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 코드>라는 영화를 발가 벗겨야 하는 이유
론 하워드가 감독하고, 헐리우드의 톱스타 톰 행크스가 주연을 맡았으며, 댄 브
라운의 소설을 그대로 영상으로 옮겨담았다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영화 <다빈
치 코드>가 전세계 보수적인 기독교계의 거센 반발을 아랑곳 하지 않고 5월 18일
(목요일), 드디어 극장가에 그 막을 올렸다.
그동안 기독교계에서도 봐도 된다, 절대로 보면 안된다는 찬반 양론이 있었지
만, 어찌보면 이와같은 기독교계의 뜨거운 찬반 양론이 아니면 말고 식의 별 볼
일 없는 한편의 영화를 광범위하게 홍보해주는 꼴이 된 것 같아 씁쓸해지기 까
지 한다. 참 사단이 머리가 좋기는 좋은 모양이다.
사실 오늘 올라 온 기사를 보니까 이 영화가 올해 칸 영화제의 개봉작으로 상영
이 되었는데, 1억 2500만 달러가 들어갔고, 그간 기독교계의 엄청난 간접적인 홍
보효과까지 덕을 보았지만, 소문난 잔치집에 먹을 것이 없다는 속담처럼, 시사회
에 초청된 사람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못해, 비웃음까지 샀단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영화에 대하여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것은 영화가
가 문제가 아니라, 이 영화로 인해, 이미도 "메가 베스트 셀러"의 반열에 올랐
던 소설 <다빈치 코드>가 허구가 아닌 사실처럼 보여질까 하는 우려에서다.
영상매체 시대의 진리는 보는 것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다
시 말해서 영상을 통하여 생산된 텍스트는 영상매체에 중독되어 이성적 판단이
중지되어 버린 현대 영상 숭배자들에게는 참과 거짓을 따져야 하는 그 무엇이 아
니다. 바야흐로 이 시대는 "To see is to believe"의 시대인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이 영화의 제작진들과 배우들이 나와서 이 영화는 사실(facts)
이 아니라 허구(fiction)라고 떠들어 대도, 사람들이 믿는 것은 영화의 장면이
지, 그들의 말이 아닌 것이다.
기독교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그 영화 안보기 운
동을 하면서까지 이 영화의 허구성을 철저히 파헤치고 알려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다빈치 코드> 영화를 발가벗겨서 그 음흉한 악한 영들의 계략에 대응하
고, 보여진다고 다 믿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보여주기
위하여 몇 차례에 걸쳐 이 영화에 숨어 있는 그야말로 "코드"들을 하나하나 디코
드(decode)해 나가고자 한다.
짧은 소견이기 때문에, 여러가지 헛점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해 아래 새것이 어
디에 있겠는가? 독자들과 함께 완성시켜 가는 글이었으면 좋겠고, 활발한 토론이
있다면 더욱 좋지 않을까?
다빈치 코드의 숨겨진 코드-영지주의 (1)
<다빈치 코드>를 읽어내기 위한 가장 중요한 코드는 영지주의(Gnoticism)이다.
영지주의를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원론적인 질문부터 해야겠다. 당장에 내일 영
화가 개봉될텐데,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 영화를 봐도 되나? 아니면 절대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인가? 나는 그렇다치고 우리 자녀들은 안그래도 판타지 소설과 영화
에 관심이 많아서 고민이었는데, 이제는 마녀나 마법이 등장하는 영화가 아니라
아예 그리스도되신 예수를 부정하고, 복음의 진리를 완전히 뒤집어 엎어놓고 있
는 이 반기독교중의 반기독교 영화를 자녀들이 보겠다고 졸라 댈때,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에 대한 독자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
필자의 견해는 이렇다. 대략 그 영화의 줄거리를 알만하면 굳이 극장에 갈 필요
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해서 할리우드 이단에 헌금을 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
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예수님을 만나서 은혜 받았다고
할 것인가? 신발하나, 사거나 옷 하나 사도, 고르고 또 고르는 습관을 영화 고르
기에도 적용시켜 봄이 어떨런지.
자녀들에게도 보기의 욕망을 극복하는 법에 대하여 설득해야만 한다.
이 말씀을 들려주라.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성함
이 없으리라"(고전 8:8).
그래도 끝까지 보겠다고 우기거든 보여주라. 그래서 그들에게 이참에 세상이 얼
마나 악한 것을 탐하기를 즐거워하는 엽기적인 곳인가를 분명히 설명해주라. 물
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 영화의 오류와 거짓말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있어야
만 할 것이다.
그리고 거짓의 아비인 사단이 마지막이 가까워올 수록 문화를 통하여 거짓을 진
짜로 바꾸는 교묘한 기술들에 대하여 말해줌으로써 이 영화를 이 시대를 사는 믿
음의 자녀들에게 좋은 실물교육의 장으로도 활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다. 본론으로 돌아가자 <다빈치 코드>라는 영화(소설)에
는 그야말로 그 영화(소설)을 푸는 몇 가지 큰 <코드>가 있다. 첫번째가 영지주
의라는 코드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완성된 글을 아직 볼 수 없음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 다. 지금 막 쓰내려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쓰고 저장하 고 또 어느 정도 쓰고 저장하고 있습니다. 완성된 글을 못올려서 죄송합니다.)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가 영지주의 사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
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는 아무도 없다. 그만큼 이 소설을 이해하는 키
워드가 영지주의란 말이다. 라는 미국의 보수주의 잡지는 지난 5
월 11일 인터넷 판에 Robert H. Knight라는 분이 쓴 10 Errors>다빈치 코드에 드러난 10가지 주요 오류들)이라는 글을 실었다.
이 글에서도 Knight 문화와 가정연구소 소장은 댄 브라운의 주장은 자신이 수입
한 52권의 영지주의 복음에 기초한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브라운 자신
이 수집한 영지주의 문서들은 이집트의 나그 함마디에서 1945년 발견된 것으로,
이들 문서들은 신약성경의 4복음서보다 1세기 이후에 쓰여진 것으로, 그 어떤 문
서들도 예수님 당시의 증인들에 의해 쓰여진 책은 없다는 것이다.
즉, 복음서보다 1세기 이후에 쓰여진 영지주의 문서가 어떻게 예수님 당시의 증
인들이 목격한 사실을 기록한 복음서보다 더 신빙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지에 대
하여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다. 게다가 영지주의는 초대교회에서 철저하
게 배격된 이단인데 말이다.
자, 그렇다면 영지주의가 얼마나 엄청난 이단인지에 대하여 살펴보자.
오늘날 영지주의가 관심을 쓰는 것은 새로운 현대의 신비주의 운동인 뉴에이지
운동에 힘입은 바가 크다. 영지주의와 신플라톤주의는 우선 헬라신비주의에 속한
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희랍과 이집트의 기독교 신비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
쳤다. 여기서 주목하시라! 영지주의가 이집트의 기독교신비주의자들에게 큰 영향
을 끼쳤다는 역사적 사실을! 이제 독자들은 감잡을 것이다. 영지주의-이집트의
기독교- 이집트의 나그 함마디에서 발견된 영지주의 문서-그리고 댄 브라운의 소
설 <다빈치 코드>. 이들의 상관관계의 이해가 확실히 되었을 줄로 믿는다.
그러면 영지주의 이단의 정체는 무엇인가?
영지주의는 신약시대의 말엽에 와서 가현설(Docecism)을 가지고 교회에 침투하
여 예수의 성육신 교리는 물론 성경적인 창조와 부활의 교리까지 위협함으로써
기독교 신앙을 수호하려는 바울과 사도 요한의 가장 큰 적대세력으로 등장했다.
(F. F 브루스 나용화 역, 신약사, 1992)
이어서_____________
다빈치 코드의 숨겨진 코드-영지주의 (2)
(1)에 이어서,
그러면 신비주의와 관련한 영지주의의 종교사상에 대하여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영지주의를 의미하는 Gnoticism은 '지식'을 의미하는 헬라어 '그노니스"에
서 유래된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그저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단순한 지식을 의
미하는 것이 아니라 신비적이며, 직관적으로 신의 계시를 체험한 상태를 말한
다.
영지주의에서는 영적인 세계는 선하고 물질적인 세계는 악하며, 각기 두 세계는
서로 적대적인 관계에 있다는 우주론적 이원론이 그 중심사상이다. 그렇기 때문
에 이들이 말하는 구원관은 물질계, 현실계와 신들을 포함한 모든 악한 지배력에
서 벗어나는 것이며, 그 방법은 신비적, 정신적인 '지식'으로 영계의 실재와 교
통하는 것이다.
직관을 통해 신비적인 '지식'으로 초월적 존재(상태)와의 만남을 시도한다는 점
은 신플라톤주의의 창시자 플로티누스의 신념과 일치한다. 플로티누스는 "말할
수 없는 일자"와의 합일을 위해 감각기관의 작용을 완전히 정지시킴으로써 신령
한 영혼의 세계를 향한 문을 열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엑스타시를 얻기 위
하여 현세의 사물들의 모습에 대하여 눈을 닫아야만 하고, 그리고 이들의 공허
한 그림자들을 추구함으로써 잘못된 길로 빠져서는 안된다"라고 말했다.
영지주의의 우주론적 이원론은 영지주의를 비성경적이고 이단적으로 몰아가는 결
정적인 종교사상이었다. 그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신 절대자 하나님이 아니다. 영
지주의자 발렌티누스의 생각대로 이 세상에 창조한 신은 데미우르지(열등한 신)
이다. 그들은 심연(Abyss)라는 제 1원리가 절대적인 신이라고 주장한다. 그 존재
로부터 에온(eon)이라고 부르는 다른 영적인 존재들이 나온다고 보았다. 원래 에
온의 목적은 심연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그러나 한 에온의 실수로
혹은 의도적으로 이 물질세계를 낳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적인 실재는 선한
것이고 물질적인 실재는 최고실재인 심연에서 결정한 것이 아니라 한 에온의 실
수의 결과이기 때문에 악한 것이다. 영지주의는 이러한 논리를 들어 예수라는 사
람과 영인 그리스도를 분리시킨다.
그러므로 철저한 예수의 인간화 작업은 고대 기독교회의 골칫거리 이단이었던
영지주의로부터 시작하여 끊임없이 제기되어온 것이어서 <다빈치 코드>에서의 주
장은 전혀 새로운 거짓말이 아닌 것이다.
영지주의자들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구원의 참지식을 전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
을 때에 비둘기 모양으로 예수라는 한 인간에게 가짜로 현현하였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가현설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인간 예수에게 능력을 주어 기적을 행하
게 하고 알지 못하는 아버지를 전파케 한 자라는 것이다.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도가 참 지식을 가지고 이 땅에 온 이유 또한 우주론적
이원론에 입각한 철저하게 반기독교적인 주장을 한다. 즉 그들은 높고 선하신 신
이 "빛의 영계"를 주장하신다는 신념을 가졌는데, 거기서 떨어진 부스러기가 암
흑의 악 세계에 갇혔다는 것이다. 후대의 영지주의는 그 떨어진 요수를 신에게
서 방사된 최하읭 여적 존재로 악의 세계 안에 있는 빛의 씨라 하여 그들을 구하
시려 예수가 참 지식을 가지고 오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 교훈을 받을 수 있는
자는 영계에서 회복될 것이지만 참 지식은 아무나 깨달을 수 없는 신비한 것이기
에 소수만이 구원받는다는 논리이다.(계속)
김대진 기독교문화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