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로 살피는 한국학
바룬길 최정호 님(당시 신림중학교
교사)
우리는 한국에 살고 있습니다. 아니 한국 땅에 살고 있다고 해야겠습니다. 한국이라 하면 잘 와
닿지 않지만, 그래도 땅이라 하면 일단 몸이 의지하고 있는 것으로, 어떤
직접 부딪히는 느낌이라도 확실히 있는 것 같으니까요.
그런데 땅은 흙(soil)이 아닙니다. 땅은 그것을 기반으로 살고 있는 모든 어울림의
총체입니다. 거기 어울려 살고 있는 모든 살이들의 어울림 그 자체로,
한 울이 다른 울과 마디지어지며 이어지게 되는, 살이들이 어우러진 한 마당이며, 거기에는 다른 마디의 울과 구별될 수 있는 그 나름의 독특한 어울림의 방식 또는 질서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 땅에 함께 살고 있다” 라고 해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함께 이 땅, 한 울 안에 살고, 또 죽고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서로가 서로를 기꺼이 먹고 먹히우며
말입니다. 결국은 함께 이어지고 묻어서 한 동심원을 가진 한 결의 흐름으로 더불어 죽고 사는 한 겨레요, 한 겨레붙이가 아니겠습니까?
한 울은 그것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이 함께 이어져 끊임이 없고, 그 울은 한없이 이어져 열려있을 터, 거기 우리 사람도 한없는 울로 이어진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어짐도 한
울, 한 울의 연결인 것으로 서로간의 경계 아닌 경계인 마디로 이어지면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시간과 공간의
한없는 열림으로 있는 우주의 한 동심원 상의 어느 한 겹 마디를 짓고 있을 우리 한국땅과 그 살이 중, 우리
한국 사람은 다른 마디를 짓고 있을 다른 땅들과 그 사람들과는 무엇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 알고, 그
비교상의 특징적인 성격을 조직적으로 틀지어 보는 일이 한국학이란 ‘학’學의
형식적인 범주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땅과 우리 한국 사람들의 정체성을 보다
뚜렷하게 크게, 새롭게 다시 할 수 있는 한바탕을 마련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한국 땅의, 한국 사람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이라는 말입니까?
실제 내용상 다른 땅과
사람의 특징과 다르다고 구별할 수 있는 근거가 될 핵심 특징은 무엇일까요? 무엇보다도 우선 한국 땅의
한국 사람이 일구어온 문화와 사상의 도구이자 바탕인 한국어를 통해 적절히 접근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따라서 ‘한국’이라는 국명이 진정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깊이 있게 시사하는
바가 있는 ‘한과 하라’, 그리고 ‘나라’에 대한 박 현 님의 연구결과 두 편을 바나리 한국학 연구소
연구위원 이은영 님의 요약 정리를 통하여 인용하고 위 질문에 대한 답으로 대신해 볼까 합니다.
이처럼 국명을 우선하여
예로 삼는 것은 중국의 경우, 그 국명이 나타내고 있듯이, 자기네
나라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해온 그들의 특징적인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고, 일본 역시 그들 국명 그대로
해(하늘)-쭈리씨알, 천손족이라고
그들 나름대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단적으로 나타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국명은 그 나라 사람들의
어떤 특징적인 정체성 또는 세계관과 깊은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가정해볼 수 있습니다.
[한]
① 태양을 가리키는 말. 태양은
첫 땅이기도 함
② 태양을 상징하는 최고의 지도자
③ 인격화된 태양
④ ‘한’이 접미사로 쓰여 된소리가 되면
‘간’, ‘건’
⑤ ‘환’桓으로 읽기도 함.
《한한청문감》韓漢淸文鑑에서 보면 ‘한
우시하’(우시하-별)는
북두칠성 가운데 두 번째 별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그 별의 이름에 ‘한’이 붙은 것은 그것이 태양을 상징하는 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몽어류해》蒙語類解에 따르면, 옛 몽고어에서도 그 별을 ‘하안
오돈(오돈-별)이라
불렀는데, 이 역시 그 별이 태양을 주관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한’은 나라의 이름이기 이전에 태양을 가리켰고, 태양으로 상징되는 사람
또는 태양의 후예로 자처하는 종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위서 시비에 걸린 《한단고기》가운데 안함로安含老가
지었다는 <삼성기>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우리 환桓은 가장 먼저 나라를 세웠다” (吾桓建國最古). 여기에서 말하는 ‘환’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요? 그에 대해 해석이 분분하지만 여기에서 ‘환’은 문장의 주어로 쓰이고 있음이 분명하므로 그것은 누군가에 의해 세워진 나라 이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세운 종족이나 그러한 세력 자체의 이름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편 혁거세가 세운 나라인 신라의 옛 이름은 ‘서나벌’徐那伐이었습니다. 이것은
원래 ‘사라바라’의 한자식 표기로서 이때 ‘바라’는 ‘하라’의 된소리입니다. 경북 상주를 가리키는 옛 땅이름 가운데 하나인 ‘사벌’斯伐도 ‘사라바라’의 한자식 표기인데 이때 ‘바라’는
‘하라’가 접미사로 쓰이면서 된소리가 된 것입니다.
요컨대 사벌이나 서나벌은 모두 ‘밝은
태양’ 또는 ‘밝은 태양의 나라’였으며, 그 지도자가 ‘한’이었던 까닭도 태양에 대한 상징성 때문이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혁거세의 경우 東明東明불리기도 했는데, 동명은 ‘밝은 태양’을 가리키는 ‘사라하라’라는
옛말의 한자식 표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혁거세의 칭호인 居西干居西干보이는 ‘한(간)’이 인격화된 태양’ 곧 태양을 상징하는 지도자였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야의 ‘아도간’我刀干, ‘여도간’予刀干
등의 ‘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도간은 ‘나 두레의 한’이고, 여도간은 ‘너 두레의 한’으로서
그들도 모두 태양과 관련된 지도자였던 것입니다. 또 서기 10세기
초에 고리(高麗, 고리는 고려의 당시 발음)를 세운 왕건王建의 계보를 살펴보면, 그 아버지는 용건龍建이고, 그 할아버지는 작제건作帝建이며, 그 외증조부는 이제건伊帝建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건’은
원래 ‘한’의 또 다른 한자식 표기였던 것입니다.
《삼국사기》<지리지>를 보면 지난날 동해안의 강릉 일대를 ‘하슬라’河瑟羅 또는 ‘하서량’河西良이라고
일컬었습니다. ‘하슬라’ 또는 ‘하서량’의 당시 음가는 ‘하쇠라’인데, 여기서 ‘쇠’는 밝다는 뜻이고, ‘라’는
태양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하쇠라’는 태양이 처음으로 밝아오는 곳’이 됩니다. 특히 ‘하쇠라’는 한자로
溟州溟州이는 바로 해가 밝아오는 곳이란 뜻입니다.
일본의 땅이름인 ‘하라후토’(はらふと또한 원래 ‘하라하토’이며
이곳은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름으로 보아도 ‘하라(해)+하(처음)+토(땅)’ 즉 처음 해가
뜨는 땅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자식 표기에서도 일찍부터 ‘桓’환과 ‘韓’한을 섞어 쓰는 경우가 많았으며, 생겨난 지 오래된 명사일수록 그
원래 음가는 중모음이나 복모음보다 단모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이는 ‘환’을 ‘한’으로 읽는 것이 옳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습니다.
[하나]
① 처음,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최소의
단위.
② 옛 만주어에서는 하나의 공동체나 공동체의 경계나 그런 경계의 울타리. 요컨대 만주어의 경우, ‘하나’는
‘한’이 다스리는 영역을 가리켰음.
이와 관련된 옛 만주어나 옛 몽고어 또는 일본어에서 확인된 용례;
- HAN(한)-황제, 인격화된 태양(만주)
- HAGAN(하안)-태양, 황제(몽고)
- HANA(하나)-둥근 울타리, 태양의 경계(만주, 몽고)
-
HARGAXAMBI(하라아삼비)-(태양 등
높은 것을) 우러러보다(만주)
-
HARAHALAMUI(하라할라무이)-우러러보다(몽고)
- HARA(하라)-해가 밝음(일본)
- HARABE(하라베)-해님께 빌다(일본)
-HANNARI(한나리)-밝다(일본)
이처럼 ‘한’과 ‘하나’는 말뜻이 넓어져서
‘높다’, ‘밝다’, ‘크다’는 뜻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나라(國)]
하=라=나
하: 처음. 생겨남
라: 태양. 하늘. 영역
① 하 + 라
② 첫 영역, 첫 땅, 하늘의
땅.
③ ‘하’를 빼고 ‘라’만 가지고도 같은 의미로 씀. 두음법칙을
적용 받아 ‘나’가 됨.
④ 하라=라=나
⑤ ‘한’과 ‘하나’ 및 ‘하라’ 가운데 음운학적으로 가장 원초적인 것
⑥ 하라가 접미사로 쓰이면서 된소리가 된 것이 ‘바라’임.
[나]
① 구루가 땅으로 적용될 때.
② 구루보다 2차적인 영역.
③ 구루까지 포함하는 영역을 일러서 흔히 ‘나라’하고 표현하기도 함.
④ 하늘과 하나되고 땅과 하나되는 영역.
⑤ 자미원 속에 있는 영역 전부를 말할 때, 그리고 그것이 땅으로 내려오면 ‘나’가 됨.
[다]
① 첫 땅인 ‘나’(라)로부터 생겨난 두 번째 땅.
② 뒷날 소리바꿈 되어 ‘더’, ‘도’, ‘두’로 읽힘.
③ 센소리나 된소리가 되어 ‘타’, ‘따’, ‘터”, ‘토’, ‘투’로도 읽힘. 즉
‘땅’의 옛말은 ‘따’.
④ 만주 땅이름에 접미사처럼 붙는 ‘탄’이나 ‘툰’도 땅을 뜻하는
말. 그 어근은 ‘타’,
‘투’.
⑤ 한자인 ‘土’의 음가도 여기에 바탕을 둠.
[바]
① 사람(생명을 가진 밝은 태양)이
다(땅)에 살면서 가꾼 것.
② 땅에 비추어진 이 셋 바깥의 영역, 제일
마지막 영역.
③ ‘나라’의 ‘밖’. ‘바의 땅’.
④ ‘~할 바’에 일반 처소격 명사로
쓰고 있는 것은 여기서 어는 말임.
⑤ 인간이 생활하는 생산의 대상으로 적용되어 ‘밭’이 됨.
⑥ 여기서 성품이 잘 단련되는 것을 ‘바닌타이’, ‘반진’, ‘반인’이라고
함.
[곳]
① 사람이 ‘바’를 일구어
냄으로써 마침내 ‘다’(땅)에서
‘나’를 세워가는 영역.
② 구루의 어근인 ‘구’ 또는 ‘고’라는 말에서
옴. 땅에서 구루를 자칭할 때 쓰고 특정한 지형일 때는 ‘구루’라고 함. (예: 고구려의
수도 ‘구루’).
③ 한자로 나라를 가리키는 핵심 개념인 ‘국’國(원래 음가 ‘쿠’)에 해당하는 우리말. 즉 무슨 ‘츠’ ‘크’, 또는 무슨 ‘쿠’하는 개념들은 스스로 구루를 자기의 땅이라고 자처하는 개념에서 온 것임.
④ ‘나’와 ‘다’와 ‘바’를 아우르는 영역임.
⑤ ‘차레’(차레의 원 우리말
뜻: 채움과 비움)를 올리는 땅이며 그것이 바로 ‘나라’의 실체인 ‘국’國임.
⑥ 현재 다른 일반명사로 쓸 때도 ‘곳’이라고 함. 집중되는 영역, 어딘가
쌓여진 영역을 가리킴.
[부도, 바이다]
① 나라는 사람이 자신의 땅을 가꾸어 하늘의 땅으로 만들어 가는 실체이고, 우리 겨레가 다른 겨레와 함께 세웠던 첫 나라의 이름이 ‘바이다’임. (바이다는 그런 나라의 중심지)
② ‘바이다’는 ‘뷔더’로 읽히기도
했는데, ‘뷔더’를 한자로 표기할 경우 ‘부도’符都가 됨.
- 모울도뷔 제 8호(2001년 0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