 번째 재앙을 통해 오른손이나 이마에 새긴 짐승의 표가 악하고 독한 종기로 바뀐 것이다.”라고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이마에, 오른손에 표를 받는 일이 대대적으로 캠페인 되면 조심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마에, 손목에 붙이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짐승의 표를 받으면 그것이 심판의 날에 악성 피부병, 독한 종기로 바뀔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재앙은 출9:9~11에 나오는 여섯 번째 재앙을 연상시킨다. 모세가 화덕의 재 두 움큼을 바로의 목전에서 날릴 때 그 재가 땅의 사람과 짐승에게 붙어서 악성 종기가 생기는 재앙과도 비슷하다. 허나 이 종기의 재앙이 온 세상에 미치나 신앙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이 말씀을 믿으라.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이나 신앙을 지키면 대접을 쏟는 첫째 재앙이 무관하다. 허나 우상 숭배자들은 종기 재앙을 피할 수 없다.
본래 성경이 보여주는 원리는 같다. 창세기 7~8장에 기록된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도 심판을 조롱하고 믿지 않던 자들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멸망의 도구가 되었고 심판의 경고를 듣고 믿은 노아에게는 구원의 도구가 되었다. 창세기 19장에 나오는 아브라함 시대에 소돔성 심판도 심판을 조롱하고 믿지 않는 자들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유황 불비가 멸망의 도구가 되었다. 여호수아 시대에 여호수아 6장에 나오는 여리고 도성의 무너짐도 심판의 날을 알지 못하고 있던 자들에게는 최후의 순간이 되었다. 하지만 약속의 붉은 줄을 신뢰하고 믿고 기다린 자에게는 구원의 순간이 되었다.
우리는 믿고 살아야 한다는 중요한 요청 앞에 서 있다. 시대가 악해지고 몹쓸 질병이 나돌고 수십 만이 죽어너어지는 쓰나미의 비참함, 기후 변화와 인간의 무정, 무자비한 모습들, 마지막 때의 징조들을 접할 때마다 깨어 있어 말씀대로 살려는 영적 각성과 태도를 가져야 한다. 오늘 회개하고 오늘 돌이키자. 대접 재앙이 시작되면 회개라는 것은 없다. 완악한 그들에겐 오직 하나님 비방만이 있다.
‘하나님이 이럴 수 있는가? 하나님이 무슨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인가?’
그러나 이렇게 되어야 한다. 신실한 성도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이기에 대접 재앙은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이라 믿기에 장래의 소망으로 믿고 견딜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 날이 오면 다 뒤바뀐다. 득세하는 악은 처벌되고 신앙 때문에 고통을 받고 어려움을 겪은 자들에겐 구원의 손을 보게 된다.
나는 요사이 「굶주림보다 더 큰 목마름」이란 책을 보았다. 북한 노동당 간부가 예수를 믿게 된 과정과 그와 함께 예수를 믿고 산 사람들이 처형을 당하고 순교한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성경책을 구해오다 죽은 성도, 전도를 받고 전도자가 되어 살해당한 전용석, 옥중에서도 신앙을 지킨 이 김길남이란 이름으로 기록해 간 그 간증은 북한 성도들의 믿음과 기도가 얼마나 신실한 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그들의 순교를 각오한 신앙 때문에 남한 교회가 복을 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 자꾸만 든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개끗하고 정결하게 순전한 믿음을 가져야 하겠다. 자신을 말씀과 보혈로 단장하고 그저 감사와 감사로 무장하고 주를 믿고 따르는 자는 나서야 하겠다.
일곱 대접 재앙의 날! 그것은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두려움의 날이다. 그러나 믿음으로 사는 자들에게는 소망과 승리와 약속을 보는 날이다.
일곱 대접 재앙의 실행(1)
계 16장 1~9절 / 서명성목사
최근 20년 동안 지구촌을 위협한 바이러스들을 보면 조류독감 바이러스, AIDS, 사스, 나일 바이러스, COVID-19 등이 있습니다. 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무서운 바이러스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평균 잡아 일 년에 하나씩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새롭게 등장한다고 합니다. 특히 지난 3년간 전 세계를 휩쓴 COVID-19으로 인해 우리의 삶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정도로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동남아 일대를 휩쓸고 일본을 강타한 쓰나미로 인해 많은 인명피해가 있었습니다. 급격한 기후 변화로 인해 지구촌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덥고 건조한 기후로 인해 캐나다에 산불이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엄청난 자연의 힘 앞에 과학 기술이 발전한 21세기에도 인간은 속수무책입니다.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강타한 지진으로 인하여 수십만 명의 이재민이 생겼습니다.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 크고 작은 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작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1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많은 사상자를 내고 있습니다. 지구촌이 하루도 잠잠할 날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초림 때부터 재림 때까지 성경에서 말세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말세의 징조들이 지금도 분명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이 세상은 종말을 고합니다. 계시록은 그 종말의 상황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16장 전체가 일곱 대접 재앙을 다루고 있습니다. 마지막 재앙인 만큼 그 재앙의 강도나 범위가 이제껏 내려진 재앙과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입니다. 8:13에서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로다”라고 하였는데 16장에 언급되고 있는 재앙이 바로 셋째 화에 해당합니다. 본문은 일곱 대접 재앙의 전반부입니다. 1-9절에서 일곱 대접 재앙의 처음 네 개가 소개되며 나머지 대접 재앙은 10-21절에 나옵니다. 네 개의 나팔 재앙으로 인해 땅, 바다, 강과 샘, 하늘에 심판이 가해집니다. 나팔 재앙의 처음 네 개의 경우와 대접 재앙의 처음 네 개의 경우 심판의 대상이 같습니다. 하지만 전자가 자연계에 대한 심판으로 머물렀던 것에 반해 대접 재앙은 자연계뿐 아니라 인간도 함께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이런 인간의 고통이 짐승을 경배하고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에 대한 심판으로 구체화됩니다. 인 재앙과 나팔 재앙이 여섯째와 일곱째 사이에 삽입부분을 두고 있는 데 비해 대접 재앙은 삽입부분 없이 연속적으로 쏟아집니다. 이것은 대접 재앙이 마지막 재앙으로서 철저하고도 강력하게 임할 것을 암시합니다. 대접 재앙의 범위는 이제껏 내려진 재앙들과 달리 보편적인 동시에 최종적입니다. 보편적 재앙이란 ‘모든 생물이 죽더라’(16:3),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더라’(16:20)는 말씀처럼 재앙의 범위가 세상 전체로 확대된다는 의미입니다. 아울러 이 재앙은 인류의 최후를 장식하는 재앙이 됩니다. 그때가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그런 상황을 앞두고 있는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지고 나아가야 할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담은 일곱 대접(1절)
일곱 천사가 성전에서 나온 것처럼 ‘큰 음성’도 성전에서 나옵니다. 그 음성의 내용은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쏟으라’가 현재형입니다. 계속해서 쏟으라는 명령입니다. 15:1절과 7절에 이어 여기에서 또다시 일곱 대접이 하나님의 진노임이 재차 강조됩니다. 이로써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재앙이 마무리됩니다. 일곱 천사에게 일곱 대접을 쏟으라고 말하는 음성이 성전에서 나온다는 것은 일곱 대접 재앙이 하나님의 뜻임을 나타냅니다. 일곱 대접 재앙은 천지창조 이래 지금까지 참고, 참고 쌓여온 하나님의 분노이며, 이 분노가 예수님을 믿지 않고 남은 사람들이 마시게 되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들려온 음성은 ‘땅’에 쏟으라고 했는데, 첫째 대접은 땅에 쏟아졌지만, 둘째 대접은 바다에, 셋째 대접은 강과 물 근원에 쏟아지는 등, 첫째 대접 외에 여섯 대접은 모두 각기 다른 곳에 쏟아졌습니다. 이는 1절에서 큰 음성이 말한 ‘땅’이 실제 땅이라기보다는 ‘하늘’과 대척점에 있는 곳, 용과 짐승이 통치하는 세계,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계를 가리키는 표현임을 알려 줍니다.
첫째 대접 재앙(2절)
첫째 천사가 대접을 ‘땅’에 쏟습니다. 여기서 ‘땅’은 1절의 ‘땅’과 다른 의미입니다. 이어지는 바다, 강과 샘, 하늘과 짝을 이루는 지역적 의미의 땅입니다. 대접을 땅에 쏟자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가 발생합니다. ‘악하고 독한 종기’는 하나님의 언약을 어길 때 생기는 저주의 일부로, 신명기 28:35절의 ‘고치지 못할 심한 종기’와 같습니다. 첫째 대접 재앙은 사람과 짐승에게 악성 종기가 생긴 애굽의 여섯 번째 재앙을 연상시킵니다. 출애굽 당시 모세가 화덕의 재를 하늘로 날렸을 때 악성 종기가 생겼습니다(출 9:10-11). 일곱 인 재앙과 일곱 나팔 재앙과는 달리, 일곱 대접 재앙은 처음부터 그 성격이 악인들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진노임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들이요, 땅에 집착하다가 우상의 노예로 전락한 자들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인 치심을 받은 자들이 이 재앙을 당하지 않습니다.
둘째 대접 재앙(3절)
둘째 천사가 대접을 바다에 쏟습니다. 그러자 바다가 죽은 사람의 피처럼 되고 바다에 있는 모든 생물이 죽습니다. 둘째 대접 재앙은 나일강이 피로 변하고 물고기가 죽은 애굽의 첫째 재앙을 연상시킵니다(출 7:20-21). 따라서 첫 번째 대접 재앙과 두 번째 대접 재앙은 모두 출애굽 사건의 주제를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재앙은 출애굽 때의 재앙보다 강도가 셉니다. 가령 출애굽기 7:20-21에는 강이 피로 변해 거기 살던 물고기들이 죽었다고 하지만, 3절은 바다가 피처럼 되었고 ‘모든 생물’이 죽었다고 합니다. 둘째 나팔 재앙은 바다 피조물 가운데 삼분의 일만 당하는 제한적인 것인 반면에 둘째 대접 재앙은 바다 가운데 거하는 모든 생물에게 미칩니다. 바다가 죽은 자의 피와 같이 응고되고 썩어서 악취가 진동하는 상태로 변하게 되면 그 가운데 어떠한 생물도 살 수 없게 됩니다. 성경에서 바다는 마귀가 활동하는 장소입니다. 패배한 마귀가 크게 화가 나서 땅으로 내려갔으므로 땅과 바다는 화를 당하게 되었습니다(12:12). 패배한 용은 분노해 성도들과 싸우려고 바닷가 모래 위에 서 있었습니다(12:17). 또한 용에게 권세를 받고 하나님을 모독하며 성도들을 박해하는 짐승은 바다에서 나왔습니다(13:1). 첫째 대접 재앙과 달리, 둘째 대접 재앙의 경우에는 그 대상이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곱 대접이 하나님의 진노를 담고 있는 것을 고려할 때, 일곱 대접 재앙이 모두 악인들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심판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셋째 대접 재앙(4-7절)
셋째 천사가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자, 물이 피가 됩니다. 둘째 대접 재앙과 셋째 대접 재앙은 성격이 비슷합니다. 둘째 대접으로 인해 바다가 피같이 변했는데, 셋째 대접으로 인해 강과 물 근원이 피가 됩니다. 둘째 대접 재앙과 마찬가지로, 셋째 대접 재앙도 나일강이 피로 변하고 물고기가 죽은 애굽의 첫 번째 재앙을 연상시킵니다. 셋째 대접 재앙에서는 천사가 부연 설명을 합니다. 이 천사는 물을 대상으로 한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는 자입니다. 7:1에서는 땅 사방의 바람을 통제하는 천사들이 등장했고, 14:18에서는 불을 다스리는 천사가 등장했습니다. 셋째 나팔 재앙은 강과 물 근원의 1/3이 쑥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재앙이 보다 강화되었고, 전면적입니다. 쑥이 아니라 강과 물의 근원이 피가 된 것입니다. 물은 인간의 생존과 직결됩니다. 강과 물 근원을 피로 변하게 하는 셋째 재앙은 인간에게 치명적임을 시사합니다. 물을 차지한 천사는 심판이 시행된 것으로 인해 하나님을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거룩하신 이’로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1:4의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1:4)에서 ‘장차 오실 이’를 생략하고 ‘거룩하신 이’를 삽입한 것입니다. 변화를 준 까닭은 이 문맥이 하나님의 심판을 논하므로 ‘거룩하신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이 더 적절하기 때문입니다. 6절은 5절의 이유를 설명하는 ‘왜냐하면’이라는 접속사로 시작합니다. 곧 그들을 심판하시는 이유는 성도들과 선지자들이 피를 흘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린 자에게 피를 마시도록 하시는 공의로우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발생한 두 대접 재앙은 물이 피로 변하는 것이었는데 다시 ‘피’가 중심 ‘주제’로 등장하는 점이 의미심장합니다. 진노의 대접이 바다, 강 그리고 물의 근원에 쏟아져 물을 피로 변하는 심판이 발생하게 된 것은, 짐승과 이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이 성도들을 핍박하여 피를 흘리게 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심판은 교회 공동체를 핍박하는 세상 권력에 대한 심판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7절에서 요한은 제단이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유사한 내용이 16:1에 기록되었습니다. 곧 일곱 대접을 가진 천사가 성전에서 나온 음성을 듣고 심판을 위해 파송 받는 내용입니다. 각각 성전과 제단이 말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제단이 성전의 가장 핵심적 부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심화됩니다. 제단에서 들려온 첫 말은 ‘그러하다’입니다. 이는 5-6절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에 대한 긍정적 화답입니다. 이어 하나님을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5절에서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거룩하신 이’에 대응하는 호칭입니다.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심판은 의로우며 완벽합니다.
넷째 대접 재앙(8-9절)
네 번째 천사가 대접을 해에 쏟자 해가 맹렬하게 열을 내어 사람들을 태웁니다. 악인들이 받는 이 재앙은 7:16에서 성도들에게 약속된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라는 구절과 대조적입니다. 넷째 대접 재앙과 다섯째 대접 재앙은 정반대의 성격을 띱니다. 다섯째 대접 재앙이 어둠인데, 넷째 대접 재앙은 사람을 태워 버리는 불같은 열기입니다. 넷째 대접 재앙에 비할 만한 애굽의 재앙은 없어 보입니다. 이 재앙의 대상은 짐승의 표를 받고 그것을 경배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초자연적 재앙을 목격했어도 마음을 완강하게 한 애굽왕 바로처럼 도리어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합니다. ‘비방했다’는 말은 13장에서 짐승이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한 장면에 사용한 단어와 같습니다(13:6).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것은 주로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도전할 때 보였던 행동입니다. 이런 행동은 짐승이 벌이는 사역의 본질로 이미 묘사되었습니다(13:6). 따라서 이 행동을 하는 자들은 스스로 자신이 짐승에게 속한 자임을 드러낸 셈입니다. 그들은 회개하지 않으며 주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자세
- 우리 마음의 우상을 버려야 합니다
출애굽 제1세대는 애굽에서 수많은 우상을 보며 살아왔습니다. 그들은 시내산 위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성막에 관해 설명하시는 동안, 시내산 아래에서 아론에게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고 요구했습니다. 그 결과 금송아지가 만들어졌고 그 앞에서 번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고 일어나서 뛰노는 전형적인 우상 종교의 방탕한 행동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그 명령한 길에서 속히 떠났다고 하시며 금송아지를 숭배하며 부패한 것에 분노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목이 뻣뻣한 백성이라’규정하셨고, 그들은 진멸당할 위기에 놓였습니다(출 32:9-10). 모세의 부재 상황에서 그들의 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이 임하는 곳은 불의와 탐욕에 물든 땅이요, 자비와 샬롬이 무너진 땅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탐욕을 부리며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차지하려고 다투지만, 하나님은 그 땅을 향해 진노하십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은 우리의 욕심과 야망을 채우는 ‘욕망의 땅’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거룩한 땅’입니까?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부정하고 땅에 집착하면 우상의 노예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니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영광을 우상에게 돌립니다. 우리의 영혼을 상하게 하고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우상을 멀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힘써 알아야 하고, 그분의 말씀대로 행해야 합니다(호 4:6; 요 8:32).
- 회개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과 재앙은 고통을 통해 죄를 깨닫고 회개하도록 이끄시는 사랑의 손길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일곱 대접 재앙을 받는 자들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면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애굽 왕 바로와 같이 완악한 마음을 가지고 끝까지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하나님은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며 끝까지 거역하면, 그들을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셔서 큰 심판을 당하게 하십니다(롬 1:28). 아직도 세상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믿지 않거나, 세상을 멸망시키는 하나님이 어떻게 선한 하나님이냐며 비방하는 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는 인간의 죄악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기회를 충분히 주셨기에 돌이키지 않는 죄인이 영원한 심판을 당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에게 회개라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자들을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회개하기를 주저하거나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 심판의 날이 올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지금 회개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조차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질병과 재해가 빈번히 찾아드는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무뎌진 가슴을 돌이켜 회개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 때문에 주어진 시간임을 인정하고 우리 모두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에 뜨겁게 반응해야 합니다.
- 믿음으로 주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민수기 21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호르 산에서 출발해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했습니다. 먼 길로 돌아가자 이스라엘 백성의 원망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음식인 만나를 하찮은 것으로 치부해 버릴 만큼 비뚤어진 생각과 배은망덕한 언행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불뱀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그들 가운데 죽은 자가 많이 생겼습니다. 그제야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며 모세에게 중보기도를 부탁했습니다. 하나님은 놋뱀을 만들어 매달게 하시고, 놋뱀을 바라보는 자는 살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것은 놋뱀에 어떤 마술적인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할 때 치료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놋뱀이 장대 위에 달려 있어도 바라보지 않은 자는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 여부가 구원과 치유의 방편입니다. 놋뱀은 자신을 죄인과 동일시하셔서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믿음으로 십자가를 바라보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믿는 자만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습니다. 어린 양을 따르는 이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새롭게 된 자들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자들입니다(겔 36:26). 마음이 부드러운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겸비한 마음을 품습니다(왕하 22:19). 심판에 앞서 구원의 은혜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 놀라운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 앞에서 겸비한 마음으로 충성해야 합니다. 또한 마지막 때의 심판을 믿는 성도는 이 엄중한 심판의 메시지를 세상에 열심히 전해야 합니다.
나가면서
어린 양을 따르는 성도들이 당하는 박해와 고난이 분명히 있습니다. 반대로 짐승을 따르는 자들이 받는 종말론적 재앙도 분명히 있습니다. 전자는 짐승의 분노를 보여 주고, 후자는 하나님과 어린 양의 진노를 보여 줍니다. 계시록은 두 종류의 고난을 제시하면서 독자들에게 어느 길을 가야할지 선택할 것을 요구합니다. 믿음을 지키다가 짐승의 박해를 받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종말론적 재앙과 영원한 벌인 불 못의 고통을 피할 것입니다. 그러나 짐승의 박해를 피하려고 타협하거나 어린 양을 배신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담긴 종말론적 재앙을 당하고 불 못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는 짐승이 주는 환난도 피하고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도 피할 수 있다고 하며 타협을 권합니다. 그러나 참 선지자는 죽도록 충성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그대로 전합니다(2:10).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행한 대로 갚으시는 심판주이십니다. 대접 재앙은 선지자와 성도들의 피를 흘린 악인들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심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불꽃같은 눈으로(1:14) 우리의 은밀한 것까지 심판하실 것입니다(롬 2:16). 감춰진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마 10:26). 악한 세력의 위협에 굴하지 말고, 주의 의로운 판단을 신뢰하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중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해를 통해 불에 태워지는 재앙을 받고도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회개하기는커녕 심판의 권세가 있으신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언제까지 목이 곧은 모습을 보이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재앙의 징조들이 나타나고 이전보다 더 분명하게 경고하시는데도 애써 외면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이미 선고되었고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의 우상을 버려야 합니다. 회개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주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짐승에 속한 사람들은 대접 재앙 앞에서도 끝까지 회개하지 않다가 결국 무서운 심판을 고스란히 당합니다. 성도는 영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통찰력을 가져야 합니다. 일곱 재앙 심판은 그 목적이 회개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도래한 종말에 대한 표적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심판의 메시지를 묵상하면서 종말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가져야 합니다.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기도와 말씀 가운데 깨어있어야 합니다. 맡기신 일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주님의 복음을 우리의 이웃에게 부지런히 전해야 합니다. 주님 앞에 서는 날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받는 하나님의 귀한 백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온 인류에게 내리는 마지막 재앙
스테반황목사 / 계 16:1-21
요한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및 인류 역사의 종말과 관련한 환상들을 볼 때 그 환상들은 마치 하나의 큰 사건을 여러 각도에서 보는 것과 같습니다. 마치 우리가 결혼식을 하면 그 결혼식 사건과 관련해서 주례, 특송, 반지 교환, 만찬, 신혼 여행 등, 하나 하나 세부 행사를 사진으로 찍는 것처럼, 요한 계시록 역시 주의 재림 및 인류 역사의 끝과 관련한 여러 사건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사복음서가 서로 다른 각도에서 보고 기록한 것처럼 계시록에서 요한이 본 환상들은 주의 재림과 역사 끝에 관한 사건을 여러 다른 각도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혼식때 찍은 사진들이 서로 다른 장면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 사진들 전부가 가장 중요한 결혼 언약식과 관련된 것처럼, 요한계시록 역시 다양한 환상들을 보여주지만, 그 환상들 전부가 주의 재림 및 역사의 끝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나팔인 일곱번째 나팔은 계시록 11장 15절에서 이미 불었지만 일곱번째 나팔 사건과 관련한 다양한 사건들을 여러 장을 걸쳐 다양한 환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결혼 사진을 보면 다양한 장소에게 다양한 모습들이 있지만 신랑과 신부가 늘 보입니다. 이는 그들이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계시록 11장 15절에서 마지막 나팔이 분 이후 여러 환상들이 보이지만 공통되는 것이 몇가지 뚜렷하게 보입니다. 그 중 하나는 14만 4천이 구원을 받아 유리 바다를 지난 후에 만국의 왕들이 적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여 하나로 뭉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16장을 보면, 그들은 아마겟돈이라는 곳으로 다 모입니다. 그리고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와 함께 하나로 뭉친 온 세상 나라들은 승부를 가르기 위해 주 예수 그리스도와 담판의 전쟁을 치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대지진과 함께 큰 우박을 맞으며 멸망합니다. 그리고 이 땅과 하늘은 큰 불로 씻기면서 근본적으로 바뀌어 새하늘과 새땅이 됩니다.
“일곱째 천사가 그 대접을 공중에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이르되 되었다 하시니 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가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얼마나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온 이래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더라. 또 무게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우박의 재앙 때문에 하나님을 비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계 16:17-21).
이처럼 인류 역사의 끝에는 주의 재림과 함께 주의 백성은 먼저 구원을 받고 그 후 하나님의 심판이 이 땅에 거하는 모든 불신자들에게 임하는 것을 뚜렷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 후 인류 역사는 끝이 나고 마귀 및 불신의 모든 세력은 영원한 불못에 들어가게 됩니다.
오늘 계시록 16장은 인류의 역사가 마치고 새하늘과 새땅이 어떻게 예비되는지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다음 번에 이어지는 계시록 17장과 18장은 오늘 발생한 사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큰 성 바벨론을 중심으로 하는 환상들을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성경의 경고대로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분명하게 발생할 것입니다. 따라서 조금도 거짓이 없으시며 언약하신 바를 반드시 실행하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마음속에 받으시고 깊게 새기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지난 번에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의 마지막 재앙은 일곱 대접 재앙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일곱 대접 재앙이 발생하기 이전에 마지막 나팔과 함께 주의 재림이 나타나고 택함을 받은 자들이 이 땅에서 구원을 받아 부활하여 유리 바다를 건너는 사건이 ‘먼저’ 발생합니다. 그 후 이 땅에 거하는 온 인류에게 일곱 대접 재앙이 내리게 됩니다. 즉, 하나님의 마지막 재앙인 일곱 대접 재앙이 이 땅에 부어질 때는 이미 14만 4천은 주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부활하여 공중에서 혼인 잔치에 참여한 상태입니다. 그들은 주의 재림과 함께 유리 바다를 지나 안전한 곳에 이르렀으며 유리 바다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찬양하며 이 땅을 내려다 보는 상태에 있습니다. 따라서 일곱 대접 심판은 인류 역사 끝에 이 땅에 살고 있는 불신자들에게만 임하는 재앙이 될 것입니다. 그 이전에 죽은 불신자들은 죽음의 영역인 음부라고 불리는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류 역사 끝에 이 땅에 사는 불신자들은 2절처럼, 짐승의 표를 받고 또한 멸망의 가증한 우상에게 경배한 자들입니다. 노아의 홍수 때에 살아있던 불신자들이 대홍수로 멸망받은 것처럼 인류 역사 끝에 사는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마지막 재앙을 받아 불과 대지진으로 멸망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의 온 인류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마지막 대재앙으로 멸망 받아 그 영혼이 지옥으로 들어갔다가 하나님의 백보좌 앞에서 수치의 부활체를 입고 일어선 후 영원한 심판을 받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불못에 던지울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영원토록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수천년 동안 경고해 왔던 주 하나님의 마지막 재앙이 진행됩니다.
첫째 천사가 대접을 땅에 쏟았습니다. 그러자 짐승의 표를 받고 그 우상에게 경배한 자들의 몸에 악하고 독한 종기가 생겼습니다. 여기서 종기는 헬라어 ‘헬코스’인데 출애굽기 9장 8-12절에 나오는 여섯번째 재앙인 ‘악성 종기’와 같은 종류의 것입니다(출 9:8-12).
애굽의 바로 황제 및 애굽 사람들에게 발생한 사건과 그들의 반응은 마치 마지막 불신자들 모두에게 발생하는 사건 및 그들의 반응을 미리 보여주는 듯 합니다.
지금 이 악성 종기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 우상에게 경배한 자들에게 생겨났다고 하니 이 땅에 거하는 모든 거민들에게 다 생긴 것입니다. 이는 계시록 13장 8절에서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고 진술하기 때문입니다.
이 악창은 욥에게도 생겨났던 독종으로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지독한 아픔과 고통을 주는 더러운 병입니다. 온 몸의 살이 썩어 들어가는 지독한 냄새나는 피부병으로서 이 땅의 거민들은 악창이 생겨날 때 지옥을 겪는 것과 다름 없는 고통을 맛볼 것입니다. 또한 온 세상이 사람의 살이 썩는 시체 냄새로 가득할 것입니다. 이처럼 온 인류가 독종에 걸려 신음하게 될 것이지만 11절을 보니 그들은 회개는커녕 도리어 하나님을 향하여 저주하며 욕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아픈 것과 종기로 말미암아 하늘의 하나님을 비방하고 그들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더라”(계 16:10-11).
이제 둘째 천사가 대접을 바다에 쏟았습니다. 그러자 바다가 죽은 사람의 피같이 되어 바다에 사는 모든 생물이 죽었습니다.
바다를 피로 변하게 하는 재앙은 모세의 10가지 재앙 중에 첫번째 재앙과 유사합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때는 애굽에 제한되어 있었지만, 둘째 대접 재앙은 온 세상의 바다에 이 재앙이 임한다는 사실입니다(출 7:19-21).
모세의 첫째 재앙으로 나일 강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 악취가 나고 애굽 온 땅이 피로 덮인 것처럼 둘째 대접 재앙에 의해서는 전 세계의 바다가 피로 변할 것이며 바다 가운데 거하는 모든 생물이 죽을 것이며 온 세계가 물고기 썩는 악취로 진동할 것입니다. 또한 모든 해변마다 썩은 물고기들이 파도에 밀려 산더미 같이 쌓일 것입니다. 이에 온 세상은 바다의 흉측함과 함께 난리가 날 것입니다.
셋째 천사가 대접을 강과 샘에 쏟았습니다. 그러자 강물과 샘물도 피로 변했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물은 인간의 생존과 직결됩니다. 그런데 강물과 샘물이 피로 변하였으니 온 세상에 미치는 결과가 어떠하겠습니까? 수도를 틀어도 피가 나올 것이며 목욕탕에 가도 피가 나올 것이고 어디를 가도 온 세계가 피로 범벅되어 있을 것입니다. 피 비린내가 온 세상에 가득할 것입니다. 또한 온 세상에 마실 물과 깨끗한 물이 없어서 모든 사람들이 절규하며 정신없이 뛰어다닐 것입니다. 맑은 물과 마실 물이 없는 세상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사람들을 얼마나 더러울 것이며 또 세상은 얼마나 더럽고 무섭고 끔찍하겠습니까?
지금까지 세번의 대접 재앙이 발생했는데 신기한 것은 전부 피와 관련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독종으로 인해 모든 인간들의 몸에서 피가 나고, 바다가 피가 되고, 모든 물이 피가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끔찍한 피의 재앙이 있습니까?
5절 이하를 보니 물을 관리하는 천사가 그 이유를 말하며 외칩니다.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이르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그들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그들에게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하더라”(계 16:5-6).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주의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린 불신자들로 하여금 온통 피를 마시게 하시는 것은 그들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린 것에 대한 공의로운 심판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귀와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를 따르는 대적자들이 주의 백성을 괴롭히고 박해하면서 순교의 피를 흘리게 하였기 때문에 그들에게 피의 심판을 내리신 것입니다.
이때 성전 제단에서 음성이 들려나옵니다. 그 음성은 억울하게 죽임 당한 주의 백성들의 음성입니다.
“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하더라”(7절).
즉, 천사들은 물론이고 목베임을 당한 주의 백성들이 볼 때에도 하나님의 심판 행위는 공의롭고 정당한 것입니다. 이에 주의 심판의 의로움과 참됨을 다시 한번 확언하는 것입니다. 사실 불신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행위는 박해 받은 성도들 및 순교자들이 하늘 제단 앞에서 수천년 동안 그들의 억울함을 신원하여 달라는 기도의 응답이기도 합니다(참조, 계 8:3-5)(계 6:9-11).
그 ‘어느 때’가 일곱 대전의 첫째, 둘째, 셋째 대접이 부어지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불신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완전한 공의를 이루는 정당한 법적인 행위이며 만물이 볼 때 영원히 찬양할 합당한 행위인 것입니다. 즉, 천사들이 볼 때에도 주께서 피로 하시는 심판은 완전하게 공의로운 행위이고, 주의 백성들이 볼 때에도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놀라운 기도 응답인 것입니다.
이제 넷째 천사가 대접을 해를 향해 쏟아 붓자, 사람을 태워 버릴 만큼 뜨거운 열기가 쏟아 내렸습니다.
넷째 대접 재앙은 해가 너무나 뜨거워져서 사람들이 온 몸을 불에 데는 것처럼 데는 것입니다. 뜨거운 물에 데었을 때 그 고통이 얼마나 큽니까? 불에 직접 데면 그 고통은 또 어떠합니까? 이 땅의 모든 거민들은 뜨거운 태양에 온 몸을 데면서 영원한 불못에 던져지는 것이 무엇인지 실제로 미리 맛볼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땅의 불신자들은 그 뜨거운 불길에 타면서도 회개는커녕 하나님께 더 욕을 하고 저주하며 하나님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과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을 향해 욕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더욱 서로 하나가 되어 하나님과 싸우려고 대들었습니다. 그들은 이 모든 재앙을 내리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알면서도, 회개는커녕 지옥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하나님께 도전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현대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향해 얼마나 저주하며 조롱하는지 아십니까? 타락한 인간들이 그들의 언어와 행동으로 하나님의 공의와 오래참음을 끝없이 조롱하며 저주하는 모습들은 가관입니다. 록 뮤직 같은 타락한 음악들, 세상의 음란한 연극들과 영화들, 교만한 토크 쇼들, 세상 철학 및 이방 종교가 그리스도 예수님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며 하나님께 정면으로 도전하는 모습들은 지금 지구 땅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하물며 역사 끝에서 온 인류가 짐승을 중심으로 뭉친 가운데 태양 열에 의해 불에 데는 고통을 당하게 되면 그러한 고통을 주시는 하나님을 향해 얼마나 끝없이 저주하며 욕을 해댈 것입니까? 이미 그들의 영혼은 마귀에게 완전하게 팔렸기 때문에 될 때로 되라는 식으로 하나님께 맞먹자고 덤벼들 것입니다.
한편, 주의 백성들은 이미 부활을 하여 유리 바다를 건넜으니 태양에 데는 일이 없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라”(계 7:15-16)(출 10:21-23).
저는 각 대접 재앙 사이의 시간 간격이 얼마 정도 걸리는지 알 수 없습니다. 며칠 동안 하나의 재앙이 진행된 후 곧바로 그 다음 재앙이 진행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무튼 다섯째 대접 재앙은 온 세상에 완전한 어둠이 임하는 재앙입니다. 이 정도이면 사람들이 이 땅에서 살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닙니다. 온 몸은 악종으로 피가 나고 바다도 피고 모든 물도 피고, 온 세상이 썩은 악취로 가득하고, 더욱이 태양 열로 온 몸이 데고, 그리고 이제는 온 세상이 완벽하게 어두워졌으니 인간들이 견뎌낼 수 있는 한계를 훨씬 넘은 상태입니다.
따라서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고통 때문에 혀를 깨물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기들이 당하는 고통과 아픔을 자신들의 죗값으로 여기고 회개하는 대신에 그 모든 재앙을 하나님 탓으로 돌리며 저주하였습니다. 그들은 더 무섭고 악한 행위로 달려갔습니다. 이에 온 세상은 지옥처럼 될 것입니다.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자포자기 마음을 지닌 온 인류가 서로 어떤 만행을 저지르겠습니까? 온 인류는 서로 물고 뜯으며 괴로움을 더하면서도 그들 마음속은 주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끝없는 분노와 저주로 가득할 것입니다.
이제 여섯째 천사가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 강에 쏟아 부었습니다. 그러자 강물이 다 마르고 동방의 왕들이 건너올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지금 여섯째 대접 사건은 동방의 왕들과 서방의 왕들이 전쟁으로 하려는 그러한 그림이 아닙니다. 도리어 주 하나님을 향해 분노와 저주로 가득한 온 인류가 서로 하나가 되는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섯째 대접을 통해 유브라데스 강을 여셨습니다.
우리는 지난 번, 다섯 번째 나팔 사건을 다룰 때 유브라데 강에 대해 연구하였습니다. 유브라데 강에는 무서운 악령들이 갇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섯째 나팔이 불 때 유브라데 큰 강에 매여 있던 네 악령이 풀려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열방 나라의 왕들에게 들어가 마지막 세계 전쟁을 이끄는 주동자들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인류 삼분의 일이 큰 강 유브라데 전쟁으로 죽었습니다.
오늘 여섯째 대접을 부었을 때도 더러운 세 영이 풀려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귀신의 영인데 각각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귀신의 세 영이 하는 일은 온 천하 왕들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14절을 보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이 모였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섯째 대접 재앙은 유브라데 강이 열리는 것과 함께 온 세상 왕들이 하나가 되고 또한 모든 악령들이 다 풀려나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를 중심으로 완전하게 하나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약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보이는 세력 및 보이지 않는 세력이 다 하나가 되는 사건이 여섯째 대접과 함께 발생합니다.
또한 중요한 사실은 사탄의 왕국인 큰 성 바벨론은 유브라데 큰 강 곁에 있습니다. 성경은 큰 성 바벨론은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설명합니다(계 18:2-3). 이처럼 큰 강 유브라데는 죄의 근원과 연결되며 각종 귀신들의 처소인 큰 성 바벨론이 그 강을 끼고 거대하고 사치스럽게 서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브라데 강물이 마르고 동방의 왕들이 그 길로 건너온다는 것은 어둠의 세력이 귀신들이건 인간들이건 모두 완벽하게 하나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주 하나님과 그분의 어린양을 향해 한결같은 분노와 저주로 가득한 상태에 있는 존재들입니다. 즉, 거듭나지 못한 온 인류와 모든 마귀들이 유브라데 강을 통해 서로 하나가 되는 모습이 여섯째 대접 재앙 사건입니다.
요한이 환상 가운데 보니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온 악한 영은 개구리같이 생겼습니다. 그 악한 영들은 귀신들의 영이었습니다. 그들은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 영들은 모든 인간들에게 들어갔습니다. 따라서 모든 불신자들은 더러운 마귀들린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접신한 무당들처럼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더우기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를 보며 유리 바다 저편에 서 있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백성을 보았습니다. 온 세계의 왕들이 다 같이 히브리 말로 아마겟돈이라는 곳에 다 집결하였습니다. 온 세상의 왕들이 한결같이 더러운 귀신에 들려 그곳으로 집결하였습니다. 온 인류가 거대하게 다 같이 악령으로 취하였습니다. 이제 그들은 공중에 계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백성을 공격할 태세를 취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공격할 준비를 하였습니다. 이 전쟁이 바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입니다. 아마겟돈 전쟁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얼마나 가소롭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과 싸우려는 이 피조물들은 얼마나 교만하며 어리석습니까? 전쟁의 결과는 이미 자명한 것입니다. 계시록은 여호와 하나님의 큰 날에 있을 전쟁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환상으로 보여줍니다.
“세 영이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계 16:16)
“그들이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계 17:13-14).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와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불리더라”(계 19:19-21)
“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 그들이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고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계 20:7-10).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 굴레에까지 닿았고 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계 14:18-20).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계 14:9-11)
이제 마지막으로 일곱째 천사가 마지막 대접, 즉 일곱째 대접을 공중에 쏟아 붓자, 성전 보좌에서부터 큰 음성이 울려 나왔습니다. “다 끝났다.” 그리고는 천둥과 번개가 치며, 큰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 지진은 역사가 생긴 이래 가장 큰 지진이었습니다.
그 큰 지진 때문에 큰 성 바벨론이 세 조각이 나고, 온 나라의 도시들이 전부 무너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성 바벨론의 죄악을 잊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잔을 들이키게 하셨습니다.
그 후 그 큰 대지진과 함께 모든 섬들이 사라지고, 산들도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하늘로부터는 무게가 약 34킬로 그램 정도가 되는 큰 우박들이 땅에 쏟아져 내렸습니다. 사람들은 큰 우박 때문에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을 당하였습니다. 그들은 죽으면서도 하나님을 향해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너무나 끔찍한 재앙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이 땅의 모든 불신자들은 다 멸망하였고, 그들의 어리석음과 수치는 그대로 다 드러났습니다. 그들은 가장 큰 저주인 지옥으로 다 떨어져버렸습니다. 그리고 역사는 끝이 났습니다.
베드로후서는 일곱 대접 재앙 이후의 현재의 땅과 하늘이 어떻게 되는지 알려줍니다(벧후 3:6-7, 12-13).
즉, 모든 인류는 이제 불 가운데 지구와 함께 불타오릅니다. 철저하게 탑니다. 한편, 우리 신자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공중에서 혼인 잔치를 치릅니다. 그후 새하늘과 새땅이 마련되면 그곳에 내려와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영원히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간에게 무슨 힘이 있습니까? 그러나 교만하고 어리석은 인간들은 얼마나 착각하며 사는지 모릅니다. 권력을 좀 잡으면 하나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행세합니다. 북한의 김정은을 보십시오. 그가 뭘 알겠습니까? 그러나 얼마나 교만하며 얼마나 건방집니까? 그러나 그가 무슨 힘이 있습니까? 죽음 앞에서 김일성, 김정일 등 다 무너지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이미 그들은 지옥에 있으며 또한 앞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판결을 받고 영원한 불못에 들어가지 않겠습니까?
세계적으로 큰 돈을 가진 자들을 보십시오. 재벌을 보십시오. 무슨 힘이 있습니까? 고작 세월이 흐르면 병원에 들어가 얇은 호스에 연명하는 것이 인간 아닙니까? 세계적인 인기를 가진 연예인들을 보기 바랍니다. 무슨 힘이 있습니까? 인기가 떨어지면 보잘 것 없는 일반인들과 다를 바 없지 않습니까?
그 누구라도 주께서 뇌 세포 하나 비정상적으로 움직이게 해도 정신병에 드는 것이 우리 인간 아닙니까? 바벨론 제국의 황제였던 느부갓네살 왕이 교만의 극치에 있을 때 주께서 그의 머리를 살짝 치시니 일곱 때를 정신병자가 되어 숲속에서 소처럼 살지 않았습니까?
아무런 힘도 없는 인간들이 그 마음만은 지독하게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을 대항합니다. 주께서 막으시면 쌀 한톨 구할 수 없어 굶어죽을 수 밖에 없는 무능한 인간들이 그 마음만은 어떻게 그토록 마귀를 닮았는지 끝까지 하나님께 대항하며 주먹을 휘두릅니다.
그러나 그래보았자 하나님을 이기지 못합니다. 그리스도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들은 어리석음과 교만 가운데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영원히 멸망할 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바랍니다. 더 늦기 전에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께 돌아오기 바랍니다. 죽음을 이길 수 있다면 하나님 없이 영원히 살아 보십시오. 그러나 죽음을 이길 자신이 없다면 신속하게 하나님께서 보내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붙드시고 멸망의 자리에서 빠져 나오기를 바랍니다.
오늘 계시록 16장에서 요한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음성은 계시록 2장과 3장에서 들은 후 다시 처음으로 주 예수님께 직접 듣는 매우 중요한 음성이었습니다. 그 음성은 마지막 일곱 대접 재앙이 부어지기 직전에 들려왔습니다.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15절).
보라! 대단히 중요한 말씀을 하신다는 뜻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끝마치기 직전에 가장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 말씀은 베드로를 통해 미리 알려주신 계시와도 같습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 3:10).
요한 당시 로마 시대에 실제로 존재하였지만 영적으로 죽은 사데 교회를 향해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 3:4, 18).
그러므로 성도들은 깨어있어야 합니다. 이 땅의 교회들은 깨어 있어야 합니다(살전 5:1-10).
(눅 21:34-36)(눅 12:35-40).
지금도 주 예수께서 성령을 통해 외치십니다(요 3:16-19).
멸망의 대상이 되어 영원한 불못에 떨어지는 것을 피하라고 외치십니다.
(살후 1:7-10).
오늘 이 시간부터라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왕으로 영접하고 그분의 말씀에 따라 철저하게 순종하는 삶을 살기 바랍니다. 당장 그분의 나라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세상 나라가 힘이 세 보이지만 속지 말고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붙들기 바랍니다. 이는 그 나라만이 이 땅에 영원히 서게 될 것이고 다른 모든 세상 나라들은 다 멸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성령의 음성을 들으시며 주의 나라에 들어오십시오. 주의 나라의 영원한 왕이신 다윗의 후손인 만유의 주요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남은 삶을 빛 가운데 깨어 지내며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늘 주 예수님과 교제하며 주 안에서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오늘 말씀은 농담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영원한 진리입니다. 먼 훗날 지옥에 떨어지는 자가 있다면 지금 설교를 기억하며 후회할 것입니다.
‘그때 그 설교를 농담으로 여기지 말 것을… 그토록 목이 터지라고 간절하게 외치던 그 음성을 듣고 마음의 결정을 내릴 것을… 아, 이제는 나의 교만 때문에 이미 늦었구나.’
갑자기 죽음을 지나 기회를 놓치기 전에, 또는 더 늦기 전에 안전한 그리스도의 나라로 들어와 빛 가운데 깨어 지내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당부하며 축원합니다.
일곱 대접 재앙
계 16장 1~21절 / 이상호목사
본문부터 본격적으로 일곱 대접의 재앙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주님께서 일곱 인을 떼시면서 심판의 징조를 보여주셨습니다. 또 일곱 나팔의 재앙을 통하여 회개하고 돌아올 기회를 마지막으로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회개치 않는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은 최종적인 심판을 내리십니다. 바로 이 대접의 재앙이 바로 그것입니다.
2절에 보면 “첫 번째 천사가 대접을 땅에 쏟으매” 즉 하나님의 최종적인 진노가 땅에 임하였습니다. 그것은 땅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거역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접재앙이 땅에 있는 자들 중 하나님을 거역한 자들에 대한 것임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곳은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가 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의 땅을 기경하라고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의 땅을 기경할 때 회복과 은총이 있습니다. 개인이든 가정이든 국가든 땅이 고침을 받으려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겸손히 돌이키면 회복이 있습니다. 구원과 생명과 은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넘치는 땅이 되면 하나님의 은총이 영원히 깃들게 됩니다. 우리 모두의 삶에 그러한 은총이 가득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을 떠나 거역하는 삶에는 결국 진노가 임합니다.
출애굽 때 애굽에게 내리셨던 재앙처럼 마지막 때도 짐승의 표를 받은 자 곧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독한 종기가 생겨나게 됩니다. 우상이란 하나님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뜻합니다. 하나님 보다 내 자아나 물질이나 명예가 하나님보다 우선 일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없어야 합니다.
마음에 있는 우상들을 깨드리고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하며 섬기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크신 은총을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 대신에 헛된 우상을 움켜잡고 있으면 고통을 겪게 됩니다. 매일성경 본문 해설서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이러한 문구가 우리 영혼을 깨우칩니다.
“내가 끝내 버리지 못한 채 움켜쥐고 있는 우상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붙들고 있는 동안 내 영혼은 이미 독한 헌데로 시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어떤 사람은 뻔히 보이는데 그 우상을 못버리고 자기가 지금 망해가는 줄도 모르고 남을 고자질하고 비방한다고 바쁜 한심한 인간들이 있습니다. 정치인들도 그래요. 교인들도 마찬가집니다.
저는 교회 나오고 특별히 새벽기도 하고 중직을 맡은 자일수록 사탄의 도구가 되기 쉽다는 것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자칫 넘어지기 쉽습니다.
성경은 우리 내면의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내 자신의 안일이나 탐욕 등 마음의 우상들을 다 버려야 합니다. 이 새벽에 우리 마음의 우상들을 깨뜨리고 주님 한분만을 진정 사랑하며 주님 한 분만을 믿고 신뢰하는 영적 회복과 충만이 있게 된다면 주님은 우리의 영혼과 삶을 굳건하게, 복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절을 보면 둘째 대접의 재앙이 나옵니다.
그 재앙들은 바다가 피로 변하는 재앙입니다. 두 번째 나팔의 경우엔 바다 피조물 가운데 3분의 1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 두 번째 대접의 재앙은 바다 가운데 거하는 모든 생명체들이 죽어 악취가 진동하는 처참한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바다가 완전히 오염되는 일이 마지막 때에 생겨나게 됩니다.
그리고 4절을 보시면 셋째 대접의 재앙이 나오는데 그것은 강과 물 근원들이 피가 되는 재앙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성도들과 선지자들을 피 흘려 죽게 한 이들로 하여금 그 피를 마시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고 죽인 세력들에 대하여 심판하십니다. 철저하게 파멸에 이르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피 흘린 악들에 대한 심판이기에 참되고 공의로운 심판입니다.
네 번째 대접 재앙은 태양을 통해 내리는 재앙입니다. 해가 갑자기 뜨거워 져서 사람들을 크게 태워버리게 됩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러한 재앙 중에서도 사람들이 자신들의 악한 행실들에 대해 회개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게 됩니다. 마치 바로 왕이 회개하지 않았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강력한 재앙을 내리셔도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비방하며 대적하는 일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영원하고도 두려운 형벌이 결국은 임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고 비참한 일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들을 무고히 대적하는 자들입니다. 사람이 감히 하나님을 대적하겠습니까?
하나님을 대적하면 주님 말씀처럼 결국 산산 조각이 납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한 파멸로 다 날려버리십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재앙을 만나도 회개할 줄 모르기에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영원한 지옥의 불로 떨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을 향한 맹렬한 불의 심판입니다.
히브리서 10:27절에서도 말씀합니다.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결국 다섯째 재앙은 혀를 깨물 정도로 아픈 통증과 종기의 재앙, 여섯째 대접의 재앙은 아마겟돈 전쟁, 그리고 일곱째 대접의 재앙은 공중에 진노의 대접이 쏟아지면서 지진이 일어나고 큰 우박이 떨어지면서 큰 성 바벨론, 즉 세상은 완전히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을 비방함으로 결국 그들은 영원한 불 못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바울의 표현에 의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은 맨발로 가시를 밟는 것과 똑같다고 하였습니다. 인간 죄악의 속성은 창조주이시며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거부하고 대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대적하는 것은 스스로 영원한 형벌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세력들에 대하여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결국 때가 되면 영원한 파멸의 진노를 내리십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16장 15절에서 “보라, 내가 도둑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들은 늘 깨어서 마지막을 잘 준비해야 합니다. 주님의 복음을 널리 전파하면서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서만이 영원한 심판에서 건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주님 오실 그날을 함께 잘 준비하며 오직 주님 위해서 살아가는 삶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요한계시록 16:1-9
찬송가 : 325장 / 백정수 목사
계시록에 나오는 3가지 재앙, “인 재앙, 나팔 재앙 그리고 대접 재앙”은 시간적인 순서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같은 사건을 각기 다른 관점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마치 사복음서처럼 말입니다.
오늘 나오는 재앙들은 출애굽기의 10가지 재앙과 흡사합니다. 첫 번째 대접이 땅에 쏟아져서 악하고 독한 종기가 생기는 재앙은 애굽의 여섯 번째 재앙인 독종입니다. 두 번째 대접이 바다에 쏟아져서 바다가 피가 되고, 세 번째 대접이 강에 쏟아져서 강이 피가 되는 사건은 애굽의 첫 번째 재앙인 물이 피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 대접을 해에 쏟더니 해가 불로 사람들을 태운다고 하는데, 이것은 애굽의 아홉 번째 재앙인 흑암과 흡사합니다.
애굽의 10가지 재앙의 의미는, 악의 세력을 상징하는 애굽을 심판하시고 그의 백성들을 구해내는 구속사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요한계시록의 재앙의 의미는 “하나님의 백성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라도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 반드시 승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의 압제로 힘들어하던 그리스도인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먼저 1-2절을 보겠습니다.
(1-2) 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 첫째 천사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나더라
요한은 “성전”에서 나오는 큰 음성을 듣게 됩니다. 여기서 성전은 예배당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는 장소입니다. 그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났는데, 그 음성의 주인공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자 그 일은 바로 착수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에는 어떠한 지연과 방해도 없는 것입니다.
대접은 그냥 쏟아지지 않습니다. 우발적이 아니라 누군가의 명령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이 땅에 우연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우연을 믿는 사람은, 사람이 세상에 우연으로 태어나서 우연으로 살아다가 우연으로 죽어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세상에 목적이 있어 태어났고, 목적을 이루고 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삶의 태도와 자세가 다른 것입니다.
2절에 독한 종기가 나는 사람들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우상에 경배하는 자들’입니다. 짐승의 표란, 당시 로마황제 숭배를 하거나 로마의 신전에 세금 등 봉납물을 내면, 확인증(표)을 제공했습니다. 그 확인증이 있어야만 상거래 등 원활한 경제활동이 가능했습니다. 신전에는 봉납물 때문에 돈이 항상 모였습니다. 그래서 <경고의 여신>이자, 주피터의 아내인 <주노 모네타>란 여신의 신전에는 <조폐소>가 있기도 했습니다. 이 모네타란 이름에서 ‘돈’이라는 영어 단어인 ‘Money’가 유래된 것입니다. 짐승의 표와 우상에 경배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우상숭배를 했습니다. 그러나 계시록 2:8-9의 서머나 교회의 교인들은 우상숭배 하여 표를 얻는 것보다, 신앙을 지키는 것을 중요시했습니다. 따라서 경제활동에 제약을 받아 가난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아시기에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고 칭찬을 해주셨던 것입니다.
(3-4) 둘째 천사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 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 셋째 천사가 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으매 피가 되더라
3절-4절에, 두 번째 천사가 대접을 바다에 쏟으니, 바다의 물이 피로 변하고, 바다에 거하는 모든 수중 생물들이 모두 죽습니다. 이어서 셋째 천사가 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으니 모두 피가 되었다고 합니다. 계시록에서 바다와 물은 긍정의 의미가 아닌, 악의 무리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애굽의 나일강을 피로 만드신 이유가 당시 애굽인들이 나일강을 신으로 숭배했기 때문에, 그 강을 죽음의 강으로 만들어버리신 것입니다. 그런데 셋째 대접을 단순히 강과 물이 아니라 <강과 물의 근원>에 쏟은 것이 궁금합니다. 이는 과거 애굽 술사들도 강을 피로 만드는 재주를 부렸는데, 이번 재앙은 그 근원에 쏟았기에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저주라는 뜻입니다.
(5-7)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이르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그들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그들에게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하더라 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하더라
참혹한 심판의 상황 속에서 물을 차지한 천사 즉 <물을 주관하는 천사와 제단>이, 하나님의 분노와 심판은 의롭고 합당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배척하고 우상숭배를 했던 이들이 그동안 수많은 성도들과 선지자들을 억압하며 피를 흘리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들이 회개 할 때 까지 오래 인내하셨지만 돌이키지 않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그들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은 당연히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선조들이 <피를 흘렸다는 것>은, 신앙인답게 살아갔기 때문입니다. 신앙인답게 말씀대로 경건하게 살면,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고, 조롱과 억압이 발생합니다.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내 유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유익은 커녕 바보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우리 삶에 이렇게 성도들과 선지자들처럼 <피>가 흐르고 있는지 자문해야 합니다.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유익보다는 세상적인 손해가 더 많습니다. 주행 신호등이 빨간불일 때, 다른 차들은 단속 카메라가 없다며 그냥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출근이나 약속에 지각할 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세상의 질서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초록불이 될 때까지 기다립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고 있으면서 요한계시록의 말씀이 진리라고 믿는다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이 구절을 읽을 때 위로와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피 흘리기까지 삶에서 처절하게 싸우고 있으면, 이 구절들을 접하게 될 때 힘이 나는 것이고 격려와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성경에 나오는 신앙인들만 위인의 자리에 올려놓고 박수만 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100세에 난 아들을 바칠 수 있었을까?’, ‘다윗은 어떻게 어려운 상황에서 그렇게 하나님께 찬양할 수 있었을까?’, ‘바울은 어떻게 그런 고난을 견뎌 냈을까?’ 그들의 신앙과 현재 우리의 신앙이 다르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 스스로 신앙의 한계를 긋고, 거기에만 머물거나 못 따라간다고 규정지으면 안 됩니다. 신앙의 선조들은 우리가 본받아야 하는 것보다, 죄 많은 그들 역시 성숙하게 변화시켜주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손길을 보라고 성경에 기록 된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롬멜 장군은 연전연승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그를 영웅으로 만든 것은 독일 사람들이 아니라 영국군입니다. 영국군이 독일군에게 계속 패하니깐, 영국군들은 자기들의 패배에 핑계를 대기 위해, 적군의 장군을 영웅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롬멜의 훌륭한 전술과 전략 때문에 우리가 졌다’라는 좋은 핑계를 만든 것입니다. 신앙의 피를 흘리며 싸우다 간 우리 신앙의 선조들을, 신앙적 영웅의 자리에 올려놓는 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매일의 삶 속에서 피를 흘리는 복음의 신앙을 써내려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관중석에서 박수만 치지 말고 필드로 나가야 합니다. 아무리 관중석에서 열심히 박수치고 소리 지르고 응원해도 시상식에 오르는 것은 선수입니다. 우리의 신앙에는 세상의 질서와 반대되는 피 흘리는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경건의 삶을 향해, ‘머리, 팔, 다리’를 움직이면 세상은 반드시 우리들의 피를 요구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흘린 피를 하나님께서 세상에게 갚아 주시는 것이 오늘 본문이 말하는 심판인 것입니다.
(8-9) 넷째 천사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며 또 회개하지 아니하고 주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더라
8-9절은 넷째 천사가 대접을 해에 쏟는데, 해가 권세를 받아 사람들을 불로 크게 태우게 됩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태움의 재앙을 당하는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이들은 후회와 회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고, 회개하지 않는 악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악한 무리들이 섬겼던 것은 바로 <내 자신>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죄를 짓는 가장 큰 이유는 <내 자신> 때문입니다. 내 자신의 유익을 위해 돈과 권력에 매이고, 거짓말, 욕심, 폭력, 쾌락 등을 죄를 짓는 것입니다. 내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면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내 자신을 하나님보다 위에 올릴게 됩니다. 그것은 큰 문제입니다. 사단도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위에 올리려다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삼하6:6의 나곤의 타작마당에서 웃사가 죽습니다. 왜냐하면 법궤를 싣고 가는 소가 뛰어서 그 법궤가 떨어질까 봐, 그 법궤를 잡았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 나오는 “붙들었더니”라는 원어에는 <내 것이다>라는 강한 소유의 개념이 들어가 있습니다. 웃사는 마치 그 법궤가 자기의 소유인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도, 내 아래 두고자 하는 잘못된 욕망이 있었기에 치신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그 곳 이름을 <베레스 웃사>라고 짓게 되는데, 그 이유는 베레스는 ‘쳐내다’라는 뜻입니다. 잘못된 소유욕을 가지고 있는 웃사를 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이외에, 우리의 유익을 위해 우리가 우상으로 섬기고 좇고 있는 것들을 모두 쳐버리십니다. 그래서 내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는 삶이 아닌, 주님의 유익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이 원하는 일이며,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답게 세상과 구별되어 살아가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기 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도 하지만, 책망하실 때도 있습니다. 복을 주실 때 감사로 고백하고, 책망하실 때도 주님 앞에 부복하여 회개하고, 주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내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 살아가기 위해 죄를 지었거나, 하나님보다 더 위해 내 자신을 올려놓았던 지난 날의 모습을 회개 합니다. 이제는 신앙의 선조들을 따라 세상의 흐름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흐름을 따라 사는 바른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세상의 모든 일에는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경험한 적을 나눠봅시다.
2. 신앙적으로 “피를 흘린다는 것”은 말씀을 지키다가, 손해를 보거나 억압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노력과 그런 경험이 있다면 나눠봅시다.
3. 내 자신을 위한 유익을 위해 지었던 죄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4. 바른 신앙을 위해 내 안에 내려놓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대접 재앙의 시작
계시록 16:1-7 / 최야곱 목사
◆ 진노의 일곱 대접
(1) 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
마침내 대접 재앙이다. 이 재앙으로 모든 재앙은 끝이 난다.
그러나 성도들은 이 대접 재앙을 겪지 않을 것이다. 혹 투명한 유리바다를 통해서 세상의 형벌을 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직접적으로 겪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성도들을 극심하게 핍박했던 그들이 이제 되돌려 받을 시간이다.
◆ 첫째 대접 재앙 - 악하고 독한 종기
(2) 첫째 천사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나더라
첫째 대접을 쏟자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우상에게 경배한 사람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났다. 세상 사람 전부가 아니라 이 사람들에게만 났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크다. 세상을 향한 심판이 누구 때문인지를 명확하게 하심이다.
666 칩 이야기를 좋아하는 자들은 칩을 박은 이마나 오른손에 부작용이 생겨서 발생한 종기라고 말하기도 한다. 백신이 666이라고 말하는 자들은 백신 부작용이라고 예상하기도 한다. 이게 무엇이든 지금 시점에서는 실체를 알 수 없지만, 이 종기는 분명히 666표를 받는 자들에게 난다. 그러나 지레 겁먹고 함부로 666표를 운운하지 말라. 오늘날 666표로 미혹하는 자들이 많다.
◆ 둘째 대접 재앙 - 바다가 피가 됨
(3) 둘째 천사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 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
둘째 대접 재앙은 바다가 피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둘째 나팔 재앙과 비슷하다. 다만 둘째 나팔 재앙에서는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었고, 바다의 생물 삼분의 일이 죽었지만(계8:8-9), 대접 재앙에서는 삼분의 일이 아니라 모두 피가 되었고, 모두 죽는다.
인간을 제외한 피조물들은 죄를 지은 적이 없건만,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서 모든 피조물이 몰살된다는 것이 안타깝다. 이것은 노아의 홍수 때도 그랬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고대하고 있다(롬 8:21).
◆ 셋째 대접 재앙 - 강과 샘이 피가 됨
(4) 셋째 천사가 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솟으매 피가 되더라
셋째 대접은 셋째 나팔 재앙과 비슷하다.
다만 셋째 나팔에서는 물들의 삼분의 일이 쓰게 되었다고 했지만(계8:10-11), 이번에는 삼분의 일이 아니라 전부다. 그리고 쓰게 되는 것이 아니라 피가 된다.
우리는 이것이 어떤 현상일지 모른다.
환경오염으로 인한 홍조 현상일지 아니면 전쟁 때문에 흘린 핏물일지 아니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어떤 다른 현상일지... 그러나 나팔 재앙을 통해서 우리는 모의고사를 치르게 될 것이다.
계시록을 읽으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혹독하게 세상을 다루실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시각에서 계시록을 보면 안 된다. 훗날 세상으로부터 말도 못 한 핍박과 미움을 받게 되면 계시록이 얼마나 성도들에게 위로인지 알게 될 것이다.
초대교회 시절에 사자 밥이 되면서도 찬양하면서 죽었던 성도들부터 근대에 와서는 공산주의자에게 붙잡혀서 산채로 불도저에 깔려 죽은 성도, 자식들을 목매달아 죽이는 자들 앞에서도 자식들을 신앙으로 위로하며 꿋꿋하게 신앙을 지킨 성도, 이들은 결코 자기들을 핍박하고 죽인 자들을 미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용서를 빌었던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내버려 두실 마음이 없으시다.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하신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보다 덜 너그러워서가 아니다. 우리보다 훨씬 더 공의로우시고, 우리보다 훨씬 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비는 한이 없지만, 공의가 없는 자비는 맘씨 좋은 노인네의 무기력과 다를 바가 없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임을 잊지 말라. 그의 진노 앞에 제대로 설 자가 없다. 사람들이 정말 무서워해야 할 대상은 세상 권력이나 마귀가 아니라, 온 우주를 한 손에 쥐어서 부숴버릴 수 있는 하나님이시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죽였을 때, 비록 하나님의 아들은 이들을 용서해주실 것을 구했지만,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그들을 하나님은 용서치 않으셨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37년 후에 그들과 그들의 자식은 로마군의 포위로 굶주리다가 결국은 수백만 명이 살육당하였고 나라를 잃고 전 세계로 흩어졌다.
선지자 예레미야의 경고를 무시하고, 오히려 조롱하고 때리고 핍박했던 그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나중에는 바벨론의 포위로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하자 너무 굶주려서 피부가 검게 변하고(애 5:10), 아이들까지 삶아 먹는 지경이 되었다(애 4:10).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칼로 죽임을 당하고 남은 자들은 포로로 끌려갔다.
예레미야는 자기를 핍박했던 백성이 이렇게 되자 속이 시원하고 기뻐했을까? 아니다. 예레미야는 이런 비참한 결과를 울면서 가슴 아파했다(애 1:1).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천사는 이 모든 결과에 대해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그들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그들에게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5,6)
이것이 우리가 본받아야 할 신앙의 태도다.
우리는 이러한 공의 앞에서 함부로 하나님보다 더 너그러운 척하면 안 된다. 다만 이렇게 말해야 한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7) 아멘, 아멘.
요한계시록 16:1-7
1이 구절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을 나타내며, 일곱 대접을 통한 심판은 지구상의 모든 인류를 대상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큰 음성'은 하나님의 권위와 명령을 상징하며, 천사들은 하나님의 도구로서 이 진노를 행하게 됩니다. 이러한 묘사는 종말론적 사건으로, 하나님의 정의가 이루어지는 과정과 인간의 죄악에 대한 궁극적인 심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일곱 대접의 재앙은 인류에게 회개와 구원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강력하게 환기시키고자 하는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2이 구절은 하나님의 진노의 대접이 땅에 쏟아지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첫째 천사가 대접을 쏟자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가 발생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의 한 형태로서, 우상 숭배와 하나님을 배반한 자들에 대한 정의로운 보복입니다. 여기서 "짐승"은 세속적이고 신앙과 반대되는 체제를 상징하며, 그 표를 받는다는 것은 그러한 체제와 가치관에 동조하고 순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종기는 단순한 육체적인 질병만이 아니라 영적 타락과 함께 따라오는 고통을 상징할 수도 있습니다.
3이 구절은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지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둘째 천사가 대접을 바다에 쏟자, 바다는 죽은 자의 피처럼 변하게 되고 바다에 있는 모든 생물이 죽게 됩니다. 이는 재앙과 심판이 자연계와 인간 모두에게 광범위하게 미치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종말론적인 경고를 통해 악에 대한 하나님의 궁극적 승리와 공의를 강조하며 회개와 경계를 요구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4셋째 천사가 대접을 강과 물의 근원에 쏟아 피가 된다는 내용은 하나님의 심판이 자연 세계와 인간에게 닥치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는 출애굽 때 하나님께서 이집트(현재의 이집트) 왕 바로와 그의 백성들에게 내리신 재앙 중 하나인 나일강이 피로 변한 사건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이러한 재앙은 인간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정결하지 못한 세상에 대해 하시는 경고를 의미하며, 궁극적으로는 회개와 구원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5이 구절에서 물을 차지한 천사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존재와 공의로운 심판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거룩하신 이'는 하나님의 영원성과 불변성을 강조하며, 하나님의 심판이 공의롭다는 것을 선포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항상 계셨고 앞으로도 항상 존재하실 뿐만 아니라, 그분의 모든 행위가 언제나 옳고 정의로우심을 나타냅니다. 요한계시록의 이 말씀은 하나님의 완전한 의로움을 확인시키며, 그분의 역사가 우리의 신뢰와 경배를 받을 만함을 일깨워줍니다.
6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악을 행한 자들에게 공의로 심판하시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성도들과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자들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그들이 흘린 피를 마시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정의로운 심판이며, 그들의 죄에 대한 정당한 보응을 상징합니다. 요한계시록 전체적으로 보면, 이러한 심판은 악에 대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승리와 의로운 통치의 확립을 예고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7제단에서 나오는 소리는 하나님께서 공의로운 심판자로서의 본질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능과 주권을 의미하며, 그분께서 행하시는 모든 심판이 옳고 의로움, 즉 진리와 공의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선포합니다. 이런 선언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의로우신 성품과 그분의 최종적인 승리에 대한 확신을 줍니다. 요한계시록 16장은 마지막 일곱 재앙의 심판에 대한 내용으로, 이 구절은 그러한 맥락 속에서 하나님의 공평하고 정당한 심판에 대한 찬양과 경외를 나타냅니다.
진노의 일곱 대접
계 16장 / 조정의목사(유평교회)
대한민국은 1997년 12월 30일 이후로 20년 이상 사형집행이 이루어지지 않아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되었다. ‘사형’은 가장 극심한 형벌이라서 ‘극형’이라고도 한다. 수형자의 목숨을 끊어 존재를 영구적으로 말살하는 형벌이다. 갱생 및 교화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회개할 기회조차 주지않는 최종 심판이다.
교회 시대가 휴거로 막을 내린 후 약 7년동안, 이 땅에 쏟아질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는 본문에 나오는 일곱 대접 심판 이전까지 회개의 기회와 함께 주어졌다. 일곱 인의 심판과 일곱 나팔의 심판은 끔찍하고 파괴적이지만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노하기를 더디 하심이 반영된 심판이었다. 공의와 함께 은혜를 베푸셨다는 말이다. 하지만 진노의 일곱 대접은 다르다. 끝까지 반역자가 되기를 고집하는 악인에게 결국 하나님은 인내를 멈추신다.
일곱 대접 심판은 직전에 쏟아진 일곱 나팔 심판(계 8-11장)과 같은 종류도 있지만, 1) 오직 악인을 표적으로 한다는 점, 2) 최고의 강도라는 점, 3) 최종적 즉 회개의 기회가 박탈되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둘 다 구약 시대 애굽에 쏟으신 하나님의 진노의 가중형이지만, 하나님의 마지막 진노인 일곱 대접 심판은 그중에서도 최고 극형에 해당한다. 이로써 하나님께서 악인을 영구적으로 말살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인내하기를 멈추셨을 때, 죄인에게 선포하신 심판과 의인에게 약속하신 복을 살펴보자.
1. 하나님의 인내심엔 끝이 있다
① 첫째 대접(땅): 악하고 독한 종기(2절; 출 9:8-12)
역겹고 독한 농양(고름)이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른다. 치료 불능이다. 걷든지 앉든지 눕든지 쉼 없는 고통에 몸부림친다. 욥은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서 하루 종일 질그릇으로 자기 몸을 긁으며 고통스러워했고, 친구들이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비참한 모습이 됐다(욥 2:7-13). 언약궤를 가져간 블레셋 도시들.
하나님께서 이 끔찍한 심판을 내리시는 대상은 분명하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2절). 하나님은 땅에 있는 자기 백성은 보호하시고(계 12:14), 오직 반역자의 편에 서는 자들에게만 최종 심판을 내리실 것이다. 이 고통스러운 전염병에서 자유로울 죄인은 없다.
② 둘째 대접(바다): 바다가 피로 변함(3절; 출 7:14-25)
이미 둘째 나팔 심판으로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생물의 삼분의 일이 죽었다(계 8:8-9). 하지만 둘째 대접 심판은 극형이다. 조금도 남겨 두지 않고 바다 전체를 “죽은 자의 피 같이 되”게 하신다. 유동적이지 않고 응결되어 굳는다. 응고되어 썩는다는 말이다. 생명이 살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모든 바다 생물이 죽고, 지구의 70%를 차지하는 대양의 파괴로 사람들은 매매에 회복할 수 없는 큰 타격을 입어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다.
③ 셋째 대접(강과 물 근원): 수원이 피로 변함(4-7절)
마찬가지로 세 번째 나팔 심판 때 하나님은 강들과 여러 물 샘의 삼분의 일을 오염시켜 많은 사람을 죽이셨다(계 8:10-11). 하지만 세 번째 대접 심판은 최고 강도이다. 모든 강과 물 근원이 피로 변한다. 식수를 얻기 위해 깊이 땅을 파도 소용없다. 마실 수 없는 독한 피가 흘러나올 뿐이다. 식수 부족으로 전 세계적인 대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다.
5-7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이렇게 무서운 극형을 왜 내리시는지 두 음성을 통해 들을 수 있다. 먼저, 물을 차지한 천사(바람, 7:1, 불, 14:18)는 일곱 천사에게 일곱 대접을 쏟으라고 큰 음성으로 명령하신 하나님(1절)을 가리켜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거룩하신 이”라고 높여 불렀다(5절). 그리고 그분의 심판이 의롭다고 그분이 하신 일을 인정하고 찬양했다. 왜? “그들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그들에게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기 때문이다(6절).
하나님은 임의로 심판하지 않으신다. 오직 적그리스도의 백성만 심판하신다. 왜 이런 방식과 강도로 심판하시는가? 그들이 하나님 백성을 박해하여 피를 봤다면, 그들도 피를 마시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시 78:44). 곧바로 제단이 “그러하다” 화답하며 말했다(7절). 제단은 순교 당한 성도의 부르짖는 기도가 하나님께 바쳐진 곳이다(계 6:9; 8:3).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7절). 하나님은 대 주재이고 전능하신 심판 주시다. 그분께 반역하는 자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은혜와 자비를 거절한 자들을 이렇게 처벌하시는 것이 공의롭고 진실하다.
④ 넷째 대접(해): 태양이 불로 태움(8-9절)
네 번째 심판은 새롭다. 출애굽 때나 대환난 기간에 없었던 재앙이다. 하나님은 해를 통하여 심판의 권세를 휘두르신다. 맹렬히 타는 불로 사람들을 태워 화상으로 죽을듯한 고통을 겪게 하신다. 정관사가 붙은 “(그) 사람들”은 심판의 대상이 계속 같다는 걸 말해준다. 온몸에 종기가 나 쉼 없는 고통에 시달린 자들은 굶주림과 갈증에 허덕이다가 심각한 화상까지 입게 될 것이다.
⑤ 다섯째 대접(짐승의 왕좌): 암흑(10-11절; 출 10:21-29)
넷째 나팔 심판으로 광명체(해, 달, 별들)의 삼분의 일이 이미 빛을 잃었다(계 8:12). 하나님의 최종 심판, 다섯째 대접이 미치는 범위는 적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영역(짐승의 왕좌)에 국한되지만, 강도는 최강이다. 삼분의 일이 아니라 완벽한 암흑이다. 빛이 공급되지 않는 것은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지만, 직접적인 고통을 가하진 않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미 아픈 것과 종기로(11절)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깊은 어둠 속에서 고통은 증폭된다. 얼마나 괴로운지 사람들은 아파서 자기 혀를 계속 깨물 지경까지 이른다(문자적: 씹다).
⑥ 여섯째 대접(큰 강 유브라데): 큰 강이 말라버림(12-16절)
다섯째와 여섯째 나팔 심판 때, 하나님은 무저갱에서 나온 황충(악한 영적 세력)과 유브라데에 결박된 네 천사를 통해 불러낸 마병대를 통해 땅에 전쟁을 일으키셨는데(계 9장), 이와 유사한 방식이지만 완전히 다른 목적으로 하나님은 무저갱 소속 거짓 삼위일체 입에서 나온 더러운 영을(귀신의 영, 14절) 통하여 온 천하 왕들을 불러 모으신다. 본문에 징그럽고 혐오스러운 개구리로 상징된 세 더러운 영은 각각 용, 짐승,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왔는데, 14절에 나오는 것처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을 미혹하고 한 곳으로 모은다(16절). 하나님께서 큰 강 유브라데를 마르게 하신 이유도 같다.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을 예비하신 것이다(12절).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군사력이 한 곳, 아마겟돈에 모인다(16절). 아마겟돈은 므깃도(메깃도)라고 하는 산악 지역(하르)을 가리킬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곳에서 수많은 이스라엘의 전쟁이 치러졌다.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14절, 욜 2:11; 슥 14:2-3; 19장).
⑦ 일곱째 대접(공중): 지진과 우박 심판(17-21절; 출 9:23-4)
마지막 일곱째 대접이 공중에 쏟아질 때, 성전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났다: “되었다!”(18절). 이제 ‘다 끝났다’는 말이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는 자들의 죗값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치르셨다고 외치신 것처럼, 하나님은 자기를 버린 자들의 죗값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찾으셨다고 외치신 것이다.
큰 음성과 함께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이 가장 강력한 형태로 이 땅에 나타난다. 번개, 음성들, 우렛소리 그리고 큰 지진(계 8:5; 11:19). 얼마나 큰 지진인지 땅에 있어 온 이래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다고 말한다(18절). 지진의 가공할 만한 파괴력으로 섬이 없어지고 산악도 땅으로 꺼진다(20절). 전 세계적으로 지질학적인 대변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19절에서 큰 성, 만국의 성들, 큰 성 바벨론의 땅에 격변이 일어나는 것을 본다. 먼저 큰 성은 예루살렘을 가리키는데(계 11:8), 선지자 스가랴(14:4-5)가 예언한 것처럼 주의 날에 도시 지형의 변화를 맞게 될 것이고, 이방 민족들의 성들은 무너질 것이다.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곳은 큰 성 바벨론 곧 적그리스도 왕국의 영역이다. 하나님은 원수의 나라를 기억하시고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마시게 하실 것이다.
지진과 함께 하늘에서 쏟아질 심판은 무시무시한 우박(큰 우박)이다(21절). 무게가 한 달란트(50~60kg)에 육박한다. 1986년 방글라데시에 1kg 대형 우박이 내려 92명이 사망한 적이 있다(50-60배 무게). 딛고 있는 땅이 무섭게 흔들리고 하늘에서는 살인 우박이 쏟아져 내리는 것으로 진노의 일곱 대접 심판은 막을 내린다.
히브리서 기자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은 무서운 일”이라고 말했다(히 10:31).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참고만 계신 분은 아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시지만, 죄악을 방관하시는 분은 아니다. 지금 인내하신다고 해서 그 인내심에 끝이 없을 거라고 기만하지 말라. 당신을 향하여 펼친 손을 거두실 날이 곧 온다.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고, 구원의 날이지만, 그날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얻을 기회가 완전히 사라진다. 하나님은 이 말씀을 통해 아직 기회가 있을 때 ‘회개하라’고 당신을 부르신다.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계 22:17). 날마다 당신에게 값없이 제시하신 생명수를 끝까지 거절한다면, 그 값을 제대로 치르게 될 것이다.
2. 죄인의 반항심엔 끝이 없다
진노의 일곱 대접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데 훨씬 더 충격적인 사실이 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때, 죄인들이 보인 반응이다(9, 11, 21절).
그들은 괴로워한다. 큰 재앙으로 고통스러워한다. 그들은 누가 심판하는지 안다. 하지만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끝까지 거부하고 도리어 비방한다. 그분의 이름을 모욕한다. 마치 수많은 전과를 가진 범죄자가 감옥에서 또 다른 범죄를 계획하고 나와서 실행하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죄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조금도 교화되지 않는다. 갱생이 불가능하다. 완고하고 반항적인 마음을 돌처럼 굳혀 끝까지 회개하기를 거부한다.
비그리스도인도 신사적일 수 있다. 도덕적일 수 있고, 그리스도인보다 더 부지런하고 성실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착하고 인격적인 사람도 하나님께 돌아와 그분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라는 지속적인 초청을 받으면, 고집스럽게 거절하는 반항심을 보인다. 그 반항심은 끝이 없다. 60kg 우박이 떨어지고, 맹렬히 타는 불로 몸이 타고, 밤낮 종기로 고생해도, 그 고집은 꺾이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성령으로 약속하신 복음의 능력은 딱딱한 마음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꾸시는 것으로 시작한다(겔 11:19; 36:26). 당신 마음에 있는 돌 같은 반항심을 보라. 문제의 심각성을 알라. 유일한 치료자 예수 그리스도께 당신의 영혼을 의탁하라. 운명을 걸고 간절히 구하라.
3. 의인의 신실함엔 복이 있다
본문은 온통 악인에 관한 내용뿐인 것 같지만, 딱 한 구절 의인에게 주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 있다: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15절).
주님은 믿는 자들이 항상 깨어 있기를 원하신다(눅 21:36).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말라’는 권면과 ‘부끄러움을 보이지 말라’는 권면은 같은 내용이다. 성도가 입고 있는 옷은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거룩한 의복이다(계 7:14).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서 성도들이 입고 있는 옷을 가리켜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 곧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 말했다(계 19:8). 그러므로 주님의 권면은 예수님 안에서 거룩함을 입은 그대로 경건하고 거룩한 행실을 계속해서 가지라는 권면이다. 정결하고 의로운 신분에 맞지 않는 부끄러운 삶을 버리라는 것이다.
많은 신자가 주님의 권면을 참고할 만한 조언쯤으로 여긴다. 하지만 주님은 임금의 잔치에 왔다가 손발이 묶여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져지고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된 사람에 관하여 말씀하셨다. 그는 예복을 입지 않고 있었다(마 22:12-13). 그러므로 거룩한 행실과 경건을 지키는 자에게 복이 있다. 오직 그런 자만이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 보호를 받는 백성임에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벧후 3:11-12). 신자의 마음에서는 고집스러운 반항심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충성심이 발견되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복을 상속받을 자처럼 오늘 복 있는 삶을 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