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날 축구글 보고싶어요 하고 말하면서 정작 저는 축구글도 잘 안쓰는거 같아 민망한 마음에 작성해보려 합니다.
때는 1992년부터 1996년 사이. 당시는 J리그도 한국선수들에게 크게 메리트를 못느끼던 시절이었고 ,
(J리그 초창기, 세계적인 노장 선수들을 모셔와서 도배질하던 시절입니다.)
한국 선수들의 해외진출도 가뭄에 콩나듯 나오던 시절이었습니다. (해외진출 선수가 제 기억에 VFB 보쿰뛰던 김주성이 유일했어요)
그런데 이때도 K리그로의 프로진출을 외면하는 대졸 선수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지금처럼 유럽을 가겠다는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J리그를 가겠다는 선수들도 아니었습니다.
이 선수들은 지금의 내셔널리그 격인 실업축구팀으로 대거 입단했었죠. 그것도 대학축구계 최대어라 불리던 선수들이 말이에요.
일례를 들어보면, 1991년 겨울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대표 멤버였던 정광석, 김병수, 서정원 등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프로 진출을 거부합니다. 이유는 역시나 돈때문이었죠. 당시 바르셀로나 올대는 진지하게 '국가대표랑 붙여놔도 이길 자신이 있다.'
고 벼를 정도로 엄청난 실력자들로 도배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단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프로팀들이 싼 계약금과 연봉으로
이런 대표급 선수들을 잡으려하니 선수들이 이를 거부했던 것이지요.
이에 LG 치타스는 서정원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당시 1억 5천만원이란 거금을 뒷돈으로 지급한 끝에야 간신히 서정원 선수를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K리그 선수 평균 월봉이 200만원이 안되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서정원 선수와 달리 정광석, 김병수 선수는 프로 무대에서 그 정도의 거액을 주고서까지 잡으려하지 않았죠.
때문에 정광석 선수는 삼익악기 축구단으로, 김병수 선수는 제일은행 축구단으로 각각 입단하게 됩니다.
이들만이 아니라 1992년을 앞두고 정광석, 김병수 선수 이외에 김종찬, 백형진, 김일권, 황인성, 김기수, 김현민 등의 선수들이
프로팀 입단을 거절하고 은행팀이나 할렐루야 축구단 등 실업축구팀에 입단하게 됩니다.
이 같은 실업축구계로의 러쉬는 1996년까지 이어져, 정재권, 노상래, 김태영, 김진우 등 많은 선수들이 대학 졸업 후 실업팀 무대에서 활동하였죠.
이 같은 1990년대 초 있었던 실업축구 러쉬 현상의 원인을 들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위에서도 밝혔듯 돈 문제입니다. 프로 축구팀들은 계약금과 연봉 최고가격제를 설정하고 신인 선수들을 싸게 영입하려한
결과 선수들이 이를 거부하였던 것이죠. 반면 은행팀 등 실업축구팀들은 프로팀에 자꾸 좋은 자원을 뺏기니 대표급 선수의 경우는,
프로팀보다 좋은 조건에 선수들을 영입하곤 했습니다. 요컨대 프로축구팀 신인보다 일부 실업축구팀 신인이 더 많은 연봉을 보장받았던 셈이지요.
둘째, 안정성의 문제입니다. 당시 축구선수는 대학 졸업 후 길어야 6년만 뛰면 은퇴를 강요당하고는 했습니다. 으레 30살 전후로
은퇴시켰으니까요. 여기에 6년 중 2년은 상무에서 군복무를 수행해야 하니 주전으로 뛸 시간은 짧으면 2~3년밖에 주어지지 않았죠.
이후 은퇴하면 왠만큼 명성있는 선수가 아니었던 이상, 프로팀 지도자는 고사하고 학원축구계 코치직도 얻기가 어려웠습니다.
그야말로 축구선수를 은퇴하면 당장 먹고살길이 막막했지요.
반면 실업축구팀들은 은퇴 후에는 은행팀의 경우 은행직원으로 입사가 보장되었고, 서울시청 같은 경우는 공무원으로 임용되었
습니다. (박종환 감독이 서울시청 지휘봉을 잡던 시절에는 서울시청 선수가 은퇴하면 서울시청 4급(!) 공무원이 보장되었죠. ㄷㄷ)
여기에 장래에 은행직원이나 공무원으로 써야할 선수들이니 대학에 입학하여 낮에는 운동, 밤에는 학업을 요구받았고
그 결과 선수들이 선수생활을 정리할때 즈음에는 왠만한 학사 자격증은 취득하게 되어 은퇴 이후에도 먹고살 걱정이 프로축구계를 은퇴한 선수들보다는 훨씬 적었습니다.
셋째, 프로와 실업의 수준 차이가 적었다는 점입니다. 지금은 상상도 하기 어렵지만, 당시만 해도 올림픽대표나 국가대표에
실업팀 선수가 대표팀에 발탁되는게 흔한 일이었습니다. 특히 박종환 감독이 88 올림픽대표팀 감독을 맡으면서 자신이 지휘하던
서울시청 축구단 선수들을 대거 발탁한 이래로, 실업팀에서 뛰면서 국가대표에 나가는 선수들이 정말 많아졌죠. 이러자
실업과 프로의 차이가 애매해졌고, 실력면에서도 실업 선수들이 프로 선수들에 뒤지지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자리잡기에 이릅니다.
상기의 이유로 젊은 선수들은 실력 차이도 별로 안나고 대표도 잘뽑히고 안정적인 실업축구가서 뛰는게 더 낫겠네 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하지만 1997년 IMF 위기는 이같은 현상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맙니다.
이하 얘기는 다음편에서 계속하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시고 좋은 밤 되시길.
첫댓글 오...이런적도있었군요. 처음알았어요 ㅎㅎ
좋은 정보네요.. 잘읽었습니다
와 대박이네요이런적도있었군여 더올려주세요 궁금해요
흥미롭네요ㅎ
이런 글 많이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ㅋㅋ
재밌네요 글도 술술읽히는데요
글 잘 봤습니다..
축구 야사 및 역사에 관심많아서 부산빠냥꾼님 글 항상 잘 읽고 있어요~ 다음편도 기대되네요!!
흥미롭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