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aly] Beautiful Villages of Italian Rivi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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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부에서 시작해 이탈리아까지 이어지는 리비에라에는 부호들이 편애하는 휴양 도시들이 포진해 있다. 그 명성은 서 西 리비에라의 ‘니스’와 ‘칸’에서 끝나버리기 쉽지만, 이탈리아의 동 東 리비에라로 넘어오면 ‘포르토피노 Portofino’와 ‘첸퀘테레 Cinque Terre’가 그 맥을 당당히 이어가고 있다. 이탈리아 리비에라의 마을이 서로 우열을 다툴 수 없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녔다는 것은 두 나라의 리비에라 지역을 대충이라도 섭렵한 에디터 본인이 증언할 수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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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북서부 리구리아주 포르토피노는 전 세계 부호들이 즐겨찾는 최고의 휴양지다.
부호들이 은거하는 아름다운 가장자리, 포르토피노 Portofino 부자들이 호화 요트를 정박해놓고 긴 휴가를 보낸다는 지중해의 휴양지. 로드 스튜어트가 두어 달 전 비밀스러운 결혼식을 올렸고,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에르메네질도 제냐가 매년 요트 레이스를 개최하는 곳, 포르토피노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탈리아 북서부 리구리아 주의 해안선에서 툭 불거져 나와 작은 곶을 이루고 있는 포르토피노는 로마, 밀라노, 베네치아를 돌아보기 바쁜 아시아인에게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유럽인과 미국인에게는 ‘최고’로 손꼽히는 럭셔리 휴양지다. 그렇다고 번화하고 화려한 도시를 상상하면 안 된다. 마을은 작고 골목은 좁으며, 즐비한 명품 숍과 고급 리조트마저 겉모습은 수수했다. 옆 마을인 산타 마르게리타 리구레 Santa Margherita Ligure에 숙소를 잡고 포르토피노행 배를 탔을 때, 눈앞에 펼쳐지던 포르토피노의 작은 선착장과 일렬로 늘어선 알록달록한 건물들의 첫인상은 마냥 동화적이었다. 아직 휴가철이 시작되지 않은 포르토피노는 무대에 오르기 전의 화장기 없는 무용수처럼 말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름마다 이곳에 일어나는 변화는 대략 이런 것이다. 크지 않지만 무척이나 비싼 초호화 요트들이 작은 항구에 정박하기 위해 자리다툼을 하고, 전망 좋은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리조트의 방값은 천정부지로 뛰는데도 웬만해서는 숙박계에 이름을 올릴 기회조차 찾아오지 않는다. 로마나 밀라노 같은 대도시의 쇼핑 거리에서나 발견할 수 있을 법한 구찌, 까르띠에, 아르마니, 페라가모 등의 숍들이 이 작은 마을의 좁은 골목에 버젓이 늘어서 있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포르토피노에 오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여행객들이 이 구석진 가장자리에 예약 전쟁을 치르며 찾아와서 진정으로 갈구하고 소비하는 것은 도시에서도 가능한 사치가 아니라 적당한 고립과 조용한 휴식이다. 거리 카페에 앉아 느긋하게 파스타 정찬을 먹고 에스프레소를 즐기면서 항구의 풍경을 바라보는 여유로움을 ‘구입’하는 비용은 부담스럽지 않다. 로마 거리를 지나 마르티리 델로리베타 광장 Piazza Martiri dell’Olivetta에서는 고급 레스토랑뿐 아니라 캐주얼한 레스토랑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포르토피노가 가진 또 하나의 말간 얼굴은 총 길이가 60킬로미터에 이르는 트레킹 코스가 잘 정비되어 있는 국립공원의 면모다. 휴식이 필요한 사람들이 절벽 아래 은밀한 곳에서 명품 수영복을 입고 일광욕을 하는 동안, 건강한 트레커들은 땀을 흘리며 언덕을 오르거나 해안 도로를 따라 조깅을 한다. 포르토피노를 벗어나 다시 숙소가 있는 산타 마르게리타 리구레로 돌아오는 5킬로미터 남짓한 길은 아름다운 해안선을 따라 이어져 있다. 클라우디너무 귀여운 스쿠터 ‘베스파’를 타고 가는 사람들, 사이클링을 즐기는 사람들, 산책을 즐기는 노부부가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우리가 스쳐 지나간 사람들은 바닷가 바위 위에서 낮잠을 즐기는 커플, 다이빙에 여념이 없는 소년들, 낚시를 즐기는 수염이 덥수룩한 아저씨들이었다. 수십 미터의 절벽 위에서도 떼 지어 다니는 물고기가 보일 정도로 바닷물은 맑았고, 그 위에서 카야킹을 즐기는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주었다. 같은 공간에서 다른 방법으로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은 평화롭게 공존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풍경이 되었다. 하나하나 분리해 생각해보면 그저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 작은 바닷가의 동화 같은 마을에서는 마치 파라다이스와 같아 보였다.
1포르토피노 북서부에 위치한 작은 마을, 카모글리 Camogli는 유난히 위장 벽화가 많은데, 벽화가 그려진 건물 사이로 실제 등장하는 사람들마저 그림 속 인물 같다. 2 포르토피노 마을의 빼어난 풍경은 에메랄드빛 바다와 원색의 집들이 조화를 이룬 결과다. 3 낡고 소박해 보이는 교회는 내부에 들어설 때마다 그 화려함에 놀라게 된다. 카모글리 마을 교회의 성모상. 4 개와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풍경. 5 여름 휴가철이 되면 이 거리는 관광객의 물결로 미어진다. 카모글리의 해변 쪽 풍경.
유네스코가 인정한 황홀한 5부작 첸퀘테레 Cinque Terre 포르토피노를 출발해 첸퀘테레(5개의 마을)로 가는 길은 계속 굽이치고 있었다. 이탈리아에 온 이래 너무 많은 양의 파스타와 피자, 에스프레소를 받아들인 속이 한참이나 울렁인 끝에 라스페치아 La Spezia에 도착했다. 다섯 마을 중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리오마기오레 Riomaggiore에 차를 주차하고 마을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이런 멋없는 표현으로 첸퀘테레를 소개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고백하건대 문득 든 첫 생각은 엽서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떤 폄하의 감정도 섞이지 않은 솔직한 심정이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눈앞에 있는 5개의 마을 풍경이 담긴 엽서를 앞의 일주일 동안 관광 기념품 진열대에서 숱하게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마다 사고 싶은 충동을 참은 것은 엽서 속 풍경이 현실과 어떻게 다를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수천 장의 사진 중에서 고르고 골라 만지고 또 만진 엽서의 사진은 항상 실제로 접하는 풍경보다 과장되어 있곤 했다. 하지만 첸퀘테레만큼은 예외였다. 깨끗한 공기는 따가운 태양빛 아래서도 난반사 없이 총천연색의 풍경을 시야에 그대로 전달해주었다. 컴퓨터로 ‘만져진’ 색감이 아니라 살아 있는 컬러의 세계로 들어온 것만 같았다.
작은 피자 가게, 앙증맞은 인형 가게를 지날 때마다 멈춰 서고 싶은 유혹에 우리의 행진은 더디기만 했다. 한번 빨려 들어가면 그날 하루를 소진해버릴 것만 같아서 감히 시선을 주기가 두려울 정도였다. 그래도 차마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첸퀘테레의 풍광을 담은 한 폭의 그림에 이끌려 갤러리 ‘시아케아트 Sciaccheart’에 들어가고 말았다. ‘시아케아트’라는 이름은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화이트 와인 ‘시아케트라 Sciacchetra’에서 따온 것이다. 첸퀘테레의 아름다운 풍경에 반해 수년 전 리오마기오레로 이주해 갤러리를 오픈한 제랄도와 클라우디오 부부는 마을마다 작은 갤러리가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막상 이곳에 온 이라면 조악한 엽서보다는 소품일지라도 생생한 풍경화를 구입하고 싶어질 것이 당연하다.
첫 번째 마을에서 그렇게 지체하는 동안 가이드는 재촉하기를 포기하고 아예 저만큼 앞서 가버렸다. 리오마기오레에서 시작되는 해안 트레킹 코스에 접어들기 위해 첸퀘테레 카드를 구입하고 나서 그는 본격적으로 자기 페이스대로 움직였고, 우리와 서서히 멀어져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을이 워낙 작은 데다 마을과 마을이 외길로 이어져 있어 일행을 잃어버릴 염려는 없었다. 마나롤라 Manarola까지 이어진 ‘사랑의 길 via dell’amore’에는 연인들이 쉬어가기에 알맞은 벤치들이 곳곳에 있었고, 벽에는 나그네들이 남긴 낙서가 가득했다. 잎사귀 하나가 테니스 라켓보다 큰 선인장에 새겨진 사랑의 맹세 중 많은 부분이 저렇게 상처로만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거리에서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커플은 막 사랑에 빠진 젊은이들이 아니라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걸어가는 노부부들이었다.
5 여름 휴가철이 되면 이 거리는 관광객의 물결로 미어진다. 카모글리의 해변 쪽 풍경. 6 교회가 중심을 이루는 카모글리 마을의 해변 야경.
푸른 바다에 잘 녹아드는 알록달록한 색감 외에도 리비에라 Riviera 해안에 자리 잡은 5개의 작은 마을의 공통점은 아슬아슬한 입지다. 집들이 서 있는 모양새는 우르르 바닷가로 몰려가다가 절벽 위에서 겁을 먹고 멈춰 선 것처럼 보인다. 강어귀에 위치한 베르나차 Vernazza는 거친 파도를 막아주는 자연적인 바위 지형으로 첸퀘테레에서 가장 안전한 선착장 역할을 했고, 지금은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코르니글리아 Corniglia는 다섯 마을 중에서 해안가에 치우치지 않은 유일한 마을로 테라스형 포도밭에 깊숙이 둘러싸여 있다. 기차역에서 370여 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마을에 도착할 수 있다. 다섯 마을 어느 곳에서 멈춰 서도 묵어갈 만한 숙소, 쉬어갈 만한 예쁜 카페들이 풍성하다. 그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도시는 몬테로소 알 마레 Monterosso Al Mare. 기차역에서 나오자마자 만나게 되는 넓은 해변은 편의 시설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에 여름이면 발 디딜 틈조차 없어진다. 베르나차와 코르니글리아 사이에 있는 구바노 Guvano 같은 해변은 크지 않지만 그래서 더 로맨틱한 장소다.
마을마다 개성적이고 동화적인 풍경 때문에 많은 아티스트들이 칭송한 첸퀘테레는 마치 신이 만든 비경인 것처럼 묘사됐지만, 사실 유네스코가 이곳을 세계인류문화유산(Mankind’s World Heritage)으로 지정한 것은 인간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첸퀘테레의 풍경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 것은 해안으로 가파르게 이어진 경사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포도밭이다. 쓸모없던 땅은 오랜 시간에 걸쳐 한 올 한 올 머리를 땋아 내리듯 다듬어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이 지역 전체가 ‘첸퀘테레’라는 이름의 포도주를 생산하는 포도원이 됐다. 이곳에서 영글어 미처 수확되지 못한 포도들은 그대로 데굴데굴 굴러서 바다로 떨어질 것만 같고, 급경사면에는 가로무늬가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물론 한 층 한 층 땅의 외양을 바꾼 것은 사람의 힘이었다. 테라스 모양으로 이뤄진 포도밭의 각 층을 지탱하는 돌담의 길이를 모두 연결하면 자그마치 7000킬로미터나 된다. 시멘트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마른 돌을 쌓아 올려 각 층이 무너지지 않도록 고정하고, 그곳에 포도 묘목을 심어 가꾸기까지 이 땅에 쏟아낸 땀의 양은 엄청나다.
1 첸퀘테레 중 가장 남쪽에 있는 마을, 리오마기오레의 전경. 2 리오마기오레의 시아케아트 갤러리. 3 마을마다 앙증맞고 기발한 간판이 손짓을 한다.
우리 일행은 땀을 식힐 겸 길 중간에 암벽을 깎아 만든 카페에서 ‘첸퀘테레’ 와인 한 잔으로 목을 축였다. 척박한 환경에서 재배된 이 지역의 포도로만 만들어지는 와인은 관광객들에 의한 수요가 많아서 외부로 판매할 물량이 부족할 정도다. 토스카나의 세계적인 문인 페트라르카와 보카치오, 이탈리아 문학계의 대부 격인 단눈치오 등은 첸퀘테레 와인의 맛에 반해 ‘달의 와인’과 같은 헌사를 남기기도 했다. 낭떠러지 위에서 마시는 가볍고 달콤한 디저트 와인 ‘첸퀘테레’는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더욱 투명하게 보였다.
반론을 제기할 여지없이 첸퀘테레를 경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러 날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트레킹을 즐기는 것이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이 단 하루뿐인 우리는 꼬박 5시간 정도가 소요된다는 5개의 마을 트레킹 완주를 포기하고 마나롤라에서 기차를 탔다. 20여 분 만에 첸퀘테레에서 가장 북쪽 마을인 몬테로소 알 마레에 도착했다. 첸퀘테레 카드를 구입하면 횟수에 제한 없이 레반토 Levanto-몬테로소 알 마레-베르나차-코르니글리아-마나롤라-리오마기오레-라스페치아까지 운행하는 열차를 탑승할 수 있다. 첫차가 레반토에서 새벽 4시 46분에 출발하고 막차는 자정 넘어 12시 23분에 라스페치아에 도착한다. 이 철도가 개통되기 전까지 마을의 운송 및 교통수단은 가파른 길을 오를 수 있는 당나귀가 전부였고, 마을은 서로 고립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그 거리를 시발역부터 종착역까지 30분 만에 주파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은 이곳이 이탈리아라는 것, 그래서 기차가 항상 시간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석양을 잡으리라는 생각으로 서둘러 첸퀘테레를 빠져나와 다시 길을 거슬러 달리기 시작했다. 다섯 마을이 보이는 지점마다 차를 세우고 하나씩 작별을 고하는 시간은 각별했다. 여행은 언제나 짧게만 느껴지는데, 단 한 번의 만남과 이별이 아닌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까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다 보니 그 정리 定離의 섭섭함도 어지간히 가라앉아 있었다.
1 가장 큰 마을인 몬테로소 알 마레의 해변이 보이는 노천카페. 2, 3 ‘사랑의 길’ 중간에 있는 카페에서는 ‘첸퀘테레’ 와인을 맛볼 수 있다. 4 아슬하지만 아름답게 자리 잡고 있는 마나롤라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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