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미 신입회원 추천작품 - 1＞

[최상대]

                                                              빨간 도시락

                                                                                                               하 승 미

밥이 달다. 도시락 한번 변변히 싸주지 못했던 한을 어른이 된 지금, 볼 때마다 고봉밥으로 갚아주신다. 요즘은 학교 급식이 있어 다행이라며 수시로 주린 배를 움켜잡았을 사춘기 딸을 엄마는 여태 부여잡고 계신다. 공으로 주는 빨간 도시락에 붙을 딱지보다 배고플 설움이 앞서신 거다.

아들은 하루같이 학교 급식이 불만이다. 네댓 가지의 반찬 중 대부분이 풀이고 고기나 햄처럼 좋아하는 반찬은 두어 개만 준단다. 게다가 양이 너무 적어서 먹어도 배가 고프다며 온몸으로 심통을 부린다. 무상 급식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아들은 급식비를 엄마가 내건 국가의 예산으로 하건 관심이 없다. 메뉴를 마음대로 정할 순 없더라도 식판에 주어지는 대로가 아닌 내 양껏 직접 퍼 담고 싶다.

나도 배고플 때가 있었다.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야 했던 학창 시절, 부엌은 내 담당이다. 성냥으로 불을 댕기는 석유곤로로 요리하기엔 이른 나이였다. 아침은 거르기가 일쑤다. 문제는 도시락이다. 밤늦게까지 학교에 있어야 하는 고등학생 오빠 도시락 둘, 초등학생인 남동생 하나, 중학생인 나까지 4개나 필요하다.

어묵볶음이나 두부조림처럼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은 전날에 해두곤 했다. 일어나 학교 가기도 바쁜 시간에 소시지나 달걀프라이 이상은 무리다. 보통은 밤에 해둔 반찬에 김 혹은 아침에 구운 햄과 이미 있는 밑반찬 하나 정도로 싼다. 냉장고에 늘 있는 김치나 콩자반만 담은 날이 하루걸러 하루다. 알람시계를 놓친 아침은 속절없이 빈손으로 등교한다. 학교 매점은 우리 삼 남매의 단골식당이다.

도시락이 설렐 리 만무했다. 한결같이 남루한 반찬은 어서 먹어 치우고 싶다. 셋째 시간이 끝나면 살포시 뚜껑을 연다. 물도 안 마시고 허겁지겁 밀어 넣는다. 아침의 공복도 채우니 일석이조다. 매점도 가끔 가야 반갑다. 역시나 쉬는 시간에 달려가 컵라면 한 사발을 후다닥 쓸어 올린다. 눈치 없이 꼬르륵거리는 배꼽시계 탓인 양하며. 정작 점심시간에는 도서관에서 홀로 배고프다. 학교에 진동하는 친구들의 도시락 냄새에 몸만 도서관에 있는 거다.

교생실습 때였다. 평소 신지 않던 뾰족구두에 정장 치마와 블라우스로 나는 예비 선생님이노라 뽐을 냈다. 짙은 화장으로 없는 위엄까지 그렸다. 두근거리는 실습의 하루하루가 지나고 조금은 여유가 생긴 어느 날 다른 교생들과 매점으로 향했다. 거기서 본 거다, 빨간 도시락.

매점 한 귀퉁이 테이블에 도시락들이 가지런하다. 서른 개 남짓의 네 칸짜리 플라스틱 통에 네 가지 반찬이 똑같다. 아직 남아 있는 열기를 식히느라 뚜껑이 열려있다. 주방 쪽에선 세트로 보이는 통에 밥을 담는다. 매점에서 도시락도 파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교내 저소득 가정 학생들에게 지원하는 밥이다. 2교시 마치기 전까지 준비해두면 해당 학생들이 와서 대장에 사인하고 하나씩 가져간다. 마침 지연이가 들어섰다. 평소 크고 활기차던 목소리는 어디 가고 콩알만 한 입술을 달싹이다 말곤 고개만 까딱, 휑하니 사라진다.

어떻게 먹는지 궁금했다. 내 점심은 뒤로하고 아이들의 식탁을 창문 너머로 본다. 담임을 맡은 반 뒤쪽 창가에 친구들 무리 속 지연이의 빨간 도시락 하나, 교탁 바로 앞에 짝꿍과 나란히 하나. 다른 반으로 옮긴다. 교실 앞문 바로 옆에 같은 색만 둘이 모여 있다. 또 다른 반엔 빨강이 하나가 홀로 덩그렇다. 똑같은 교복 앞 각기 다른 밥통 사이로 유난스레 튀는 똑같은 모양의 밥통은 엄마 솜씨가 아님을 매점에 와본 친구라면 누구나 안다. 주홍글씨처럼 빨갛게 구별된 점심이 그때와 같이 지금도 아리다.

아들은 학교에서 점심을 공짜로 먹는다. 생김도 다르고 부모 직업도 다르고 신발 메이커도 다르지만 밥은 모두 같다. 마주 앉은 동무들 밥그릇이 다르지 않다. 초등학교, 중학교에 이어 고등학교까지 확대된 무상 급식 덕이다. 잘 살든 못 살든 밥 한 끼라도 맘 편히 먹이자는 따뜻함이 학교 밥상까지 퍼진거다. 앳된 가슴에 생채기 남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십여 년 전의 빨간 도시락은 아동급식카드로 간판을 바꿨다. 밥 차려 줄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 학교 급식 외의 끼니를 해결하도록 돕는다. 이 특별한 지원을 받는 철수는 주로 편의점을 주방 삼아 컵라면에 물을 부어 삼각김밥과 먹는다. 몇 안 되는 지정 식당에도 한 끼 최대 오천 원으로 먹을 수 있는 건 면류가 대부분이다. 철수가 식당에 들어서면 안다. 어제와 같은 카드를 내미는 아이에게 식당 주인은 알아서 국수를 내어준다. 최근 한 대형마트 푸드코트에서도 카드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철수네 집에서 마트까지는 버스로 다섯 정거장 거리다.

뜻은 좋은데 방법이 아프다. 유별난 도시락을 먹었던 아이들도, 지정된 식당에서 정해진 카드로 일정 금액만큼만 먹을 수 있는 아이들도 이미 지원받아 먹는 처지임이 자연스레 알려진다. 다름은 때로 차별을 포함한 차이가 된다. 가난을 스스로 선택한 적 없는 아이들도 아무런 차이 없이 고른 영양으로 몸이 다져지고 영혼은 맑게 자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빨간 통을 가슴에 숨긴 채 지연이는 계단을 숨 가쁘게 뛰어올랐었다. 김치 냄새 풍기며 쉬는 시간을 오롯이 점심시간으로 여겼던 나는 꼭꼭 씹어먹는 법을 애써 잊었었다. 고픈 배는 감출 수 있어도 다름은 숨길 수 없었기에 능청거리느라 분주했다. 허둥지둥 씹어대던 밥알은 설익은 감 마냥 떫었다. 주는 손이 당당하듯 받는 손도 부끄럽지 않게 전할 방도가 있을 터이다. 엄마 밥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도드라지지 않는 온기로 지연이와 철수의 양 볼을 가득 채워줄 수 있는 날을 그려본다.

[최상대]

2023,07,10 임원회의에서 하승미님 신입회원으로 승인하였습니다.

[안연미]

하승미 회원님~
반갑고 환영합니다~
도시락에 얽힌 사람 사는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김아가다]

하승미님
빨간 도시락 잘 읽었습니다.
차별화된 도시락 문화. 하승미 회원님은 마음이 곱고 따스한 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