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장지학 [ 張志鶴 , 1905.3.10~1938 ] 보다 김산으로 더 유명하며, 김일성(金日成)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에서는 장지락 [張志樂] 으로 등장하기도 하는 그가 ‘중국의 붉은 별’
로 유명한 미국의 신문기자 Edgar Snow의 부인, Nym Wales 를 만나 3개월 동안 20여 회에
걸친 구술을 통해 그의 혁명적 생애를 다룬 ‘아리랑 (Song of Ariran) 을 이번 우리나라
방문중 여러분의 도움으로 쉽지않게 구할수 있었던것은 기대하지 않았던 수확이었다.
더군다나 그를 기념하고 연구하기 위한 ‘한민족 아리랑연합회’ 라는 단체가 결성되어있다는
사실, 또한 매우 반가운 일이었다. Nym Wales 가 '현대의 지성을 소유한 실천적 지성인'
이라고 격찬하였던 그는 분명히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었고 치열하게 살다간 그의
행동적인 지성은 이제라도 하루 빨리 재조정이 이루어져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벌써 오래전에 출판되었고 Hawaii 대학등에서는 동양학관련교재로
쓰이고 있는 이책을 부분적으로 접하다가 이번에 우리글로 책을 모두 접하게 되었다는것은
매우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수없는데 이 책에 실린 아리랑노래의 설명을 R&T 가족분들과
함께 나눠볼까하며 이 책을 많은 가족분들에게, 남녀노소에 관계없이, 그리고 주저없이
권한다. (아리랑 - 김산, 님 웨일즈 지음, 조우화 옮김, 동녘문예 ISBN 89-7297-109-X)
(Quote) 조선에는 민요가 하나있다. 그것은 고통받는 민중들의 뜨거운 가슴에서 우러나온
아름다운 옛 노래다. 심금을 울려주는 아름다운 선울에는 슬픔을 담고 있듯이, 이것도 슬픈
노래다. 조선이 그렇게 오랫동안 비극적이었듯이 이 노래도 비극적이다.
아름답고 비극적이기 때문에 이 노래는 300년 동안이나 모든 조선사람들에게 애창되어 왔다.
서울 근처에는 아리랑고개라는 고개가 있다. 이 고개 꼭대기에는 커다란 소나무가 한 그루
우뚝 솟아 있었다. 그런데 조선왕조의 압정하에서 이 소나무는 수백년 동안이나 사형대로
사용되었다. 수만 명의 죄수가 이 노송의 옹이진 가지에 목이 매여 죽었다. 그리고 시체는
옆에 있는 벼랑으로 던져졌다. 그 중에는 산적도 있었고 일반 죄수도 있었다. 정부를
비판한 학자도 있었다. 이조 왕족의 적들도 있었고 정치적 반역자도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는 압제에 대항해 봉기한 빈농이거나 학정과 부정에 대항해 싸운 청년
반역자들이었다.
이런 젊은이 중의 한 명이 옥중에서 노래를 한 곡 만들어서는 무거운 발걸음을 끌고 천천히
아리랑고개를 올라가면서 이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가 민중들한테 알려지자, 그 뒤부터는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면 누구나 이 노래를 부르면서 자신의 즐거움과 슬픔에 이별을 고하게 되었다.
이 애끓는 노래가 조선의 모든 감옥에 메아리쳤다. 이윽고는 죽기전에 마지막으로
이 노래를 부를수 있는 최후의 권리는 누구도 감히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아리랑”은
이 나라 비극의 상징이 되었다.
이 노래의 내용은 끊임없이 어려움을 뛰어넘고 또 뛰어넘더라
도 결국에 가서는 죽음만이 남게 될뿐이라고 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노래는 죽음의 노래이지 삶의 노리는 아니다. 그러나 죽음은 패배가 아니다.
수많은 죽음 가운데서 승리가 태어날수도 있다. 이 오래된 “아리랑”에 새로운 가사를
붙이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마지막 한 귀절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으며,
더욱 많은 사람이 “압록강을 건너” 유랑하고 있다. 그렇지만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는 돌아가게 될것이다. (unquote)
훗날 문화혁명때 그 악명을 다시 날리게되는 강생의 지시로 '트로츠키주의자',
'일본스파이' 의 죄목으로 억울한 처형을 당하게 되었을때 33세의 김산은 이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첫댓글 그래서 그런가요??더 구성지고 더 애닲고 그런거 같아요.....^^
에효 전 동영상이 안나오니......................걍 와 일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