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5.18 문학상 신인상 / 김희철
[출처] 제18회 5.18 문학상 신인상 / 김희철|작성자 ksujin1977
복화술사 / 김희철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든 아이
하루아침에 아침 드셨는지요 인사가
밤새 안녕하신가요로 바뀌었다
환절기가 지난 지 오래됐는데
한속기가 난 듯 몸이 덜덜거렸다
입이 있어도 말을 할 수가 없어
아빠는 복화술사도 아니면서
아이를 내세워야만 했다
아따 내 말 쪼매 들어보란 말이요
입술도 움직이지 않고 또박또박 말하자
아들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러내릴 것처럼
좌중을 바라보았다
오월이 머땀시 요로케 추운지
덜덜거리는 몸뚱어리를 으뜨케 단도리혀야 쓰는지
복창 터져 죽것구만요
아빠는 입을 앙다물고 복화술을 이어나갔다
영정사진을 들기에 너무나 어렸던 아들은
눈을 떴지만 보이지 않았고
귀를 기울였지만 들리지 않아
끝내 말문이 막혀버려
한마디도 전할 수가 없었다
밤새 무얼 보았던 걸까
비명에 돌아가신 아빠는
환청처럼 쉬지 않고 복화술을 이어 나갔다
아이는 입술 한번 달싹이지 않고
뚝뚝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리지 않았지만
40년이 훌쩍 지난 시공을 뛰어넘어도
숨겨진 이야기들을 쏟아내며
세계인들의 가슴팍을 파고들었다
아빠는 죽어 복화술사가 되었고
아들은 말 한 마디 않고도 죽은 말들을 살려냈다
* 독일 슈피겔지에 게재된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든 아이 사진.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를 절묘하게 대비하여 광주의 아픔을 세계인에게 전한 518의 상징적인 사진 중 하나.
봄동
수상한 그림자가 배추들을 꽁꽁 묶었다 찬바람에 겉잎은 누더기가 되어갔고 간신히 세상을 붙들고 있던 배추들이 뽑혀나갔다 배추밭 군데군데 총탄 자국 같은 구멍들이 선연했다
실려 간 배추는 돌아오지 않았다 세상 소식이 궁금한 애벌레는 자꾸만 남은 이파리에 구멍을 내며 변태를 거듭했다 배춧잎 몇 장을 먹고서야 간신히 하얀 날개 두 장을 달았다 벚꽃은 흩날리는 바람에 한 생을 홀라당 날렸다고 했다
배추흰나비는 아픈 배를 움켜쥐고 배추의 안부를 물었다 그때까지 밭고랑에 남아 노란 꽃망울을 밀어 올리는 이파리들이 보였다 때늦은 만개를 눈여겨보는 이는 없었다
흰나비는 먹여 살린 흔적이 남아 있는 이파리마다 알을 슬어 놓았다
[심사평]
5‧18의 의미는 무겁고 숭고하다. 우리는 어떤 의미로 살아가는가, 시라는 매체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려 하는가. 그런 근본적인 물음이 5‧18문학상 신인상엔 수반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5‧18문학상 신인상의 심사는 심사위원에게도 남달랐다.
응모작들에 공감하고 그렇기에 더 오래 들여다보며 지낸 시간은 각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이번 신인상에 응모된 작품 중 상당수는 1980년 5월의 광주를 잊지 않고 그 정신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직 해야 할 말도, 하고 싶은 말도 많다는 것은 반가웠다. 그러나 기억을 시로 옮기며 지난 일을 단순히 재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격앙되거나 감상에 빠져 시적 미학을 벗어나 슬로건이 되진 않았는지는 고민해야 한다. 5‧18의 무게에 짓눌려 자신의 목소리를 잊어버리진 않았는지도 생각해볼 문제이다. 어떻게 우리의 ‘진심’을 시를 통해 ‘진심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결국 응모작들에서 그런 고민의 흔적을 찾으려 했다.
논의 끝에 한 사람의 시인이 남았다. 당선자의 응모 작품은 고른 완성도를 보였다. 그의 시 중에서 어떤 작품을 당선작으로 정할지 더 논의되었다. 최종까지 고민한 당선자의 두 작품은 각각 다른 장점이 있었다. 「복화술사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든 아이」는 5‧18과 관련된 유명한 사진 한 장을 바탕으로 쓰였다. 소재가 실재하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생생한 느낌의 시였다. 역사적인 한 장면을 친숙하고 현장감 있는 언어로 풀어내면서 특별한 감동을 자아낸다. 「봄동」은 흔한 봄의 풍경이 80년 광주의 분위기로도 읽히는 비유적 시였다. 웅변적인 진술 없이, 선명한 정황 표현만으로 감정을 드러내고 여운을 남긴다는 점이 다른 응모작들과 비교됐다. 5‧18이라는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 살뜰하고 담담한 언어의 사용도 시를 빛나게 한다.
무엇보다 두 편의 시는 관념적인 단어 없이 광주라는 거대한 과거, 영원한 오늘을 기록했다. 시적 완성도를 갖고 있음은 물론이다. 고민 끝에 결국 두 편의 작품 모두 당선작으로 선정하기로 했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말씀을, 응모자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앞으로 더 많은 광주를 기록해 나가길 바란다.
- 심사위원 권민경, 신용목 시인
[출처] 제18회 5.18 문학상 신인상 / 김희철|작성자 ksujin1977
첫댓글 오월의 아픔이 전해 오는 시군요. 돌 던지다 지나간 시절이 떠오릅니다 ~~ 개인적으로 봄동에 한 표 보탭니다~~
5.18, 말만 들어도 마음이 울컥해집니다.
그때 사면에서 모여드는 서울역 집결지, 솔직히 무서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