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28일
본문 : 창 18:16-33
제목 : 소돔의 멸망과 아브라함의 중보기도
중심내용 : 여호와께서 불임녀인 사라에게 이삭의 출산 소식을 직접 확증해 주셨다. 이어 아브라함 언약의 성취로 말미암는 천하 만민의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건설 및 그 나라 백성들이 마땅히 지킬 하나님의 의와 공도를 촉구하신다. 이런 요구는 죄의 관영으로 필연적인 심판이 불가피했던 이후 소돔의 멸망 예고와 밀접하게 연계된다. 결국 아브라함의 간청에도 의인 열 명이 없었던 소돔성은 심판에 직면한다.
명제 :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닌 오직 믿음으로다(롬 3:24, 28).
설교목적 : 불임녀인 사라를 통한 언약의 씨 이삭의 출생 보증은 궁극적으로 아브라함 언약의 총체적 성취와 직결된다. 이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실 여자의 후손의 당사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통해 거룩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시고 이들로 하나님의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의 영광과 찬송을 세세 무궁토록 받으시기 위함이다(롬 11:32-36, 엡 1:4-6). 한편 아브라함 언약의 궁극적 성취의 결정적인 동인으로 작용하는 이삭의 출생 예고의 기사가 이어지는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망기사와 연계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하나님 나라는 의와 불법이 공존할 수 없는 나라로서 죄가 철저히 응징되고 의와 공도가 하수처럼 넘치는 영광의 나라임에 비해 소돔과 고모라 성은 각양 불의와 불법의 죄악들로 가득 찬 멸망의 도시로서 상호 극한 대비를 이룬다. 이런 사실은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덧입은 자는 죄로부터 사면과 칭의와 영생의 삶을 보장받지만(롬 3:24) 은혜를 거절한 자들은 준엄한 심판이 동반됨을 시사해준다. 우리의 영적 상태와 위치는 어떤가.
I. 도입 : 구원의 은혜는 멸망의 심판을 동반한다
1.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부부를 다시 찾아오셨다. 사라에게 이삭의 출생을 직접 알려 주시기 위함이다(9-10절). 사라는 현실적인 관점으로 이삭의 출생 소식을 믿기 힘들었다. 하나님께서 능치 못함이 없겠느냐고 사라의 불신을 책망하신다. 신적 언약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방식으로 성취된다. 믿음의 인내가 요구되는 이유다.
2. 저자는 이삭의 출생으로 말미암는 아브라함 언약의 성취를 확증시켜 주신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의 정체성이 의와 공도를 지켜 행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신다. 이후 죄악으로 관영한 소돔의 멸망기사와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를 다룬다. 위의 두 사건 사이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것인가.
3. 하나님의 의와 공도를 행하는 일은 구속함을 받은 성도의 본분이며 도리다. 반면에 죄악으로 가득 찬 소돔 성은 회개가 전제되지 않는 한 멸망이 불가피하다. 소돔은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멸망 당한다. 의인의 존재 여부는 세상의 존속 여부와 밀접하게 연계된다. 저자는 상기 두 사건을 대비시켜 회개를 촉구하는 한편 공도의 삶을 요구한다.
Ⅱ. 전개 : 의와 공도의 하나님 나라는 죄악이 관영한 불의의 세상과 공존할 수 없음
1.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부부를 방문하신 목적을 알려주심(16-21절)
(1) 이삭 출생이 아브라함 언약성취의 근간으로 작용할 것을 알려주심(16-19절)
장막 뒤에서 이삭의 출생 소식을 들은 사라는 회의적인 미소를 지으며 믿음으로 수납할 수 없음을 우회적으로 표명한다(9-12절). 하나님께서 사라의 중심을 보시며 하나님의 능치 못함이 없으심을 강조하신다. 이어 기한이 이를 때(명년 이때쯤/사라 90세) 다시 오실 것과 이삭이 출생할 것을 재차 확인해 주신다(14-15절).
여호와 일행이 아브라함의 거처를 뒤로하고 일로 소돔 성으로 향한다. 아브라함이 여호와 일행을 전송하기 위해 한동안 동행한다(16절). 이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의 출생과 연관된 보다 근본적인 목적에 대해 알려주신다. 그것은 이삭의 출생이 아브라함 언약 성취에 근간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사실이다(18-19절).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이 그를 인해 복음 받게 된다는 것이다(18절). 이는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람을 부르시고 그에게 약속하신 아브람 언약의 내용과 본질상 동일시된다(12:1-3). 다시 말해 아브라함의 혈통을 통해 태어나게 될 미래의 메시아로 인해 지구상의 천하 만민이 구원의 복을 받게 되고, 이들을 통해 사단의 세력이 대적할 수 없는 강대하고 거룩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이삭은 아브라함 언약의 성취자로서 동시에 여자의 후손언약의 당사자인 메시아적 중보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갈 3:14, 16). 그런 의미에서 아브라함 언약이 지향하는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는 다윗과 솔로몬 통치 하의 신정 왕국을 통해 예표적으로 성취되었고(왕상 4:20-25, 미 4:4, 슥 3:10),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이미 이루어졌으며(마 12:28, 눅 17:20-21, 갈 3:28-29) 재림으로 최종 완성될 것이다(눅 17:22-24). 둘째,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로 하여금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원해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기 위함이다(19절). 구원의 은혜는 자율적인 순종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무익한 종의 고백이 이런 사실을 구체적으로 보증해 준다(눅 17:10). 이런 이유로 기독교 신앙의 정체성은 본질상 기복적이거나 조건부적이지 않다.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의 발로에서 발생한 본분과 도리의 신앙이다(전 12:13, 눅 17:10). 구원의 은혜에는 인간 편에서의 선행이 비집고 들어가 좌정할 만한 자리가 없다(엡 2:8-9). 성도의 선행은 구원의 은혜에 따른 마땅한 도리이지 자랑거리가 될 수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가 누릴 최고의 복과 상급은 구원 그 자체이다(히 11:6).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담보된 예수님 짜리의 무한대의 값이기 때문이다.
(2)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망에 관한 계시(20-21절)
이삭의 출생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미래지향적인 아브라함 언약의 성취에 관해 말씀(18-19절)하신 하나님께서는 계속해 소돔과 고모라 성의 죄악상과 멸망에 관해 피력하신다(20-21절). 먼저 소돔과 고모라성의 죄악이 관영한 사실을 지적하신다(20절). 죄악의 관영은 사람들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과 행동이 항상 악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불가피한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창 6:5-7). 노아 시대에 사람들의 보편적인 마음가짐과 행실이 그랬다. 그 결과는 물 심판을 자초했다(7:11). 성경은 노아 시대의 경우가 당시 소돔과 고모라에게 적용되고 있음을 시사한다(20절). 나아가 성경은 죄로 관영한 노아 시대의 상황과 롯의 시대의 소돔과 고모라 성의 상황이 종말의 시대의 상황과 방불할 것을 지적하며 경계시킨다(마 24:37-39, 눅 17:26-30). 여기서 죄의 관영이란 문자적으로 불의와 불법의 만연만을 제한적으로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외면한 채 매사를 자기 소견에 좋을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살아가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삶을 총칭하는 표현이다(눅 17:26-30, 마 24:37-39).
다음으로 소돔과 고모라 성의 죄악상을 실제로 내려가서 확인하시겠다고 하신다(21절상). 여기서 ‘내려가신다’는 표현은 당시 아브라함 부부가 거처하던 헤브론 지경(마므레 숲)이 지형상 평지의 소돔과 고모라 성에 비해 고지대(해발 910m/헤브론에서 소돔 지경까지 30km의 거리)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내려가 관영한 죄악상을 직접 확인해 보시겠다(21절하)는 표현은 하나님의 전지성의 성품상 상황을 모르시기 때문이 아니라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겠다는 의미다(카리스 종합주석). 실제로 회개한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당시 소돔과 고모라 성은 멸망 당했던 사실이 이를 반증해 준다. 이런 사실은 한 사회와 국가와 세상의 존속 여부가 회개한 의인 수의 여부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음을 암시해 준다. 여기서 의인의 정체는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구원받은 택자를 가리킨다. 그런 의미에서 주의 재림과 연계된 세상 종말은 이방인과 유대인 중에 구원의 충만한 수가 차는 사건과도 깊이 관련돼 있음을 시사해준다(롬 11:25-26상). 모름지기 하나님 앞에서 의인은 세상의 존속 여부를 가늠하는 척도로 기능한다.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의와 공도를 지켜 행할 것을 촉구하시는 이유가 이런 사실과 무관치 않다(19절, 마 6:33).
2. 소돔의 구원을 위한 아브라함의 중보기도(22-33절)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 성의 실상을 아브라함에게 알려주신 후, 두 천사들은 소돔을 향해 길을 떠나고 여호와와 아브라함만 뒤에 남는다(22절). 본문(22-33절)은 소돔과 고모라 성에 대한 하나님의 불가피한 심판의 당위성을 기술한다. 이때 아브라함은 롯을 포함한 그 성에 살고 있을 의인들을 염두에 두고 하나님의 심판 의지를 취하해 주실 것을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에 근거해 간청한다(23-33절). 아브라함은 의인 50명으로부터 시작해 의인 45명-40명-30명-20명-10명까지 낮추어 제시하면서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에 호소하며 저들의 용서와 구원을 간청한다. 하나님께서는 의인 열 명을 인하여도 멸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시며(32절) 아브라함 곁을 떠나가신다(33절). 결국 소돔과 고모라 성은 회개한 의인 열 명이 없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셈이다. 본문에서 의인의 정체는 윤리/도덕적 의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함을 받아 사죄와 칭의의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 국한된다. 이로 보건대 하나님의 의인은 한 사회와 국가와 세상의 존속 여부를 가늠하는 척도와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엿보게 된다. 본문의 아브라함의 간청은 일종의 중보기도의 성격을 띠면서 자신을 십자가에 단 유대인과 로마 병사들의 구원을 위해 저들의 무지함을 용서해 달라고 하셨던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기도의 예표로 감히 비교된다고 하겠다(눅 23:34).
한편 죄악의 관영과 관련된 본문의 소돔과 고모라 성의 심판 기사는 이삭의 출생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선택적 은혜의 구원 사건과 극명하게 대비되면서 구원은 동시에 심판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천명한다. 창세기 19장에 소개된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망사건은 이런 저자의 의도가 구체적으로 표명된 내용이다. 이 과정에서 롯과 두 딸의 구원기사는 과거 물 심판 때 노아와 일곱 식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실을 은연중에 암시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선택적 구원 사역의 원리를 총체적으로 예표한다.
저자는 이런 일련의 연속적인 사건을 통해 적어도 두 가지 원리를 제시해 준다. 첫째는 구원의 원리를 교훈한다. 곧 하나님의 구원은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받지만(엡 2:8) 불신자에게는 동시에 심판이 동반된다는 사실이다(막 16:15-16, 요 5:29). 이는 구원이 죄책의 심판과 형벌로부터 면제라는 성격을 띠고 있음을 의미한다(요 5:24). 결국 저자는 창세기 18장(이삭의 출생과 소돔의 멸망 예고)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축복과 저주라는 두 원리를 극명하게 대비시켜 제시한다. 이는 만사와 만물을 기뻐하시는 뜻 가운데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의 현시이다. 그 결국은 당신의 친 백성들로부터 찬양과 경배와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다(엡 1:6, 사 43:21). 둘째는 축복의 원리로서 여호와의 도를 행하는 것이 언약의 수혜자가 받는 축복의 비결이란 사실이다(18-19절). 이런 사실은 은혜는 강력한 자율적 순종이 수반됨을 강조한다(약 2:22, 눅 17:10).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믿음이요 자기 기만적일 수 있는 개연성이 이에서 나온다(약 1:22, 2:17, 26). 은혜의 믿음은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된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이다(약 2:22). 무익한 종의 고백이 이런 사실을 증거해 준다(눅 17:10). 이처럼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의 발로로 자원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율적 순종과 구원론에 근거한 예배적 삶이야말로 성도가 이생과 내세에서 누리는 최고의 복된 삶이 아닐 수 없다(롬 12:1-2, 엡 1:4-6).
Ⅲ. 결론 : 구원의 은혜는 죄에 대한 심판을 동반한다
1. 이삭의 출생 예고에 연계된 소돔 성의 멸망기사는 우연이 아니다. 의도적 기술이다.
2. 하나님 나라는 의와 불법이 공존할 수 없으며 죄가 철저히 응징되고 의와 공도만이 하수처럼 넘치는 거룩하고 신령한 영광의 나라이다.
3. 구속의 은혜를 입은 자는 사면과 칭의와 영생의 삶이 보장되나 은혜를 거절한 자는 준엄한 심판이 뒤따른다(요 3:18, 5:24, 29, 막 16:15-16).
4. 그러므로 구원의 은혜는 불신자에 대한 심판을 동반한다(요 3:18, 막 16:15-16, 요 5:29). 불신자의 구원을 위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중보자의 심정으로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이런 사실에 근거한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 우리의 영적 신분(정체성)과 영적 현주소(세상/하나님 나라)를 재확인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