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을 기해서 쓴다고 했는데, 기억을 끄집어 내려니 괴로워서 후딱 헤치워 버렸습니다. 하하
내가 진짜로 이상해지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끝이었다. 방학은 끝나고 학교엘 갔는데 그때부터 학교 생활이 너무 어려워졌다. 처음에 반 친구들은 나를 예전처럼 대해 주었지만 일주일도 안돼서 나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다만 나는 알 수 없는 사슬에 묶인 것처럼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가만히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나를 무조건 멀리하는 줄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이들은 처음에 내가 변한 것에 당황했던 것 같다. 내 짝꿍은 몸집이 크고 뚱뚱하지만 운동도 공부도 잘하는 놈이었는데, 그 놈은 처음에 나에게 막 짜증을 냈다. 그러다가 그 다음부터는 나를 무시했는데,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나에게 가끔씩 말고 걸고 자기 딴에 어떻게든 나를 되돌려 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 우리는 모두 어렸다. 나는 이게 어떻게 된 건지 몰랐고, 그 녀석은 물론 자기 일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몰랐을 것이다....
나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와 짝꿍 뒤에는 우리 반을 잡고 있던 무리 중 네 명이 앉아 있었는데 그 애들은 나를 불쾌해 했다. 나는 그저 그 녀석들이 나를 싫어한다고 짐작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를 제일 불쾌해 했던 녀석은 그 중에서 제일 성격이 좋았던 애였다. 아마도 그들은 나를 동정했을 것이다.
나는 그 후로 공부는 전혀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반 친구들은 물론 선생님들까지 나를 멀리했기 때문이다. 수업시간 내내 나는 놀림거리가 되기 일쑤였고, 수업에는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내 고개만 숙이고 있거나 그림을 그렸다. 한시라도 빨리 집에 가고 싶었고 여기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괴롭거나 하는 건 없었다. 오히려 이 상황이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몰라 멀뚱멀뚱 하기만 할뿐이었다. 그런 생활은 고등학교 1학년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딱 하나 내가 그 이후로 친구들과 어울렸던 게 있었는데 눈 오는 날 밖에 나가 눈싸움을 한 것이다. 나는 실내화를 신고 나가 눈을 뭉쳐서 교실 창문으로 던졌는데 그게 구경하고 있던 애들한테 맞을 뻔했다. 그때 한 애가 나를 봤는데, 나에게 눈을 고정시키고 살기 띈 웃음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때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학교에서의 일 빼고는 1학년 때의 일은 아무 것도 기억이 안 난다. 이유는 모른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역시 2학년 초반의 일은 학교에서의 일 빼고는 기억이 안 난다. 2학년 처음 올라갈 때 나는 정말 고통스러웠다. 이유는 모르지만 여름방학이 끝나고부터 나도 나를 모르겠고, 아이들이 나를 경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2학년 때도 역시 그랬다. 그리고 모르는 애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나는 애들이 나를 싫어하는 이유를 몰랐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뭔가 잘못한 것 같았고, 누군가와 마주 앉아서 조용히 대화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처음 만난 아이들 중에는 역시 학교 안에서 싸움 좀 한다는 무리가 있었는데 그들은 내게서 풍기는 분위기가 살기인 줄 알았었나 보다. 마치 내가 자기들에게 시비를 건다는 식으로 받아들였다. 전에 말했지만 내가 들어간 고등학교는 안산에서 공부를 잘하는 학교였고, 공부를 잘하는 것뿐만 아니라 모범적인 아이들이 대부분인 학교였다. 그래서 나는 집단 구타, 누구한테 맞고 그런 건 없었다. 그냥 조금 시간이 지나자 아이들은 내가 이상한 놈이란 걸 알았고 나를 가끔씩 놀려대거나 뒷말을 했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으면서도 그럴 때는 기분이 아주 안 좋았었는데 그게 아주 싫었다. 아무 것도 몰랐으니 그들이 나를 얕본다는 단순한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주위에 이상한 막 같은 것은 친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아마도 그때 나는 살기라는 걸 처음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역시 공부는 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들까지 나의 괴상한 부분에 당황했고, 나를 굉장히 경계했다. 나중에는 그냥 학교에 있을 때는 내내 엎드려 있었다. 처음엔 나를 노려보는 느낌에 신경이 쓰였지만 그러다가 잠이 들었다. 깨어났을 때는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나 있었다.
내가 약간의 감정과 이성을 되찾은 건 약 6개월 후였을 것이다. 그땐 이미 다른 선생님들은 포기를 하고 나를 완전 무시했는데 국어 선생님만큼은 끝까지 나에게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처음에는 이 선생님이 나를 제일 싫어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게 뭔가 잘못이 있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죄책감이 폭발했고, 내 주위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 2학년 봄 중간쯤이었을 것이다.
죄책감이 생기면서 학교에 있는 건 더욱 더 괴로웠다. 하루하루 어서 빨리 시간이 지나길 바랬고, 아침에 학교로 출발하는 건 지옥이었다. 역시 학교에 있을 때는 잠만 잤다. 더욱 더 모든 걸 잊기 위해 그냥 엎드리고만 있었다. 그때는 단체로 무엇을 하는 것, 체육시간, 한자시간, 미술시간들이 제일 괴로웠다. 나는 그냥 학교에 있을 때는 누워만 있고 싶었다.
내가 그때 가장 적극적이었던 시간은 학교를 갈 때와 학교에서 집에 돌아갈 때였다. 학교에 갈 때는 불안함을 잊기 위해 나는 잘 할 수 있다라는 말을 쉼 없이 중얼거렸고, 집에 돌아올 때는 약간의 안도감과 어서 빨리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들었다. 학교에 돌아올 때 나는 잘 할 수 있다라는 말 말고 다른 말도 했는데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리고 이때부터 집에 일이 생각나는데 나는 밀려오는 죄책감과 괴로움 때문에 맨날 방에서 울부짖었다. 그때는 이전의 아파트에서 방 세 칸 짜리 아파트로 이사온 후였다. 나는 나의 방에서 맨날 소리지르면서 울부짖다가 서슴없이 엄마가 들어오시고 하루도 빠짐없이 싸웠는데, 그러다가 언제는 아버지가 들어오시더니 조용히 하라고 말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한테 소리지르면서 대들었다. 아버지는 방에 들어가셨는데 그러다가 엄마랑 다시 싸우고, 조금 있다가 아버지가 오셔서 나는 개 패듯이 맞았다. 아버지가 처음으로 때린 곳은 왼쪽 어깨죽지였고 벽에 기대고 있던 나는 그대로 쓰러졌다. 아버지는 얼굴은 안 때렸다. 나는 팔로 얼굴을 감싸고 허벅지와 팔, 옆구리를 맞았다.
그 이후로 나는 맞는 게 무서워서 더 이상 울부짖진 못했다. 하지만 이불을 덮고 매일 울었고 울고 나면 그 후에 밀려오는 작은 시원함과 우울함이 나의 처치에 맞는 것 같아 우는 게 좋았다.
언젠가 어머니가 아이와 오디오를 사주셨는데, 그때부터 나는 매일 힙합을 틀어놓고 졸릴때까지 랩을 따라했다. 학교에서 매일 자기 때문에 대부분 세 시 네 시까지 하다가 잠이 들었다.
지금 와서 나는 옛날 생각하면 부끄러움이 먼저 든다. 그 이유를 지금부터 밝힌다.
나는 2학년때 약간 주위를 살필 수 있게 되면서부터 1학년때 잠들어 있던 이성에 대한 감정이 되살아났다. 매일 구석에 앉아 남의 눈에 띄지 않으려 발버둥쳤지만, 경계하는 것도 일종의 인간과 인간간의 관계였고 나는 그것을 내게 관심이 있는 거라 착각했다.
여자는 그 당시의 나에겐 일종의 성역이었고, 어떤 식으로든 나를 쳐다봐 주기만 한다면 상관없다 생각했다. 그런데 운동장에 나갈 때마다 여자들은 나를 지나치게 의식했고 나는 역시 착각으로 시작해 착각으로 모든 걸 마무리 지었다. 점점 나는 자만에 빠졌다.
그리고 예전의 모범적이었던 나는 더 이상 없었다. 이미 학교 성적은 땅바닥을 기고 있었고,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나의 안전은 보장되었다. 날라리들은 공부 잘 하는 애들을 싫어한다는 말이 있듯이 맨날 꼴지를 하는 나는 애들에게 무시를 당했지만 질투나 불만을 사지는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학교 성적에는 더 이상 관심이 없었다. 1학기 때까지는 그래도 시험공부는 하다가 2학기 때부터는 전혀 하지 않았다. 그냥 집에 들어오면 문을 닫고 음악만 들었다. 그리고 그림도구도 사서 그림도 그렸다.
나는 점점 모든 걸 힘의 법칙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싸움을 못하는 애들은 모두 별 볼일 없어 보였고, 싸움을 잘하는 애들에겐 알아서 기었다. 그때 나는 마치 열만 감지할 수 있는 어떤 동물처럼 눈에 보이는 어떤 것보다 분위기에 더욱 집중했는데, 그것으로 여러 분위기를 탐구하고 연습했다. 그것은 나에게 일종의 재미있는 취미였다. 힘을 키우는 건 당장에 할 수 없었다. 하기도 싫었고 운동을 하려면 다른사람과 관계를 지어야 했다. 나는 그것을 하기에 역부족이었다.
나의 사고는 점점 부정적이 되어갔다. 예전에는 그저 다가오는 상황에 괴로워했던 것에 비해 이제는 모든 걸 내 나름대로 해석했다. 그럼으로써 나는 또 다른 내가 되어갔고 예전의 나는 더 이상 없었다.
3학년이 되었다. 나는 이미 깊은 자만에 빠져 있었고,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이것이 문제가 아니라 더 이상 나는 예전의 나를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모든 걸 내 나름대로 해석해 버리면 그대로 편했고, 혼자 있는 것에는 이미 충분히 익숙해 있었다. 누가 욕을 해도 더 이상 큰 충격은 받지 않았고, 오히려 혼자 있기를 바랬다.
깊은 자만에 빠져 있다는 걸 나는 그 당시에도 알고 있었다. 근데 왜 빠져 나오려 하질 않았는가...어쩌면 더 슬픈 일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미 예전의 나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있었다. 깊은 자만은 더 이상 나를 사람들이 경계하는 것에 그치게 하지 않고 만날 때마다 욕을 하게 만들었지만, 이미 욕을 먹는 것에는 익숙해져 있었고 그냥 사람들을 두려워하게 되지 않았다는 것이 좋았다. 그것이 이상한 방법이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3학년에 올라갈 때는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이 절반이라 힘든 건 별로 없었다. 3학년 예비 모임에서 우리 학교 짱이 나한테 친한 척을 했었는데, 아마도 나를 동정해서였을 것이다. 나는 단지 이상한 놈이었을 뿐이지 싸움을 못하는 피래미였고 그 녀석은 초등학교 때부터 날리던 놈이었다. 안산에는 중앙중학교라고, 안산에선 제일 유명한 중학교인데 그 녀석은 거기서 짱을 먹고 나온 놈이다. 그만큼 유명한 놈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녀석의 관심을 무시했다. 왜냐하면 나의 자만은 끝없이 치솟아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힘을 과시하기 위해 그런 녀석 옆에 붙어 있을 필요가 없었고, 그냥 혼자 있기를 원했다. 나는 제 딴에 외로운 늑대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3학년 때의 일은 거의 빠짐없이 기억할 수 있는데, 자만 때문에 나는 이제는 욕만 많이 얻어먹었고 공부는 여전히 하지 않았으며 항상 여자 생각만 했다.
원곡 고등학교 아주 가까이 에는(10미터밖에 안 된다) 관산 도서관이 있는데, 나는 점심시간마다 거기를 갔다. 욕을 먹는데는 익숙해 충격을 받지 않더라도 역시 마음이 괴로운 일이라 점심도 먹지 않고 매일 점심 시간이 끝날 때까지 거기에서 책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가끔가다 너 어디가냐라고 애들이 물었지만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그것도 곧 물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이미 잘하는 건 축구밖에 없고, 아무 것도 못하는 병신이면서 잘난 척만 하는 놈으로 통했다. 그렇게 애들의 미움을 샀지만 자만이 점점 커지면서 사람을 무서워하는 정도도 점점 작아졌고, 3학년 후반에는 반 동기들과 그럭저럭 지낼 수 있었다.
담임 선생님은 공부도 안 하고 모든 것에 전혀 관심이 없는 나를 싫어했다. 나는 맨날 지각을 해서 맞았고 교무실에 불려가서 혼나고 맞았다.
내가 3학년 때 잘하는 건 축구밖에 없다고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나는 학교에 있으면서 축구할 때만큼은 기분이 좋았다. 내가 못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고 특별히 노력하는 것도 없는데 축구만은 정말 잘됐다. 내가 생각해도 신기했고, 마냥 좋았다. 축구공이 없을 때는 교무실에 가서 내가 훔쳐왔다. 이미 교무실에는 단단히 찍혀 있는 신세라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당연히 나쁜 짓인데도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축구공 훔치기를 성공할 때면 나는 내가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했다는 걸 기뻐했다.
하지만 모든 감정이 이상한 방법으로 살아나는 만큼 우울한 마음도 빠지지 않았다.
나는 이제 우는 대신 우울한 마음에서 내 자신의 진정한 처지를 느꼈고, 그것을 마스터베이션과 만화책, 그리고 운동으로 해결하려 했다.
3학년 때 아버지가 내 방에 샌드백을 달아주셨다.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전에 살던 작은 방에서 제일 큰방으로 옮겨 주셨는데 거기에서도 역시 밤마다 음악을 들었고, 자기 전에는 한시간에서 삼십 분씩 운동을 했다. 그러면서 정신적 자만심에 육체적 자신감이 따라 가는 걸 느꼈고 나는 거기서 쾌감을 느꼈다.
2학년 후반부터 야간자율학습이라는 게 생겼다. 나도 야자가 생긴 걸 싫어하는 다른 애들을 따라서 싫어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학교에 있는 건 정말 지옥이었다.
2학년 때는 매일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그것만 봤다. 나는 선생님과 마주 선 두 번째 자리에 앉았는데 2학년 때라 그런지 담임 선생님은 내게 재미있냐, 가끔씩 공부 좀 해라라는 말만 하시고는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
3학년 때 나는 한 가지 방법을 생각했다. 야간자율학습 시간 중간에 있는 저녁시간에 집에 다녀오는 것이었다. 학교와 집은 상당히 가까웠다. 혼자 있길 원하고 언제부터인지 걷는 걸 좋아하게 돼서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그 생활은 가끔씩 집에 가지 않는 것, 그리고 후반에 수능을 치기 위해 바쁘기 전까지 계속됐다.
수능...내게로 수능이라는 건 중요하게 다가왔다. 왠지 마냥 무시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거였다. 근데 무섭거나 불안한 건 전혀 없었다. 그건 자만심 때문이었다. 그리고 세상을 너무 몰랐었다.
수능 공부에 몰두하려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별로 효과는 없었지만 학교 생활을 견디는 데 좋은 수단이었다. 그러나 집중은 역시 되지 않았다. 이때부터 나는 다시 예전의 나를 진심으로 찾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 동안 공부를 안 해서 몰랐지만 이 상태의 나는 전혀 집중을 할 수 없는 병신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자만심은 줄어들지 않았지만, 당황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한동안 나를 찾으려던 노력을 하다가 결국은 다시 포기를 하고 말았다. 그리고 역시 수능 공부도 이어서 때려 쳤다...
수능 점수는 당연히 나빴다. 내 입으로 차마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수능은 끝났고 나는 별 걱정 안하고 그냥 놀았다. 놀았다고는 하지만 나 혼자 놀았다. 더 이상 배울 게 없기 때문에 학교는 무지무지 빨리 끝났고 나는 그게 너무 좋았다. 그러나 집에 들어가는 순간엔 외로움이 밀려왔다. 그렇지만 다시 잊고 나는 오락이나 만화책이나 음악, 아니면 그냥 멍하니 있었다. 모든 게 끝난 것 같았고, 마음은 조금 평화로워졌다.
그러나 이제는 외로움이 밀려왔다. 애들은 알바를 해서 돈을 번다고 대학 원서를 쓴다고 아니면 끼리끼리 모여 술을 마시고 논다고, 그러고 있는데 나는 항상 도망치듯 학교를 빠져 나와 오는 곳은 집뿐이었다. 나는 소외감을 느꼈고, 외로운 게 제일 고통스러워졌다.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게 시간은 지나갔다. 이제 졸업식이었고, 나는 이미 부모님과 사이가 충분히 나빠져 있었다. 나는 졸업식이 끝나고 혼자 도망치듯 학교를 빠져 나왔다. 그렇게 나의 고등학교 생활은 끝났다...
나는 오히려 이때만큼은 나의 자만심이 고마웠다. 그것으로 나의 소외감을 보충할 수 있었고 나름대로 웃으면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왕따 신세에 졸업식을 쓸쓸하게 치른 이상한 놈으로 보였겠지만 말이다...
3학년 때 내 앞에 앉았던 애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너 18명이지? 어? 나는 무슨 소리인가 하고 어리둥절했다. 그 녀석은 내가 다중인격자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중인격은 아닌데..근데 나는 그 녀석의 그 말이 고마웠고 지금도 고맙다. 왜냐하면 그건 욕밖에 듣지 않던 내게 가장 따뜻한 관심이었고 같은 입장에서 보아 준 말이었다. 어쩌면 그 녀석의 말이 나를 심리학에 빠져들게 만든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심리학이라는 학문은 그 이후로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번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이건 내가 마냥 괴로워했던 얘기이고 재수 생활을 하면서부터 나는 점점 나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반응이 좋으면 그것도 얘기하겠다.
첫댓글 저도 고3때 ㅡㅡ; 예전의 자신을 찾으려고... 정신적 방황을 ㅠㅠ 공감..
로그인하게 만드는 글이예요...다음얘기도 듣고싶네요!
와타나베..상실의 시대 와타나베를 아시나요? 그냥 생각나서....난 생각해요. 자신만의 삶을 사는거 그 것도 아주 툭별하지 않나요? 그렇게 살아서 행복하면 되지...
해변의 카프카..생각;
으아아아아악!!!!!!!으아아아악!!!!!!!!으아아아아악!!!!!!! 이 글을 읽으니.....소리를치고싶어졌다........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자만심이라는것.어려운현실을 견디기위해 자신이 만들어낸 일종의 버팀목이 아니였을까.
버팀목이라고 말해주시니 고맙습니다....위로가 되는 말이네요^^ 흠...해변의 카프카는 읽었고, 상실의 시대 읽어볼려고 하는 데 빌릴 수가 없어서;; 아, 그리고 원하신다면 다음 얘기도 올리겠습니다.
앗~저두 오뎅님의 글을 읽으면서 무라카미의 소설 상실의 시대 주인공 와타나베가 생각 났었는데!! 정말 신기하네요.. 전 이 카페에 들어오면 항상 오뎅님의 글을 먼저 찾아요.ㅋ 다음 글도 기대할 께요
감사합니다^^ 재수 할 때의 글은 생각하기 괴로운 게 아니라 생각하기 부끄러워서 오히려 더 망설이고 있는데, 마음 다잡고 이번에도 많이 봐주셨으니깐 올리겠습니다.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