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그리움
( 2024. 7. 13. 임실군 관촌면 방수리에서)
고향집 九旬 고모와
밤새 바라만 보았지요
울다 지쳐 주저앉을 때까지
올라갈 수 없는 나라
끝내 닿을 수 없는 당신
디카시를 창작 할 때마다 육화(肉化)에 대해 깊이 생각 해 보곤 한다. 일찌기 롤랑 바르트는 사진 액면 그대로 보는 포토포엠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한 치 더 안으로 파고들것을 제안한 바 있다. 즉, 사진이나 풍경을감상 할 때 그 의도나 상식적인 의미보다는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감상 순간의 강렬한 충격과 여운의 감정을 이입시킬 수 있는 '푼크톰'이라는 철학적 개념이 그것이다. 디카시는 자연이 육화肉化되는 서정의 노래다. 그러니까 순간포착 영상과 시적 언술이 서로 육화되지 않으면 디카시는 어색하고 공감이나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애기로 풀이될것이다.
'연암억선형(燕巖憶先兄)'이라는 박지원의 시가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리울 때마다 아버지와 닮은 형님을 만났다는 연암.....세상과 이별의 문턱에서 서성이고 계시는 고향마을 구순(九旬)고모님을 찾아 뵙던 그 밤, 검은 구름 사이로 비친 영롱한 달빛의 오묘한 스펙트럼과 마주치는 순간, 셧터를 누를 새도 없이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어야 했다. 그 달빛의 광휘는 바로 아버지의 얼굴로 이미지화 되어 여동생을 만날 기쁨의 미소를 머금고 흐믓하게 내려다 보고 계셨으니....고모의 눈가에 이슬이 맺히며 내 손을 꼬옥 쥐고 달빛 속으로 포근하게 안기고 계셨고...그렇게 그 밤이 깊도록 당신이 떠나실 때까지 마루턱에서 달빛을 소중하게 줍고 있었다. 동네방네 우애가 돈독하기로 소문났던 쌍둥이 같던 오누이의 은하수 다리가 되어 준 저 신비한 광휘, "달빛 그리움"이라 속삭여주고 가신 당신의 말씀을 소중하게 받아 적고 적어 읊어보지만 끝내 닿을 수 없는 당신이 야속합니다. 그립습니다.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