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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망산~보련산 산행기
생강나무꽃
신새벽 이른 시간에 당기지도 않는 조반을 애써 서둘러 마치고 집을 빠져나와
두 시간만에 산행들머리인 용포리에 도착한다(오전 9시 15분).
용포정류소를 뒤로하면 곧바로 앙성초교 앞을 지나게 되는데 국망산 들머리를
찾아 가려면 이곳 용포에서 하남고개를 넘어 노은면으로 향하는 49번 지방도로를
따르면 된다. 10여 분 도로를 따르면 이윽고 38번 국도 고가도로 밑을 지나가게 되는데
고가도로 밑을 벗어나면 곧바로 우측으로 숲으로 드는 산길이 보인다.
국망산 북릉의 끝자락이다.소나무 그늘아래 묘지 서너 기 곁을 지나가게 되고
갈색이파리를 아직도 매달고 있는 낙엽송 숲길을 지나면 송전철탑을 맞닥드린다.
산길은 이내 잣나무 숲으로 바뀐다. 말끔하게 단장이 되있는 묘지가 자리하고 있고
곁에는 우람한 노송이 그늘을 드리우고 봄의 전령사 생강나무가 노란꽃을 흐드러지게
피어내고 있는 봉우리,우측 산자락으로는 낙엽송 숲이 울창하다.
커다란 물박달나무가 우뚝한 사거리 안부,좌측 산아래의 벌말마을과
우측 앙성면쪽의 내동마을 사이를 넘나드는 산길이다.
맞은 쪽 오르막 산길에는 소나무숲이 그늘을 이루고 있다.
급경사의 오르막 산길은 이내 노송이 가득한 솔봉을 내놓는다.
몸이 후끈 달아오른다.방풍쟈켓의 효용가치는 여기까지다.
연이은 급경사가 펼쳐지면서 암벽이 앞길을 가로막고 끌밋한 노송들이
제각각의 포즈를 취하면서 산객을 유혹한다.맷돌모양의 바위와 상석을 닮은
암반과 짝을 이룬 노송들이 갈길 바쁜 발길을 잡는다.바윗길을 어렵사리 내려서면
가랑잎이 수북하게 쌓여있는 산길이 기다린다.능선은 양쪽 산사면이 낭떠러지
절벽을 방불케하는 칼날 능선을 이루고 있다.삼거리 산길을 만난다.
왼쪽으로 절벽이나 다름없는 하산길은 양지말로 향하는 산길이다.
덩치는 범강장달에 버금가고 인물은 미끈하고 끌밋한 노송들은 모델들이
포토라인 앞에서 포즈를 취하 듯 연신 모습을 이어 나간다.암릉길이 이어지면서
산객의 눈과 발길을 붙잡고 늘어지는 상황이 빈번해지기 시작한다.
잇따르는 전망대 암봉에서 전시회의 명화를 감상하듯이 유유자적만을 즐기기에는
산행시간이 빠듯하다.우측 골짜기 너머 산자락 전체를 차지한 내동공동묘지가
넘겨다 보이고 앙성면이 발치에서 꼼지락 거린다.
북릉 등반 중 바라 본 보련산 전경
몸피가 한아름을 훌쩍 넘기고 기골이 장대한 노송 두 그루가 버티고 있는
암봉을 내려서면 흰눈이 하얗게 덮혀있는 가풀막진 산길이 앞을 가로막아선다.
습기를 가득 머금고 있는 눈길은 가랑잎을 바닥에 품고 있어서 미끄러짐을
부추기는 심뽀가 내심 숨어있다.오른쪽이나 왼쪽이나 낭떠러지 절벽의 바윗길이다.
마땅하게 몸을 의탁할 그루터기하나 보이지 않고 어렵사리 눈에 띠는 거라고는
작은 진달래가지거나 덤불줄기가 대부분이다.발 디딜만한 곳을 잘못 디뎠다가는
곧바로 추락이 기다린다.섣불리 흰눈을 밟았다가 당할 수도 있는 횡액이 아닐 수 없다.
늙은 말에게는 험로를 피해서 안전한 지름길을 찾아가는 지혜가 탁월하다고 했던가?
이곳 저곳 사방을 둘러보아도 안전하다고 여길만한 이면산길은 보이지 않는다.
별 도리가 없다.되돌아 서든지,사고를 무릅쓰고서라도 무리수를 두어 난국을
헤쳐나가던지 양자택일을 하는 수밖에 없는 일이다.이럴 때 대개는 무리수를 두게 마련이다.
나라고 특별할게 없다.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자세를 바짝 낮추는거다.
바윗 틈을 비집고 나온 마른 풀뿌리조차도 구명줄 역할의 효용가치가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삭쟁이라고 허투루 볼 것도 아니다.
썩은 나무 그루터기도 쓸 곳이 풍부하게 남아있다.
튼실한 소나무나 참나무의 질긴 가지는 짤막한 팔과 다리가 미치지 못하니
정작 절실함이 요구되는 곤고한 삶의 과정에는 빛좋은 개살구다.
천신만고 끝에 오른 암봉에는 역시 눈을 부시게 만드는 조망이 기다리고 있고
팔등신을 뽐내는 노송들의 유혹이 끈질기고 은밀하다.
몸을 추스리고 마른 목을 적시며 여유를 찾아본다.
하남고개에서 몸을낮춘 능선이 또 다시 몸을 솟구치며 내놓은 보련산의 울툭불툭한
산등성이가 거뭇한 실루엣을 드러낸다.바윗길과 끌밋한 노송들이 꾸며놓은
진경산수화의 산길은 잠시 밋밋하고 느긋하게 이어진다.그러나 황홀한 시간은 한 순간의
꿈에 불과하단 말인가? 곤고하고 고단한 삶이 이제는 끝났는가 싶더니 험한 바윗길이
또 다시 날카로운 이빨과 거친 발톱을 곧추 세우고 산객을 기다린다.
더 이상 수직 상승의 멧부리를 곁에 거느린 것이 없는 독야청청의 무소불위에서
늙고 지친 산객을 욕보이려 갖은 애를 쓰려한다.
직등을 하는 산길과 좌측으로 살짝 비껴가며 오르는 산길이 나뉘어져 있다.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안전제일의 갖은 줏법을 총동원하며 오른 곳은 삼거리 갈랫길이다.
이정표 팻말에는 우측으로는 둔터고개를 넌지시 가리키고
좌측으로는 턱밑으로 국망산 멧부리가 있으니 한시름 놓아두란다.
애면글면 오른 국망산의 멧부리,설명이 필요없는 조망이 우선 시야를 압도한다(11시10분).
기대했던 시간보다 30분 정도를 더 보태서 오른 국망산의 멧부리는
해발 770.3m에 삼각점도 뚜렷하고 돌탑 1기에 정상빗돌은 세 개씩이나 세워져 있다.
이정표 팻말도 세워져 있는데, 하남고개는 1.9km를 나타내고 둔터고개는 1.5km
라고 밝히고 있다.멧부리 바로 남향받이 아래 잔디밭에는 젊은 남녀가 호젖한 오찬을
즐기며 담소의 한 때를 보내고 있다.산행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만난 입산객이다.
봄볕은 따사롭게 쏟아지고 봄바람은 큰 일렁임없이 살랑거리며 쉴새없는 산새들의
지저귐과 짝을 짓고 화음을 이룬다.에덴동산이 따로 없지싶다.
국망산(國望山)! 나는 이와같은 동명이산(同名異山)의 여러 산을 오르면서 느끼는 바는
굳이 견강부회(牽强附會)한 의미보다는 단순하게 떠오르는 자연적인 의미부여에
더 관심이 끌린다. 그것은 "국망"이라는 의미를 불확실한 역사적인 의미와 "망(望)"의
한자 의미만을 고지식하게 추구하기 보다는 단순하게 나라(國)를 지킨다(망을 본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타당한 것은 아닌지?
어쨋든,국망산에 얽힌 유래가 전해지고 있어서 잠시 살펴보면,국망산은 옛적에는
금방산(金傍山)이었다고, 그 이름이 국망산으로 바뀐 연유는 임오군란 당시 고종의 왕후
명성왕후가 이 고장으로 피난을 한 적이 있었는데,그 당시 한양 소식이 궁금하여 매일
이곳 산마루에 올라가 한양을 바라보며 노심초사 했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전한다.
국망산의 멧부리를 벗어나는 산길도 가파른 내리막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그 증세의 첫 증상은 고정로프의 설치유무와 계단식 산길이 겉으로 드러 난
증표이다.가파른 암릉 산길을 고정로프 등의 안전시설 도움으로 빠져 나오면
산길은 시치미를 뚝 떼며 밋밋한 모습으로 점잖을 가장한다.
이정표 팻말이 세워져 있는 곳에서 또 다시 본래의 험악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고단하고 곤고한 산객을 위로하려는가?
우람하고 끌밋한 노송들이 뿜어내는 위로의 눈초리가 마냥 고맙기만 하다.
급경사를 내려서고 올려친 봉우리에는 노송들의 그늘아래 돌탑이 가지런하게 세워져 있다.
국망산의 우뚝한 멧부리가 산객의 시야를 압도하고 아직도 거뭇한 실루엣을 그리는
보련산의 모습이 손짓을 한다.돌탑봉을 뒤로하는 산길도 급경사를 보이기는 마찮가지다.
충주소방서가 세워놓은 119 사고안내 팻말이 이따금 갈마들며 길섶을 밝힌다.
참으로 혼자 즐기며 감상에 젖고, 시름을 달래며 번잡을 떨어낼 수 있는 것이
아까울 만큼의 아름다운 노송들의 모습이 울멍줄멍 줄느런히 이어진다.
119 사고안내 팻말을 지나면 낙엽송 숲이 이어지고, 곧바로 산길 우측의 철망으로 이루어진
과수원웉타리 곁을 따르면 묘1기 옆을 지나가게 되고 이내 계단을 내려서면
2차선 차도에 내려서게 된다. 해발 340m의 하남고개다(12시).
국망산 하산길의 기암괴석
충주시 앙성면과 노은면을 잇는 49번지방도,보련산 쪽 고갯마루 한켠에 넓은 주차장이
마련되어있고 고갯마루를 넘나드는 차량들의 분주함이 간간이 이어진다.
주차장 옆으로는 보련산 등산안내도가 세워져 있고, 그 옆으로 숲으로 드는 산길 길목에는
산악회 표시리본이 무성하다.
고갯마루에서 숲으로 오르는 길은 이곳말고도 포장임도가 몇 미터아래에 뚫려있다.
그 임도는 무선기지시설이 설치된 구역까지 연결된 도로다.
숲길을 따르면 이내 그 임도를 만나게 되고 임도를 계속 따르다가 무선기지국 앞에서
우측의 숲길을 이어 나가면 된다.거대한 몸피 못지않게 외관도 수려한 노송들이
느런히 이어진 산길 오른 쪽 산비탈에 한가로운 묘지 서너 기가 보인다.
그 중 그늘밑이 가장 안락한 자리를 내놓고 있는 곳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고
통나무 계단이 줄느런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산길을 재우친다.따사로운 햇살때문인가,
팥죽땀이 줄줄 흐른다.끌밋한 몸매에 우람한 몸피와 두터운 수피를 자랑하는 노송들이
힘겨운 산행을 이어나가는 산객에게 쉬어 감을 넌짓이 권한다.
커피 한 잔으로 목을 적시며 숨을 고른다.이름모른 산새들의 지저귐이 호젖한 산길에
청량감을 심어준다.명주바람을 타고 그들의 지저귐은 잠시 묻히는가 하더니
연이어 쉼없이 지저귐을 늦추지 않는다.파란 하늘가 어디에선가 여객기 떠나가는 소리가
들린다.그 소리도 명주바람과 산새들의 노래소리에 묻혀 버린다.
통나무 계단과 고정로프 설치구간이 갈마들며 이어진다.우람한 노송들도 잠시 그들곁을
벗어나려하지 않는다.거대한 송전철탑을 지나고 통나무 계단과 고정로프 구간을
벗어나면, 하남고개를 출발하고 첫번째 오르는 봉우리인 솔봉에 닿는다.노송들이 장가하고
있어서 솔봉이라고 불러본다. 이정표 팻말에는 보련산 정상이 1.8km 남았다고 귀뜸한다.
솔봉을 내려서서 얼마 못가면 오르는 두 번째 봉우리는 참나무와 소나무들이 우거진
잡목봉이다.그 뒤로 세워놓은 팻말에는 보련산 정산이 1.5km 남았다고 쓰여있다.
잡목봉을 뒤로하는 산길은 고저가 뚜렷하지는 않지만 간간이 암봉의 모습을 띠고 있다.
보련산 멧부리의 조망이 훌륭하고 빼어 난 노송 두 그루가 멧부리를 지키고 있는
전망바위에서의 주위 조망은 별 다섯을 주어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급경사의 내리막을 벗어나면 암릉이 나타나면서 삼각형 모양의 바위 굴이 보인다.
연이어 오르고 내리는 세번째,네번째 다섯번째 봉우리는 잡목으로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는
무명봉이라서 그런지 산길도 굳이 몇 미터 거리를 두고 나 있다.119 사고안내팻말이
세워져 있는 다섯번째 봉우리 옆을 지나면 여섯번째 봉우리 앞에는 E.T를 닮은
기암괴석이 갈길 바쁜 산객의시선을 사로 잡는다.
보련산 전경
내리막 산길이 나타나고 고정로프의 도움으로 내려서면 흰눈이 하얗게 내려앉은
통나무 계단의 오르막이 기다린다.고정로프가 그 뒤를 잇는다.
가뿐 숨을 토하며 팥죽땀을 흘릴 즈음이면 더 이상 수직상승 할 곳이 없는 멧부리에
닿게 된다. 해발 764.9m의 보련산 정상이다(13시45분).정수리에는 삼각점이 보이고,
구들장같은 바위조각으로 둘레석을 한 이름모를 묘1기가 자리하고 있고 데크전망대는
충주시 노은면 들녁을 바라보고 있다.정성스럽게 쌓아올린 돌탑 옆으로 고사목이 쓸쓸하다.
노은면 쪽 조망 못지않게 앙성면쪽 조망 또한 뒤 질 것이 없다.그런데 데크전망대는
노은면 쪽 만을 위한 전망대다.앙성면 축에서 보기에 따라서는 기분이 썩 좋아보이지는
않을게다. 보련산(寶蓮山),검은 색 빗돌 뒷면에 보련산의 유래가 적혀있다.
내용을 살펴보면,삼한시대 홀 어머니 슬하에 보련이라는 딸과 장미라는아들 두 남매가
살았다고,두 남매는 힘이 천하장사였는데,한 집에서 두 장수가 나면 큰 난리가
난다는 말에 어머니는 할 수 없이 남매에게 성 쌓기 내기를 하여 지는 자는
스스로 자결하도록 권하였다고 한다.날을 택하여 보련은 노은에, 장미는 가금에서 축성을
시작하였는데 어머니는 아들 장미를 동정하여 딸 보련의 시간을 지연시키고자 보련에게
떡을 갖다 주며 먹을 것을 권하자 보련은 감사히 떡을 먹고 축성을 서둘렀으나
장미가 먼저 성을 완성하여 만세를 부르자 그제야 어머니의 의도를 알고 집을 떠났다고 한다.
이때 보련이 쌓은 성이 "보련산성"이고,산 이름도 여기에 기인하여 "보련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 전설이다.
이제는 보련산의 멧부리를 벗어나야 한다. 주위 조망에 마냥 넋을 잃을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보련의 멧부리를 뒤로하는 산길도 역시 가파르기는 여느 멧부리 못지 않다.
고정로프가 항시 스텐바이 상태를 유지하고 있고 스텐레스 강관을 이용한 고정 안전시설도
눈길을 끈다.시나브로 고도를 낮춰 나가는 산길은 이내 성안고개 안부 삼거리로
꼬리를 이어간다.왼쪽의 내리막 산길은 오늘 산행의 날머리로 삼은 돈산리,그리고
직진 방향의 이어지는 능선길은 쇠바위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인데 0.3km 밖에 남지
않았다고 산객을 은밀히 유혹한다.그 정도의 거리라면 왕복 20분 정도면 충분할 터,
머뭇거리며 통빡을 굴릴 필요는 없지싶다.
빤히 올려다 보이는 멧부리가 쇠바위봉인줄 알고 헐떡이며 오르고 보니,
쇠바위봉은 저만치에서 오만한 손짓을 한다.해발 593.5m의 쇠바위봉은 소나무 그늘에
벤치 두 개가 지친 산꾼을 무한정 기다리고 이정표 팻말은 동막고개가 1.6km라고 알린다.
성안고개 삼거리 안부로 되돌아와서 동암골로 접어드는 산길로 서둘러 내려선다.
가파른 산길이다.굵은 고정로프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다.그러나 두텁게 쌓여있는 가랑잎과
시커먼 부엽토의 진창길이 발목까지 푹푹 빠져들고 자칫 한 눈을 팔다가는
진창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는 횡액을 당할 우려가 다분하다.
E.T를 닮은 기암괴석
진창과 가랑잎이 버무려진 험상궂은 산길을 도망치 듯이 십여 분 정신없이 빠져 나오면
산길은 평상심을 유지한 모습으로 바뀌기 시작한다.골짜기 계곡에서는
동절기 내내 얼어붙어 있던 땅이 녹아내리며 흐르는 계류의 재잘거림이 지친 산객의
귀를 말끔이 씻어준다.시나브로 계곡을 벗어나면 계류의 재잘거림도 목청을 높여나가며
멈춘 듯이 게으름을 가장하여 흐르다가도 급작스럽게 엎어지기도 하고,
휘돌아 내려서 솟구쳐서 요란하게 거품을 내뿜으며 가뿐 숨을 토해낸다.
그리고 산새들의 쉼없는 지저귐은 짝을 부르는 노래소리가 분명할 터,지치고 늙은 사내를
배웅하는 인사는 아닌 게 틀림없는데 늙은 사내는 배웅인사인줄 알고 귀를 쫑끗거려본다.
계류의 재잘거림과 산새들의 지저귀는 배웅을 애써 뒤로하며 동암골을 홀연히 벗어난다(15시).
돈산리에서 집으로 갈 때는 장호원으로 이동을 하여야 한다. 주말이라 시내버스 운행율이
현저하게 떨어지기 때문이다.심지어 운휴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오늘 산행의 들머리인 용포에는 어느 정도 교통편이 원할하다. 용포까지는 맘씨 좋은
용달차 사내의 도움으로 히치하고 용포에서 감곡까지는 털털거리는 시내버스를 이용한 후
버스 편(16시05분)이 남아있는 장호원까지는 택시의 도움을 받아서 홀로산행 일정을
마감한다.아직도 해는 중천에 머물러 있으며 은빛햇살을 함박 쏟아내고 있는데
시각은 오후 새참을 훌쩍 넘겨 출출함이 밀려 들 시각이다.
16시 05분 버스시간을 넘기면 18시의 마지막 차편이 남아있긴 한데 기다리기가
매우 지루할 것 같다. 푸짐하고 따뜻한 해장국에 시원하고 텁텁한 막걸리 생각은 굴뚝같은데
멋적게 혼자 게걸을 피우자니 그것도 남세스러운 일이다.
하산을 마치고 돌아 본 동암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