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因緣
<제3편 세상꽃>
③ 유남이와 음악시간-7
마장터 오일장 말감고 동춘이 만일에 남들처럼 영악하고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어떻게든지,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눈치껏 한줌의 곡식이라도 더 많이 멍석자리에 떨구어서, 아무리 못하더라도 한 장 도막에 여러 식구들의 목숨만은 건지어야할 만큼 챙길 걸 챙기겠지만, 그는 타고난 태생부터가 그러하지를 못하였다.
곡물을 시장에 내다놓고서 돈을 사려는(팔려는) 사람들도 농사짓기에 피와 땀을 흘린 터이니 저절로 안쓰러워지고, 귀한 돈을 가지고 곡식을 팔아(사)먹는 축들도 한줌거리의 곡식일망정 손해를 끼치어서는 아니 되리라고 여기었기에, 양쪽을 다 공평무사하게 마되질을 똑바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머리를 짓눌렀던 거였다.
그러한 곧은 양심을 가지고 좁다란 시골장터의 싸전에서 말감고를 하였으니, 장날 온종일 수십, 수백 가마니의 곡물을 허리가 휘도록 손수 거래를 주관하고서도 막상 집으로 가지고 오는 낙정미수입이란 고작해야 두어서너 말도 못되는 때가 많았다.
말이 그러하였지, 쇠털같이 많은 나날들을 여러 식구들과 살아가면서 하루하루 세 끼니의 목구멍에 풀칠하기란 쉽사리 볼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집에서는 양식이 달리어서 매일장천 시래기죽을 쑤어먹기도 하면서 굶주림에서 선뜻 벗어나지를 못하고 헛헛한 빈속을 움켜쥐고는 시들은 배춧잎이 되는데, 동춘은 양심 하나만을 굳게 손에 쥐고서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의 생각으로는 오일장 싸전바닥에 내놓은 산더미처럼 쌓인 곡물이 다 자기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일 뿐 아니라, 사고파는 양쪽에 손해를 끼치어가면서 배를 채울 까닭이 없다는 감고의 공정하고 곧은 정신을 잃지 않고 어디까지나 주어진 책무를 다하여 충실하게 거래를 수행하여야 한다고 다짐하였으리라.
어느 해질녘이었다. 언제나 그맘때면, 용다리를 건너 범바위 부자 광영감이 깨끗한 한복차림에 곰방대를 입에 문 채로 담배연기를 날리면서 마장터거리를 지나가는 거였다.
그날따라 날이 저물어서 어둑어둑한데 동춘은 그의 발길 앞에서 허둥지둥 창호지등불을 밝히어주면서 지나가고 있었다. 땅거미에 사계가 어둠으로 휩싸이었지만 어스름인데, 그는 하인처럼 광영감의 앞길을 밝히어주면서 길라잡이노릇을 하였던 거였다.
동춘의 한 손에는 예의 등불을 밝히어들었지만, 또 한 손에는 보자기에 싼 두툼한 보퉁이 하나를 들고 있었다.
그 보퉁이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천복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그때에 동춘과 광영감의 괴이쩍은 행보를 눈에 띈 얼마 뒤에야, 그네들에 얽힌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다.
그 이야기대로라면, 광영감은 투전으로 부자를 이룬 사람이었다. 이 세상에서 투전 놀음을 하여 부자가 되었다는 사람은 눈을 씻고 보아도 없었다. 그런데 그만은 억세게 재수 좋은 사나이이었다. 하기에 그의 투전성공담은 일화처럼 번지었다.
그네 집 동쪽 뒷간 문 앞에 투전장을 묻어두었다는데, 뒷간에 도깨비가 요술을 부리어서 그가 놀음판에서 투전장을 뽑기만 하면 가보낭청을 부르짖는다니, 귀신이 졸도할 일이라는 이야기가 바람처럼 떠돌았다.
신화의 주인공인 광영감이 해질녘이면 땅거미 어둠을 타고서 장터거리를 지나 높은 마당 묏구덩이로 투전장을 뽑으러 간다는 거였다.
그러한 그는 으레 곰방대를 물고서 조끼주머니에 투전장뭉치를 찔러넣고 다니었다.
그는 근동에서도 이름난 성공한 투전꾼일 수밖에 없었다. 야음을 틈타서 높은 마당 묏구덩이 속을 찾아들어가 노름꾼들을 만나고, 투전해서 따낸 돈을 용다리 밑의 풀숲의 땅속 깊이 묻어둔 항아리에 차곡차곡 채워둔다는 소문도 그 신화의 한 편으로 퍼지었다.
더욱이 그렇게 투전해서 모아둔 돈이 엄청 많다는데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정녕 그 돈으로 근처의 바둑판같은 논과 갯벌 같은 벌판 땅을 아주 싼값으로 사들이었다고도 하였다.
그런데 동춘은 그의 심부름꾼노릇을 하면서 보수를 얼마나 받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충실한 개꼴의 심부름을 하여주고도 처자식의 배를 곯리어야하는지 의문이었다.
사실 동춘이 들고 다니던 커다란 보퉁이는 광영감의 투전밑돈이라는 거였다. 밤잠조차 설치면서 남의 투전밑돈을 들고 다니면서 투전꾼 뒷바라지를 한다면서 자기의 가솔을 굶주림의 고통으로 빠뜨리는 그 속뜻을 알 수가 없었다.
사실 말감고는 공정한 곡물거래의 임무를 띠었기에, 그의 곧은 정신은 마땅하지만, 투전꾼의 심부름은 그와는 엄격히 다른 것 아닌가. 그러한 짓에서 손을 떼던가 아니면, 처자식을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하던가, 보통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반드시 어느 하나를 가리어잡아야 할 일이 아닌가.
아무튼 천복은 이러한 사실을 알아차린 뒤로는 유남이와 그의 어머니 두리댁이 더욱 가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광영감이 판만 벌이었다하면 가보낭창을 부르는 게 죄다 동춘이 같은 사람이 뒷바라지에 떠받들어주었기에, 그 밑거름이 된다면 야속한 느낌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던 거였다.
(다음은 ‘그 여름의 초승달’입니다)
첫댓글 사리사욕에 젖지않고 공명정대한 말감고 동춘인데
투전꾼의 심부름을 하는 이유는 뭘까요
이것이 바로 이율배반이 아닙니까. 공명정대한 본성을 가졌다면 옳은 일을 해야는데, 사람마다 본디 타고날 때에는 인의예지를 지녔으나 그것을 계발하지 않은 탓이지요. 이것이 배우지 못한 탓입니다. 大學에서 말하는 格物致知이지요. 첫머리에 나오는 明明德이란 타고난 덕을 밝혀서 다시 밝히는 것을 말합니다. 그 한 수단이 격물치지인데 사물의 깊이있는 구명으로 지식의 극대화하는 겁니다. 동춘은 본디 타고나기는 인의예지를 가졌으나 그것을 발휘할 수 있는 격물치지를 못하여 事理에 어둡습니다. 배웠다면 정직하게 말감고 하듯이 투전꾼 심부름은 하지 않을 겁니다. 고생은 그대로 하면서 무슨 짓인가. 인간의 양면성을 보여주
주는 대목입니다. 물론 소설에서는 그를 올바른 사람으로 반들던지 아니면 악인으로 만들던지 해야지만 그보다는 이러한 다양한 인간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결과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인간이 자기 가족들을 고생시키면서 그러네요. 이것이 모든 인간의 양면성이며 바보 천치 같은 짓이지요. 인간은 배워야합니다. 물질만으로는 인간 실패지요. 사리의 분별력이 없는 것이고.... 아는 것은 역시 정의로운 강력한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