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고대제국-백산흑수록 중에서(133)-수정2 조선총독부 발행" 백산흑수록 133쪽중에서(133)-수정2
====>홈주인 가필;--->빨간색 글은 홈주인의 글.-->청색 필자는 한담님 글,
.....전략...속말지부유대조영자수창건발해국粟末之部有大祚榮者遂創建勃海國
...전략..속말부는 대조영이란 자가 있어 발해국을 창건 했는데,
지후금이흑수말갈기삼한至後金而黑水靺鞨起三韓
후금의 흑수말갈에 이르러 (또,)삼한이 일어났다. --->후금에 이르러 흑수말갈이 삼한의 땅에서 일어났다.
후한지시초통한토後漢之時初通漢土후한때 처음으로 한토(지나)와 통하매,---->후한때 처음으로 한토(지나)와 통한[=>한토의 땅에서 일어난]삼한은
일마한조진한일변간 개여만주지무관一馬韓祚辰韓一辨幹皆與滿洲地無關
[辨;판단,구별,구비,9갈래 변][幹;일맡을,등뼈,줄기,體 간]
첫재로 마한이 진한을 만들고 또, 변한(을 만드니)이 들은 만주땅과는 무관하다.
-->하나인 마한이 진한을 만드니,
하나의 줄기[一辨幹일변간]가 모두 이러하니 [위의 3한, 흑수말갈은]만주의 땅과는 무관하다.
복신라기변한지묘예근보동방고려백제復新羅起辨韓之苗裔僅保東方高麗百濟
변한의 묘예들이 다시 신라를 일으키니 동방의 고려[=고구려] 백제를 겨우 보전하게 되었다.
--> 신라가 돌아 오고, 일어난 변한의 묘예들은 동방의 고려 백제를 겨우 보전하게 되었다.
이어지는 아래의 글은 고려[=고구려] 백제,신라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성시관우북두금북경어양금계주상곡금선화태원금산서태원부등지기성가지
盛時冠右北斗今北京漁陽今계州上谷今宣化太原今山西太原府等地其盛可知
국세가 온전할때(盛時)는1. 우북두(우북평: 現 북경),어양(현관계주:하북성),상곡(현 선화),태원(산서성태원부)
등지를 관장했다 하니 그 융성함을 가히 알 만하다.
-->필자 주
1.우북평,어양,상곡,태원은 長城內의 산서, 하북등지로써 흔히 요서지역으로 고정된 인식을 가지지만 이는 잘못된 견해 입니다.
요동과 요서는 요수 또는 요해(이것은 바다가 아니고 사막)가 기준이 되므로,
시기에 따라서 요동,요서는 엄청난 공간적 차이가 납니다.
본조팔도성경합도를 참고하면, 그야말로 "직예계"의 깊숙한 곳입니다. 고구려와 함께 백제도 번갈아 가며 겸유한 것으로 나옵니다.
-->홈주인 주; [위 3국이]최성 시기에는 북두등....을 관冠[->관을 썼다는 것은, 기본 영토로 했다는 말]했으니 그 그 강성함을 가히 알 만하다.
->좀 더 강력한 표현을 해 보았습니다. 분명히 대륙 깊숙히 산서성까지 점유했음을 일부라도 인정하는 백산흑수록입니다.
연길림흑룡강태약불급자당멸고려기장대조영집중보태백산지동우종여정지동모산수건국칭발해
기후대무예대개 경우북겸송화강남월장백산유고려지지서합요서요동대수인략신라창치군읍대이진건오경십오부육십이주
然吉林黑龍江殆若不及者唐滅高麗其將大祚榮集衆保太白山之東又從女貞之東牟山遂建國稱勃海
其後大武藝大開境宇北兼松花江南越長白山有高麗之地西合遼西遼東大秀仁略新羅創置郡邑大彛震建五京十五府六十二州
그리하여 2.길림,흑룡강성이 위태롭게 되자, 당이 고려를 멸하게 되었다. 그 장군 대조영이 무리를 모아
-->2. 상기 지역을 이미 예전부터 겸유 했는데 지리적으로 거리도 멀고 당의 입장으로 볼 때그다지 요지도 아닌,
길림 흑룡을 뜬금없이 들먹이는 것은, 사필가에 의한 상투적인 명분을 이입한것이라고 사료됨.
3. 태백산의 동쪽에서 (나라를)보전하니, 또한 종여정(?)
--->3. 이 태백산은 중요한 분기점입니다.
의 4.동모산이라. 나라를 세워 발해라 했다..-->세조(고구려의 진국장군 걸걸중상-서압록) 대중상으로 부터 걸사비우와 함께,
당을 대적하다가,이곳에서 나라를 세운다고 전해집니다. 후고구려라고 했답니다.
후에 태조 조영이 국호를 대진(大震) 연호를 天統 이라 하고 15년(713년)에 국호를 발해로 고침.
그 후 대무예가 그 관경을 크게 넓혀 북으로는 송화강을 겸하고
5.남으로 장백산을 넘으니 고려의 땅이라.-->남으로 장백산을 넘으니 고려의 땅을 가져졌다.
서쪽으로 요동과 요서를 합하고
--->4, 5.현재의 백두산이라고 사료됨. 아직도 장백산이라고 부름.5.의 장백산과 분명히 구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만주인)의 지리적 인식에 의하자면 절대 중복해서 따로 표기 했을리 없습니다.
거기다 이 태백산은 강원도 일리는 더더욱 없읍니다. 흔히 태백산 동을 장백산 동으로 얼버무리는 일이 없었으면.. 중국에서도 이 太白山은 聖山입니다.
6.대수인(聖宗)은 신라를 침략하여, 군읍을 설치했다. -->6.임진강까지 이르렀다고 함.
대이진(莊宗)이 5경15부62주를 설치하다.
上京龍泉府一名龍井府龍湖渤三州蓋今索摩索之東영古塔之西必爾騰湖傍近地也.
中京顯德府領廬顯鐵湯榮興州今之遼陽西及錦州廣영東及奉天鐵嶺皆此府地界
- 東京龍源府一名城柵府領慶鹽穆駕四州云朝鮮咸鏡道之咸興府
南京南海府領沃晴菽三州今海城之地西京鴨綠府領神桓豊正四州此府所在未祥云鴨綠江口七百餘里意朝鮮平安道江界之近傍歟 長嶺府領暇河二州今之才爾敏朱墩嶺卽英額門旺淸門外絆色城西南吉林圖們上流柳溝旺河淸河英額河皆發源於此 夫餘府領抉仙二州今之開原鄭詰二州此府所在未祥.
상경용천부는 일명 용정부라 하고 용주,호주,발주(3주)를 다스리고, 지금의 색마색의 동쪽을 덮었으니,
7.영고탑의 서쪽이라. 필시 등호방(騰湖傍) 근처 이리라.
-->지금의 색마색 동쪽, 영고탑의 서쪽 모두의 땅이라. 필시 등호방(騰湖傍) 근처 이리라.
-->7.영고탑은 "닝고타"라고 알려진 "영고탑,비류홀..." 지도를 참고 하시길..이 영고탑은 부여의 古都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성경팔도에서는 턱없이 남으로 내려와 있지만, 위에 언급한 지도를 보면 대충 위치를 알수 있을 것입니다.
등호방은 어딘지 찾아봐야 겟읍니다. 아뭏든 상경용천부는 영고탑의 西에 있었던거는 확실 합니다.
중경현덕부는 려주,현주,철주,탕주,영주,흥주(6.주)를 다스리고,
8. 지금의 요양이라, 서쪽으로는 금주에 까지 영역을 넓혔으니, 동쪽으로는 봉천,철령까지 그 府의 지경이 되었다.
-->. 성경팔도를 참조하면, 직예계의 東에 위 지명이 간간이 비췹니다. 鐵嶺이 이 府의 동쪽에 있읍니다. 옛 신라지가 아닐까요?
동경용원부 일명 성책부라 했는데
9.경주,염주,목주,가주(4주)를 다스리고, --->9.보통은 적국(신라)의 都城과는 명칭 중복을 피하는데..이채롭군요, 당대에 신라의 수도는 경주 였지 않습니까?
뿐만 아니라 신라관련 지명이 많이 보이는군요.(錦州,鐵嶺,鐵州,晴州..) 10.말하기를 조선의 함경도 함흥부라고 한다.--->10.실제로 고증된것이 아니라 " 云..(말에 의하자면)"이라고 했습니다. 사필자의 주관적 견해 입니다.
11.남경남해부는 옥주,청주,숙주(3주)를 다스리고, 지금의 해성의 땅이다.
-->11. 요양의 海城이 남경 남해부입니다. 만약에, 고구려가 망할때 國都가 한반도의 평양이라면, 고구려를 표방한 발해의 남경은 평양이 되야 마땅합니다 .(왜냐하면 先廟가 그곳에 몰려 있을것 이기에..)
이미 신라를 공략하여 임진강까지 진출한 발해의 입장에서
古都인 평양(평안도의 평양이 고구려의 국도였으리라 가정 할 때)을 두고,
요양의 해성을 남경으로 삼았다고 하면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고구려가 망할 당시의 하평양(남평양)은 아마도 遼陽의 해성일 가능성도 생각해야 합니다.
(이미 이 부분의 가설은 제기 된것으로 알고 있음)
해성의 서북으로 언젠가 패수(패수는 단재선생의 설에 따르면 도성을 끼고 흐르는 강의 보통명사입니다.
-"피라: 만주말로 강."로 독음합니다.)였을 수 도 있는,
대요하(마자수: 또한 遼의 아리수,압록)가 유유히 흐르고 개평을 좌로하며,
철산포구의 大港으로 강을 타고 진입할때는 협격당하기 좋은 형세에 자리잡은 전략의 요충입니다.
서북에 의주와 금주가 있고 의주옆에 "의무려산"이 있읍니다.(성경팔도 참조)
12.서경압록부는 신주,환주,풍주,정주(4주)를 다스리고 이 府는 (지금의) 어디인지 알수가 없다.
말하기를, 압록강주변 700리라 했으니, 조선평안도 강계의 근방이 아닌가 싶다.
-->원문이 있는 곳;위 그림 파일의 파란 별*표 2번입니다
--12.남경남해부가 요양해성인데 서경압록부가 그 보다 東인 평안도 압록강이 될수 있을까요?
서경의 기준점은 철령,봉천보다 서쪽에 있는 중경현덕부보다 더 서쪽에 있어야 균형을 이룹니다.
그곳에 압록부가 있는데 이런 지리감각으로 볼때는 압록은 "직예계" 근방이 됩니다.
또는 성경팔도의 직예계內입니다.(지도 참조)
이를 참람히 사필자는 미상未祥인 지명을 두고 "鴨綠口七百與里..云云"하며 평안도의 강계근처가 아닌가하고 사족을 달고 있습니다.
이 사필자의 방위감각은 어떻게 된 거인지는 모르겠지만,
동경은 함경도 함흥부로 갖다 붙히더니 이제는 서경을 "강계"로 갖다붙입니다.
이게 어떻게 동서남북중의 5京체제가 됩니까? 전혀 균형도 안맞고 방위도 안 맞습니다.
이것은 고래로 우리 지명을 상고할때 "압록"을 평안도의 압록강으로 고정하기 때문에 생기는 愚입니다.
압록은 오리수(아리수)로 聖水란 뜻의 대명사인데, 훨씬 후대에 수명으로 굳어진 명칭입니다.
현 압록강이 압록으로 불리워 진것은 조선후기에나 생각해볼 문제 입니다.
> 13.장령부는 가주,하주(2주)를 다스리니 지금의 재이민 주돈령이다.
즉 영액문이니, 왕청문 바깥, 반색성 서남이라. 길림 도문(강)상류이다. 유구왕하,청하,영액하 모두 이곳에서 발원한다.
--->13. 장령은 대흥안령. 여기에 도문이 나옵니다. 도문강을 말하는것입니다. 백두산(장백산)에서 발원하는 두만강과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바로 이 도문강이 분수령이 되어 청의 목극등이 조.청 국경조약에 서결한 것 입니다. 백두산정계비 참조.
14.부여부는 결주,선주(2주)를 다스리고 지금의 개원정(?=吉+頁=갈,힐)부라한다. 정주, 갈(힐)주(2주)를 다스리는데 이 부도 소재가 미상이다.
서툴지만 해석해 보았습니다
. --->14. 부여부는 역시 미상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開原에 주시해야 합니다. 성경팔도의 철령이북입니다.
-->위 그림 파일의 파란 별*표 2번입니다.; 원문이 있는 곳.
**세부적인 주석은 자제 했읍니다. 이 한 페이지에 상고할 만한 사실이 널려 있읍니다. 이것은 靑人들의 저작입니다. 만주원류고를 많이 참고 한듯 합니다.(활자본)
--->아니군요, 조선총독부 한국관련 고문서입니다. 만주원류고는 참고했지만,
조선총독부가 발간했습니다. 청인 저작은 맞는것 같읍니다. 백산흑수록 133페이지 입니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한담..
◈ 사운더 ─ 압록강 비정에 대하여 :신설토론방에서 압록강의 노래 참조바람
*발해의 5경15부 지도
4)중국역사지도집, 당나라 시대의 도기도,하남도 지도
홈주인; 다음의 기록을 올려 놓고선 의주는 위화도 회군할때는 하남성 급현.=압록강[서쪽에서부터 흘러 황해로 빠져 나가는 급현 옆을 지나가는 황하]이었다가, 200년후, 임진왜란때는 세스페데스 목격담 지도처럼, 본조팔도성경합도의 의주(義州)지도처럼 북경위로 올라가=북으로 쫒겨 가지 않았나 사료됩니다.
중국고금지명사전 1046쪽 기록 의주(義州);後魏置.北齊廢.故治在今河南汲縣.唐復置.尋廢 후위치.북제폐.고치재금하남급현.당복치.심폐 후위가 설치.북제가 폐지.다스렸던 곳은 하남성 급현.당나라가 다시 설치했다가 찾아내어 폐지, ---> 하남성 급현.=압록강옆 의주
5).천하고금지도[=>천하고금대총편람기]
흔히 볼수있는 자료지만, 주시해야 할것은 이 지도에서는 흑수백산록에서 구분되는 장백산(현 백두산 이라고 알고 있는)이 燕 장성의 北에 있읍니다. 송화강의 발원지로 봐서 백두산의 내용과 맞아떨어지는데, 이상한것은 압록 도문의 발원이 빠져 있는데 이것에 대한 해석이 필요 할것 입니다. 誤記냐, 誤解냐는 이 해석에 의거해야 할듯... * 백두산은 따로 있군요...여하튼 요동의 북에 위치한 장백산 입니다. 우측으로 조금 아래 보면 五國城이 보일겁니다. 고려의 위치비정에 가장 중요한 지점입니다. 베시바리크입니다. 위굴어로 다섯이 "베시" 나라가 "바리크" 이곳은 신강성에 있어야 하는 지명입니다. 일전의 티벳지도나, 세스페데스 지도를 찾아보면 서역에 있을겁니다. 송동건 교수가 오국성(또는 연오성) 위치에 관한 논고가 도움이 될겁니다.(계간 한배달25호 참조) <이미지가 트루칼라라서 제법 크군요.
서양인 제작 옛 지도
1).버클리 대학 소장인 1897년 티벳의 지도 .
2)16세기의 서양인조안벱티스 제작 지도
1).버클리 대학 소장인 1897년 티벳의 지도 .
○ 작성자:한담 (harndarm@hanmail.net)
O작성일:2000.3.19(일) 01:00, 211.35.215.148 버클리 대학 소장인 1897년 티벳의 지도입니다.
버클리 대학 소장인 1897년 티벳의 지도입니다.
간단히 요약 하겠읍니다.
1. 일전에 언급한 오르도스가 우측 상단에 제가 요즘 추적하고 있는 浪斯(ningsia)와 함께 뚜렷이 명시 되어 있고. (낭사는 또한 "낙랑" 입니다. 낙랑 왕씨의 전통적 봉지 입니다. 본고 주영왕 태자진과 기자후손, 마한신고 참고..)
2. 다음은 두곳의 계양(현 계림)입니다. 양자강변의 계주와 함께 존재하는 Kweiyang 과 Yalong, Yalong. R(야루강: 압록강) 또, Kin-shankiang (慶尙江)
3.좌측으로 보자면 Tengri Nor가 보일 겁니다 "부탄 "바로 위에 있죠? 하늘못 "天池"입니다.
또는 "탱그리 샘"이죠. 히말라야의 "天池"입니다.
그런데 우연치곤 묘하군요. 몽골어로 알려진 "탱그리"호라니..참고로 희말라야는 우리말로 풀어서 한자로 옮기면 그야말로 白頭山(흰머리산)이 되죠?
4. 조금 상단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인도의 캐시미르주변에 카라코름이 있읍니다.
몽고의 수도이자 실크로드의 중심지인 카라코름이 거기에 위치하니 어떻게 된거죠?
조금만 더 위로 보죠.
Yarkand.R라고 보이죠? 다시 말하면"야루강이라고 불리우는 강" 이란 말이죠.고유명사를 따서 영문으로 붙힌것입니다.
그 바로 옆에 뭐가 있죠? Kargalig(고구려)이 있읍니다.
즉, 야루강(경상강,압록강)을 끼고 천지를 중심으로 동으로 신라(계림)古地 ,
西北으로 야루강(야루칸드 강)을 끼고 고구려의 古地-- 桓因古地 라는 "파미르"에 있고요.
5.자, 놀랄 준비 하십시오.
러시아제국의 경계에 몽골어의 고려인 Sungaria(숑홀:송아리)가 턱하니 앉아 있읍니다. 발하쉬호의 북이죠.
쿠첸에서 바쿠르를 따라 내려오면 "안시"가 보일겁니다.
과연 安西(당의 안서도호부) 일까요? 양만춘의 安市일까요?
참고로 후금 누루하치의 어머니는 "바쿠르 용쉰"입니다. 조선사람 박용순인지, 이 바쿠르 땅의 "용쉰"이라는 여자인지 두고봐야 될 일이겠지만,
묘하게 만주에 있어야 될 지명이 "숑아리"와 "안시"의 중간에 있어야 하는게 눈에 띄는군요. 위의 "닝샤나 안시"가 낭사나 안시가 아니고, 안서나 영서가 될 확률은 매우 적읍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고유지명을 영문으로 표기 한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지도는 19세기 말에 제작된 것이므로 당나라의 도호부가 그대로 지명으로 사용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낭사(낙랑)와 안시가 되는겁니다. 이름:한담
홈주인 추가 업로드 ; 위 지도 보다 좀 더 자세히 보이는 지도를 업로드 하였습니다.
2)조안벱티스 제작 지도 I,II
16세기의 서양인이 제작한 꼬레지도 입니다.
홈페이지:http://column.daum.net/harnhistory/ 작성일:2000.4.9(일) 00:09 Hist.html
16세기의 서양인이 제작한 꼬레지도 입니다. 좀 우습지만 조안벱티스가 제작한것은 한반도가 섬으로 표현 됩니다. 재미 있는것은.. 16세기 경에는 서양인들이 한반도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듯 합니다. 여러가지 추론할수 있는 지명들이 눈에 많이 띄지만.. 우선 " Sinanum - 혹시 아랍인에게 알려진 시라기, 즉 신라와 연관이 있는지.. "가 어디를 지칭하는것인지.. 연구 해봐야겠고, 앞서 살펴본바 tongsun인 east tataria(지도에서는 동몽골을 일컫는것 같은데17~18세기경에는 지도에 표기된 곳은 지역적 편차가 상당합니다.
그러나 어떤 지도든 "조선지"로 추적되는 오르도스 지역은,
여지 없이 동 타타르입니다.
이성계가 타타르인이라는 고증을 다시 한번 더 상기 해야할 필요가 있겠네요...
게다가 꼬레로 표시된 한반도 와 이곳[둥근 원 부분]은 경계도 구분 되어 있지 않은 지도가 많읍니다. 비교해 보시기를...)와 키타이(차이니즈 키타이라고 표시된-이때는 遼가 등장하는 시기가 아닙니다. ) 카라키타이주변을 잘 살펴 봐야 겠읍니다.
오늘 하루 종일 틈을 내어 지도찾기에 열을 올렸는데 이거 몇개 건졌군요.. 차근히 연구 해보겠읍니다.
그리고 통화로 말씀드린 파나류 관련 문건은 ... 이거 시작해야 할때인지 솔직히 판단이 안 서는군요.. 어쨋든 案을 내셨으니, 쉬운부분 부터 접근해 보도록 하겠읍니다.
그리고.. zip으로 압축 했읍니다. 링크된곳은..지도의 출처 입니다 구경하십시오.. 대표적인 건 다이렉트로 올려 놓겠습니다.
1704년 조안벱티스의 지도 I 입니다.
1707년 조안벱티스의 지도 II 입니다.
이어지는 한담님의 글입니다.
먼저 지도 1704에서는 국경선 표시가 없어 한반도로 연결된 만주 지역이
조선의 영토로 추정케 하더니,
이 지도 1707에서는 만주와 한반도는 노란색,
중국은 초록색으로 아예 구분해서 칠해 놓았으니,
이는 누구나 보아도 조선의 영토는 만주까지였다는 표시 아닌가?!
우리 국사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만드는 지도입니다.
이 지도에도 탕구트는 카타이 밑에 파란색 원으로 표시 해놓은 것처럼
탕구트는 써 있습니다.
비록 탕구트 리버라 써 있지만,
1721지도에는 그냥 탕구트라고만 써 있습니다.
그리고 고려로 침입했다는 본래 거란의 위치를 보면,
한반도 고려로는 그 침입의 거리가 너무 멀어 ,
기존 사학의 말은, 말도 안되는 소리가 됨이 명백해 집니다.
3)러시아 아시안 극동 남부 지도.
계속되는 한담님의 노고가 이뤄낸 러시아의 극동 남부 지도입니다.
- Asian Russian Empire - Siberia & Russian Far East (1882): Southern Far East, Southern Maritime Provinces, Sakhalin (230K) 입니다.
북만주 지역(1882년도)-러시아측의 지도 입니다만, 일부가 나와 있읍니다. 대략의 설명과 주시해야 할곳은 역시 지명과 명칭 입니다.
1. 중하단의 작은 글씨의 송아리강 R.Songari
바로 위의 Samsin tchen(三神川?)을 주시 하시길,
다른 이름은 "Houlan Tchen-花郞川" 입니다. 화랑(화랭이)=삼신이 연상 됩니다.
바로 아래에 Ningoota(寧古塔-부여의 國都로 알려진..)가 있고, 이곳은 타타리아TarTari의 만주입니다.
[[註:(松花江:숑아리,장백산에서 발원. 송아리아의 위치와 비교하면 전혀 엉뚱한 방향임. 현재 위치는 동만주--->두가지 가능성을 볼때. 1)은 송아리는 특정민족의 보통명사로 "聖水"인 세가람중에 하나이다:예로 鴨綠<풀아리,松花(솔아리>,圖門<뚜아리>.. 2)는 "송아리"에 근원을 둔 민족이 이후에 서토에 정착한것이 명칭으로 굳어진 것이다. 참고로 송아리는 "고려"임 왜냐하면 그 건국은 松岳-개성의 별칭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구분된다,에서 시작 되었기 때문입니다. 왕융(健의 父)은 健이 궁예로 부터 金城郡公의 봉작을 받게 하지만, 松岳태생입니다. 고려를 고구려와 구분할때 몽골은 "숑아리-숑홀(松忽)"라고 比稱한 이유가 그것 입니다. 만약에 신라國都였던 인구 백만의 "金城"이 알타이산(金山-중앙아시아)의 "金城"이라면, 송악은 "沸流湖" 근방이 될것으로 봅니다. 따라서 <벽란도>의 위치 비정도 재고 해야 할것 입니다.]]
2.左下의 L(Lake).Pajun Nor 은 다른말로 Buir hol(비류홀) 입니다. 내몽고 지역입니다.
이 비류홀(부이르호)에서 얼마전, 고구려 유적이 발견 됬다죠? 그냥 고려라 했는데 학계에선,고구려로 인식하고 있는것 같군요. 아직 어느것이 확실한지는 답사를 안해 봐서 모르겠읍니다. 우선 눈에 띄는 두 가지에 주시 하시길..
다른 지도도 차근차근 찾아 보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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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시간 이상은 봐야 되겠군요 귀중한 자료 입ㄴㅣ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