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동포에게 바라는 바 ]
몸은 여덟 자나 되며 허리는 열 아름이나 되며 눈은 전기 등같이 밝으며 팔은 전선 대같이 굵을지라도 이외에 불가불 또 한 가지가 더 있어야 사업을 이루리니 한 가 지는 무엇이뇨. 터럭같이 가는 마음이니라. 뛰면 열 길을 솟으며 들면 천 근 올리기며 용맹하기는 범에 비하며 경첩하기는 새 보다 앞설지라도 이외에 불가불 또 한 가지기 더 있어야 공명을 세우나니 한 가지 는 무엇이뇨. 무더기같이 파는 성질이니라. 이 말은 다름을 이름이 아니라 자세하고 주밀치 못하면 비록 합소문(閤蘇文)의 의 기에 대조영(大祚榮)의 호용(豪勇)을 겸하고 비령자(丕寧子)의 충절에 김은현의 여 력을 가졌을지라도 성취치 못하다 함이로다. 「옆으로 갓!」만 하면 독립도 찾으며 자유도 얻는다 함은 너무 못 생각할 말이라. 나도 용감을 반대하는 자가 아니로되 단 용맹은 나의 반대하는 배라. 지금에 천하 장사가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만일 그 장사가 그 앞에 산이 높은지 물이 깊은지 모 르며 그 위에 바람이 있는지 비가 오는지 모르고 덤비면 싸움마다 패할 뿐이라. 고 로 본래 물을 밟듯 하며 깊은 골 울림 한 듯 하라 한 말이 금과 옥 같은 격언이니 라. 나파륜(拿破崙)을 많이 숭배하지마는 나파륜의 당년(當年)에 유로파(歐羅巴) 각 국 에 횡행한 역사가 칼에서 만난 것이 아니며 총에서 만난 것이 아니니라. 나파륜의 패한 후에 그 외국군대의 사정을 조사한 글을 보고 그 정하고 자세한 것을 놀래며 탄식하지 않는 이가 없었나니 희(噫)라, 나파륜의 백전 백승한 원인이 예 있도다. 이를 모르고서 나파륜을 숭배하면 미친 사람이 되며 추한 사내가 되어 인간에 한 웃음 재료를 끼칠 인물이 될 따름이니라. 나의 생각이 진리의 왼 부분이 될는지는 모르나 그러나 확실히 반 부분의 진리는 되는 생각이라. 그런데 이 생각을 가지고 청년계의 상태를 살펴보건대 애석한 일이 하나 둘 뿐이 아니노라. 위선 그런 방면을 대강 들어 말하건대, 책을 가지되 창가 책이나 찬미 책을 가진 이는 많으나 조금 연구에 힘드는 책은 가진 자가 적으며 신문을 보되, 청국 역병 이야기나 이토 전쟁(伊土戰爭) 이야기나 있는가 뒤적뒤적하여 보다가 그 외에 다른 이야기만 있으면 신문 장을 툭 던지고 보지도 아니하며 본국 소문을 듣더라도 남산 이 무너지고 한강이 뒤집힐 만치 크나 큰 일이 났다 하여야 귀를 기울이고 그 외에 경제 방면이나 교육 방면에 물 젓듯이 젖어 들어가는 방면은 어떻게 되는지 생각지 도 아니하며 눈앞에 무슨 풍파나 있으면 갑(甲)이 옳다 을(乙)이 긇다 하고 팔을 뽐 내지 만은 한 가지 일이라도 조리 있게 생각하여 어려운 가운데서 성사하는 이는 없으며 비위에 틀리는 사람이 있으면 주먹을 너무 쉽게 내어들고 그 시비 곡직을 찬찬히 생각할 줄은 모르며 명색이 한국 사람이라 하면서 한국 사적이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되 부끄러워 아니 하며 오늘 우리나라에 아무리 사람이 없다 하지마는 그래도 내외 각지에 흩어진 인물이 더러 있나니 아무는 이 방면으로 향하며 아무는 저 방면으로 향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좋든지 반대하던지 하는 것이 모두 소경의 지팡이로 하며 더욱 나의 일은 남이 못하는 것이니 나의 자격은 무엇에 합당한가. 생각하여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깨질지라도 나의 잡은 바는 변치 않을 지어 늘 이 제 자기가 자기의 설 땅을 정치 못하고 동서로 방황하는 도다. 나라를 사랑하자, 동무를 사랑하자 하고 이야기 삼아 하며 노래 삼아 할지라도 이 와 같이 추하고 거칠고 는 나라와 동포에 리(利)는 주지 못하고 해만 끼치기 쉬울 지라. 그런 고로 누가 나에게 물으면 수병 백만을 고기 배에 장사하던 청천강 을지 문덕(乙支文德)을 배우지 말고 석다산 높은 봉(峰)에 공부하는 을지문덕을 배우며 당나라 장수를 보검으로 호령하던 김유신(金庾信)을 본받지 말고 중악산 깊은 굴에 기도하던 김유신을 본 받으라 하노라. 사람이란 것이 난대로 그저 두면 공자나 범인(凡人)이나 일반이리니 공부에 여러 가지 공부가 다 있지마는 그 중에 몸을 닦고 마음을 기르는 공부 곧 수양(修養) 공 부란 것이 제일 큰 공부라. 이 공부가 있어야 그 추하고 거친 성질을 변화할지라. 우리나라 쇠망한 원인이 이에 있다 저에 있다 하지마는 나는 말하기를 국민 품성의 타락)墮落)됨이 가장 큰 원인이라 하노라. 품성은 또 무슨 원인으로 타락하는가 하 면 나는 또 말하기를 불교는 잔명 하고 유교도 부패하여 드디어 국민을 지도하여 갈 수양케 하는 선생이 없는 것이 또 그 원인이라 하노라. 우리나라가 삼국시대에 제일 강성치 아니하였던가. 그런데 그 시대에는 팔관(八關) 의 계와 풍월(風月)의 도가 있어 사람마다 수양에 힘써서 국민의 품성이 제일 높던 시대였더니라. - <勸業新聞> 第4號 1912년 5월 26일 -
[ 안 잘 시간에 자는 잠들 ](단평)
눈에 허욕이 가득하여 어찌하면 일 아니하고 편히 앉아 먹을까. 아무리 하여도 편히 앉아먹자면 야휘 밖에 쓸 것 없다. 그러나 야휘 삼십 칠 문에 어느 문이 나올는지 꿈이나 좀 꾸리라하고 초저녁부터 목침 베고 누니 이는 남 자기 전에 혼자 자는 잠이오 돈이나 두어 냥 생기면 식구야 먹든지 굶든지 나 모르겠다 약 담배 한 코나 사먹으리라 하고 길다란 쇳대 물고 들어 누워서 밤새도록 구루룩 거리더라도 잠 한 숨 못 자고 대낮에야 대문 걸고 눕나니 이는 남 잔 뒤에 혼자 자는 잠이로다. 희라, 공 등은 무슨 사람이관데 남자는 때에 자지 않고 따로 시간을 찾아 자는지 - <勸業新聞> 第4號 1912년 5월 26일 -
[ 한가지씩 할 일 ]
대한인 사회를 보면 제일 불가한 일이 있나니 한 사람이 열 사람 백 사람의 일을 하려함이로다. 오늘 날 한국 전 토를 위하여 일하자면 일할 일이 많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교육도 급하며 실업도 급하며 도덕 문제도 급하며 단체사업도 급하며 정신 배양도 급하며 풍속 개량도 급하며 해는 서산에 갈리었는데 이 방면 저 방면에 할 일은 태산같이 쌓였도다. 일 있는 이의 마음이 이때에 어찌 급하지 않으리요. 그러므로 동으로 가 랴 하고 서쪽으로 돌아가려 옆으로 나아가다가도 위로 (이하 원본 판독이 불가능해 서 소개하지 못함: 編者 註) 지나간 수년의 내지 일을 생각하여 볼지어다. 광무(光武) 9년의 즈음에 국민이 처음 타락되며 인심이 새로 봉기하여 각종 사회에 조직되는데 그 중에 종교회도 있으며 실업회도 있으며 교육회도 있으며 학우회도 있으나 그러나 각 회의 내용을 보면 사 람으로 하여금 크게 이상한 감념을 안게 하였도다. 저녁에 실업회에 가서 보면 아 침에 종교회에서 보던 사람들뿐이며 오늘에 학우회에 가서 보면 어제의 교육회에서 보던 사람들뿐이니 희(噫)라, 이들의 일신에 무슨 만능력(萬能力)이 구비하였관대 보라 되는 동시에 브란튼도 되며 칸트 되는 동시에 스패인도 되리요. 이러므로 그 구경의 결과를 보면 학교 하나도 완전히 성취 못하며 실업 한 개도 확장치 못하고 백구를 불렀었도다. 요즘 해외 한인의 사회는 이와 같이 복잡도 못하지마는 그 매는 떼꿩에 매 놓은 것 같이 부산하나니 어찌 앞 수레의 엎어짐을 경계치 못함이 이에 이르나뇨. 그 불가 함이 셋이요. 넷째는 당파이니 무엇이니 하여도 해외 한인의 호불호(好不好)한 광경을 야기(惹起) 함도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사(志士])로 저명하신 이들이 나는 무엇할 사람 이니라. 나는 무엇으로 목적하리라 하여 단순히 한 길로 나아가는 것은 없고 네가 정치가이면 나도 정치가라 함에 내가 교육가이면 너도 교육가라 g여 회 하나가 조 직되면 운명이 일년도 못 가는 회지만은 권리잡기에 열심하며 학교 한 개가 성립되 면 학도가 수십 명에 못하는 학교지 만은 기관 주기를 경쟁하니 두 힘이 서로 만나 매 두 힘이 서로 없는데 돌아감은 물리학의 공례라. 고로 백 천 가지 일을 내가 다 하고 싶지만은 많음 내 한 가지 일도 되었다 할 것이 없나니 그 불가함이 넷이요, 맺음은 한 가지도 없고 생각만 여러 가닥으로 나가는 고로 허다(許多) 사업에 마 음 부칠 곳이 전혀 없어 금 같고 옥같이 귀한 세월은 살같이 달아나는데 유의유식 으로 장기를 삼으며 한담 객설(閑談客說)로 공부를 삼아라 하며 방탕하여 세상의 한 기물이 되나니 그 불가함이 다섯이라. 옛말에 하기를 전일의 잘됨이 훗일의 스승이니 황잡(荒雜)한 사상을 버리고 전일 한 사상을 가져 허명(虛名)을 구치말고 실제를 힘쓰며 범위를 널리지 말고 목적을 정할 지어다. 을지문덕은 육전(陸戰)만 하고 해전(海戰)을 못하였으며 이순신은 해전만 하고 육전 은 못 하였나니 나는 새의 발이 둘이요 무는 발톱이 없다 함이 이를 이름함이니라. 그런데 조선의 인물들은 각 방면 사업에 다 영웅이 되려하는 자가 많도다. 그 마음 큰 것은 우러를 만 하나 그 미혹(迷惑)한 것은 탄식할 만 하도다. - <勸業新聞> 第7號. 1912년 6월 7일 -
[ 국수주의(國粹主義)와 해외 동포 ]
나라있는 민족이라도 국수주의(國粹主義)가 없으면 마치 나라 없는 민족이라도 국 수주의가 있으면 흥하나니 동서양 역사에 상고함에 털끝만치도 틀리지 않는 사실이 로다. 국수(國粹)가 무엇이뇨. 간략히 말하자면 곧 내 나라의 좋은 것이 되니라. 자세히 말하자면 곧 내 나라의 말, 내 나라의 글, 내 나라의 역사, 내 나라의 아름다운 풍 속, 습관 같은 것이니라. 국수주의가 없으면 왜 망하나뇨. 대저 나는 내로라 하는 생각이 사람의 사람되는 바며 나라의 나라되는 바라. 어떤 사람이든지 제 몸을 개와 소같이 천하게 알면 남 이 개와 소같이 천하게 대접하여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개와 소같이 부림을 달게 백 이어 마침내 개와 소의 한 가지가 될 뿐이라. 나라도 이와 같아서 온 나라 백성의 생각에 내 나라는 원래 볼 것 없는 나라이며 남만 못한 나라이라 하여 스스로 약하 고 천한 나라로 알면 그 기운이 날로 쇠하여 망함에 이름은 자연한 이치니라. 수백 년 래 대한의 역사를 돌아보면 국수를 보수치 못할 뿐만 아니라 곧 경멸이 역 이며 귀찮게 여겨 내가 나를 우습게 알았으니 어찌 한심치 않은가. 그 중에 한 두 가지를 들건대, 본국 말은 조국정신을 보존하는데 제일 중요한 자이어 늘 외국말의 세력에 날마다 핍박(逼迫)을 받아 고래로 전하는 말에 없어진 것이 부지기수이며 본국 글은 본국 말로 조직하여 본국 사람이 알기 쉬우며 또 본국 정신을 발휘하는 것이어 늘 그 이름을 언문이라 하여 천대하였도다. 팔도의 산천을 다녀볼지어다. 까치 내니, 벋 내니, 뚝섬이니, 딱 섬이니, 먹오 뫼니, 꽃 뫼니 하여 본국 말로 그 이름을 가진 땅은 오직 작은 물, 작은 산, 작은 섬 같은 것 뿐이라. 한라산, 지리산, 한강, 압록강 같은 큰 산 큰물은 본국 말로 하던 이름을 다 잃었으니 여항(閭巷)의 이야기를 들어볼지어다. 퇴계 선생이니, 율곡 선생이니, 오성(鰲城) 대감이니, 오리(梧里) 대감이니 하여 그이의 성명과 사적이 대강이라도 명산에 유전된 본국 선비는 오직 삼 사 백년 이래의 가까운 이름 뿐이라. 삼국, 남 북조, 고려시대 같은 원래의 인물은 몇 개를 알지 못하는 도다. 희(噫)라, 국수가 이같이 파괴되고 쇠패되었나니 망치 않고자 한들 어찌 얻으리요. 지금에 이르러서는 이를 한하며 이를 아파하여 내 것을 사랑하자, 내 것을 보수하 자, 하는 국수주의가 봄 풀의 싹 나듯 하지마는 다만 저 일본의 세력이 동해바다 조수의 밀리듯이 밀리어 들어와서 그 국호를 없이하는 동시에 그 새로 나는 국수주 의의 싹을 뿌리까지 솟구려하는데 일변으로 소학교의 이 일을 장려하여 사천 년 상 전(相傳)하던 조상의 말을 멸망시키려 하며 일변으로 사서 류(史書 類)의 저술을 자 유로 못하게 하여 이천 만인이 자기 조상의 영화로운 사적을 모르게 하며 고대의 성곽과 궁실을 훼절하여 한국 사람의 눈에는 자가(自家)의 크고 굉장한 것을 못보 게 함에 고기(古器) 고물(古物)도 얼마큼 자국(自國)의 위대한 것을 상상할만한 자 는 모두 없이하여 한국 고 문명을 항상 말살하려 하나니 이때에 비록 남원 양성지 (梁誠之) 씨의 손을 빌려 국풍(國風) 보존을 주장하며 수산 이종휘(李宗徽) 씨의 붓 을 들어 선민(善民) 숭배를 제창하여 만 분의 일을 붙들고자 하나 또한 무슨 수로 하리요. 그런즉 국수주의를 발휘할 자도 도리어 해외동포에게 바랄밖에 없도다. 강론도 자 유로울 만 하며 출판도 자유로 할 만 하여 사상을 전파하는데 방애(妨碍)가 없나 니 만일 좋은 청년들을 몯우어 그 신성한 뇌에 이 주의를 잘 수입하면 장래에 새끼 가 손자를 낳고 손자가 증손을 낳아서 외지에서 내지로 전파하며 내지에서 외지로 전파하여 단군 조선 이천 만인이 개개히 나는 내로다 하는 생강이 나면 하늘이 어 찌 그 값을 아끼리요 그러하나 대한 민족 중에 단체와 마신의 의 남이 왜 이리 더딘고. 희라! - <勸業 新聞> 第8號 1912년 6월 10일 -
[ 강동 동포의 공익 사상 ]
우리 한인이 비록 이와 같이 그 지경에 빠졌었으나 그 기로의 무궁한 낙관이 있는 것이 무엇으로 그렇다 하는고. 우리들의 공익사상이 남보다 더한 고로 그렇게 알겠 다.(이하 판독 미상) 남의 나라 사람에게 질 것이 없나니 오호라, 또한 어찌 기이하 지 않은가. 이제 그 사실의 개략을 보건대 년전(年前)의 의병도 있으며 몇몇 개의 학교도 있으 며 의사를 위하여 수양모의 정성을 표하며 신문을 위하여 유지의 연비를 당하여 사 오 년 래 강동 일 폭의 다소간 신 사업 성취된 것과 태반은 우리 동포가 피땀 흘리 며 모은 돈으로 공익에 씀을 아끼지 아니한 데서 나왔도다. 만일 이런 일을 부요는 나라사람이 할 것 같으면 조금도 기이할 것이 없지마는 안 주하고 어려운 한인이 이곳에 있음은 참단 복을 이름이라. 시험하여 그 생활 장래 를 볼지어다. 잘 보면 단칸에 굴뚝만 우뚝 하며 입은 것을 보면 백공 천창에 모양 이 남루하며 먹는 것을 보면 일일 양 끼에 식품이 추악하며 생애를 보면 지게 노동 이나 농막 고용이나 철도 역장이나 금광 채금이나 그런 것 뿐이요 그 외에 혹 만원 천 원 가치 되는 재산 가진 이도 있지만은 이는 곧 새벽에 별구경하기를 가없는 것 이라. 그간 구함이 이와 같되 공익사상은 남보다 뒤지지 만은 이 어찌 탄복하지 않으리요. 그러나 나는 일변으로는 탄복하며 또 일변으로는 애석히 여기는 일이 있노라. 대저 동포가 공익에 쓰는 돈은 피 말리고 침 흘리어 모인 돈이며 입을 것 못 입고 먹을 것 못 먹어 모인 돈을 아끼지 않고 쓰는 것은 무슨 말이뇨. 다만 내 몸보다 몇 백 배 큰 사회의 일이 잘되며 내 집보다 몇 천 배 큰 나라 일이 잘된다 하여 내 몸과 내 집에는 못 써도 공익에 씀이니라. 그런즉 그 돈을 어느 학교를 위하여 쓰거든 그 학교의 되고 안 되는 것을 알아야할 지며 어느 회사를 위하여 쓰거든 그 회사의 되고 안 되는 것을 알아야할 지어늘 이제 그렇지 못하여 돈을 한 번 쓴 뒤에는 그 돈이 하늘로 넘어갔는지 땅으로 들어갔는지 모르고 있다가 얼마 후에 그 학교나 그 회사가 안 된다하면 단지 뒤에 먼저 비평만 할 뿐이로다. 그도 그러하거니와 또 사회에 헌신한다 교육에 유지한다 하는 이들이 동포의 이 좋 은 사상을 이용하여 실지의 사업을 성취하여 희망의 빛을 조금이라도 동포의 눈에 비추게 하였으면 그 공익사상은 장마에 물 붓듯 하며 한인 사업은 순풍에 배 가득 하여 오늘 신문지 위에 노래하고 찬미할 일이 많을 지어 늘 이제 그렇지 못하고 아 침에는 수라장이요 저녁에는 부하향에서 세월을 보낼 뿐이로다. 이왕에 말한 바와 같이 공익에 금전 아끼지 않는 것은 우리 동포의 아름다운 사상 이니 아무쪼록 이 사상을 북돋우며 길러서 점점 자라가게 하여야 할 터인데 그 방 법은 어디 있느뇨. 오직 일반 유지는 이 마음을 맹서하며 몸을 채찍 하여 이 사상 을 진흥케 할 신용을 닦으며 각처 동포는 문견(聞見)을 늘리며 지식을 확장하여 이 사상을 활동시킬만한 능력을 기름에 있느니라. - <勸業新聞> 第9號 1912년 6월 17일 -
[ 동포사이의 사랑 ]
동포가 사랑해야 동포를 사랑하리라 하는 말은 오늘 날 오늘 날 거의 절 당의 염불 소리가 되었도다. 그러나 이 염불 소리 속에 오도(悟道)하는 중은 우에 이리 보기가 어려운가. 기자 왈, 희라. 서로 사랑 없기는 우리나라 사람 같은 사람이 없겠도다. 자상 달 하 히 모두 내 일신만 알아 내 백성을 죽이려고 외국군사 부르기를 주저치 않으며 내 동료의 권리 빼앗으려고 외국 사람의 힘 끌기를 부끄러이 안 하여 서로 시기하며 서로 릉답하며 서로 먹으며 서로 잡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후회할 만도 하니라 만은 상금(尙今)까지도 악습이 남아있어 세력 있는 자는 없는 자를 해하며 없는 자 는 있는 자를 시기하고 없신 역이며 없는 자는 있는 자를 속이어 무형한 칼과 무형 한 창으로 서로 더하여 개인의 영업이 이를 인하여 해산되는 일이 시시로 소식이 있나니 한층 지옥에 빠진 것이 오히려 부족하여 몇 십 층을 더 장만하려 함이 아닌 가. 문명인사로 자처하며 문명사업을 하려 한다는 사회에 가보아도 간간 이런 악 소식 이 있어 네가 나를 해한다 내가 너를 해한다 하나니 나는 이를 다 풍설(風說)이요 와전(訛傳)으로 아노라. 그러하나 이 말 나는 것이 벌써 도덕 부귀의 한 표증(表證) 이로다. 한 집 식구로서 서로 몹시 하여 부자 형제가 이류(移流)되어 동리에 다니며 피차 훼방하며 질욕(叱辱)하면 그 집이 망하나니 한민족도 이와 같아여 서로 사랑 치 못한 결과는 망할 뿐이라. 집이 망하면 내 몸도 망하여 남에게 종이 되어 천대 받나니 동포를 사랑치 못하다가 그 민족이 망하는 구덩이에 바지면 내 몸이 어찌 홀로 귀하리요. 고로 건축엔 이집트만 하며 미술엔 바빌론만 하며 상업엔 후에닉기만 하며 모든 재 주가 구비할지라도 오직 동포를 사랑치 못하는 민족이면 볼 것 없는 민족이며 용감 엔 삼손만 하며 변절엔 새로만 하며 수단엔 빌라포만 하며 온갖 능력이 완전할지라 도 동포를 사랑치 못하는 인물이면 쓸데없는 인물이라. 세상의 한 배척받는 악마가 될 뿐이니라. 모세가 그 백성을 구함에 또한 어찌 다른 방법이 있었으리요. 오직 사랑 한 가지로 만 한 것이라. 유대 사람이 남에게 맞는 것을 보고 성사를 불고하고 달려들어 구원 하며 유대 사람이 서로 싸우는 것을 보고 곧 말리어 가로대, 네가 남의 나라 사람 과 싸우지 않고 어찌 내 동포에게 싸우나뇨 하여 자기가 지극히 동족을 사랑하며 또 동족을 지도하여 서로 사랑케 하더니 마침 산귀신이 되어 무덤 속에서 우는 유 대 족을 건져 광명한 길로 나아가게 하였도다. 세계 각국 민족이 각기 스스로 단결 하여 노력과 완력으로 성패존망(成敗存亡)을 다툼은 우리의 당한 시대이요 망망한 대양(大洋) 가운데에 조각배를 타고 풍랑을 만나 좌우를 돌아보아도 구하여 줄 이 없음은 우리의 처한 경우니 이 시대 이 경우에 있어서 참 마음 참 뜻으로 내 동포 를 사랑하여 나는 너를 보호하며 너는 나를 구원하여 쓰고 닮을 같이 하며 쉽고 어 려움을 함께 하지 않으면 점점 우리 신세만 참혹하게 될지니라. 마음이 달라 사랑 못한다 함도 안될 말이라. 천 사람이 모이어도 얼굴 같은 이가 하나도 없다고 어찌 마음 같은 사람이 쉬우리요. 형제간에도 마음 같으 란 법이 없 고 부자간에도 마음 같으란 법이 없지만은 그러하나 형은 우애하며 아우는 공경하 고 아비는 자애하며 아들은 효도함은 오직 한 가족 됨을 위함이니 아무리 내 마음 에 합지 않는 동포일지라도 동포의 의를 생각하여 동포로 사랑하고 분이 있더라도 이를 참으며 미움이 있더라도 이를 견디며 책망할 일이 있거든 책망은 할 지언정 뒤에서 모해(謀害) 말며 경쟁할 일이 있거든 경쟁은 할지언정 속으로 저회(低廻) 말 고 더욱 내 집서 흉을 남에게 전치 말며 내 형제의 시비를 담 넘어가게 말고 동포 를 대하거든 먼저 사랑 무자를 읽을지어다. 이리하여야 무엇이니 우리의 바라는 것 이 혹 우리의 눈 앞으로 오리라 하노라. 유대 구교(舊敎)에 「내 나라 사람에게는 선을 행하고 남의 나라 사람에게는 악을 행하라.」함이 괴악하고 우매하여 바로 듣지 못할 말이지만은 그러나 남의 나라 사 람에게는 선을 행하고 내 나라 사람에게는 악을 행하느니 보다는 그 위이니라. - <勸業新聞> 第13號 1912년 7월 15일 -
[ 日人의 간사한 수단 ]
일본이 우리나라를 합병한 후로 우리나라에 대하여 온갖 학정(虐政)을 다하면서 외 국에 공포할 때에는 언필칭 우리 일본이 조선 사람을 문명한 정치로 다스린다 함에 신성한 혜택으로 인도한다 하며 별별 거짓말로 천하 사람들을 속이려함은 세상이 다 아는 바라, 더 말할 것도 없지만은 이제 고문(拷問)문제에 대하여 저 일인들이 또 기기 괴괴한 거짓모양을 하여 자기의 악한 일을 가리우고자 하는 도다. 저 일인들이 우리나라 사람에게 대하여 질문할 때에는 반드시 고문제도를 쓰며 그 고문에 쓰는 형벌은 세상에 다시없는 지독한 형벌이라. 학춤, 난장, 죽침(竹鍼), 철 릭 기타 여러 가지 악한 형벌을 다 하므로 약한 자는 매 아래서 죽고 강한 자는 병 신 됨을 면치 못하매 조급한 자는 자결까지 하나니 고문제도를 쓴들 이런 고문제도 야 어느 세상에 다시 있으리요. 이번 소위 사내(寺內) 암살 음모사건은 그 영향이 외국사람에게 미침으로 외국사람 들이 이 일을 묘사코자 하는 중에 재판정에서 피고들이 이 고통 등으로 고문을 견 디지 못하여 헛말로 공모(共謀)하였다고 변명함에 외국사람들이 고문이라는 말에 놀래어 이 일에 주목한 즉 저 간사한 일인들은 그 흉악한 고문의 사실이 세상에 탄 로되면 외국 사람의 물의를 일으켜 이왕 자기들의 거짓말하던 것이 허위로 돌아갈 까 염려하여 이에 기괴한 수단을 다하여 고문 사실을 가리우고자할 새 지방법원의 검사는 공공연하게 재판정에서 선언하여 왈, 피고들은 다 고문을 당하였다 하나 우 리는 결코 고문한 일이 없은 즉 고문이란 말은 허무한 말이라 하며 외국통신원들이 경시총감부(警視總監府)를 방문하여 죄인 심문하는 처소를 보자 한 즉 걍시총감부 장은 다른 좋은 방에 화려한 자리를 펴고 고문하는 형구(刑具)는 하나도 보이지 않 게 하고서 그 통신원들을 인도하여 보임에 왈, 이런 좋은 심문실에 어찌 고문할 리 가 있느냐 하며 일인의 각 신문사들은 분분히 붓을 들어 세상에 공포하여 왈, 문명 한 일본 관리가 어찌 고문을 하였을 리가 있느냐 하여 저 일인들이 상하를 물론하 고 허무맹랑한 말로 세상사람을 속이려 하는 도다. 원래 오늘 날 문명한 나라에서는 죄인을 심문하되 고문하는 법이 없는 것이라. 만 일 문명한 나라에서 고문 같은 일이 있으면 그 나라 인민은 정치혁명도 일으킬 하 며 이웃 나라 사람은 인도(人道)문제를 제출할 만 하나니 이제 일인이 우리나라 사 람에게 대하여 감옥제도는 십 팔 층 아비지옥(阿鼻地獄)보다 더 흉악한 감옥제도를 쓰며 죄수를 대우함에는 사람은 못할 일을 함에 피고를 심문함에는 야만도 쓰지 아 니할 고문을 하면서 이에 외국 사람에게 대하여 말할 때에는 가장 문명한 체 하고 온갖 거짓말을 다하니 저 일인들이 본래 거짓말을 잘하지만 이런 거짓말이 어찌 입 으로 나오는가. 슬프다.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은 눈이 있어도 볼 수 없으며 귀가 있어도 들을 수 없으며 입이 있어도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 그러므로 저 일인들이 저희 마음대 로 이런 악한 일을 하나니 동포들이여, 생각할지어다. 언제나 우리도 남과 같은 감 옥제도를 마련하고 죄수를 문명한 제도로 대우하며 피고를 문명한 제도로 심문하면 서 생활하여볼까. 그러나 이 고문문제 같은 것은 오히려 작은 문제라. 저 일인이 우 리나라 십 삼도로 한 넓은 감옥을 만들었으며 그 안에 있는 우리 동포는 다 일인 밑에 죄수요 우리나라에서 쓰는 일인의 법률정치는 우리에 대한 감옥 규칙이며 우 리나라에 시설한 일인의 포대(砲臺) 병영(兵營)은 다 우리에 대한 큰 형구(刑具)니 언제나 우리가 이 지옥을 깨쳐 광명한 천당을 만들고 천당생활을 하여 볼는지. - <勸業新聞> 第16號 1912년 8월 5일 -
[ 치밀한 생각- 영원한 생각 ]
- 무엇이니 무엇이니 하되 이것이 가장 주의할 곳이로다 -
고기 잡는 자- 있지 아니한가. 성긴 그물코로는 고기를 얻지 못 하나니라. 어찌 고 기 잡는 일 뿐이리요. 온갖 일이 다 그러하니라. 곡식 심는 자- 있지 아니한가. 가을되기 전에는 곡식을 거두지 못 하나니라. 어찌 곡식 심는 일뿐이리요. 온갖 일이 다 그러하니라. 폐일언(蔽一言)하고 치밀(緻密)한 생각을 가진 자라야 성공하며 영원(永遠)한 생각 을 가진 자라야 성공하나니라. 이제 우리 사람은 흔히 생각이 조급하여 영원치 못하나니 이것이 큰 병이로다. 생각이 치밀치 못하므로 경륜에 예산이 없으며 작사(作事)에 규칙이 없어 어제는 이것을 하다가 오늘은 저것을 하며 당장만 볼 줄 알고 앞뒤를 살피지 아니하나니 이에 아무 일도 결과는 적고 실패하기만 좋으며 생각이 영원치 못하므로 능력의 수 양은 적고 성공할 욕망만 급하여 오늘로 독립군을 일으켜 내일로 독립을 찾고자 함 에 큰일만 꿈꾸고 작은 일은 웃나니 이에 아무 일도 실사는 적고 낙심하기만 쉬운 지라. 이것이 어찌 큰 병이 아닌가. 저 나파륜을 보라. 그의 편찬한 법전이 어떻게 자세하고 정묘하던가. 나파륜의 나파 륜 됨은 다만 기개가 장하고 싸움을 잘할 뿐으로 된 것이 아니라 이런 치밀한 생각 이 있으므로 됨이며 또 원(元) 태조(太祖)를 보라. 금(金)나라가 쇠하기 전에는 화림 북녘에서 군대 조련하기로 수십 년을 보내지 아니하였는가. 원 태조의 원 태조 됨 은 다만 용맹이 놀랍고 모략이 많을 뿐으로 된 것이 아니라 이런 영원한 생각이 있 음으로 됨이니라. 아무리 머리는 동철 같고 눈은 번갯 불같으며 쇠 팔뚝에 흥종 목소리요 수단은 비 사맥(比斯麥) 같고 위엄은 윌리엄 같으며 뜻 크기는 합소문(閤蘇文)이요 날래기는 김덕령(金德齡)일지라도 생각이 거칠으며 생각이 조급(燥急) 하고는 성공하기 어렵 나니 우리는 아무쪼록 치밀한 생각을 가져 일에 한갓 덤비지만 말고 정밀하게 하여 일어나기만 하고 거꾸러지지는 말지며 우리는 아무쪼록 영원한 생각을 가져 입으로 큰 말만 말고 손으로 작은 일이라도 하여 물러가지는 말고 나아가기만 할지라. 그 러하여야 우리의 뱃머리가 저 건너 언덕에 닿을 날이 있으리라 하노라. 기자가 이 말을 함은 결코 사람으로 하여금 일에 근신만 하라 함이 아니라 다만 생 각을 치밀히 하여 실패가 없기를 힘 쓰라 함이며 사람으로 하여금 일에 용진(勇進) 치 말라함이 아니라 다만 생각을 영원히 하여 만단(萬端) 없이 나아가기를 힘 쓰라 함이니 우리가 온갖 일에 분주하며 하루바삐 진행하되 생각은 치밀히 하고 영원히 할지요, 우리가 대솔한 일은 대솔히 하고 시급한 일은 시급히 하되 생각은 치밀히 하고 영원히 할지니라. - <勸業新聞> 第17號 1912년 8월 12일 -
[ 이날(是日) ]
단군 개국 사천 이백 사십 오년 팔월 이십 구일 이날은 어떠한 날이요. 사천 년 역사가 끊어진 날이요 삼천리 강토가 없어진 날이요 이천만 동포가 노예된 날이요 오백 년 종사가 멸망한 날이요 세계 만국에 절교(絶交)된 날이요 천지일월 이 무광(無光)한 날이요 산천초목이 슬퍼한 날이요 금수 어별(禽獸魚鼈)이 눈물 흐 린 날이요 충신열사의 피흘린 날이요 애국지사가 통곡한 날이요 우리의 신령한 민 족이 망한 날이요 우리의 신명(身命)이 끊어진 날이요 우리의 재산을 잃은 날이요 우리의 신체가 죽은 날이요 우리의 명예가 없는 날이요 우리는 입이 있어도 말 못 할 날이요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할 날이요 손이 있어도 쓰지 못할 날이요 발이 있어 도 가지 못할 날이요 우리의 조상은 땅 속에서도 눈을 감지 못할 날이요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도 희망 없는 날이요 우리는 살고자 하여도 살 곳이 없는 날이요 우리 가 죽고자 한들 묻을 땅이 없는 날이요 슬프다, 우리 사랑하는 동포여! 이날 이날을 기억할 날을 기억할 날이오 지금 삼 년 전 이날에 원수의 임군 옥민가 사내정의(寺 內正毅)를 우리 대한에 패손하여 수만 명 왜병을 방방곡곡에 배치하고 매국적 이완 용, 송병준 등을 농락하여 합병조약을 체결한 날이오 이날 이날은 저 조그마한 성 중에 있던 하이족(蝦夷族)으로 벌거벗고 금수와 같이 행동하던 저 야만과 원수되던 날이오 이 민족 저 민족이 합하여 명색이 국가로 수천 년도 못된 저 무도한 왜국에 게 우리 사천 년 된 민족이 멸망 받은 날이오. 애통하다. 우리 동포여. 이날 이날에 어떤 참혹한 형편을 당하였나뇨. 우리의 황실 은 왜왕의 신첩(臣妾)이 되었고 우리의 민족은 왜인의 노복(奴僕)이 된 날이오 눈이 있고 귀가 있으면 보고들을 지어다. 우리의 조국을 붙들고자 하다가 대마도에 갇히 어 만리 고도(孤島)에 원혼이 된 최면암(崔勉菴) 선생의 일도 이날이오 우리의 나라 없어지는 날 방성대곡(放聲大哭)하고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한 칼로 목을 찔러 국 은(國恩)을 깊고자 한 민 충정공(閔忠正公) 공의 일도 이날이오 우리의 국권을 회 복코자 하여 만국평화회의에 가서 더운피를 부려 세계에 빛내게 한 이준(李儁) 씨 의 일도 이날이오. 우리의 원수를 할빈 정거장에서 단총(短銃) 일발에 거꾸러뜨리고 여순(旅順) 구에서 영혼을 하느님에게 부탁한 안중근(安重根) 씨의 일도 이날이오, 우리의 국록을 먹고 원수를 돕는 스티븐(須知分)을 상항(桑港) 정거장에서 더러운 피를 뿌리게 하고 지 금 옥중에 있는 장인환(張仁煥)씨의 일도 이날이오 우리의 매국적을 한양(漢陽) 대 도(大都) 상에서 형경의 비수(匕首)가 한 번 번쩍한 결과로 원수의 손에 원통한 혼 이 된 이재명(李在明) 씨의 일도 이날이오 우리의 조국을 위하여 후사를 부탁하고 재산을 분급하여 공익사업에 부치고 페테르 부르그에서 자결한 이범진(李範晉)의 일도 이날이오. 우리의 국가를 회복하며 원수를 멸망코자 하여 영웅 열사가 의병을 모집하고 각처 에서 일어나 독립기를 들다가도 원수에게 도륙(屠戮)을 당하며 보행(步行) 망명 도 주하여 해외에서 풍한노숙(風寒露宿)하며 와신상담(臥薪嘗膽)하는 일도 이날이오 우 리 조국의 청년 학도는 창가 체조로 애국심을 분발하며 신체를 건전케 하다가도 원 수의 손에서 징역 받는 일도 이날이오 우리의 청년이 해외로 나오다가 중로에서 원 수의 손에 잡혀 방포일성(放砲一聲)에 무주고혼(無主孤魂)이 되는 일도 이날이오 우 리의 민족은 하나님이 사랑하므로 다 하나님 앞에 믿는 자녀가 되고자 하여도 저 원수는 세계의 공법(公法)을 무시하고 종교를 박멸하여 신자(信者)를 포박(捕縛)하 고 암살인자 음모사건이라 거짓말로 죄목을 만들어 공판하기 전에 옥중에서 죽이는 일도 이날이오, 우리 내지의 동포는 혼인 잔치에도 세전(稅錢)이오 생남(生男)하는 때에도 세전이오 소와 말과 개까지라도 다 세전이오 여러 가지 세전으로 우리 민족 은 핏줄이 말라 살 수 없는 일도 이날이오. 슬프다. 우리 동포여, 이날 이날이 여러 가지로 생각하면 우리의 허물인가. 원수의 죄악인가. 이것을 공판하여 불쌍한 자에게 복을 주고 악한 자에게 벌을 주는 권능 은 다만 지공 무사한 하늘에 계신 상제(上帝)시니 볼지어다. 원수의 나라는 점점 쇠망한 형편에 빠지는 것도 이날이오 아귀를 숭배하며 도덕을 무시하고 밤낮 사람 죽이는 재주만 가르치는 일도 이날이오, 외국 외채가 수십 억 이 되어 보상할 방침이 없으므로 국가의 철도와 항구를 전당잡히는 일도 이날이오, 부녀를 외국에 패송(沛送)하여 매음(賣淫)으로 생활코자 하는 일도 이날이오, 저의 귀족들은 음란 사치가 극도에 달하여 평민은 살수가 없으므로 사회주의자가 생긴일 도 이날이오, 저의 임군 목민 이하 황족을 폭발약으로 몰살케 하고 공화국을 설립 코자 하려던 행덕(幸德) 등 수십 명이 죽은 날도 이날이오, 저의 정치의 부패와 인 민의 불평은 날로 심한 일도 이날이라. 우리 동포여, 이날, 이날에 원수의 형편과 우리의 사정을 생각할 때에 슬픈 마음도 이날이오, 기쁜 생각도 이날이오, 낙심될 일도 이날이오, 희망될 일도 이날이오, 이 순신 씨의 철갑선(鐵甲船)으로 왜적을 함몰한 일도 이날이오, 을지문덕의 외적을 격 파한 일도 이날이오, 와싱톤(華盛頓)의 독립기를 들일도 이날이오, 나파륜의 혁명을 폭동한 일도 이날이오. 우리 동포여, 이날 이날에 이와같이 생각할 때에 뇌성벽력이 머리를 눌러도 굴치 말고 천병만마(千兵萬馬)가 당전(當戰)하여도 퇴보(退步) 말고 용진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목적을 달할 날이오. 우리 동포의 잊지 못할 날이 이날이니 이날이 지나고 그 날이 당하면 우리의 한숨은 변하여 웃음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쾌락이 될 이날 을 잊지 말고 금년 이날에도 이 생각이오, 명년 이날에도 이 생각이오, 십 년 백년 까지라도 이날에 이 생각을 잊지 말고 우리 한반도를 사랑하는 동포들아, 우리가 신성한 민족이 아닌가.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몸을 받쳐 우리가 자나 깨나 사나 죽더라도 이날을 잊지 말고 우리가 이날이 우리의 기념할 날 되기까지 힘쓸지어다. 이날에 이 말도 우리 대한제국 이천 만 동포 형제 자매에게 고하며 특 별히 아렬(俄領) 영지에 있는 우리 사랑하는 동포여, 이날에 이 생각으로 모셔(摩 西) 선지의 본을 받을지어다. 이스라엘 민족 사십 만을 애급에 거느리고 가나안 복지로 가던 이날이 되며 항우) 項羽)가 당동자제 팔천으로 도강(渡江)하던 이날이 될까. 이날이 그 날이 될까. 그 날이 이날이 될까. 이날, 이날. - <勸業新聞> 第18號 1912년 8월 16일 -
[ 우리 동포는 경제능력이 어찌 이리 薄弱한가 ]
오늘 날 세계에 가장 큰 문제는 생존경쟁문제요 생존경쟁의 큰 문제는 경제문제라. 저 여러 강한 민족이 각히 세력을 확장하며 외족을 물리침은 다만 그 민족의 명예 만 빛내고자 함이 아니라 실상은 그 민족의 경제를 넉넉히 하고자 하는 주의가 많 으며 저 여러 강한 나라가 각히 타국을 거꾸러뜨리고 영토를 넓힘은 다만 그 나라 의 위엄만 씩씩하게 하고자함이 아니라 실상은 그 나라의 경제를 폐우게 하고자 하 는 정책이 많나니 잉글리 사람이 잉글리를 떠나 세계에 활동하는 것은 잉글리 경제 의 명령하는 바라 하는 말이 이것을 이름이니라. 그러므로 세계 각 국 사람이 이에 주의하여 경제의 마음을 힘써할 새 관세(關稅) 매길 적에 이것을 보호하며 (이하 원문 판독 미상) 와 인민이 쉬지 아니하고 나가 거늘 우리 동포는 이미 정치의 실패를 당하여 경제의 위급할 시대에 미친 중에 경 제 능력이 이같이 박약(薄弱)하니 어찌 크게 두려운 일이 아닌가. 내지 동포의 일은 고사하고 외지 동포의 일을 말하리라. 외지에 거류하는 우리 동 포가 백만 이상에 달하되 경제의 능력은 도처에 다른 나라 사람만 못 하도다. 같은 동양사람으로도 저 중국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몇 해만 노동하면 한 작은 부자는 되 고 몇 해만 장사하면 한 큰 부자가 되어 중국사람의 금전 세력이 그 지방을 움직이 며 저 일본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큰 상점 작은 상점을 열고 은행이나 회사를 세워 일본사람의 금전세력이 그 시장에 떨치거늘 우리나라 사람은 흔히 그렇지 못하여 외지에 나온 후에 어디서든지 한 큰 재정세력을 잡은 곳이 없고 몇 해를 장사하되 흔히 마지막 날이 시작하던 날과 한 가지요 몇 해를 노동하되 비렁뱅이로 다니는 이가 많으니 우리 동포의 경제능력이 어찌 이리 박약한가. 혹자는 말하기를 경제도 자본이 넉넉하며 세력이 있어야 잘 될 수 있나니 우리나라 사람은 자본이 없고 세력이 없은 즉 어찌 남과 같을 수 있으리요 하나 그는 그렇지 아니한지라. 자본이 없으며 세력이 없음이 물론 큰 영향이 될지나 다만 이것으로 도무지 할 수 없다고는 말할 배 아니니 생각하여 보라. 저 유대 사람은 자본이 있 던 사람도 아니며 세력이 있는 사람도 아니지만 그들의 경제능력이 크게 떨치어 부 호의 많기는 세계에 유명하며 금전의 세력은 각처에 횡행하고 폴란드 사람과 이집 트 사람도 다 상당한 경제능력이 있지 아니한가. 아무리 자본이 없고 세력이 없을 지라도 상당한 방법으로 힘쓰면 오늘 날 같은 지경을 면할지니라. 이같이 우리 동포의 경제능력이 중국사람만도 못하고 일본사람만도 못함은 무삼 연 고이뇨. 그 큰 연고는 우리 동포가 중국사람만큼 근검과 저축이 없으며 일본사람만 큼 지식과 능력이 없은 연고라. 우리가 이러 하고는 도저히 생존경쟁에 도태(淘汰) 를 면치 못할지니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근검과 저축을 힘쓰며 지식과 능력을 길러 남과 같이 나가야할 지로다. 수십 년 시대로 말할지라도 사회의 경쟁이 오늘날같이 맹렬치는 아니하였으며 생활 의 문란이 오늘날같이 혹독치는 아니한지라. 그러므로 우리 동포같이 경제능력이 박약하고도 생도를 용이하게 얻기도 하면 돈푼을 혹 잡은 일이 있었으나 오늘부터 는 그렇지 아니하여 천만 사람이 다 눈을 바로 뜨고 다투며 억만 사람이 이 팔을 뽐내어 싸우나니 우리가 이전같이 지나다가는 필경에 점점 더욱 참혹한 자경에 빠 질 뿐이라. 우리가 집 몇 칸 밭 몇 일 가리 있다고 이것만 믿고 우뚝하게 있어서는 될 수 없으며 우리가 월급 몇 푼 저금 몇 냥이 있다고 이것만 믿고 편안히 놀아서 는 될 수 없나니 우리는 급급히 경제의 지식 능력을 기르며 근검하고 저축하여 경 제의 세력을 찾을지니라. 민족의 경쟁은 항상 저항하는 힘이 약한 방면을 향하여 경쟁되나니 우리 동포의 경 제능력이 박약한 고로 저 일본사람이 우리나라 내지에 몰아 들어와 우리 동포의 생 명을 위태하게 하거늘 이제 외지에 있는 동포까지 이 같으니 어찌 딱한 일이 아닌 가. 사람은 먹는 것으로만 사는 것이 아닌 즉 다만 경제에만 전력할 것은 아니나 우리는 경제에 크게 주의할 지며 우리 동포는 본래 근면하는 본질도 있고 변통하는 천재가 있나니 우리가 힘쓰면 결코 다른 사람에게 뒤떨어지지 아니할지라. 우리는 겁내지 말고 용맹스럽게 나갈지니라. - <勸業新聞> 第19號 1912년 8월 19일 -
[ 太皇帝 萬壽節 태황뎨 만슈졀 ]
단군 사천 이백 사십 오 년 구월 팔일 이날은 곧 태황제 육십 일회 만수절이라. 망 국(亡國) 제 삼번(三番) 슬프고 아픈 기념한 후 십일이요 일본 황제 목인의 죽은 소 식들은 후 사십 일일이라 우리 대한사람 되기는 이날을 당하여 어떻게 회포를 지어 야 하는가. 몇 해 전 이날은 우리의 노래하며 춤추고 경축하던 날이지만 오늘에 와서는 하늘이 우리 대한인의 한이오 땅이 우리 땅이 아니라 아무리 경축하려 해도 경축할 곳이 없으며 또한 경축할 마음도 낼 수 없고 오직 흐르느니 눈물뿐이로다. 대저 우리나라 사천 이백 사십 이년 역사의 허다한 임금 가운데 제일 비참하고 제 일 기구한 운명을 타고나신 이는 태황제라. 고려 목종(穆宗)과 본조(本朝) 단종(端 宗)같은 이가 있지마는 그러나 이는 망한 것이 그 몸뿐이며 신라 경순왕(敬順王)과 고려 왕우(王禑) 같은 이가 있지마는 이는 망한 것이 그 집뿐이며 오직 고구려 왕 장(寶藏王)과 백제 왕 의자(義慈王)가 있어 외국에게 망함을 당하여 혹 태황제와 비 할 듯 하나 그러나 이는 그 망한 것이 우리나라의 일부분 뿐이라. 그런데 태황제 시대에 이르러서는 강토의 전폭과 인민이 ■■를 들어 외족의 병탄(倂呑)한 바가 되 어 천지가 비록 넓으나 단군 자손은 발 세울 땅이 없나니 이것이 어찌 우리의 통분 할 배 아니며 일본은 우리의 한 번 맺은 원수만이 아니라 삼천 년 역사를 검열하면 거의 책장마다 왜구(倭寇)이며 더욱 본조 임진(壬辰)에 이르러서는 풍신수길(?臣秀 吉)의 팔년 흉봉을 입어 팔도 산천에 피로 물을 드린지라. 오늘 대한 인이라 하는 이는 거반(去般) 임진병화(壬辰兵禍)에 횡사한 자의 자손이며 최근에 와서도 갑오년 동학 평정에 자구하고 팔방에 횡행하면서 인민을 어육(魚肉)하였으며 또 태황제의 곤위(坤位) 곧 명성황후(明成皇后)도 일인의 손에 비참한 죽음을 이루었도다. 희(噫)라. 이와 같은 역사가 있건마는 깊고 깊이 우리의 유한(遺恨)이며 이 역사를 돌아보지 못하였도다. 이것이 어찌 우리의 통한(痛恨)할 바 아니며 더욱 기괴히 아 픈 일은 태황제가 원래 일본황제와 동갑의 임금으로 오늘에 생사유명(生死幽明)의 길이 달랐는데 저 죽은 일본황제는 일본 전국이 애통의 정을 금치 못하며 세계 각 국이 조상의 예를 표하여 일본의 영화롭고 명예로운 역사를 그 죽은 몸에 휘감고 황천으로 향하는데 이에 덕수궁을 우러러보건대 인간이 다 반가워하는 회갑 날을 당하여 옛날의 백관 조회와 인민 경축은 고사 물론하고 곧 가족 간의 정경을 말하 더라도 융희제(隆熙帝)는 궁중의 구수가 되며 황태자는 타국의 볼모가 되고 좌우에 시립한 이는 오직 머리 센 궁녀 몇 개뿐이니 이것이 어찌 우리의 비통할 배 아닌 가. 머리를 돌이켜 생각하건대 우리가 일찍이 내지에서 이날을 당하여 문 앞에 태극기 를 날리고 동지 제인(諸人)이 몯우어 대한제국 만세 황제 만세를 부르고 만수성절 의 경축을 행하였더니 뉘 알았으리요. 몇 일이 못되어 거연히 이날이 두 번 못 지 을 꿈이 되도다. 옛을 우러르며 이제를 돌아보고 소회(所懷)를 금치 못하여 두어 자 를 이대로 적노라. - <勸業新聞> 第20號 1912년 8월 26일 -
[ 외국 말 배우는 이에게 고함 ]
지금 우리나라에 물질문명은 더 말할 것 없거니와 정신문명까지라도 얼마큼 외국의 수입을 기다리는 때니라. 문명수입이라 함은 윤선(輪船)으로 병기(兵器)를 수입함을 이름도 아니며 화차(貨車)로 상품을 수입함을 이름도 아니오 오직 저의 학문과 기 예를 배움에 나의 지식과 재주가 남 만치 되게 함을 이름이니라. 학문과 기예를 배우자면 그 무엇이 선 착수를 하겠느뇨. 한 장의 신문을 보재도 말 부터 알아야할 지며 반 편의 과학을 익히재도 말부터 알아야할 지니라,. 그런 즉 오 늘날은 할 수 없이 외국말이 우리의 큰 학과가 되며 할 수 없이 외국 말하는 이가 우리의 큰 스승이 됨이니 비록 강경 고집한 국수주의(國粹主義) 패라도 외국 말 들 어오는 앞에 잠깐 길을 피하여 물러설 밖에 없도다. 외국말이 이렇게 필요하며 이렇게 간편하지마는 외국말로 인하여 우리 동포에게 이 익을 깨침이 얼마나 많으뇨. 이왕 시대를 돌아보면 우리 한국과 교통한 나라가 오 직 동양의 몇 나라뿐인 고로 우리의 배우던 외국말이 중국말 일본말 여진(女眞)말 몽고말 등 몇 종들뿐이었으나 근년 이래로 동서의 교통이 더욱 빈번하여 외국말 배 우는 이가 날로 더하여 지금에 와서는 만일 외국말 아는 자의 통계표를 꾸미면 동 양 각 외국말 하는 이가 몇 만 명 이상이 될지며 서양 각 외국말 하는 이가 몇 천 명 이상이 될지나 그 중에 학문을 배워 우리 동포에게 주신 이가 누구누구이며 기 예를 배워 우리 동포에게 주신 이가 누구누구인가. 산은 첩첩하고 구름은 아득하여 우리의 바라는 그 사람은 볼 수 없고 우리의 원치 않는 사람만 오는데 상업도 모르고 농업도 몰라서 일신의 생활할 곳을 구하다가 할 일 없이 통사(通詞)질이나 하여 먹으리라 하여 외국말 배우는 이 뿐이며 외국사람 에게 붙어서 그의 개가되어 권리나 써보리라 하여 외국 말 배우는 이 뿐이라. 이러 므로 외국말만 아는 날이면 내 나라는 나라로 치지도 않아 사천 년 역사는 쓸데없 는 휴지뭉텅이로 알며 수십 대 인물은 볼 것 없는 야만 한 가지로 알아 내가 내 손 으로 내 뺨을 치는 도다. 이러므로 외국말만 아는 날이면 내 동포는 사람으로 보지 않아서 한국말은 입에 담기를 부끄러워하며 한국 옷 입은 이는 몸에 가까이 하기를 싫어하고 나만 홀로 문명한 사람으로 자처하는 도다. 이러므로 외국말만 아는 날이 면 한국 글은 빌어먹는 글이라 하여 자식이 있고 손자가 있어도 한국말, 한국 글 배우는 학교에는 그림자도 보이지 못하게 하는 도다. 이러므로 외국말만 아는 날이 면 한국 사람이 무엇을 하리요. 하여 한 가지 일도 한국 사람을 위하여 하지 않으 려 하는 도다. 이러므로 외국말만 아는 날이면 잔약한 동포를 압제함에 고단한 동 포를 능멸(凌蔑)하여 주먹질과 발길질을 능사(能事)로 삼아 제 동포의 범이 되는 도 다. 이러므로 외국말만 아는 날이면 권리를 다투느라고 내 동포를 못쓸 곳에 잡아 넣으며 사분을 갚느라고 내 동포를 죽을 땅에 몰아들여 내 나라의 마귀가 되는 도 다. 오호라, 외국말의 폐해가 이같이 심함에 이르렀도다. 오호라, 외국말의 폐해가 이같이 심함에 이르렀도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외국말의 죄리요. 외국말을 잘못 배 운 자의 죄니라. 우리나라의 이야기를 들을지어다. 천합소문(泉閤蘇文)은 당나라에 들어가서 그 말을 배우면서 산천 풍토를 유심하게 관찰하여 후일 전쟁의 준비를 하였느니라. 우리들 재 고향 되는 이 나라의 이야기를 들을지어다. 피터 대제는 구주 서방에 유력하여 그 말을 배우면서 백공 기예(百工技藝)를 수입하여 러시아 제국 강대한 기초를 세 우니라. 우리의 만세불망(萬世不忘)할 원수의 연분을 맺은 일본의 이야기도 들을지 어다. 그 유신(維新) 초엽에 복택유길(福澤諭吉), 가등홍지 등이 외국말을 배우며 그 나라 학문을 번역하고 전포(傳布)하여 마침내 오늘날의 일본이 되었느니라. 동서고 금을 물론하고 사람다운 사람을 다 이와 같이 말을 위하여 말을 배움이 아니요 그 회포(懷抱)한 목적을 위하여 배움이라. 고로 그 말 배운 이튿날에는 그 나라의 재주 를 가져다가 내 나라에 전하며 그 나라의 학술을 가져다가 내 동포에게 주어서 내 나라이 일등국이 되고 내 백성이 일등국민이 되게 하였나니 어찌 어리석고 줄하게 이를 가지고 내 나라 사람을 능답 하였으리요. 이와 같이 말하다가 우리는 또 한번 돌려 생각하노라. 초년부터 국민적 교육을 못 받아서 내 나라가 무엇인지 몰랐나니 그 혀[舌]가 변하는 날에 그 눈도 변하며 그 귀도 변하며 그 마음까지 변하여 이에 이름이니 어린아이들은 아무쪼록 내 나라 말 내 나라 글 내 나라 역사를 잘 배우며 나이 많은 이라도 불가불 가나다라 수십 줄은 익히며 본국 역사 지지(地誌) 두 책 은 읽은 후에야 다른 말을 배우든지 말든지 할 것이니라. 그렇지마는 이에 어찌 하리요. 고국을 돌아보니 소학교 아이들의 일어 배우는 소리 뿐이요 외양을 나오니 한인의 학교는 소학교도 몇 개가 못되니 희(噫)라, 무엇을 바 라리요. 바랄 것은 외국말 아는 이가 스스로 깨닫는 것뿐이로다. 지성으로 비노라. 외국말 아는 이가 스스로 깨달음이여! - <勸業新聞> 第 27號 1912년 10월 14일 -
[ 단군 대황조 성탄절 ]
음력 시월 초 삼일은 우리 단군 대황조 탄생하신 성탄절이로다. 오호라, 우리가 무 슨 생각을 가지고 이날을 맞을까. 이날이 다른 날이 아니라 건국시조의 탄생 기념일이니 집집이 국기를 날리고 곳곳 이 예포를 쏘면서 전국 백성들이 남녀노소 없이 뛰어 놀며 춤추며 노래하여 찬미하 며 환영할 날이 건만은 지금 우리는 국호가 없어졌으며 태극기가 꺾어진 후 타국 강산에서 이날을 당하였나니 오호라, 우리들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이날을 맞을까. 기자 왈, 우리들이 이날을 당하여 일제히 단군 대황조의 앞에 나아가서 너는 느끼 며 나는 부르짖으며 나는 눈물하며 너는 콧물 하여 진심과 성의로 죄를 회개하며 아픔과 슬픔으로 구함을 빌 뿐이니라. 이날이 우리에게 대하여 일년 삼백 육십일 중에 가장 거룩한 날이거늘 즐거움으로 이날을 맞지 못하고 슬픔으로 이날을 맞으며 노래로 이날을 맞자 못하고 울음으로 이날을 맞게 되었나니 이 무삼 까닭이뇨. 이는 우리들이 죄가 많은 까닭이니라. 단 군은 우리를 살라고 크나 큰 집을 주셨는데 무정한 우리들은 그 은혜를 잊으며 단 군은 우리가 가지라고 많기나 많은 문명제도를 전하였는데 무심한 우리들은 그 공 로를 잊은지라. 그리하여 밥 먹을 줄은 알되, 단군을 모르며 그리하여 옷 입을 줄은 알되 단군은 모르며 그리하여 남의 시조(始祖)는 알되 우리 시조 단군은 모르며 그 리하여 남의 성인은 알되, 우리 성인 단군은 모르며 그리하여 십 삼도 안의 공자(孔 子) 사당은 건축이 굉장하지마는 평양의 단군전에는 이끼가 한 뼘이며 그리하여 오 백 년래의 누대(累代) 왕릉은 수호(守護)가 지엄하지만은 강동의 단군능은 봄 풀이 세 길이었나니 이와 같이 조상 잊고 나라 잊은 백성이 이 슬픈 경우를 면코자 한들 어찌 면하리요. 사람이 궁하면 근본으로 돌아온다고 오늘부터는 잊은 단군을 다시 생각할 만 하니 라. 고통이 이 같고 곤난이 이 같으니 잊은 단군을 다시 생각할 만 하니라. 생각하 고 또 생각하여 우리가 다 단군의 자손인지를 알면 동포 사이에 간절히 사랑하는 마음이 나리라. 우리가 다 단군의 유민인지를 알면 나라 일에 대하여 분발할 정신 이 생기리라. 단군의 창조하신 문명이 어떠한지를 알면 우리가 사천 년 래 신성한 민족으로 어찌 오래 남에게 굴복하리요 하는 의기가 발하리라. 단군의 성취하신 무 공이 어떤지를 알면 우리가 옛적부터 부강하던 종자로서 어찌 길이 퇴보하리요. 하 여 전진할 용맹이 발하리라. 외국에 유하는 자는 더욱 단군을 생각하라. 그리하면 희망의 빛을 찾으리라. 오너 라. 동포들아, 오시오 동포들아, 오늘부터는 잊은 단군을 다시 생각할 만 하니라. 정 성으로 형식을 대신하매 공명으로 회생을 대신하여 대황조께 드리고 생탄절 이날부 터 새사람이 될지어다. 단군 대황조 성탄절에 우리가 동포에게 고하는 바가 이에 바라는 바가 이로라.
▲ 단군 대황조 공덕의 각 방면 * 발단 사천 이백여 년 우리 대한 역사 가운데에 나신 성현과 영웅이 몇 천명 이상이 될 터인데 그 중에서 제일로 단군 대황조를 존봉(尊奉)하매 일변 삼백 육십일 동안 우 리 대한 전국 바닥에 고왕금래(古往今來) 나고 죽은 사람이 몇 천만 명 몇 억만 명 이상일터인데 그 중에서 제일 단군 대황조 성탄일을 기념하니 단군 대황조가 누구 시며 무슨 공덕이 있는가. 단군 대황조가 우리의 조상이라고 그리하는가. 단군 대황조가 우리나라의 고대 성 인이라고 그리하는가. 아니라, 그뿐 아니라, 만일 단군 대황조 곧 아니시면 우리가 옷 입을 줄 몰랐을 지며 우리가 밥 먹을 줄 몰랐을 지며 곧 우리가 각기 내라는 명 자(名字)가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우리가 대황조를 이같이 존봉하며 대황조 성탄일 을 이같이 기념함이니라. 믿지 않는 이 있거든 나의 이야기를 잠깐 들을지어다. 제 일은 단군 대황조가 국가를 건설하여 우리에게 줌이니 상고(上古)에는 우리 민족이 처음 번식할 때에 사람을 해치는 범과 표범들은 삼림에 가득하고 오늘 읿? 과 같이 우리를 침노(侵?)하는 원수의 숙신(肅愼)이니 예맥(濊貊)이니 하는 종족은 사면에 벌여 있었나니 이때에 조금만 잘못하면 우리가 짐승의 밥이 될 지며 조금만 잘못하면 우리가 다른 종족의 어육(魚肉)이 되었을 뿐인데 다행히 거룩하신 대황조 가 나서셔 팽호란 사람으로 산림을 개척하여 범과 표범 같은 것을 쫓으며 여숙이란 사람으로 장수를 삼아 숙신과 예맥을 쳐서 항복하고 북에서 흑룡강 연안부터 남으 로 삼남에까지 우리 마을을 만들고 다른 종족은 이에 범치 못하게 하시고 공고(鞏 固)케 나라의 기초를 세우샤 사천 이백 사십여 년까지 오도록 우리 대한 사람이로 라 하게 하니라. 제 이는 단군 대황조께서 종교를 창립하여 우리에게 줌이니 상고에는 동서양 황 백인종을 물론하고 다 금수보다 얼마 낫지 못하게 사납고 무지하던 것이라. 그 러하더니 거룩하고 신령한 사람이 종교를 창립하고 이 세상의 무지한 사람들을 인 도하여 완전한 사람을 만들었는데 혹은 불을 위하며 혹은 소나 배암 같은 것을 위 하여 혹은 잡귀를 위하였나니 이는 다 다신교(多神敎)요 가장 고상한 종교는 하나 님 하나만 믿었나니 이는 일신교(一神敎)라. 헤브르 민족이 일신교는 저희들이 창립한 것이라고 세상에 자랑하나 우리 역사를 상고하면 부여(扶餘)도 하늘만 믿고 삼한(三韓)도 하늘만 믿고 고구려, 신라도 하늘 만 믿어 일신교의 행한 지가 오래였는데 그 최초의 창립하신 이는 대황조시라. 여 지승람(輿地勝覽)에 마니산(摩尼山) 제천단(祭天壇)이 그 사실을 공표하며 이숙첨(李 叔詹) 시에 태백산 천궁(天宮)이 그 자취를 증명하였을 뿐더러 공경과 정성으로민 하늘에 제)祭)하여 헤브르 민족의 희생으로 하늘에 제함보다 더욱 고상 순결하며 고구려의 팔관(八關)과 신라의 오계(五戒)가 어느 때부터 그 이름이 있었던지 알 수 없으나 삼국사기와 고려사를 자세히 훑어보면 국선향도(國仙香徒)의 유물로 단군 때부터 잉태하여 옴은 명백 하도다. 팔관은 심성 수양의 묘결이라. 불교의 참선이며 오계는 처세윤리의 요지라. 유교의 오륜(五倫)인데 그 중에 용감 전진하는 정신을 장려함은 회회교(回回敎)와 방불(彷佛)하도다. 희라, 예수교도 한 종교며 불교도 한 종교매 유교도 한 종교며 회회교도 한 종교라. 오늘 세계에 있어 장단을 다투지만 이 네 집의 정처(長處)와 특징은 거금 사천 년 전 백산(白山) 단목(檀木) 아래서 한 풀무에 녹여서 써본 나머지 인물을 아는 자가 뉘뇨. 근세 우유가 삼국 이상의 고기(古記)를 산삭(刪削)하여 오늘 날에 다시 단군 의 면목을 보기가 어려우나 단군 당시에 벌써 문명한 종교를 창립하여 우리로 하여 금 세계 각 국 민족 중에 제일 먼저 사람되게 함을 우리가 절하여 찬미하지 않을 수 없느니라. 제 삼은 단군 황조께서 넓고 넓은 세계 중에 제일 좋은 땅을 골라서 우리에 게 줌이니 팔만 리 지구 위에 사람 사는 데가 많기는 하지만은 그 중에 사람 살만 한 곳이 몇이나 되느뇨. 한 대(寒帶)는 너무 차서 네 발 가진 짐승들도 살기가 구차 하며 열대(熱帶)는 너무 더워 무정한 풀과 나무들이나 잘 살 곳이라. 인류는 생활하 기 어렵도다. 인류의 살기 적당한 곳은 중안(中岸)의 온대(溫帶) 뿐이라. 그러나 같 은 온대로되 유럽에는 화산이 많고 아메리카에는 황지(荒地)가 많으므로 이에 ■양 에 고르시며 같은 동양이로되 대륙에는 바다가 적으며 도국(島國)에는 육지가 멀음 으로 이에 반도에 고르며 같은 반도로되 산동 반도는 해반이나 척토(瘠土)이며 아 라비아 반도에는 전부가 사막인 고로 이에 금이나 옥이라 할만한 우리 한반도를 고 르시도다. 그러므로 고기(古記)란 책에 단군의 사적을 써 있으되, 삼위(三危= 지금 구월산), 태백(지금 묘향산)을 굽어보시고 인간에 제일 사랑스러운 땅이라 하샤 이 에 무리 삼천 명을 거느리시고 오셨다 함이로다. 삼면이 바다로 두루고 대륙을 진 것은 우리 반도의 형세라. 해군을 향하면 이순신 (李舜臣)이 날만 하며 육군을 향하면 을지문덕(乙支文德)이 날만 하고 곡식은 심으 면 거두어지게 되고 금은 동 철은 방석같이 깔린 것은 우리 반도의 물산이라. 농업 을 하면 가까운 이웃에 중국을 누를 만 하며 광업을 하면 먼 이웃에 미국을 누를 만 하고 산악으로 기둥하고 강하(江河)로 대함은 우리 반도의 경치라. 평양의 가려 (佳麗)함은 청태종(淸太宗)이 시기하였으며 금강산의 기묘함은 당국(唐國) 사신이 꿈꾸었으니 교통만 좀 편리케 하였으면 세계의 유람하는 손이 스위스로 향하지 않 을 만 하고 남방은 온난(溫暖)하고 북방은 혹한(酷寒)함은 우리 반도의 기후이니 총 명 민첩한 재사도 쏟아질 지며 경강인내(硬鋼忍耐)한 사업가도 끊이지 않을지니 교 육이 얼마를 확장되면 문(文)에나 무(武)에나 남에게 양보하지 않을 만 하고 그 외 의롭고 아름답고 웅(雄)하고 장(壯)한 점을 창졸간(倉卒間)의 쓰는 붓끝으로 만분 의 일로 다 말할 수 없도다. 거룩하다. 대황조의 공덕이여, 이 따로 우리에게 정제 (整齊)하였도다. 오호라, 온 세계에 짝이 없이 혼자 내로라 할 따이러니 오늘은 우리 것이 아니로 다. 그러나 인걸(人傑)은 지령(至靈)이라고 이 중에서 나는 한국인들이 어찌 항상 적막하리요. 어느 때든지 태극기를 다시 세울 날이 있도록 힘쓸지어다. 제 사는 대황조께서 공화정책을 창립하여 우리에게 줌이니 수천 년 이전에 국 가를 건설한 자를 보면 혹은 주먹으로 하여 혹은 칼로 하여 우ㅏ력을 정의보다 앞 세우며 무기를 인도(人道)보다 먼저 하여 「제(帝)」라, 「왕」이라 「간(干)」이라, 「짐」이라, 「찰」이라 하는 차례는 악과 불의(不義)와 무도(無道)와 흉독(凶毒)이 란 여러 가지 구진 물건으로 쌓아놓은 곳이라. 조촐하고 깨끗한 것은 반점도 없나 니라. 그러하나 우리 단군 대황조의 임금 되신 역사를 보면 그 제 일장부터 끝장까 지 오직 거룩하고 장엄한 것 뿐이라. 고로 신인(神人)이 태백 신단목(神壇木) 아래 에 내림에 백성들이 놀라서 임금을 삼았다 하였으니 대황조의 높은 도덕이 천하가 스스로 돌아옴을 가히 볼 지며 말년에 승하하심에 백성이 구월산에 사당을 짓고 수 천 년을 제사하였나니 이도 또 동서만고 대왕이 없는 배라. 대황조의 임금 되실 때에 이와 같이 국민 공화의 선거에 맡기고 일호(一毫)의 사의 (私意)를 두지 않는 고로 그 여풍이 삼천 년을 두고 상전(相傳)되어 부여의 대신이 모두 공동의 선거로 되며 대왕의 계통전수로 백성의 뜻에 위반되게 하면 곧 위(位) 를 보치 못 하였나니 해부루(解夫婁)와 금와(金蛙)의 일이 그 한 전례요 고구려도 이와 같았고 해모수(解慕漱)의 임금 됨도 백성의 뜻이며 온조(溫祚)의 임금 됨에는 십신(十臣)이 상의하였고 신라는 박(朴), 석(昔), 김(金) 삼성이 서로 새양하여 왔나 니 이는 다 단군 대황조의 하늘같고 바다 같은 덕화(德化) 아래고 성질을 길러온 민족인고로 폐(弊) 없고 해(害) 없이 이 아름다운 정치를 수천 년을 행함이라. 희랍과 로마가 귀족 공화의 제도로 하였다 하나 그 시기가 각기 수백 년 뿐이라. 부여, 고구려의 삼천 년에 비교할 수 없을뿐더러 황기 간의 권리 싸움에 피로 강을 이루어 그 신성한 이름을 더럽혔으며 지나(支那) 요(堯), 순(舜)의 선위(禪位)가 공 화에 가깝다 하나 그 일이 겨우 두 대(代) 뿐이라. 신라 삼성의 구백 년에 비교할 수 없을뿐더러 요유수순야사(堯幽囚舜野死)의 의안(疑案)의 역사에 전하여 말 대가 리에 호피(虎皮)를 씌우지 않았는가. 그는 외심을 후인에게 주었도다. 이로 보라. 단 군 대황조의 도덕이 과연 어떻게 높으며 가벼움이 과연 어떻게 엄정하뇨. 다만 왜 색을 한 것은 말세 자손이 불초하여 나의 좋은 법을 버리고 지나의 전제정치를 수 입함이니라. 지금 우리는 정치무대에 명함도 못 들이게 된 민족이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묘지기 제사에 칠 팔 대조 대광보국 숭록대부(大匡輔國 崇祿大夫)의 축문을 읽는 것 한 가지라. 낯만 뜻 뜻하지 마는 그러나 남은 웃을지라도 우리 한인이야 어찌 안 웃을 수 있으리요. 제 오는 단군황조께서 길고 긴 역사를 장만하여 우리에게 줌이니 동서 각국 역사를 모두 쌓고 그 중에서 추려놓아라. 사면팔방의 적국 가운데에서 홀로 산악같 이 서서 동에서 도적이 오면 동을 막고 서에서 도적이 오면 서를 막고 남북에서 도 적이 오면 남북으로 막아 어려운 가운데서 능력을 발휘하여 독립의 명예를 잃지 않 고 사천여 년 길고 긴 역사를 가진 나라이 몇인가. 지금 영국이니 덕국이니 하는 것들은 다 후진 소년이라 말할 것 없고 사천 년 이전 부터 역사를 가졌노라 하는 민족이 지나, 인도, 메소포타미아, 애급, 등 몇몇인데 인 도, 메소포타미아, 애급 등은 그 운명의 꽃이 여윈 지가 의구(依舊)하고 또 이들은 종교 역사는 혹 자랑할 만한 데도 있으나 정작 정치 역사는 볼 것이 없으며 지나가 가장 그 방면은 낫다 하나 중간에 민족 주권을 몽고에게 여진에게 내어주고 지나 민족은 한 조각 땅까지 없이 살기를 몇 백 번씩 하였도다. 이에 우리 역사를 들고 보아라, 과연 어떠하뇨. 서파라가 퍼시아를 쫓음으로 저인 치 하며 잉글리가 나폴레옹을 이김으로 내로라 하나 사천 년 간 우리나라에 왔던 도적에는 퍼시아같은 나라가 몇이며 나폴레옹 같은 괴걸이 몇이던가. 제일에 십 육 세에 황제가 되어 진시황(秦始皇), 한고조(漢高祖)가 어찌하지 못하던 흉노(匈奴)를 토멸한 한무제 유열이며 제 이에 서한 말년에 군웅(群雄)을 항복하고 지나를 통일 하던 한 광무 유수이며 제 삼에 오호(五胡)가 중국을 요란할 때에 세력이 가장 선 하던 선비(鮮卑) 모용(慕容)씨며 제 사에 한 칼로 지나를 통일하며 돌궐(突厥)을 정 복하고 세력의 굉장함이 사방 열국을 놀래어 모두 와서 조공케 하던 수양제(隋煬 帝) 양광이며 제 오에 안으로 이일, 유무주, 두건적(頭巾賊)같은 영웅들을 토멸하며 밖으로 돌궐, 인도, 퍼시아 같은 대국을 정복하고 제왕의 도량에 장수의 지략을 가 졌노라고 자랑하던 당 태종 이세민이며 제 육에 지나 북방을 웅거하여 동서만리의 제국을 건설하던 요(遼) 태조 아보기의 조손이며 제 칠에 챗찍을 한번 두르매 지나 전국이 무릎을 끓고 휘파람을 한번 불음에 구주 각 국이 열을 잃어 지금까지 코 큰 종자로 하여금 노랑이의 화를 꿈꾸게 하는 몽고족이며 일본 개국 삼천 년에 제 나 라로는 기껏 난 영웅 임진왜란의 풍신수길(?臣秀吉)이며 이 외에도 쥐 도적 개 도 적의 침노한 자를 다 세이려 하면 이 붓이 다 부스러질 뿐이로다, 이와같이 하루도 열 두 번씩이나 오는 강한 도적들이 있었지만 도적이 올 때마다 우리나라에 동명성제(東明聖帝), 대무신대왕(大武神大王),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 을지문덕, 천합소문, 신라 태종대왕, 문무대왕, 김유신(金庾信), 대조영(大祚榮), 강 감찬(姜邯贊), 이순신 같은 영웅호걸 등이 어디서 예비하여 둔 것처럼 쏟아져 나와 서 막으면 특기하고 싸우면 승전하되 임진왜란 한 싸움 이외에는 안으로는 적국의 요행함을 함도 아니요 밖으로는 공수동맹(攻守同盟)의 힘도 입음 없이 왼 손바닥으 로 하늘이 높다고 땅이 우는 큰 공업(功業)을 세워 명예와 영광으로 사천 번 역사 의 면목을 빛내어 오던 이는 세계에 우리 하나이라. 영웅이 이같이 때맞춰 나고 행복이 이같이 고통을 헤치고 왔나니 이를 누가 주심이 뇨. 이는 우리 단군 대황조께서 태백산에서 삼천 도중(徒衆)을 가르치실 때에 끼치 신 교훈이 우리 민족의 심리에 줏대를 세우며 우수산에서 소시무리를 토평 하실 때 에 주신 노래가 우리 민족의 앞길에 지남 쇠를 지은 지라. 정의와 용맹과 어질과 나아감이 한민족의 특성을 이룸으로 이 광휘찬란(光輝燦爛)한 역사를 얻음이라. 이탈리 같이 이천 년 멸망하였던 민족이며 불가리 같이 수십 만 명 좌우되는 민족 으로 오히려 그 조상의 역사를 읽다가 뿌린 눈물로 없던 나라를 다시 제조하였나니 우리 동포는 어찌 생각이 없으리요. 제 육은 단군 대황조께서 모든 거룩한 것을 우리에게 줌이니 이제 단군 대황 조께서 우리에게 주신 보배를 세리라. 단군 시대에 그리시아니 로마니 하는 나라는 아직 이도 못 나고 이집트니 유대니 하는 나라는 모두 손바닥만할 뿐이요, 중국의 도당 세도 간신히 묘족(苗族)과 회이 의 틈에서 부쳐 사는데 단군 대황조는 벌써 흑룡강에서 동해에 가기까지 허다한 부 락을 통일하여 모두 편발족(編髮 盖首)의 제도를 함께 하여 당시 세계에 제일 큰 나라를 세웠으니 이는 단군이 큼으로 우리에게 주심이며 흐르는 물이 적지 않고 문 지도리가 좀먹지 않는다고 인성이란 것은 항상 동하여야 쓰는 법인 고로 동서 고대 의 성려들은 누구든지 시간을 금 쪽같이 아끼며 근면을 보배로 여겨 잠시도 쉬지 아니 하였나니 단군 대황조도 이를 따르셨느니라. 고로 대황조의 아침마다 활쏘던 증거는 구월산 사황봉에 그 자리가 있으며 황조의 삼랑이 대왕의 자재로서 친히 생 뜻한 소식은 전등산 삼낭성에 그 터가 있나니 이는 단군 대황조가 근으로 우리에게 주심이며 천하의 죄악에 나쁜 죄악은 거짓으로 세상을 속이는 rt이라. 거짓하면 범 같이 영특한 사람도 갈 곳은 지옥 뿐이요 진실하면 곰같이 미련한 사람도 성인이 된다는 뜻으로 단군 고기에 적었으니 이는 단군 대황조가 참으로 우리에게 주심이 며 우주에 대하여는 조심이요 인류에 대하여는 사랑이요 나라에 대하여는 충성으로 하여라. 그리하자면 믿음이 그 근본이니라. 그러므로 단군 대황조께서 하나님과 제 사할 때 가장 지성을 들어 백성이 본받게 하리니 부여와 삼한과 삼국이 모두 그 감 화를 받아 천제에 치성함이 지극하였나니 이는 단군 대황조가 믿음으로 우리에게 주심이라. 오호라, 깊이 말하자면 우리의 살과 뼈도 단군 대황조의 주심이라. 더 말 할 것 없거니와 다만 명명무형한 가운데서 우리의 정신을 관리하여 불에 넣어도 녹 지 않으며 물에 던져도 잠기지 않으며 서양에 가도 희지 않으며 남양에 가도 붉지 않고 우리 꼬레아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어떤 때를 당하든지 항상 꼬레아 사람으로 있어 나의 특별한 점을 발휘하며 나의 우승할 바를 확장하여 넓은 세계 많은 사람 가운데서 내가 있음을 깨닫도록 모든 교훈을 주신 것은 우리가 필먹(筆墨)을 대신 하며 마음으로 종이를 대신하여 마디마디 쓰며 글귀마다 적어 단군 대황제의 기념 비를 가슴 안에 세우면 하늘이 다시 돌보고 영광이 다시 비추어 슬픈 노래, 기린 눈물 하는 기쁨이라는 글자를 대황조의 손으로 주시리라. 결론 오호라. 사천여 년단군 대황조의 품안에서 자라오던 민족으로 어찌하여 길을 그릇 디뎌 조상도 무엇인지 모르며 나라도 무엇인지를 모르고 자갈밭으로 가시밭으로 빼 다가 오늘에 와서 말할 수 없는 경우에 빠졌도다. 지금에 바람 불고 물결 치고 일 월이 빛이 없고 천지가 아득하나 우리가 생명 가진 이상에는 단군을 잊지 말아라. 땅을 밟거든 단군의 정할 땅이 어디 있나 하며 하늘을 보면 단군의 이런 하늘이 어 디 있나 하며 영웅을 숭배하거든 단군께 충성한 이순신 같은 영웅에게 무릎을 꿇으 며 원수를 갚으려거든 단군께 모욕한 일본같은 원수에게 먼저 살을 베어 단군이나 단군께 상관된 얼 외에는 기쁨도 노염도 없이 하라. 이리하여야 단군의 자손이니라. 제일 위험한 것은 영어, 일어를 배우다가 단군을 잊으며 워싱톤, 전, 나폴레옹 전 읽다가 단군을 잊으리라. 명일 시월 초삼일은 다른 날도 아니요 단군 대황조 성탄절이라. 이런 말을 귀 가진 이는 잘 들을 지며 눈 가진 이는 잘 볼지라. 정성스런 마음으로 간절히 올리노라.
[ 모범 할만한 인물의 모범 할만한 일로 퇴계 선생의 행적을 드노라 ]
시대의 요구에 응하여 나는 인물도 눈이 둘이요 귀가 둘이지마는 그러하나 그 눈은 남의 못 보는 바를 봄에 그 귀는 남의 못 듣는 바를 들어 먼저 튼튼한 땅에 발을 세워 뒤에 오는 사람의 본이 되는 도다. 거금(距今) 삼백 년 전 본조(本朝) 명종대왕(明宗大王)의 시절에 조정이 불화하고 인심이 분열하여 만사가 할 수 없는 때러라. 몇 개의 현인군자(賢人君子)가 있어 이 를 구하려할 새 혹은 강기 격렬한 언론으로 비열한 사회를 갱생하려 하며 혹은 종 횡 신기한 수단으로 부패한 정치를 개척코자 하여 이나 저나 세상을 구할 마음은 같으나 구하려 하는 방법은 각각 같지 안 하더라.. 퇴계 선생 이황 씨는 당시의 신진 청년으로 과거에 급제하고 명예가 헌자(獻資) 한 데 또한 지옥을 맞아 천당을 만들려는 생각을 품고 세도에 나섰더니 그 형 온계 이 해 씨가 동조(同朝)의 기휼(饑恤)을 받아 사화(士禍)에 장폐(杖斃)하여 돌아갔는데 선생이 그 신체를 수장(收葬)할 새 그 뼈가 불거지며 그 살이 헤어져서 참아 눈을 바로 뜨고 보지 못할지라. 선생이 이를 보고 위연(威然)히 탄식하여 왈, 이 세상이 이와 같이 악한가. 치국(治國)이니 치민(治民)이니 하지만은 이 세상의 인심부터 개 량한 연후의 일이라 하고 드디어 「강호 둥둥 저 백구(白鷗)야」를 부르고 예안현 (禮安縣) 고향으로 돌아가서 학문을 힘쓰며 후진을 교육하여 온 세상을 몰아 「진 실」 두 자로 길을 삼으며 「부지런」세 자로 문을 삼아 가가 효자(家家孝子) 인인 충신(人人忠臣)의 유교적 이상국(理想國)을 만들기로 자임하고 낮에는 배우고 밤에 는 생각하여 칠십 여세가 되도록 그의 정성이 첫날과 같았었더라. 오늘은 시대가 크게 변천하여 선생의 입던 옷이 우리의 몸에 맞지 않으며 선생의 쓰던 갓이 우리의 머리에 합지 않으나 그러나 선생에 대한 교훈이며 시세에 대한 배포는 오늘 뿐 아니라 곧 천만 년 후라도 선생에게 법 받을 배 많으니라. 『퇴도 언행록(退陶言行錄)』한 책이 모두 금 같고 옥 같은 말이지만은 이 책에 적히지 않 고 여항(閭巷)에 유전(流轉)하여 오는 선생의 행적도 우리의 깊이 삭여둘 것이 허다 하니 그 한 가지를 들리라. 선생의 소년시대에 일찍 모여 여행하더니 한 주막에 이른 즉 주인 내외는 출타하고 없는데 선생이 문에 들어가려다가 문 앞에 누워있는 아이를 모르고 밟아 인하여 절 명되었더라. 여늬 사람이 이 경우를 당하였으면 삼십 육계의 상책을 찾을 뿐인데 선생은 사람 속이지 않음을 공부하신 이라 이 아이 죽인 것이 비록 나의 과실이요 고범(故犯)은 아니지만 그러나 가만히 도망하면 이는 주인을 속임이며 또 주인으로 하여금 다른 무죄한 사람을 의심하기 쉬우리니 차라리 아이 어미나 아비가 와서 내 몸에 복수하는 말을 던짐이나 기다리리라 하고 조용히 앉았더니 해가 거의 지자 그 죽은 아이의 어미와 아비가 들어오더라. 선생이 그 아이 죽인 연유를 말한 즉 그 어미는 편성이오 또 무식한 여자라 복수할 거동을 내려 하지만 그 아비가 한참 생 각하다가 문득 탄식하며 공경하여 왈, 사람을 죽이고 도망하지 않으며 생명을 받쳐 그 과실을 사죄코자 하니 이는 시속(時俗) 사람이 아니라 하고 도리어 위로하며 보 내니라. 이와 같이 마음을 아니 속이며 사람을 아니 속이며 하늘을 아니 속이므로 나를 챗 찍하며 남을 인도함에 원근(遠近)이 감회(感懷)하여 제자가 날로 붓고 풍성이 날로 뻗쳐 삼백 년 간 유교의 기초가 서니라. 외사 씨 왈, 국민의 지식 없는 것도 오히려 가하며 국민의 실력 없는 것도 오히려 가하거니와 제일 딱하고 가석(可惜)한 것은 국민의 덕성(德性)의 타락된 것이라. 고 로 옛적 성인이 매양 조심하고 조심하여 먼저 힘쓴 바가 항상 이 점에 있었더라. 우리 대한의 사천 년 이래로 국민의 덕성을 제일 기예(技藝)는 국선교로 제조하였 으며 제 이 기예는 불교로 제조하였으며 제 삼 기예는 유교로 제조하였나니 유교시 대에 와서는 비록 충실 욤감 함이 국선교 시대에 및지 못하며 장엄 화려함에 불교 시대에 및지 못하나 그러하나 그 당초에 몇몇 선생의 진실 엄정한 교훈으로 그 기 조를 세우지 않으면 어찌 오늘까지 유교란 이름이 있으리요. 지금 우리의 사회는 실로 크게 공황(恐惶)한 시대라. 아미타불은 이미 무덤 속에 썩 은 물건이 되며 대학 지도는 이미 제삿 집의 버린 음식이 되어 다 우리 동포의 교 과서 되기가 어렵고 그렇거든 새로 의지할 곳이 있어야할 지어늘 이제 예수의 제자 들은 형제와 마귀를 분별치 못하는 자 많으며 교육가의 인물 등은 윤리와 수신의 표본 될 자 적으니 오호라, 기차만 타면 천리를 가며 비행기만 타면 하늘에 오를까. -<勸業新聞> 第43號 1913년 1월 27일 -
[ 天喜堂 詩話 ]
虎頭將軍 崔塋氏가 累次 支那 日本 等 外寇를 ?退하고 其 百戰百勝의 餘威를 席하 여 大兵으로 遼瀋에 驅入하여 高句麗 舊疆을 恢復하려 하다가 時運이 不幸하여 大 志를 未成하고 反히 刑戮에 就함에 至今까지 將軍의 事를 談하는 者- 慷慨의 淚를 不灑하는 者- 無하니라. 頃者에 一友人이 將軍의 詩 二首를 錄送하였는데 其語가 莊潔하고 其調가 激烈하고 其意가 雄渾하여 足히 將軍의 人格을 想像할러라. 其 一曰 「까마귀 눈비 맞아 희는 듯 검노매라. 夜光明月이 밤인들 어두우랴 님 向 한 一片丹心 가실 줄이 있으랴.」 其 二는 曰 「눈맞아 희였노라 굽은 솔 웃지 마 라 春風에 피인 꽃이 每樣에 고울소냐. 風飄飄雪 紛紛한데 네야 나를 부르리라.」 聲音의 道가 人을 感함이 深하도다. 往年에 朴齊純 李址鎔 等이 其 政權을 旣失하 고 心火鬱鬱한 中에 消日하기 爲하여 琴酒를 携하고 龍山 江亭에 伴往하더니 時에 秋葉이 正徨하여 圍山이 簫瑟하고 夕陽이 江面에 倒暎하여 琉璃世界를 作하니 失意 者의 感懷를 助한지라. 酒 數巡에 纛島날탕牌 數人을 招하여 歌 一曲을 奏케 하더 니 其歌에 有云하되, 「處子죽은 鬼神은 道令의 房으로 몰아넣고 道令 죽은 귀신은 處子의 房으로 몰아 넣고 우리 죽은 귀신은 閔忠正公 大監 넋을 따라라 」 하였더라. 齊純이 此를 聽하더니 ■然히 節을 격하며 曰 「人生이 誰가 一死가 無하리오만은 彼와 如히 死所를 得한 者l 能히 幾人인고 」 하고 手中의 酒盃를 擲下하였다 云하니 噫라 彼 朴氏가 萬一 五條約 以前에 此等歌 를 早聞하였으면 忠正의 넋을 隨하였을는지. 詩란 者는 國民言語의 精華라 故로 强武한 國民은 其詩부터 强武하며 文弱한 國民 은 其詩부터 文弱하나니 一國의 盛衰治亂은 大抵 其國 詩에서 可驗할지오 又 其國 의 文弱을 回하여 强武에 入코자 할진대 不可不 其 文弱한 國詩부터 改良할지라. 余가 近世 我國에 流行하는 詩歌를 觀하건대 太半 流靡淫蕩하여 風俗의 腐敗만 釀 할지니 世道에 關心하는 者가 汲汲히 其 改良을 謀함이 可하며 又 其中에서 特히 民俗에 有益할 만한 詩歌를 蒐集하여 詩界의 國粹를 保存함이 可할지나 但 古史가 殘缺하여 三國時代에 眞正 强武한 詩歌는 得見키 難하니 惜哉로다. 往者에 雩崗이 風騷續選 一卷을 寄送한 바 此를 開讀한 즉 是 本朝 以來 帝王 將相 名儒 達士의 詩歌를 載했더라. 其名이 旣是 續選인 즉 其 前篇이 必有할지며 是篇 이 又是 本朝 初葉으로 爲始하였은 즉 其 前篇은 必是 三國勝朝時代를 錄하였을지 니 然則 其中에 或 愚 溫達 乙支文德 諸公의 出軍歌도 載有할지며 又 或 陽山歌(新 羅人이 名將 韻蓮의 戰死를 感한 歌) 會蘇歌(新羅人의 勸農歌) 等도 載有할지라. 此 書가 若出하면 我國 詩界에 一大 紀念이 될뿐더러 又 古史의 缺文을 補할 者- 甚多 하리니 어찌 余의 夢寐渴求하는 배 아니리요 만은 雩崗家에 所存은 只是 此 續篇뿐 이라 하며 又 其他 藏書家들■ 凡 一般書籍을 忠州 자린고비의 錢米를 吝惜함과 如 하니 何處에 徒하여 此를 得見하리오 今에 我國人더러 問曰 我國 詩가 何時에 始하 였느뇨 하면 或曰 類利王의 黃鳥詩가 是라 하며 或曰 乙支文德의 遺 于仲文詩가 是 라 하나 是는 皆漢詩요 國詩가 아니라 五百年 來 文學家 案上에 但只 漢詩만을 堆 積k여 馬上寒食 途中暮春이 童孺의 初等小學이 되며 洛城一別胡騎長驅가 校塾의 專 門 敎科가 되고 國詩에 至하여는 ?籬邊에 閑棄한지 幾百年이니 嗚乎라 此亦 國粹衰 落의 一 原因인저. 余의 見하는 바 國詩 中에 其 流傳最舊한 者를 擧하면 高僧 了義가 國文을 始創하 고 佛敎를 讚美한 眞言이 是라 할지나 然이나 此는 梵詩를 音譯한 者라 國詩로 冒 稱함이 不可k고 其次는 崔都統 鄭圃隱의 丹心歌가 될지라 崔都統의 詩는 前段에 已 錄한지라 今에 圃隱 詩 全篇을 錄載하노라. 詩曰, 「죽어죽어 一百番 다시 죽어 白骨은 塵土되고 넋이야 있던 없든 님 向한 一片丹心 가실 줄이 있으랴. 」 古代에는 人君으로 國家의 中心點을 삼은 故로 崔都統 鄭圃隱의 丹心歌가 其 終章 에는 皆 님 向한 一片丹心이란 語로 結하였으니 님은 人君을 謂함이니라. 漢詩는 漢文과 共히 我國에 輸入하여 一種 文學을 成한 者라. 箕聖이 傳敎할 時에 必也 殷周에 行用하는 風雅頌 等으로 國人을 敎한 事가 有할지나 古史에 可徵할 處 가 無하며 或 麥秀歌를 箕聖의 作한 바라 하나 此는 장 계곡(張 谿谷)이 微子詩로 昭哲히 辨正한 바라 再次 置疑할 餘地가 無하니 我東의 漢詩 鼻祖는 不得不 類利王 黃鳥詩로 推할지나 其 詩旨가 自家 夫婦間 缺感을 敍述함에 不過하니 足히 稱道할 바 無하고 其後에 乙支文德이 平壤城下 兵馬■惚의 際에 五言一首를 著하여 于仲文 을 欺弄하였으니 其 臨陣閑雅의 風度를 足히 想見할지나 將軍의 詩라 詩人의 詩가 아니며 又 一時 誘敵의 語라 任情率意의 作이 아니니 足히 諷詠할 바 無하고 其後 에 許多 詩學士가 輩出하였으나 皆 李. 杜. 韓. 蘇의 睡餘를 拾하여 戰事를 悲觀하 고 苟安을 謳歌하여 事大主義만 鼓吹할 분이요 能히 眼光을 大放하여 東國 尙武的 精神을 發揮한 者- 無하니 嗚乎라 外語 外文의 國魂을 移奪할 魔力이 果然 如此한 지 余가 勝朝及 本朝 千餘 年間 漢詩家 人物을 歷數하매 ?戱를 不堪하는 바로라. 故로 余는 嘗謂하되 我國의 流傳하는 漢詩는 南怡 詩 「白頭山石 磨刀盡 豆滿江波 飮馬無 男兒二十 未平敵 後世誰稱 大丈夫」 一句만 存錄하고 其餘는 一切 火炬에 付코자 하노니 嗚乎라 此言이 비록 過激한 듯 하나 抑亦 有志者의 同認할 바가 아닌가. 雖然이나 彼 千餘 年來 漢詩家가 腦를 腐 하며 血을 嘔하여 塋窓雪案 間 蕭條生涯로 其死後 姓名 三字를 傳코자 하던 者가 今日 九原 下에서 此言을 聞하면 齒를 切하고 哀哭할 者- 果然 幾人이나 될는지. 往者에 金允植氏가 前 統監 願留 次로 日本에 渡往하더니 彼中 漢 詩家들이 金을 富士山 下에 邀宴할 새 金이 該山으로 爲題하고 一詩를 成하였는데 「怪怪奇奇 摠不同, 化工於此 技應窮, 森?劍戟 皆兵氣, 羅列兒孫 盡父風」 이라 云云하였더라. 噫라, 彼의 外國 崇拜하는 劣性이 何 如是오 外國人物을 崇拜할 뿐 아니라 外國山 川까지 崇拜하였도다. 噫라. 詩歌는 人의 感情을 陶融하므로 目的하나니 宜乎 國字를 多用하고 國語로 成句하여 婦人 幼兒도 一讀에 皆曉하도록 注意하여야 國民智識 普及에 ?力이 乃有할지어늘 近日에 各 學校用 歌를 聞한즉 漢字를 雜用함이 太多하여 唱하는 學童이 其趣味를 不悟하며 聽하는 行人이 其語意를 不知하니 是가 何等 ?益이 有하리오 是亦 敎育界 의 欠點이라 可云할지로다. 一 友人이 일찍 其著한 바 愛國吟 丈夫吟 各 一首를 余 에 誦傳하는데 國語로 爲主하고 漢字는 若干 助入하여 老?도 可解라 余- 此를 愛하 여 左에 錄하노라. 愛國吟 曰 「제 몸은 사랑컨만, 나라 사랑 왜 못하노. 國家 疆土 없어지면 몸둘 곳이 어디메 뇨. 차라리 몸은 죽더라도 이 나라는」 丈夫吟 曰, 「長劍을 높이 들고 宇宙 間에 徘徊하니,萬古興亡은 胸中에 歷歷하고, 六大部洲는 眼中에 恢恢하다. 아마도 丈夫의 得意秋는 이때인 듯」 帝國新聞에 일찍 國字韻(날발갈, 닝징싱 等)을 懸하고 國文 七字 詩를 購賞하였으니 此 七字詩도 或 一種 新國 詩體가 될까 曰 否라. 不可하다. 英國詩는 英國詩의 音節 이 自有하며 俄國 詩는 俄國 詩의 音節이 自有하며 其他 各國 詩가 皆然하나니 萬 一 甲國의 詩로 乙國의 音節을 效하면 是는 鶴膝을 鳧脚으로 換하며 狗尾를 黃貂로 續함이니 其 孰長 孰短 孰善 孰惡은 姑舍하고 狀態의 不類가 어찌 可笑치 않으리 요. 試하여 此 國文 七字 詩를 一讀하라 其艱澁함이 果然 何如하뇨. 且堂堂 獨立한 國詩가 自有하거늘 何必 支那律體를 依倣하여 龍鐘崎嶇의 態를 作하리요. 又或 近 日 各學校에서 日本音節을 效하여 十一字歌를 製하는 者- 間有하니 此亦 國文 七字 詩를 製하는 類인지 余도 일찍 某校學生의 託을 爲하여 此 十一字 歌를 製給한 바 追後에 此를 悔悟하였으나 往事라 可追할 배 아니로다. 萬一 該校 學生이 余에게 改製를 求하면 余가 補過하기 爲하여 此를 不辭하겠노라. 甲午 東學의 諸魁首는 皆一時妖鬼에 不過하나 獨彼 古阜 首擾者 全琫準은 革命家의 精神이 疊有하고 兵略이 神速하여 彼日本人의 崇拜를 大受하는 者라. 琫準의 起事 하던 時에 一歌가 湖南에 流行하여 曰, 「새야 새야 八王(全字 破字)새야 네가 어이 나왔느냐. 솔잎 댓잎 포롯 포롯 幸혀 봄철인가 나왔더니 白雪이 폴폴 흩날린다. 저 건너 蒼松綠竹이 날 속였다.」 嗚乎라 琫準의 才略으로 萬一 稍後히 出現하여 世界의 風潮를 觀察하고 時機를 利 用하였더면 後來 其 可觀의 成就가 必有함은 尙論家의 ?認할 배니 此歌가 果然 明 白히 道破하였도다. 未知케라, 其 作者가 何人 歟아. 客이 漢詩 數首를 携하고 余를 示하는데 句句에 新 名詞를 參入하여 成한지라. 其 中(萬壑芳菲 平等秀, ■林禽鳥 自由鳴)이라 云한 一聯을 指하여 曰 此 兩句는 東國 詩界 革命이라 可稱할 배라 하고 怡然히 自得의 色이 有하거늘 余- 曰 吾子의 用心 이 良苦하도다 만은 此로 支那 詩界의 革命이라 함은 可커니와 東國詩界의 革命이 라 云함은 不可하니 盖東國詩가 何오 하면 東國語, 東國文, 東國音으로 製한 者가 是오 東國詩 革命家가 誰오 하면 東國 詩 中에 新 手眼을 放하는 者가 是라할 지 어 늘 今에 子가 漢字詩를 作하고 貿然히 自信하여 曰 我가 東國 詩界 革命家라 하 니 抑亦愚悖함이 아닌가. 吾子가 萬一 詩界 革命者가 되고자 할진대 彼 阿羅郞. 寧邊 東臺等 國歌界에 向하 여 其 頑陋를 改革하고 新思想을 輸入할지어다. 如此하여야 婦女가 皆吾子의 詩를 讚하며 兒童이 皆吾子의 詩를 通하여 全國의 感情과 風俗이 丕變되어 吾子-가 詩界 革命家 始祖가 되려니와 苟或 漢字詩를 將하여 此로 國人의 感念을 興起코자 하려 다가 는 비록 索士比亞(英國 大詩人)의 神筆을 揮할지라도 是는 幾個人의 閒坐諷詠 함에 供할 前已니 何故로 云然고 하면 卽 彼가 東國語 東國文으로 組織한 東國詩가 아닌 故니 吾子와 用心은 良苦하도다 만은 其計가 實誤로다 한 대 客이 憮然良久에 退曰 先生의 言이 果然하다 하더라. 彼無知妄 靑年들이 往往 叫唱曰 我國을 亡케 한 者는 詩라 하니 嗚呼라 其 不思함 이 어찌 此에 至하뇨. 今에 姑且至近의 理로 喩하리니 大抵 吾輩가 喜가 有함에 歡 呼가 無코자 한들 得乎며 怒가 有하매 憤叫가 無코자 한들 得乎며 哀怨이 有하매 凄凉灑泣이 無코자 한들 得乎며 苦痛이 有하매 呻吟狂啼가 無코자 한들 得乎아. 大 凡 詩란 者는 卽此 歡呼, 憤叫, 凄凉, 灑泣, 呻吟, 狂啼 等의 情態로 結成한 文言이 니 詩를 廢코저 하면 是는 國民의 喉를 閉하며 腦를 破함이니 此- 어찌 可하리오. 故로 余는 嘗言호대 詩가 盛하면 國도 亦盛하며 詩가 衰하면 國도 亦衰하며 詩가 存하면 國도 亦存하며 詩가 亡하면 國도 亦亡한다 하노라. 或曰 然則 本朝 五百 年 來에 有名한 詩人은 前代보담 多하였으나 其 國民은 前代에 不及하여 壬辰에 倭의 八道가 ■攘하며 丙子에 胡의 京城이 不守하여 「天心錯莫 臨江水, 廟算凄凉對落 暉」의 句에 君臣의 血淚만 灑하였으며「回思丙子年間事, 幾斷王孫塞外魂」의 語가 後人의 遺恨만 胎하였으니 詩의 功이 何에 在할까. 曰噫라. 本朝以來로 果然 詩學이 盛하였으며 詩學이 盛한 後에 果然 國恥가 頻來하였으니 子가 詩를 咎함이 亦宜로 다 만은 但 子가 詩의 何物됨을 不知하고 詩를 妄論하는도다. 今에 余가 爲先 詩의 能力을 說明하고 其次 詩道와 國家의 關係를 詳論하리니 子는 且 頭腦를 冷靜하고 此를 聽할지어다. 卽今 吾■가 莫然閒坐라가 金節齋의 ??朔風 歌, 「朔風은 나무 끝에 불고 明月은 눈 속에 찬데 萬里邊城에 一長劍 짚고 서서 쉬 파 람 한소리에 거칠 것이 없어라. 」를 朗吟함에 忽然 肝膽이 斗大하며 蕭然疲臥라가 南怡 將軍의 長劍曲. 「長劍을 빼어들고 白頭에 올라보니 大東天地에 腥塵이 잠겼어라. 언제나 南北風塵 을 헤쳐볼까 하노라.」 를 快讀함에 突然 頭髮이 上指하며 ?憂鬱鬱하다가 어와 저 白鷗 一章을 漫誦하매 心神이 怡然하며 情事悠悠하다가 子規야 울지 마라?一句를 微諷함에 感淚가 潛燃하 여 詩가 人情을 感發함에 如此히 不可思議의 能力이 有한지라. 是以로 其詩가 武烈 하면 全國이 武烈할지며 其詩가 淫蕩하면 全國이 淫蕩할지며 其詩가 雄健하면 全國 이 雄健할지며 其詩가 柔弱하면 全國이 柔弱할지며 其他 勇悍 猖狂 猛奮 纖劣 或 善 或 惡 或 美 或 醜가 無非詩歌의 支配力을 受하는 바인데 試思하라. 我國의 流 行하는 詩가 果然 何如한 詩이뇨. 國詩로 言하면 南薰殿달 밝은데 八元 八凱 거느리시고 한 閑淡의 詩뿐이며 ??말없 는 靑山 態度없는 流水란 放狂의 詩뿐이며 말은 가자고 네 굽을 땅땅치는데 님은 잡고 落淚한다. 한 淫蕩의 詩뿐이며 風波에 놀란 沙工 배 팔아 말을 사니 한 厭退 에 詩뿐이요 又幾 百年以來로 漢詩가 一般社會 間에 盛行하였으나 亦皆 此等語 此 等意 뿐이 아닌가. 落花芳艸는 其心境이며 歎窮嗟卑는 其趣旨며 對酒當歌人生幾何 는 其情懷며 無可奈何 不如歸去는 其 普通用語요 此外에는 他情이 無하니 此로 社 會의 公德을 陶鑄할까 必不能이며 此로 軍國民의 感情을 製造할까 必不能이로다. 仲尼云, 「禮云 玉帛云乎哉 樂云樂云 鐘鼓云乎哉」 아 하셨으니 詩云詩云이여 果然 此等 詩를 云함인가. 噫라 外面으로 詩가 我國이 莫盛하다 할지나 內容을 察하면 我國의 詩가 亡한지 已久라 할지라. 詩가 亡하였거 니 國民의 思想이 何由로 高尙하며 國民의 精神이 何由로 結合하리오. 故로 我國 今日 現狀은 彼等 非詩의 詩로 此를 致하였다 함도 亦 可하도다. 切望하노니 今日 國家 前途에 留意하는 志士여 不可不 詩道를 振興함에 留意할지니라. 申震澤 光河氏는 科詩로 鳴■ 者나 然이나 其實은 氏가 科詩에 長할 뿐 아니라 漢 文과 漢詩에 尤長하며 又詩에 長할 뿐 아니라 卽 其 卓塋한 奇氣가 一世의 傑人이 라. 可稱할지라. 性이 旅行을 喜하여 八域의 山河를 閱覽하며 其 老年에 北遊하여 白頭山에 登하여, 「兩岸蒼崖 三百里 女眞黃葉落朝鮮」의 句를 吟하고 旣歸에 朝廷에 奏하여 兵을 養 하여 鴨綠江 以西 ?呑함을 主張하아 時人이 皆狂士로 目하여 其言을 不用하였으니 後來 志士의 同憾할 배로다. 嗚呼라. 氏는 어찌 五百年 蕭條오怪한 詩人과 ?稱할 者 리오. 南園綠草 봄 白采는 밤이슬 오기만 기다리고 우리 蒼生 萬백성은 大阮位 大監 돌아 오시기만 기다린다. 此는 大院君의 淸國에 被拘하였을 時에 各地에 流行하던 鄕歌 니 當時 人心이 大院王에게 繫함은 可히 推想한 배라. 王이 비록 梟悍함이 過하여 往往 誤國의 事를 作한 것이 多하나 能히 猛斷하며 能히 ?擊하여 弊政을 除함이 不 一하여 百餘 年來 政治界에 第一指를 可屈할지니 斯民의 如斯히 謳歌想望함이 亦宜 하도다. 洪景來 年 十餘에 鄕塾에 就하여 遊學하더니 一日은 其師가 危欄에 ?하였거늘 景來 가 手로 ■하는지라. 師가 大驚回顧한즉 笑曰, 時勢가 하도 좋아 皇負하기 不可한 故니이다. 하더라. 其童年에 著한 科詩 題曰 ■■送荊軻■■ 一句가 人間에 流轉하는데 曰 「秋風易水壯士拳 白日阿房秦皇頭」라 하였으니 其詩가 政히 其人과 酷肖하도다. 古代에는 儒賢長子가 皆國詩와 鄕歌를 喜하여 典重活潑한 著作이 多하며 ■■又花 朝月夕 朋■會集■■의 際에 往往 長吟 短唱으로 遺興하여 其風流를 可想인데 邇來 百餘 年間은 此一道가 但只 蕩子淫妓에 歸할 뿐이오 萬一 上等社會調修하는 士子이 면 國詩 一句를 能製치 못하며 鄕歌一節을 解吟치 못하므로 詩歌는 愈愈히 淫靡의 方에 추하고 人士는 愈愈히 愉快의 道가 絶하니 國民萎敗의 故가 비록 多端하나 此 도 또한 一端이 되신져. 今에 先賢의 短歌 數節을 錄하노라. 退溪 詩曰, 「雷霆이 破山하니 聾者는 못 듣나니 白日이 中天하여도 ?子는 못 보나니 우리는 耳目聰明 男子로 聾■같이 말으리라.」 金裕器 詩曰, 「春風 桃李花들아 고운 빛을 자랑마라. 長松綠竹을 歲寒에 보려무나. 亭亭코 落落 한 節을고칠 줄이 있으랴.」 尹善道 詩曰, 「松間 石室에 가서 曉月을 보려하니 空山落葉에 길을 어이 찾아가리. 어디서 白雪 이 좇아오니 女蘿衣가 무거워라.」 西河 先生 林椿은 前朝에 大詩人이라. 蒙古亂後에 國恥를 雪코자 하여 海內에 奔走 하면서 時調, 雜歌, 漢詩 等을 作하여 ■■이 一禿筆로 國魂을 叫하며 民氣를 鼓하 나 時勢가 不利하여 마침내 孤憤을 抱하고 道塗에서 老死하매 至今까지 論者가 其 志를 悲하는 배라. 然이나 先生의 死後에 遺音을 繼한 者가 無하고 又其 文集이 兵 火에 泯沒하여 一葉도 傳後되지 못하였으니 嗚呼라 어찌 可惜치 않은가. 일찍 先生으로써 伊太利 詩人 단테에게 比하나 然이나 단테는 其 一寸의 筆下에 能 히 瑪志尼를 産出하여 舊羅馬의 榮光을 挽回하였거늘 先生은 死後 六 七 百年에 國 은 依舊히 弱하고 民은 依舊히 劣하니 先生의 目이 將且 地下에서 不瞑할진저. 余가 東文選 及 東詩選을 閱하매 林 西河先生의 詩文 揭載된 者가 間有하나 其詩가 不平하여 氣力이 絶無할뿐더러 且 一字 一句도 民國의 憂에 及한 者가 無하여 史에 稱한 先生의 遺跡과 較하매 氣味가 一毫도 不近한지라. 是以로 매양 此에 疑를 置 하였더니 및 星湖僿說을 讀한 즉 此는 本朝 肅廟 時에 淸道 僧 某가 石窟 中에서 發見한 者라 하였는지라. 噫라 此가 어찌 先生의 詩리오. 其人의 ?造됨이 無疑하도 다. 然이나 先生 眞作의 詩는 尙今까지 得見한 處가 無하고 但 于山文抄에 先生 文 一首를 載하였는데 其中 一節에 云하였으되, 「國無大小係于民, 時無利鈍係才, 苟能導民以勇, 養才有法何畏乎, 强敵何畏乎, 劉徹 楊廣忽必烈」 이리오 하였더라. 其辭를 執하여 推求하건대 此는 先生의 文됨이 無疑하도다. 然이나 先生의 忠憤義 烈이 如彼하지만 其 傳後된 者- 此 一首뿐이니 可히 勝歎할까 雖然이나 我國 奴隸 文學의 社會에 此一首의 得傳함이 또한 天幸인저. 自來 泰東人은 詩人의 地位를 低看하여 是가 風化에 無關하며 政敎에 無關하고 但 只 黃葉村 席門 中에서 ■鳴蛙叫하는 一個 世外 棄物로 知하니 嗚呼라 此는 誤解의 大 誤解로다. 大 詩人이 卽 大 英雄이며 大 詩人이 卽 大 偉人이니 大 詩人이 卽 歷史 上의 一 巨物이라. 故로 亞寇馬, 陶淵明 輩가 비록 山林에 居하여 足跡이 世에 不出하였으나 其 著한 바 詩集이 一世를 風動하여 人心을 支配함에 至하니 大抵 辯士의 舌과 俠 士의 劍과 政客의 手腕과 詩人의 筆端이 其 效用의 遲速은 異하나 世界를 陶鑄하는 能力은 一이라. 故로 大 宗敎家가 敎를 布함에 爲先 詩歌에 從事하여 此로써 人心 을 移改하나니 三國時代 佛敎徒의 鄕歌와 支那 六朝時 達摩, 慧能의 喝句와 舊約經 中의 詩歌가 皆詩니 詩의 功用을 此에 可知할진저. -<大韓每日申報> 1909년 11월 9일- 12월 4일
[ 劇界 改良論 ]
記者가 어찌 韓國劇界를 忍言하며 어찌 韓國劇界를 忍言하리오. 韓國의 劇界를 觀 한즉 只是 協律社 團成社 等의 劇場을 設하여 許多 淫蕩의 演戱로 許多 靑年子弟를 引하여 其 心志를 亂케 하며 其 意氣를 墮케 하며 其 思想을 迷케 하므로 學問에 留意하던 者- 此에 往하면 其 學問을 棄하며 實業에 留意하던 者- 此에 往하면 其 實業을 棄하여 無數人才를 皆此에서 壞了케 하니 嗚呼라, 韓國의 現今 所爲 劇場은 壹切 無疑 打破할 者어니와 雖然이나 此等 劇場은 人心을 ?하며 風俗을 壞하여 社 會에 惡影響을 貽케 하는 故로 打破無疑라함이어니와 萬壹 人心風俗에 有益하여 社 會에 好影響을 貽할 劇場이 起할진대 余가 此를 贊成하며 此를 祝望하나니 盖 何如 한 演劇이 人心風俗에 有益한 者인가. 曰 昔者에 拿破崙이 恒常 劇場에 往하여 演 劇을 觀하되 必也悲劇이 아니면 不觀하며 且悲劇의 功效를 贊道하여 云하되 人物을 陶鑄하는 能力이 歷史보다 突過한다 하였으니 彼 悲劇이 人心風俗에 有益함을 可想 할지로다. 大抵 壹場에 悲劇을 演하여 英雄豪傑의 淋■壯快한 往蹟을 觀하면 비록 庸者懦兒라 도 此에서 感興할지며 忠臣烈士의 凄凉貞烈한 違標를 觀하면 비록 蠢奴劣僕이라도 此에서 奮起할지니 歷史에 如何한 偉人을 傳하든지 但只 其 言行과 事實을 記錄하 거니와 劇에 至하여는 不然하여 千古以上의 人物이라도 其 容顔을 接하는 듯 咳睡 를 聽하는 듯 하여 十分精神에 七分을 可得이라 今에 假令 成忠 階伯 朴堤上 諸公 을 演하면 其 塋潔한 狀態가 麗에 印하며 崔塋 尹瓘 鄭夢周 諸賢을 演하면 其 忠壯 한 實跡이 眼에 照하여 畢竟 心往神移하여 高尙純潔한 心思가 自生할지니 所以로 劇을 可貴라함이어늘 乃者 今日 國內에 存在한 劇은 只是 有害無益의 劇이오 壹個 可劇의 劇이 無하니 此亦 人民의 恥로다. 然이나 今後에 苟或 劇界 改良에 留意하는 者- 有하거든 惟彼 演劇에 從事하여 國 民의 心理와 感情을 陶鑄할지어다. - <大韓每日申報> 1909년 7월 12일 -
[ 演劇界之 李人稙 ]
韓國 幾百年來로 春香歌 沈靑歌 興夫歌 華容道 等의 淫蕩的 慌怪的 演劇을 今日에 至하여 李人稙氏가 臂를 揚하고 改良을 自擔하였도다. 今日에 至하여 李人稙 그가 目을 瞋하고 改良을 自期하였도다. 嗚乎라. 演劇의 改良은 吾輩도 曾往의 絶叫한 배 라, 此를 改良하여야 國民의 純粹한 德性을 陶鑄할지며 此를 改良하여야 國民의 高 尙한 感情을 鼓吹할지라. 是以로 壹般有 人心이 莫不曰 演劇改良 演劇改良하던 次 에 李人稙氏가 圓覺社를 設하고 演劇을 改良한다 하기에 耳를 傾히여 曰 今日 演劇 에는 東國先民의 愚 溫達 乙支文德을 仰謄할까 하더니 嗟乎異哉라. 依舊是 月梅의 罵女聲만 尼■하며 明日 演劇에는 泰西 近代의 華盛頓 拿破崙을 快都할까 하더니 嗟乎 快哉라. 依舊是 놀보의 妬弟語만 爛漫하며 然別 又 明月에나 忠臣義婦 或 快 男烈俠의 歷史를 壹聞할까, 新世界 冒險的 人物을 壹見할까 하더니 嗚乎라, 依 舊是 春香歌뿐 沈靑歌뿐 華容道뿐이로다. 嗚乎라, 李人稙氏여, 君의 口를 依하면 改良이 已久하나 衆人의 眼으로 看하면 改良 이 都無하니 嗚乎라, 李人稙氏여. 蓋世의 心■은 路人이 皆知한 배라. 氏가 已往 日 本留學하던 時에 大段히 小說에 留意하여 遽然히 韓國 內 第 壹等 小說家로 自命하 는 者이니 彼가 萬壹 社會 及 國家에 對하여 壹半分 公盖 上 思想이 有할진대 羅賓 孫漂流記와 如한 奇文을 譯하여 國民의 冒險心을 鼓發함도 可하며 若 安貞德敎國傳 과 如한 壹小史를 著하여 國民의 愛國性을 鑄造함도 可하거늘 今也에 不然하여 彼 도 不爲하며 此도 不爲하고 只是 牟利的 起見으로 爲妾辯護의 「鬼의 聲」과 如한 小說을 著하여 社會上의 道德만 破壞하며 讀者 諸君을 媚倒하고 冊價 幾百 ■으로 其下著費만 充하였도다. 吾輩가 此一節을 推하여 李人稙氏의 五臟을 洞見하는 바니 彼가 演劇改良의 名을 借하여 此等 孼業 造出함을 又何 足怪며 又何 足怪리오 만은 今也에 又壹 可驚할 事는 卽 該氏가 演劇觀察 次로 日本에 渡往하였다 하니 噫라 其 魔術이 愈長하여 益益히 其 奇怪荒誕 淫蕩的의 演劇으로 國民의 心志를 蕩하면 其害가 豈小할까. 嗚乎라, 氏여, 作孼이 已心커늘 又何樣禍坑을 造하여 同胞에게 流毒코저 하는지 書 籍을 著佈하든지 演劇을 設行하든지 斯民의 利됨과 害됨은 不問하고 但只 紙幣 百 千 ■만 自家手中에 入하면 此를 爲하여 歌하며 此를 爲하여 舞하는 李人稙氏여. 海外에 遊覽하여 文明 新空氣를 吸收한 人의 心法이 乃此에 止한가 噫噫라. - <大 韓每日申報> 1908년 11월 8일
[ 論 學校 用歌 ]
歌의 人을 感함이 其亦深哉인저. 山谷에 入하여 農歌를 聞하면 悠然히 種桑績麻의 思想이 起하며 武營의 過하다가 軍歌를 聞하면 慨然히 提槍上島의 意氣가 生하며 靑樓에 向하여 妓歌를 聞하면 蕩然히 看花醉月의 情懷가 作하며 江湖에 適하여 漁 歌를 聞하면 突然히 浮家泛宅의 觀念이 起하는 故로 비록 四 五十 되도록 門을 閉 하고 儒案 下에 坐하여 歌曲의 趣味를 深解치 못하는 者라도 壹唱三歎의 淸歌가 其 耳에 激하면 自然■節神往함을 不禁하나니 歌曲의 人을 感함이 果然 深하도다. 然則 學校의 用歌가 但只 壹時의 精神을 愉快케 하며 血氣를 通暢케 할 뿐 아니라 抑亦不知 不識間에 氣質을 變化하며 心思를 轉移하는 大 能力을 具有한 者인즉 此 도 亦是 敎育者의 注意할 바인데 約者 近今 學校 用歌를 閱할진댄 多少 不滿의 缺 憾이 有하도다. 其 理想의 深淺何如함과 意義의 冷熱 何如함은 姑勿論하고 爲先 其製歌의 下者 用 語에 就하여 壹論컨대 大雅大奧하여 通俗 敎育 上 不適함이 多한지라. 每每 春秋期 各 學校 大 運動 時에 國旗를 揭하며 隊伍를 整하고 歸路 ■唱하고 歌聲歌作함에 壹般 市井閭巷의 人民도 耳를 傾하여 祥聽하지만은 한 字의 編成한 歌(如 光武日月 富康安泰 等이 是)를 到底히 解釋이 ■하여 盲者가 五色을 觀함과 無異하고 又는 聽者뿐 아니라 卽 此를 唱하는 許多 小學童子도 必也 其語가 何語인지 不知하고 只 是 嚼蠟의 昧로 前後 相酬할 而已니 噫라 其裏面에 設或 字字句句 愛國의 義를 說 하였을지라도 佶屈한 殷盤周誥를 乳臭의 舌로 習하며 深奧한 哲理玄髓를 幼稚의 眼 으로 閱함과 如하여 其力은 雖勤하나 奏功은 難期리니 此가 何益이 有하리오. 大抵 歌란 者는 人의 感情을 刺하며 義氣를 鼓하여 興起奮發케 하는 者인즉 其辭는 簡明易曉로 爲主하며 其意는 直切痛快로 爲務하여야 其歌는 隨하여 其 感奮이 發할 지어늘 今에 한 字를 多用하고 國字로 補助하며 俗語는 抹殺하고 雅語만 起重하여 畢竟 其意가 晦甚하매 至하니 此는 不察의 甚한 者인저. 余가 又 壹感이 有하니 卽 彼 學校에 未入한 巷間 兒童이 學徒의 唱歌가 自然 耳에 熟하여 每 花朝月夜에 愛國歌 運動歌 等을 聯袂?唱하니 萬壹] 歌曲의 意義가 淺近 하여 解키 易하면 幾月을 不過하여 坊曲 中 謠俚 雜歌가 自然 絶跡되고 擧國 兒童 이 皆此 學校 用歌를 解唱하리니 然則 其此閱感이 旣久에 遊覽者가 修學思想도 起 할지며 冷淡者가 愛國感念도 作할지어늘 惜乎라, 今日 學校 用歌의 意晦함이여. 此 亦 不可不 汲汲改良할 者로다. - <大韓每日申報> 1908년 7월 11일
[ 悔改者 得釋 ]
稗說에 云 古者 成廟朝 時에 壹 殺人犯을 捉囚한 바 獄吏가 不愼하였든지 夜를 乘 하여 가 鎖를 破하고 越獄 逃?하였는데 公差를 發하여 追捕하여도 不得하며 邏卒을 布하여 偵探하여도 不得하고 大索 拾日에 形影이 杳然하매 不得已 罪囚在逃로 懸錄 을 而已러니 後 數月에 壹個 健漢이 刑曹書吏廳에 突入하여 伏地 告曰 某月 某日 殺人犯 某는 敢來 自現하노라. 書吏 等이 且驚且愕하며 此를 不信하여 曰 汝가 或 者 狂人이 아닌가 該犯은 兩目이 俱存하거늘 今 汝는 左眼이 ?破하였으니 可疑者- 壹이오 該犯은 容貌가 肥■하거늘 汝는 雙관(광대뼈 관*)이 骨立하였으니 可疑者 二 오, 且 越獄逃走한 該犯이 靑天白日에 自來送死할 理가 萬無하니 汝가 비록 該犯이 라 自鳴하나 吾輩는 此를 狂言으로민 認하노라 한 대 該 健漢이 淚를 拭하며 ??言 曰 生을 好하고 死를 惡함은 斯人의 常情이지만은 余에 至하여는 生人의 趣가 實無 하여 一刻이라도 速死함을 是甘하노라. 盖余가 人을 始殺하고 獄에 見囚하던 日에 는 畏하는 배 是死며 悲하는 배 是死라. 故로 智를 ■하며 力을 竭하여 一條生路를 求할 새 敢此 越獄夜逃의 凶計를 做하고 又或 他人의 發覺을 避할까 念慮하여 自刃 으로 目을 ■破한 바 어니와 在逃 數月에 身世를 回顧하니 如此히 百年苟生함이 一 朝快死함만 不如하도다. 夜半旅店에 夢寐가 正?하다가 庭畔에 葉聲만 偶作히여도 何處官差가 我를 來捉하는가 하여 四肢가 戰慄하며 春後名亭에 遊興이 方濃하다가 林際에 人影만 ■見하여도 何許捕校가 我를 來探하는가 하여 兩眼이 圓逈하고 八珍 을 對하여도 其味를 不知하며 狐■을 衣하여도 其溫을 不知하고 容貌만 自然日削하 니 嗚乎라 余여 果然 生存의 趣가 有한 者인가 . 故로 今日에 自來하여 速死를 乞 하노라. 刑官이 此를 聞하더니 惻然히 其情을 悶하며 且 其言의 哀痛함을 觀하매 其 悔改心 이 已發한 者라 하여 死를 ■하고 遠地에 配하니라. 外史氏 曰 余가 此言을 讀하다가 卷을 閉하고 歎息함을 不覺하였노라. 盖 人性이 本善하건마는 只是 情慾의 所動으로 一念이 差에 千里를 謬하나니 彼 古今 來 極惡 大대인들 其 初心에 이 어찌 極惡됨을 自甘하며 大대됨을 自喜하리오마는 不過 是 富貴 貧圖의 結果가 ■■然 不知不覺 間에 此 惡業을 竟造함이로다. 然이나 其 靈靈昭昭한 壹點良知는 終乃 盡泯치 아니하여 往往中夜 ?床에 ?? 三歎함 을 不免하나니 己覆의 大는 難收며 騎虎의 勢가 難下라 하여 彼 殺人犯의 ?眼掩迹 을 效하는 者는 有하나 悔改自現의 事를 學하는 者는 無하여 萬劫地獄에 自墮하니 悲夫라. 嘗聞컨대 一念을 自新하면 百惡이 皆消라 하니 彼 一切 誤國 ?民하며 欺人驅?하는 罪人들이여 千年萬古의 公罵도 不懼하며 靑史白簡의 嚴誅도 不恤하는가. 早早改圖 自勵하여 舊惡을 快滌하고 上帝의 免罪文憑을 受할지어다. - <大韓每日申報> 1908년 第 833號 -
[ 歷史에 對한 管見 二則 ] : 史癖生
余는 元來 歷史의 痼癖을 抱하여 寢을 忘하고 是를 讀하며 食을 廢하고 是를 讀하 여 是를 師하며 是를 友하여 是로 生命을 作한지 玆에 拾 數年을 經하였으니 歷史 를 愛하는 者- 余에 孰過하리오마는 但 已往에는 續朝通鑑 紫陽綱目 等만 歷史로 知하고 本 國史에 至하여는 一寓目을 不肯하고 此로 高閣에 束하였으니 歷史를 不 知하는 者 - 亦 余에 孰過하리오. 然이나 挽近 數年來로 此一大 頑夢을 猛覺하고 久旅者가 故鄕에 婚返하여 眼을 自家 事에 ■着하니 一邊으로는 前非를 回想하매 愧汗이 背에 沾하며 一邊으로는 晩悟를 自幸하여 手足의 舞蹈함을 不覺하겠도다. 雖然이나 近今 刊行하는 歷史가 壹 二 舊謬例를 ■踵하여 讀者로 하여금 不滿의 感 情을 抱케 하므로 敢히 壹得의 愚를 陳하노라. 一. 國號 土地와 人民이 有함에 必也 國家가 有하고 國家가 有함에 必也 一種 代名詞(卽 國 號)가 有하나니 然則 本國의 代名詞는 何라 云하는가. 朝鮮乎이 三韓乎아. 高句麗乎 아 抑 新羅 百濟 渤海 等乎아 曰否라. 此는 當時 朝廷의 代名詞라. 朝廷의 範圍는 狹하며 國家의 範圍는 廣하고 朝廷의 運命은 短하며 國家의 運命은 長하나니 朝廷 의 代名詞를 將하여 國家의 代名詞로 認함이 不可하며 又 彼 外國人이 往往 我를 코리안 民族이라 稱하나 然이니 此는 高麗의 譯音에 不過하니 此를 取하여 國號로 認함이 尤 不可하도다. 然則 我國의 國號는 將次 何라 云할고. 曰 東國 二字가 其 可乎인저. 東洋에 在한 國이 我國뿐 아니나 前人의 習用(如 東國通鑑 東國文獻錄之類)하던 배며 吾輩의 慣 稱하는 배니 此를 捨하고 其 將何에 求하리오. 近儒가 史를 編함에 此를 國號로 認 明하는 者- 實無하니 噫라. 此가 細事인 듯 하나 實로 國民의 國家精神을 抱晦케 하여 壹國家의 存滅을 壹朝廷의 存滅로 妄認하며 一 民族의 興廢 一姓 壹家의 興廢 로 誤解하여 曰 故史를 看하라. 新羅가 衰에 高麗가 代하며 金氏가 頹에 王氏가 繼 하니 古往今來 何國이 不亡이리오 하여 國家에 對한 觀念이 薄弱하리니 此는 歷史 著述者의 一大 注意할 바오. 二. 紀年 現今 各國의 紀念을 觀하건대 或 建國始祖로 紀元하며 或 開敎始祖로 紀하여 其 紀 元以前의 事를 記하매 曰 紀年前 第 幾年이라 하여 讀史者의 記臆에 便易할뿐더러 抑亦 國民精神을 統壹하는 壹法門이니 今에 我史도 此를 效則하여 複雜繁多한 歷代 君主의 紀年을 去하고 我建國 聖祖 檀君으로 記하여 某年은 檀君 後 第 幾 十年이 라 書하며 某年은 檀君 後 第 幾 百 幾年이라 書하면 一般讀者의 腦際에 煩悶도 除 하며 且 歷史를 對함에 同祖同族의 觀念이 油然自生하여 愛國心을 喚起함에 大 裨 益이 有하리라 하노라. -<大韓每日申報> 1908년 第 832號
[ 舊書 蒐集의 必要 ]
世界가 旣新에 書籍도 亦新하여 政治 法律을 學하랴 하여도 新政治 法律을 學할지 며 倫理 哲學을 學하려 하여도 新倫理 新哲學을 學할지어늘 此 陳腐한 舊書를 蒐集 하여 將何에 用하며 西艦東舶에 日로 輸入할 者- 將彼 新書籍이며 文人 學士가 日 로 譯出할 者- 將彼 新書籍이라. 後生 少年이 彼 新書籍만 閱覽하려 하여도 抑且 無暇를 歎할지어늘 此 汗漫한 舊書를 蒐集하여 將何에 用하며 山林 社會에 結髮讀 書한 頑固儒生이 舊書에 汎博하지 않음은 아니언만 其 常識에 通함은 國語讀本을 ■讀한 小學校의 尺童을 是護할지며 南山 老屋에 桃燈話古하는 守舊老宰가 舊書에 精篤하지 않음은 아니로대 其 時宜를 解함이 國文新聞을 僅閱하는 勞■社會의 役夫 를 是遜할지어늘 此 千萬無益한 舊書를 蒐集하여 將何에 用하리오. 新布로 舊衣를 縫하면 必裂하고 新酒로 舊囊에 盛하면 必漏하나니 此 新書籍 世界를 遭하여 舊書 籍 蒐集을 提論함은 何意인가. 曰 嗚乎라. 本報의 右揭한 問題(卽 舊書蒐集)를 觀하면 必也 此等 言論으로 相詰한 者 有하지만은 然이나 此는 其一만 知하고 其二는 不知하는 者로다. 今日을 當하여 人人이 皆 新書의 廣布치 못함만 歎하나 吾則舊書의 將亡함을 惜하 노니 大抵 外國文明을 輸入함에 祖國思想을 沒却하여 風俗도 惟 外國의 風俗을 是 趨하며 人物도 惟 外國의 人物을 是拜하면 ■■ 不知不覺 間에 附 外奴를 是作할지 라. 故로 一般 文明國에서는 莫不 其 國粹를 鼓吹하며 國性을 發揮하는데 現今 京 城 內 一般社會를 觀하건대 媚新棄舊의 心이 大熾하여 先輩의 發한 言論이라 하면 비록 如何히 精切한 言論이라도 必曰 腐敗陳談이라 하여 此를 恥道하며 舊籍에 現 한 事蹟이라 하면 비록 如何히 宏大한 事實이라도 必曰 ■狗往跡이라 하여 此를 愧 稱하고 惟 西哲 近賢의 咳睡는 其 精粗를 不問하고 是歌是讀하니 此亦 奴性의 致然 할 배 아닌가. 余가 일찍 某學校 一卒業生과 對話하다가 日本年代를 問한즉 足利時 代等을 氷上에 轉瓢하듯이 誦下하며 歐羅巴 新史도 壹斑을 略記하기에 余 乃本 國 史記로 提問한즉 新羅 百濟가 何處 邦國인지 不知하며 東明 溫祚가 何代 君主인지 不記하는지라. 余가 此를 覩하고 大驚歎惜함을 不覺하였더니라. 社會를 周覽한즉 太 半 此等 人物만 爛慢하도다. 昔者 勝朝(高麗) 以前에 東方이 固是 强國으로 著名하여 曰 隋曰 唐曰 鮮卑曰 契丹 曰 日本 等의 巨寇强賊이 皆 其 手中에 就擒하며 皆其 膝下에 來伏하여 域外 列邦 이 皆此國 民族의 特色을 欽歎하더니 其誰의 作孼로 崇拜 華夏主義를 大吹항녀 末 流文弱이 此에 至하였는가. 不過 是 幾個 文士 詩客의 崔致雲 金富軾같은 諸人이 支那에 留學 或 旅行하여 眼은 한 官■儀에 晛하며 心은 中原文獻에 醉하여 本國 歷史를 一切 唾棄하며 本國精華를 一切 掃却하고 禿筆을 執하여 奔走呼號하매 適 其時 此를 ■壓蕩平할 偉人이 無하고 許多 夢中人이 其 風潮에 盡傾하여 畢竟 神聖 國土로 如此 無熱 性■ 腦筋의 奴隸世界를 幻成함이니 此는 千古志士의 扼腕長歎할 배어니와 余는 卽今 全國 新■學士를 回顧하매 一大 恐怖를 抱하노니 彼 政治 法律 等 各科를 學하며 美國 日本 等 各處에 留하는 內外 諸學生이여, 或者 其中에 第二 崔致遠 第二 金富軾이나 不有한가. 假使 本國에 文獻이 自足하여도 外來의 新歌 潮가 四圍를 震感하여 驚魂失魄의 慮 가 十中 八九인데 ■ 韓國은 幾百年 來에 自家 書籍을 輕■한 結果로 家家에 三經 四書 八大家는 高儲하였으나 本十의 傳來하는 書類는 晨星같이 不多하여 東國通鑑 懲琵錄 等 書冊을 日本서 購得하기는 甚易하나 皇城 內 書■에서는 見影이 殆難하 고 只是 文獻古家의 塵箱 中 ■蝕物을 作하니 噫라, 此日 此時에 舊書를 蒐集하여 其 煩褥을 거하며 其 精華를 ■하여 此를 刊出하며 此를 流布하여 後進의 要求에 應하면 此亦 祖國精神을 喚起하는 一 法門이 될지오, 且 自國에 書籍은 是乃 幾千載 以來에 國民先祖 先輩의 思想心血의 結集한 者라. 國民의 精神도 此에서 觀할지며 國民의 性質도 此에서 驗할지며 其他 山川 人物 風 俗 政治 等의 搜察沿革도 莫非 此에서 籍할지니 어찌 重視치 않으리오. 昔에 李勣이 高句麗에 入寇하여 平壤城을 陷落하고 高麗藏文庫를 閱하더니 ?然 曰 東表小邦으로 文籍의 具備함이 어찌 此에 至하뇨. 萬一 此를 留存하여 句麗 道民으 로 得見케 하면 愚者가 知하며 懦者가 勇하여 他日 王師를 更勞함에 至할지라 하고 卽時 火에 投하여 灰燼을 成하였다 云云하더니(出 紀年兒覽) 今日 狀態를 觀하건대 李勣을 不待하여 不過 幾年만에 國內 舊書가 絶種 殆至할지라. 余가 此를 懼하여 有志有資의 人士에게 舊書를 廣?精擇함을 望하는 바이니 苟或 幾 多 星霜을 又過하며 此志를 抱하는 者- 有하여도 其 散逸이 更多하여 一卷 故籍을 求함이 秦家■後에 詩書를 求함보다 更難할지로다. 嗚乎라, 世界文明의 三大原因에 印刷業의 發達이 其一에 居하였는데 韓國은 銅版活 字의 製造가 列邦 中 最先 發明된 國으로 文獻의 寥寥가 如此하니 此亦 國民의 責 이 아닌가. - <大韓每日申報> 1908년 第 831號 -
[ 爲 太極學報 一祝 ]
吾輩의 愛讀하는 太極報여. 太極旗를 背負하고 國民의 思潮를 煥發코자 하는 者- 太極報가 아닌가. 各種學說을 蒐集하여 祖國의 文明을 翼助코저 하는 者- 太極報가 아닌가. 熱誠을 噴하여 靑年의 意氣를 振作하는 者- 太極報가 아닌가. 唇舌을 弊하 여 舊學界의 頑夢을 警醒하는 者- 太極報가 아닌가. 向者 風聞을 接한즉 何許障?를 因함인지 太極報가 將廢라 하기에 吾輩가 此를 甚惜하더니 只今네 無恙獨立하여 舊 面目을 快保하고 初志幾人이 大奮함을 加하여 二千五百 餘? 金을 醵集하여 前途擴 張을 計圖한다 하매 吾輩는 又 蹈舞贊祝을 不勝하노니 吾輩의 愛讀하는 太極報여 其 自愛어다. 夫 幾年 來 韓國人의 發行한 雜誌가 凡 幾種인가. 其 性質이 政治 敎育 學術 何者 에 屬한 것을 勿論하며 其 發行이 國內及 城外 何處에 在한 것을 勿問하며 其 已廢 及 現在도 勿言하고 但 雜誌라 名稱하던 것을 統計하면 大略 ■■에 不滿하니 此亦 大韓國民의 一恥인데 某 雜誌든지 其 全部를 披閱하면 往往 數十 張 紙葉에 塡塞이 無策하여 ■■渤을 兼收拜書하는데 或 隣國名士의 著行하는 論文은 倫譯하여 自己 姓名으로 謄載하는 者도 有하며 或 本國 先輩의 陳腐한 睡餘를 收拾하여 其述이라 書하여 刊布하는 者도 有하며 或 第 號에는 略加 注意하여 精彩가 稍有하다가 不過 二 三號에 熱誠이 灰冷하여 人의 欠伸을 惹케 하는 者도 有하며 或 警告 同胞라 大 書特筆하고 閑談生活로 支離敷演하여 紙面만 往費할 者도 有하니 此는 韓國 內 雜 誌界에 爾我無論하고 幾乎痛病을 成한 者라. 是故로 發行 未幾에 ■然停鳴者- 太半이요 間或 稍久支存하는 者도 國民의 頑夢을 覺悟케 한 能力이 缺하여 二千 部 以上 發■되는 者- 殆無하니 仲尼云云하시되 禮 云禮云이나 玉帛云乎哉며 樂■■云樂云이나 鐘鼓云乎哉아 하였으니 夫 雜誌라 云함 도 亦豈 論說 雜錄 等 部分만 有한 者를 是云함이리오. 吾輩 於此에 不得不 太極報 를 厚望하며 不得不 太極報를 愛讀하노라. 然則 太極報는 盡善盡美라 稱할까. 曰 未也니라. 然則 太極報는 右陳을 諸弊가 絶無 한가. 曰 未也니라. 曰 然則 太極報를 厚望하며 愛讀한다 云함은 何謂오. 曰 太極報도 彼 文明國 書類가 比肩 ■馳하려면 幾年 後에나 可得할는지 難知며 本 國 書籍界 幼稚한 狀態를 獨掃하려 하여도 幾年 後에나 可得할는지 難知니 어찌 無實한 過評으로 彼에 妄加하리오 만은 雖然이나 其 思想이 塋潔하며 其 言論이 懇 切하며 其 主旨가 鞏確하고 又 其 壽命의 靈長함이 韓國 各種 雜誌 中에 初有라 할 지니 勉哉어다. 太極報여. 來日이 方丈하고 前途가 遼廓하니 益益히 思潮를 雄放하여 卷面에 高掛한 太極旗로 半島의 國光을 輝할지어다. - <大韓每日申報> 1908년 5월 23일 -
[ 關東學會 前途 ]
風雲이 幻하고 歲月이 深하매 彼 高枕夢夢하던 關東人士도 此 覺醒이 乃有하도다. 閑居悠悠하던 關東人士도 此 奮發이 乃有하도다. 太古鴻■의 關東에 此 學會가 乃 有하도다. 或曰 今日 關東學會 四字가 影子는 瞥現하였으나 不過 幾日에 閃藏할는 지도 不知니 試思하여 彼가 資本이 有한가 勢力이 有한가 其 進步의 前途가 ??乎 其難한 中 ■ 世道人士의 同情을 表하는 者 曉星같이 稀疎하니 비록 畿湖西北의 前 進하는 呼 邪聲이 彼 幾個 人士의 神經을 剌觸하여 愧憤羞■의 結果로 一張 趣旨書 를 發하였으며 數次 通常會를 開하였으나 落落人員과 擾擾 基礎로 何事를 能做하리 오. 其 不久退散은 知者를 不待하여 可知할 배라 하더라. 記者曰 斯語也는 果然 關東人士의 服膺三思하여 益益奮勵를 加할 베이로다. 雖然이 나 吾意則 以爲호대 團體事業 成就하는 路頭에 不得不 金力의 饒와 會員의 多를 待 할지나 此 兩件을 最大 最重者로 認함은 力 不可라 하노라. 此言을 不信하거든 目下 韓國에 第一人多를 多한 某會를 觀하라. 其■ 發展하던 時 代에는 農事에 食力하는 黃牛匹을 賣하여 食費에 供하는 者도 有하며 人口가 居生 하는 三間屋을 ?하여 會斂에 獻하는 者도 有하고 五百年 頑結하였던 頭髮을 一刀에 斷下하는 者- 日도 幾百 幾千人에 至하였으니 急進突飛가 此에 孰過리오 만은 其 影響所及을 詳察하라. 韓國이 利를 得하였는가. 害를 得하였는가. 故로 心力團結을 求하는 者- 主觀的의 趣旨와 懷抱를 先正할지오 客觀 的의 人員과 財額은 不問할지니라. 且 某種 事業을 無論하고 艱難經歷을 喫하고서 其 目的地에 到達하여야 能勤能愼하 녀 能保能守하며 能擁■能進 就함은 人事의 常經이라. 苟或 勃然■然之間에 萬事가 如意亨通하는 奇運을 逢하면 一時에는 快하나 長驅之計라 稱함은 不可하니 故로 저 蒲場 中에 壹夜 百萬金을 ■함이 十餘 年 勞?拮据의 取得錢만 不如한 배라. 關東이 元來 靈秀한 山川과 敦厚한 風俗으로 著名한 地方이라. 元■甲을 就勵같은 豪傑이 輩出하며 李齊賢 元天錫같은 學士가 頻現하여 海內에 雄鳴하더니 中間에 時 運의 不齊와 人事의 不盡하므로 此 ■夢을 暫做하였으나 苟能 ■然一覺하여 明士臺 에 馳登하면 七省民族의 背後에 不落하리라 하노라. - <大韓每日申報> 1908년 5 월 2일 -
[ 讀 壬辰誌 有感 ]
人心의 如何를 觀하여 其國이 以 亡 以 不亡함은 古今에 同然한 理어니와 壬辰 韓 日戰史를 讀함에 其 確然을 尤覺하겠도다. 是時를 試想하라. 政治를 論하면 腐敗가 莫甚하여 曰 東 曰 西 曰 南 曰 大北 小北 緩北 急北 等의 黨論이 蜂起하여 私鬪만 是事하고 國事는 不問함에 六曹는 虛設에 不過하며 三公은 尸位에 空據하던 時오 軍備를 觀하면 兵額이 幾千에 不滿하고 將 官은 員數만 僅具하며 且 統制使 節度使 等을 任差함에 人材만 不得할 뿐 아니라 ? 外之權을 宮中에서 坐握하므로 千里兵機를 啓聞乃決하여 壹事를 莫專하던 時라. 是故로 ?臣秀吉의 兵이 海를 壹渡함에 車駕는 倉皇 西遷하며 軍兵은 壹時 瓦解하여 廟堂諸臣이 束手相顧에 眼淚만 被面하였으며 逗?觀望으로 爲主하고 進戰을 不肯하 였으니 國家의 存亡이 一絲를 爭하였건마는 七 八年 兵火를 經하고도 金?가 無缺함 은 果然 何를 賴함인가 曰 此는 人心이 不去할 故니라. 是時 人心을 觀하라. 空臣窮儒도 國事를 爲하여 袂를 奮하며 擊壤蚩氓 도 國事를 爲하여 鋤를 投하며 娼妓는 一個 賣淫者언만 敵將을 抱하고 江樓에서 墜死한 娼妓도 有하며 僧徒는 壹個 守寂者어만 長衫을 着하고 義僧軍을 募集하여 敵兵과 決死한 僧徒도 有하여 流血로 槍砲를 代하며 義氣로 甲?를 代하며 敵愾心으 로 城郭을 作하여 其 國만 知하고 其 身 其 家를 不知하였으니 人心이 如此할 時인 즉 設令 淸正의 腋에 兩翼이 生하며 行長의 頭에 三角이 出하여 虎같이 吼吼하며 獅같이 搏할지라도 彼를 何足慮며 何足權이리오. 故로 曰 國家의 亡 不亡은 人心을 視한다 함이니 人心者는 何오. 卽 國을 愛하고 同胞를 愛하는 壹段 秉■ 良心이 是니 疆土의 蹙을 勿懼하고 人心의 泯을 是懼하며 權利의 削을 勿驚하고 人心의 衰를 是驚하라. 人心만 有하면 八域 內에 百千萬 敵營을 列하며 沿海 各地에 百千萬 敵艦을 艤할지 라도 我 疆土 我 權利는 我가 索還乃已하나니라. - <大韓每日申報> 1908년 4월 2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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