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출신 해직 교사 등을 부당하게 특별 채용한 혐의를 받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1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조희연이 항소 의사를 밝힌 만큼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 교육감직을 유지하지만, 진보 교육 정책에 타격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요구에 따라 해직교사를 부당 채용한 혐의로 기소된 조희연이 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뒤 입장을 밝히고 있다.
“조희연, 인사권 없는 비서실장 통해 채용 관여”
2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박정제·박사랑·박정길 부장판사)는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조희연에 대해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지방자치교육법 등에 따르면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교육감은 직을 잃게 된다. 2021년 5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처음 수사에 착수한지 1년 8개월만이다.
서울 서대문구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사무실.
재판부는 조희연에게 적용된 모든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조희연이 전교조의 민원을 받아 특정 교사 5명의 채용을 내정하고 한만중 전 비서실장을 통해 채용에 적극 관여한 점을 들어 직권남용이 인정된다고 봤다.
재판부에 따르면, 당시 조희연의 지시로 채용 과정에 관여한 한만중 비서실장은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심사위원으로 선정했다. 심사 과정에서는 일부 심사위원에게 'OOO을 채용하는 것이 교육감의 뜻'이라는 취지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교사들의 인적사항은 가려지지 않았고, 미리 언급된 5명에게 높은 점수가 부여됐다.
재판부는 “임용권자로서 특별채용 절차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지도록 지휘, 감독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교조 민원 사항이었던 특정 교사들에 대한 특채를 위해 인사담당자들에게 채용 과정에 직접 관여할 권한이 없는 비서실장인 한 전 실장의 지시를 받도록 했다”고 말했다.
또 “특별채용 절차는 공개 경쟁을 가장한 것에 불과하다”며 “서울시교육감이 실질적으로 위법, 부당한 행위를한 것으로 봐야한다”고 밝혔다.
다만 “특정인에 대한 임용 권한을 행사하게 된 동기가 금전적 이익이나 개인적 이득을 취하기 위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 점, 종전에 별다른 범죄 전력이 없는 점”을 감안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조희연은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항소를 할 경우 대법원 최종 판결이 나올 때까지 교육감직을 유지할 수 있다.
조희연은 이날 선고 직후 기자들과 만나 “해직자에 대한 교원단체의 복직 요구는 공적인 민원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사적인 인사청탁으로 규정한 검찰 주장이 받아들여졌는데, 항소심에서 바로잡겠다”고 했다.
진보 교육계 타격, 직선제 폐지도 힘 얻나
교육계에선 엇갈린 반응이 나온다. 조성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 대변인은 “누구보다 깨끗해야 할 서울교육 수장이 특혜 채용으로 유죄를 선고 받아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반면 전교조와 진보 시민단체 등은 “진보 교육 죽이기”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3선에 성공한 조희연은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장도 맡고 있는 진보 교육계 좌장격 인사다. 자사고 존치와 교육감 직선제 폐지 등의 현 정부 정책에도 비판 목소리를 내왔다. 하지만 이번 유죄 판결로 도덕성에 타격을 입으면서 진보 교육계 전체가 힘을 잃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야당 관계자는 “균형을 지켜온 교육감들의 보수·진보 성향 비율이 이번 판결로 깨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며 “당장 조희연이 교육감협의회장 자리를 내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을 때 반격할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조희연의 혁신학교 확대 등 각종 정책에도 힘이 실리기 어려워졌다. 앞서 두 번의 임기와 달리 반대 성향의 정부가 들어선데다가 서울시의회도 국민의힘이 다수를 차지하면서 정책 추진이 쉽지 않은 환경이다. 서울시의회는 시교육청이 편성한 올해 예산 12조 8915억원중 5688억원을 삭감해 마찰을 빚었다.
정부가 추진 중인 교육감 직선제 폐지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사건의 단초가 된 해직 교사 특채가 조희연의 선거와 무관치 않아서다.
특채된 해직 교사들은 선거 과정에서 조희연과 후보 단일화를 이뤘거나 캠프에 참여한 이력이 있다. 이른바 ‘보은 인사’라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이번 판결로 직선제 폐지 주장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