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현실>, 2024년 여름호.
개기월식 외 1편
맹문재
달이 해를 먹는 일이 일어날까?
유언비어에 시달리다가 재가 될 수 있기에
가시 같은 모함에 찔려 쓰러질 수 있기에
나는 마음 놓고 웃을 수 없었다
시인으로 시를 쓰고 있었지만
정작 가까운 풍문 앞에서는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개처럼 달려드는 마름들에게
주먹조차 쓸 수 없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 도민체전 선발전에 나가
태권도 페더급 경기에서 동메달을 딴 적이 있지만
희미한 쪽으로 몸을 돌렸네
육체적으로 힘들게 하는 것이 노동이라면
정신적으로 힘들게 하는 것이 신분인가
시대의 학살을 무서워하지 않으면서
검찰의 독재에 분노하지 않으면서
나는 왜 이자를 물리는 이리떼에게 주눅 드는가
비주류의 신분을 버릴 수 없다
화근이 된다고 싹을 잘라버릴 수 없다
포기하지 말아야 할 시간이 있지 않는가
저기 저 해를 먹는
달 속의 토끼가 보이네
토끼다!
불이다!
산화(山火)다!*
* 김수영의 시 「토끼」에서
이팝나무 아래에서
밀려오는 파도의 저 너머에
얼굴들이 있구나
바위처럼 침묵하면서도 눈뜨고 있었구나
힘은 가까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요란한 데만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 방향에서 오는 것도 아니구나
파도를 밀고 오는 힘은 나의 과거일 것이다
나의 선택일 것이다
이념이 약하고
경험이 부족하고
전망을 못 가져
분노하지 못한 채
고리(高利)에 참사당한 시간들
가난한 뿌리가 지상 위로 올라오는구나
서러운 노래가 여울물처럼 나아가는구나
이팝나무들이 바람을 모아 하늘을 흔들 때마다
꽃들이 부푼다
밀려오는 꽃들의 저 너머에
얼굴들이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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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실(시)
개기월식 외 1편(시현실)
맹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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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2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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