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에 우는 한국의 ‘스티븐 호킹’들 관심이 절실합니다”
강성웅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호흡재활센터 소장이 환자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강성웅 강남세브란스병원 교수
지난 2월 13일 오전 11시30분쯤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 호흡재활센터. 병상 위에 앉아 있는 입원환자 엄태경(20)군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 센터의 강성웅(55) 소장이 환자 상태를 확인하러 들렀기 때문이다. 세 살 때부터 근육병을 앓아온 엄군은 갈수록 증세가 심해져 2009년에는 목구멍을 뚫고 호흡기를 부착한 채 지내다가, 재작년 4월 강남세브란스병원 호흡재활센터로 입원했다. 엄군은 이제 호흡기를 뗀 채 지내고 있다. 엄군의 어머니 허금자(50)씨는 “소장님 덕분에 우리 아이가 호흡기를 떼고 지낼 수 있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호흡장애 환자와 가족들에게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호흡재활센터와 강성웅 소장은 구세주 같은 존재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의 호흡재활 치료 수준을 세계 정상급으로 끌어올렸고, 한국의 선진 기술을 해외 불모지에 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자의 90% 이상이 호흡부전으로 사망했고 평균수명이 스무 살밖에 안 됐으나, 그가 호흡재활 치료를 시행한 2000년부터 치료한 환자들이 다 살아 있을 정도로 사망률이 대폭 낮아지고 평균수명도 늘어나고 있다.
국내 유일 호흡재활센터
호흡재활이란 호흡에 장애를 일으키는 증상을 완화시켜 호흡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돕는 치료를 말한다. 서서히 근육이 퇴화돼 가는 근육병, 운동신경세포 손상에 의해 전신이 마비돼 가는 루게릭병, 척수성 근위축증 등의 진행성 신경근육 질환과, 만성기관지염이나 폐기종에 의해 공기 흐름이 막히는 만성폐쇄성 폐질환이 치료 대상이다. 호흡재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진행성 신경근육 질환은 호흡근까지 약화되는 경우에는 호흡마비로 환자가 사망하게 되는 난치병이다.
연세대 의대 79학번인 강성웅 소장은 연세대 의대에서 학사와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1996년 3월부터 연세대 의대 재활의학교실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1992년 강남세브란스병원 재활의학과에서 2년간 강사(펠로·fellow)를 했다. 당시 재활의학과는 비인기 과였지만 천성이 따뜻한 그는 환자 중에서도 가장 소외된 재활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용약 자원했다. 그는 여기서 근무하면서 특히 호흡재활의 중요성에 눈을 뜨게 된다. “근육병 환자가 호흡으로 많이 사망하니까 문제다 싶었습니다. 의식이 명료한 상태에서 환자가 호흡마비로 사망하는 것을 어쩔 수 없이 지켜봐야 하는 보호자나 의사들이 느끼는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고 허탈감마저 느끼게 됩니다. 현실은 절실한데 학문적·기술적으로 정리가 안 돼 있어서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선 나라인 미국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는 연세대 의대 재활의학교실 조교수 시절인 1998년 3월 선진학문을 배우러 미국 뉴저지의대로 연수를 떠났다. 이 대학은 호흡재활 분야 세계 최고 권위자인 존 바흐(John Bach) 교수가 재직하고 있어 미국 3대 재활센터의 하나로 꼽힌다. 뉴저지의대에서 이듬해 12월까지 혼신의 힘을 기울여 공부하면서 스승의 모든 것을 솜처럼 빨아들였다. 그래서 그는 존 바흐 교수의 수제자 격인 존재가 됐다.
한국 치료수준 아시아 최강
2000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연세대 의대 재활의학교실로 복귀했다. 그는 치료와 교육에 매진해 우리나라 호흡재활을 아시아 최강으로 끌어올렸고 미국과도 비견할 만한 수준으로 도약시켰다. 그가 해외 세미나 같은 데 가서 발표를 하면 참석자들이 “그렇게 많은 환자를 치료했느냐?”며 놀란다고 한다. 치료기계도 여러 개 개발했다. 예를 들면 호흡이 약한 사람이 기침을 못하고 가래를 뱉어내지 못해서 사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을 막기 위해 기침을 못해도 가래를 뱉게 해주는 기계를 4년 전에 개발했다. 해외로도 온정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수년 전부터는 아시아 지역 의사들도 한국으로 초청해 무료로 연수를 시켜준다. 이런 노력으로 한국은 호흡재활의 아시아 허브 국가가 됐다.
그는 의대 교수의 본령(本領)인 치료와 교육 외에 홍보도 신경을 많이 써왔다. 호흡재활의 가장 큰 적이 사회적 인식 부족이었기 때문이다. “의사들 자신도 재활의학을 몰랐으니 일반인들의 인식이야 말할 나위도 없었습니다.” 호흡부전 환자와 가족들은 경제적·정신적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어서 사회적 관심이 절실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호흡장애는 치료비가 한 가정이 부담하기에는 너무 큰 금액이어서 사회에서 도와줘야 합니다.”
그러나 호흡재활은 홍보 면에서 결정적 난점이 있다. 드라마틱하지 않다는 것이다. “기부하는 분들도 깜짝 놀랄 성과를 원합니다. 들것에 실려온 환자가 수술을 해서 뛰어다닌다는지 하는 가시적 성과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 쪽은 그렇진 않거든요. 언론도 비슷한 속성이 있어서 ‘그림이 안 되는’ 호흡재활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다른 질환에 비해 낮은 편입니다.
틈만 나면 공무원 등 각계 유력인사들을 만나 호흡재활의 열악한 현실을 설명하고 지원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고생한 보람이 있었던지 정부가 2001년부터 희귀난치성 질환 지원 사업을 하면서 인공호흡기 보조를 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2008년에는 국내 유일의 호흡재활치료센터인 ‘강남세브란스 호흡재활센터’를 출범시켜 보다 전문적인 치료를 확대했다. 2009년과 2010년에는 강남세브란스병원 홍보실장을 맡아 더 많은 각계인사들을 만나 호흡장애 환자들을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후원자를 찾습니다
강 소장과 직원들의 노력 덕분에 강남세브란스병원 호흡재활센터에는 해마다 후원금이 늘어나고 있다. 이 센터는 지난해 11월 30일 기준으로 11개월 동안 720여명의 환자가 입원치료를 받았고 133명의 환자에게 호흡재활치료비를 지원했다. 병원 방문이 힘든 환자 66명을 방문해 호흡재활교육 및 간호서비스를 제공했고 이들 중 호흡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 16명은 입원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줬다. 이런 수준으로 이 센터가 한 해 동안 환자를 치료하는 데 필요한 돈은 2억5000만~3억원 정도다.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은 환자를 구제할 수 있다. 현재 이 센터의 후원자로는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OCI, 굿피플, 불스원, 슈마커, 비바폴로, 한국교회희망봉사단 등과 개인 후원자 30여명이 있다. 이 가운데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해마다 1억2000만원가량을 기부하고 있고, 불스원 신현우 부회장은 지금까지 누적 6억원을 기부했다. 신현우 부회장은 ‘한국의 스티븐 호킹’으로 유명한 신형진씨의 부친이다.
강 소장은 호흡재활이 홍보가 더 많이 돼야 하는 것을 잘 알려주는 사례로 신형진 케이스를 들었다. “신형진씨는 2004년 9월 추석 전날 한국에 미 군용기를 타고 한국에 왔습니다. TV 뉴스를 보면서 나한테 오겠구나 생각을 했는데 그로부터 1년 반 만에 왔습니다. 부친이 서울대, 모친이 이대를 나온 인텔리인데도 우리나라 유일의 호흡재활 전문치료센터인 우리 센터가 어디 있는지를 몰라서 그렇게 오랜 세월이 걸린 거죠.”
그는 “우리가 치료한 ‘한국의 스티븐 호킹’들이 보여준 불굴의 의지와 노력에 경의를 보낸다”며 “더 많은 환우들이 용기를 내어 미래의 스티븐 호킹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더 많은 분들이 격려와 지지를 보내주시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후원계좌 : 001-120797-61-001 우리은행(예금주: 연세의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