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1,2교시 영어교육과 20071519 황현진입니다.

[황현진]

'영어몰입교육의 타당성'

20071519 영어교육 황현진

 “내 말은 우리말을 버려야 중국과 같게 된다는 것이다.” 정조 때의 실학자 박제가는 <북학의>에서 조선이 부강해지기 위해서는 우리말을 버리고 중국어를 상용해야 한다는 중국어 공용화를 주장했다. 전광용의 소설 <꺼삐딴 리>에서 이인국은 “야, 원식아 별 수 없다. 왜정 때는 그래도 일본말이 출세를 하게했고, 이제는 노어가 또 판을 치지 않니.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는 바에야 그 물 속에서 살 방도를 궁리해야지.” 라고 말한다.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 에서는 이방 백종두가 아들에게 “앞으로는 일본말얼 못해 갖고는 입신이고 출세고 권세고 재산이고 하나도 손에 잽히지 않고 앞길이 콱콱 맥히게 된다. 일본말얼 몰라서는 사람새끼 노릇얼 못혀.”라고 꾸짖는다.

 이렇듯 우리말을 버리고 권력이 강한 나라의 말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고민은 비단 오늘 날의 문제만은 아닌 듯하다. 박제가, 이인국, 백종두 모두 어떤 의도에서였든 우리말보다는 외국어를 쓰자고 주장하고 있다. 박제가가 <북학의(1778)>를 쓴 지 220여년이나 흘렀지만 울는 여전히 우리말과 외국어 사이에서 더욱 심하게 갈등하고 있다.

 2008년 MB정권이 모든 분야의 개혁을 단행했는데 교육 분야의 개혁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단연 ‘영어몰입교육’이었다. 정부는 몰입교육을 통해 영어수업부터 시작해서 수학, 과학 까지 전 과목을 영어로 수업하며 그와 함께 영어교육 자체의 질도 향상시킨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이렇게 이상적으로만 보이는 몰입교육의 실제는 어떠했는가. 영어몰입교육 정책의 발표와 동시에 사회 각층에서 많은 반발이 있었고 결국 여론의 반대로 지금 이 정책은 거의 백지화 된 상태이다.

 하지만 현재 영어교육의 흐름이 CBI(내용중심교수법)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에 영어몰입교육이 다시 추진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리고 일부 국공립 또는 사립의 초, 중, 고, 대학교에서는 부분적으로 몰입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따라서 나는 이 글을 통해 ‘영어몰입교육이 한국학생들의 영어능력을 향상시킬 것이다.’라는 가설을 검증해 보고자 한다.

 검증에 앞서서 영어몰입교육이란 무엇인가 그 정의와 특징부터 살펴보자. 몰입교육이란 CBI의 가장 대표적인 예로서 1960년대 후반에 영어와 불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는 캐나다 퀘벡 지방에서 영어 화자들에게 불어를 가르치기 위하여 처음 시행되었다. 이 교수법 1970년대에 캐나다의 다른 지방으로 퍼지기 시작하여 1980년대 이후에는 미국이나 세계 다른 나라에서 다양한 외국어를 가르치기 위하여 여러 가지 형태로 변형되어 시행되고 있다. 몰입교육의 특징은 다양한데, 우선 목표어는 교과를 가르치기 위한 도구일 뿐 목표어 자체가 교수의 대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전형적인 교사 유형은 목표어와 학습자의 모국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이중 언어 화자라는 점이다.

 이러한 특징을 갖는 몰입교육의 타당성을 교육 내적인 측면과 외적인 측면에서 검토해 보도록 하겠다. 내적인 측면은 교사와 학생의 입장에서 그리고 외적인 측면은 몰입교육이 교육 외에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첫 째, 영어몰입교육을 실시하기 위해서는 위의 몰입교육의 특징에서도 언급했듯이 교사의 전문성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사범대나 교육대에 몰입교육을 위한 커리큘럼은 미비한 실정이다. 나는 실제로 2년 전 현재 재학 중인 학교에서 실행한 몰입교육 강좌를 신청하여 들은 적이 있다. 정규 커리큘럼 이외에 실시하는 강좌로 학교의 원어민 강사가 진행하는 수업이었다. 수업의 내용은 초등학생의 수학과목을 영어로 수업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수학용어를 영어로 배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강사인 원어민은 회화수업만 하다가 갑자기 수학수업을 가르치려고 하니 준비가 부족한 듯 버거워 보였고 강의를 듣는 우리도 힘들었다. 결국 강의는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고, 몇 주 지나지 않아 폐강되고 말았다. 정부의 주된 정책인 영어몰입교육을 위해서 우리 학교의 영어과도 상당한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기대에 못 미치는 강의로 실망한 적이 있었다. 교육현장에서 몰입교육을 직접 실행하게 될 교사를 양성하는 국립대학에서 조차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실제 교육현장에서 몰입교육이 잘 이루어 질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그리고 교사가 자신의 교과의 지식 뿐 아니라 영어지식까지 갖추려 하다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두 마리 다 놓치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특히 초등교사는 모든 과목을 모두 영어로 가르쳐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힘들 것이다.

 둘 째, 학생의 입장이다. 수업에서는 무엇보다도 학생이 중요하다. 그래서 교사 중심의 수업보다는 학생 중심의 수업을 추구하는 것이 요즘 교육계의 흐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영어몰입교육은 학생에게 어떻게 다가올까.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최근 불거진 KAIST 사건은 몰입교육의 폐해를 드러내는 일이었다. KAIST는 학력이 무엇보다 중시되는 대한민국에서 잠정적으로 이미 어느 정도의 성공을 보장받은 학생들이 모인 학교이다. 그 곳에서 올해에만 잇달아 4명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겟지만 그 중 하나는 ‘영어에 대한 부담감’ 이다. KAIST에서는 전 과목을 영어로 수업한다. 우리말로 설명해도 알아듣기 힘든 수학, 과학을 영어로 수업하는 것에 대한 학생들의 심리적인 부담감을 느낄 수가 있다. 심지어 중국어 과목까지 영어로 수업했다고 한다. 이는 KAIST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 교육의 전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를 들어 알파벳을 쓰고 영어단어를 겨우 읽을 줄 아는 초등학생들에게 수학이나 과학을 영어로 수업한다면 아마도 해당과목에 대한 흥미를 잃을 것이다. 그리고 영어능력은 나이에관계 없이 수준차이가 크기 때문에 영어를 잘하는 학생이 모든 과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차지하는 현상까지 일어나게 될 것이다. 결국 몰입교육을 제대로 수용할 수 있는 학생은 소수에 불과하다.

 셋 째, 몰입교육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교육이라는 것은 교육에만 그치는 일이 아니다. 교육은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의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정책은 신중하게 결정되고 시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교육열이 강한 나라에서는 국민들이 교육정책에 민감하게 반응을 한다. 정부는 영어몰입교육의 시행으로 사교육이 줄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는데 과연 그럴 것인가 ? 학교의 모든 수업이 영어로 진행된다면 전 과목을 영어로 가르쳐주는 학원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게 될 것은 불 보듯 뻔 한 일이다. 그렇게 되면 집안 형편이 넉넉한 학생은 학원을 등록하게 되어서 성적을 유지하거나 향상시키고 그렇지 못한 학생은 결국 성적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교육격차를 더욱 심화시키고 나아가 사회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다. 교육을 통해 ‘부의 세습’이 구현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교육을 시킬 수 있는 지의 여부가 계층을 가르는 결정적인 기준이 될 것이므로 가난한 가정의 자녀가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는 기회는 극도로 제한 될 것이다. 교육이 신분 상승의 통로가 되기는커녕 현존하는 계층구조를 더욱 굳건하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누구나 조금만 생각을 해보아도 예상을 할 수 있는 일이다.

 몰입교육은 사교육의 폐단을 제거하고 영어교육의 내실화를 위해 구상된 정책이다. 하지만 교육을 경제적인 논리로만 풀어나가기에는 무리가 있다. 교육은 경제적인 성격 외에도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의 영어몰입교육의 타당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얼마 전 한 일간지에서는 영어몰입교육을 실시한 결과, 영어의 양극화현상이 심해진 결과를 기사로 보도했다. ‘전용교실제’ 를 실시한 중학교의 경우 실시하지 않은 중학교에 비해 우수학생은 0.02%많은 데 비해 미달학생은 0.43%나 많았다는 내용이다. 아래의 표는 기사에 나온 영어교육 정책에 대한 학생들의 평가와 학업성취도를 나타낸 것이다.

                

 

<자료출처 : 2011년 4월 22일 한겨례 신문>

 이렇듯 영어몰입교육이 학생들의 영어능력 향상에 미치는 효과는 미약하다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기사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이미 특목고나 몇몇 사립의 초등학교에서는 영어몰입교육을 실시하고 있고 한국의 부모의 교육열로 인해 위의 학교에 입학하기 위한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몰입교육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글의 도입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말을 버리고 외국어를 수용하자는 주장은 오늘 날의 문제만은 아니다. 하지만 지나친 美문화사대주의는 지양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문제점 중 하나는 선진국의 문화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이다. 타문화를 배척하는 태도도 문제이지만 그것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몰입교육은 처음에 캐나다의 퀘벡 지방에서 영어화자들이 불어를 잘 하기 위해서 생긴 교수법이다. 캐나다는 영어권 국가인데 퀘벡은 캐나다 안의 작은 프랑스라 불리 울 만큼 많은 프랑스인들이 거주하는 곳이다. 따라서 영어화자들의 불어교육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상황은 다르다. 우리의 모국어는 한글이고 대부분의 사람이 영어를 사용하는 곳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의 몰입교육의 무조건적인 수용보다는 우리의 실정에 맞게 수정하거나 보완하여 실시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리고 끝으로 우리나라 학생들을 보며 드는 아쉬운 생각이 있다. 어릴 때부터 영어조기교육을 받아 온 그들이기에 영어실력은 향상되었을지 모르나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일상의 대화에서 별 생각 없이 비속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지식인의 한 층을 담당하고 있는 대학생들조차 비속어 없이는 말을 이어나갈 수 없는 상황을 보면 우리가 진짜 중요한 것을 잊고 있는 듯하다. 더불어 외국인들의 눈에 한국인들이 어떻게 보일지 두려워지기도 한다. 교수님께서 수업시간에 보여준 영상에서 외국인들이 한국인의 이미지로 ‘욕을 한다.’는 것을 제시하기도 했으니 이는 분명히 반성해야 할 점이다. 영어실력을 바탕으로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추되 그 안에서는 우리 것을 지킬 줄 아는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들 스스로도 그러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논문 : 영어공용화론과 영어몰입교육 (이병민)

기사 : 영어실력 양극화... ‘우수’보다 ‘미달’이 훨씬 늘어 (한겨례 2011년 4월 22일)

         이준구 교수의 영어몰입교육 비판

[문명의 만남]

왜 영어몰입교육을 실시해야하는거지요? 당위성인가요?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과 도구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