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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미갈 문화 리뷰 스크랩 감동백배 공연 뮤지컬 서편제, 한으로 어루만지는 생로병사의 슬픔
미-----루 추천 1 조회 264 12.04.04 11:44 댓글 8
게시글 본문내용

만사가 귀찮아도 꼭 지켜고 싶은 약속이 있다. 이번 약속이 그랬다. 오전에 잠시 출근하여 토요휴업일 등교 현황 살펴보고, 학생회 임원 리더십 연수에서 학교장 격려말을 전하고 물리치료 받고 돌아오니 12시다. 햇살은 투명하고 따스한데 바람은 한겨울이다. 부랴부랴 준비하고 집을 나섰다. 다행히 00이가 차를 가지고 데리러 왔다. 어머니와 어머니 친구도 동행이란다. 순간 놀랐지만 어색하지는 않았다. 00이는 의여중 6개월 제자면서 교감 첫 부임지에서 체육교사로 만났다. 나는 그녀의 씩씩함과 최선을 다해 학생들을 사랑하는 열정 그리고 창의적인 체육과 업무 진행에 반했다. 그녀는 이런저런 가정적인 문제가 겹쳐서 지금은 교사직을 그만 두고 다른 일을 하고 있다. 꼭 일 년만의 만남이다.

 

 

 

3월 31일 오후 3시 공연 뮤지컬 서편제,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다.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좋아하지도 않지만 서편제라는 소재에서 풍기는 과거지향적인 분위기도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다만 00이와 만남이 중요했다. 그러나 뮤지컬 서편제는 뜻밖에도 참 좋았다. 물론 중간중간 잠시 졸기도 했지만 공연 내내 잔잔한 감동의 손길이 가슴 기슭 기슭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클라이막스에서 큰 감동의 한 방은 곧 잊혀지기 싶다. 서편제는 그런 한 방의 드라마틱한 감동이 아니라 시종일관 무대 배경과 음악과 배우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며 조화의 강강술래를 만들어냈다. 판소리와 한이라는 주제가 진부하지 않게 연출되었다. 판소리와 락과 클래식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어우러지며 너울졌고 단순한 무대는 영상미학을 만나 장면 장면을 살려냈다. 겹겹이 병풍처럼 세워진 무대는 하얀 한지를 조각조각 오려 붙였을 뿐인데 텅 비어 오히려 충만한 무대가 되었다. 인물들의 심정과 소리의 주제와 남도의 사계절과 떠돌아다니는 유봉 일가의 발길 닿는 곳마다의 정서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고전적 수묵화가 최첨단 영상기술과 만나서 보여줄 수 있는 예술적 성취는 서편제라는 뮤지컬의 감동을 더 높이 끌어올리고 더 깊게 느끼도록 했다. 무대 가장 뒤에 자리잡은 오케스트라의 연주장면은 언뜻언뜻 나타났다 사라지고 다시 나타났다. 드러남으로써 존재감이 살아난 오케스트라단은 이 뮤지컬에서 배경음악이 단순히 듣는 소리가 아니라 보고 듣는 소리로서 당당히 배우 역할을 하게 한다.

 

유봉에게 소리는 최고의 선이었다. 득음을 향한 열망이 평생 길 위를 헤매게 한다. 헤매는 사람들은 영혼의 솔기가 헤져서 나달나달해진다. 그래서 춥다. 그런데 이 추위가 보는 이를 따뜻하게 위로한다. 생로병사를 치러야 하는 인생은 본래 슬프다. 그래서 슬픔의 가장 밑바닥 한의 자리에 닿아야 소리는 득음의 꽃으로 피어나고 절창의 바람으로 휘몰아친다. 소리꾼의 한이 하늘로 올라 접신하며 피워낸 꽃과 휘몰아치는 바람이 나 같은 보통 사람들의 한을 감싸안고 대신 울어줄 수 있다. 유봉의 꿈은 진정 가 닿을 수 없는 비현실의 몽환일까. 득음에 사로잡힌 유봉,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 답답하고 고루한 옛날양반이라는 비아냥으로 그를 손가락질 할 수 없게 만드는 힘이 분명히 있다. 그것은 존재에 대한 겸손한 수용이다. 소리라는 존재에 대한 한없는 사랑이 유봉을 존재하게 하는 본질이다. 자기 본질을 외면하지 않고 평생을 고통과 고독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 유봉뿐이겠는가. 끝없이 추락하고 초라해져도 결코 유봉을 부정할 수 없는 송화, 송화가 단지 그의 딸이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유봉의 꿈을 자기 꿈으로 이미 받아들인 송화였으리라. 거부할 수 없는 자기 존재에 대한 겸손한 수용이 송화의 소리에 인간의 생로병사를 어루만지는 그윽하고 깊은 울림을 새겨 넣었을 것이다.

 

나 같은 문외한이 서편제를 통해서 창작 뮤지컬의 발전 가능성을 보았다 하면 전문가들이 코웃음치겠지만 ‘브로드웨이 42번가’와 ‘넌센스’를 보면서도 한없이 지루하고 진부하고 재미조차도 못 느꼈던 나에게 뮤지컬 ‘서편제’는 새로운 감동과 매력을 불러 일으켰다. 처음 들어본 뮤지컬 배우 ‘차지연’ 이름 석 자를 오래오래 기억하겠다. 더블캐스팅이라 그 날 그 공연에서는 어떤 배우가 유봉 역할을 맡았는지 모르지만 그 이름 석 자도 찾아서 기억하리라. 추상적인 ‘한’을 아름답고 매혹적이게 무대에 아로새겨준 영상 연출가에게도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해질녘, 밖은 몹시 추웠다. 꽃 피기 전에 한번쯤은 봄을 시샘하는 추위가 있을 수 있지만 이건 너무 심하다. 사람도 추위도 시샘이 심해지면 추태다. 올봄, 갖가지 추태를 다 본다.

 

미루나무 한 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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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04.04 12:58

    첫댓글 유봉과 동호, 송화 셋이 함께 걷던 길을,
    동호가 떠난 후 유봉과 송화만 걷다가,
    유봉마저 떠난 후 눈 먼 송화가 홀로 걷는 장면을 보며,,
    그리고 한이 쌓여가는 송화의 삶을 보며,,,
    우리 소리는 배부르고 행복할 땐 낼 수 없는 소리란게 너무 슬펐어요. ㅠ.ㅠ

  • 작성자 12.04.04 16:09

    마지막 문장, 띵하는 깨달음을 얻게 되는군요. 그래서 한이 서린 소리가 남루한 인생을 위로할 수 있나 봐요.

  • 12.04.04 13:18

    이 극 괜찮다는 말은 김모군한테 들었는데요, 의여중이라.. 미루님 전 의여고^^

  • 작성자 12.04.04 16:10

    어머나 그래요? 어쩌면 내가 의여중 근무할 때 박하님은 의여고를 다니셨을 수도 있군요. 1985년부터 1989년까지 근무했어요.

  • 12.04.04 19:04

    이런 인연이...그때 저 있었어요 가까운데 계셨네요 공분 뒷전이고 주말마다 중앙국장 국제극장에서 영화보러다녔는데 ㅎㅎ 88성화봉송 연습도하고 그랬어요

  • 작성자 12.04.05 20:11

    그럼 우린 극장에서도 만났겠군요. 나도 극장 엄청 좋아했으니까요. 난 금오동에 1년 녹양동에 5년 살았어요.

  • 12.04.06 06:09

    두 분 잘 기억해 보세요. 학생입장불가 영화를 보던 학생과 단속나온 지도교사로 만난 적이 있었는지...ㅎㅎ

  • 12.04.06 13:30

    거의 매주 영화관엘 갔으니 같이 앉아계셨을수도 있겠어요.cgv같은덴 죄다 삼성광고만 하지만 예전 시골극장에선 그 동네 가게들 광고가 나오잖아요 ㅎㅎ 지금생각함 넘 웃겨서, 제가 기억나는 일탈 중 하난 '양철북'이란 19금 영화를 고등학교때 본적이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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