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과 황금빛의 화가’ 고호가 발견한 황금빛
평생 아름다운 빛을 찾아다닌 빈센트 반 고흐
몸부림쳤던 생을 강렬한 색채로 옮긴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 성직자가 되고 싶었던 늦깎이 화가의 그림은 세상 누구와도 대화하여 하지 않는다. 내가 나 되는 되어감의 존재는 전하지 못한 말을 그림으로 전한다. 화가는 빛과 어둠이 소용돌이치는 황금색 그림을 통해 사람들을 향하여 내 지른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황금색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에」 밤하늘 속 영롱하게 빛나는 자신의 별… 그림 속에서 신과 대화하고 사람을 만난 화가 빈센트 반 고호는 평생 아름다운 황금빛을 찾아다닌다. 1888년에는 프랑스 남부 아를(Arles)로 거처를 옮겼는데, ‘인류가 사랑하는 작품’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황금빛 해바라기>(1888)가 바로 이곳 아를에서 완성됐다. 그것은 나의 해바라기고 그 해바라기는 황금빛이어야한다.
윤동주는 그의 詩 「십자가」에서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저물어가는 저 하늘밑에 뿌리겠다고 했던가?"
고호의 해바라기는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태양처럼 뜨거웠던 그의 뜨거운 열망을 드러내는 ‘영혼의 꽃’이다.
자급자족하며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화가 공동체를 꿈꿨던 고호는 프랑스 아를의 작은 집을 빌려 노란색으로 페인트를 칠하고, 그 속에 해바라기 그림을 장식했다. 고호에게 노랑은 빛과 꿈을 의미했는데, 해바라기 그림을 보면 힘찬 붓질로 표현한 당시의 열정과 부푼 꿈이 감지된다. 그러나 그를 찾아온 화가는 폴 고갱(Paul Gauguin)뿐,
"사람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처음이자 마지막 손님이었던 고갱마저 그를 떠나자 황금빛 노란 집은 별안간 빛을 잃은 공간이 되어버렸다.
노란 집, 1888년, 캔버스에 유채, 72x91.5cm
어지러운 세상을 희망으로 물들이다
“난 평생을 방 안에서 홀로 지냈어.”
고흐의 삶은 고독과 절망의 연속이었다. 살아있을 때 그림을 한 점밖에 팔지 못해 늘 곤궁했고, 생활비는 물론 그림을 그리는 데 필요한 비용까지 동생 테오에게 의지해야 했다. 테오가 구해준 방 안에서 고흐는 늘 혼자였다. 홀로 그림을 그렸고, 홀로 열망을 삭였다.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고흐는
“성당보다는 사람의 눈을 그리는 게 더 좋아. 제아무리 장엄한 성당도 가질 수 없는 매력을 사람의 눈은 담고 있거든. 거지나 매춘부라고 해도 사람의 영혼이 훨씬 흥미로워.”라고 말했다. 사람의 눈을 통해 영혼을 그리고 싶었지만 경제적 여건 탓에 모델을 구할 수 없었던 고흐는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 자신을 그리기 위해 남루한 방의 거울과 화폭을 쉬지 않고 오갔을 진지한 시선이 거친 붓 터치 사이에 턱하니 무턱대고 걸려있는 듯하다.
자화상, 1887년, 캔버스에 유채, 34.9×26.7cm
<밤의 카페테라스>(1888)는 고흐가 좋아했던 포룸 광장의 카페 야경을 그린 것이다. 카페 차양 불빛을 밝은 노란색으로 칠해 밤하늘과 명확한 대비를 이룬다. 고흐는 이 작품에서 처음으로 별이 빛나는 하늘을 그렸는데, “별을 그리며 너무나 행복했다”라고 고백했다.
고흐의 그림에는 노란색과 소용돌이 형상이 많다. <별이 빛나는 밤>(1889)에도 노란 회오리가 곳곳에 있다. 자신의 귀를 자른 후 정신병원에서 내다본 풍경을 그린 작품으로, 심연 같은 절망과 어둠마저 몽환적으로 보인다. 어슴푸레한 새벽, 춤추듯 빛나는 별들이 마치 고호의 깨끗하고도 처연한 자신의 몸과 영혼인 것 같다.
밤의 카페테라스, 1888년, 캔버스에 유채, 81×65.5cm
별이 빛나는 밤, 1889년, 캔버스에 유채, 73.7x92.1cm
별빛에 담긴 불멸의 영혼
자기 귀를 자른 미치광이, 동생에게 668통의 편지를 보낸 외톨이, 자살한 우울증 환자…. ‘비운의 화가’로 알려진 고호는 사실 ‘사랑의 화가’로 불려야 마땅하다. 고호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려고 애쓴 예술가였다.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호는 “난 훌륭한 일은 할 수 없을 거야. 다만, 가난하다 못해 비참하게 사는 우리 시대의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그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 싶어”라고 썼다. 진실한 인생이야말로 최고의 예술이라고 믿었던 고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진실로 사람들을 사랑했다.
감자 먹는 사람들, 1885년, 캔버스에 유채, 82x114cm
유작으로 알려졌던 <까마귀가 나는 밀밭>(1890)은 고호 특유의 노란색을 휘몰아치듯 쏟아낸 작품이다. 요동치는 밀밭과 소용돌이치는 하늘, 그 위를 날아오르는 까마귀 떼가 세상을 떠나기 전 고호의 불안과 고통을 대변하는 것 같다. 지독한 가난과 고독, 예술에 대한 집착, 우울증과 발작으로 정신병원 입·퇴원을 반복하던 고호는 권총 자살로 37년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고호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스물 아홉 살이던 1881년 12월이었고, 1890년 7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10여 년간 879점의 그림을 남겼다. 끝내 이해받지 못한 세상에서 훌훌 날아오른 고흐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화가가 됐다. 당대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았지만, 불꽃같던 그의 영혼은 그림에 녹아들어 인류의 기억에 오래도록 빛나는 황금빛 별이 되었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 1890년, 캔버스에 유채, 50.5x103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