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살 막내도 1등이면 국대다… ‘공정’이 만든 33년 최강 양궁
문희봉
장하다. 대한민국 양궁, 33년째 ‘양궁 코리아'다. 한국이 7월 25일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양궁 단체전 결승에서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를 세트 승점 6대0(55-54 56-53 54-51)으로 꺾고 금메달을 땄다. 24일 혼성 단체전(김제덕-안산) 우승에 이어 한국 선수단에 두 번째 금메달을 안겼다. 도쿄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에선 이틀 내리 태극기가 올라가고,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한국은 1988년 서울올림픽에 여자 양궁 단체전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이번 도쿄 대회까지 33년 동안 금메달을 한 번도 놓치지 않고 9연패(連覇)를 달성했다. 올림픽에서 특정 종목 9연속 우승은 수영 남자 400m 혼계영(미국)과 육상 남자 3000m 장애물(케냐)에 이어 한국 여자 양궁이 역대 세 번째로 달성했다.
강채영(25·현대모비스), 장민희(22·인천대), 안산(20·광주여대)으로 이뤄진 여자 대표팀은 8강전부터 결승전까지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는 완벽한 경기력으로 정상에 섰다. 안산은 전날 혼성 단체전에 이어 대회 첫 2관왕에 올랐다.
한국 여자 양궁이 33년간 세계 정상을 지킨 데는 이유가 있다. 치열한 경쟁을 뚫은 선수를 공정하게 선발하는 시스템이 정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올림픽 금메달 경력자라도 가장 아래 단계부터 거쳐 올라가지 못하면 대표가 될 수 없다. 국제 무대 경험이 부족해 세계 랭킹이 100위권에 들지 못하는 선수라도 국내 선발전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태극 문양을 달 수 있다. 대표 선발을 둘러싼 잡음이 생길 수가 없는 구조다.
대한양궁협회는 이번 올림픽에 처음 채택된 혼성 단체전에 누굴 내보낼지 고민이 많았다. 지난 4월 올림픽 대표 선수 6명을 뽑는 국가대표 최종 평가전에서 남녀 1위를 한 김우진(29·청주시청)과 강채영을 일찌감치 혼성전 멤버로 정해 호흡을 맞추게 하는 방법이 있었다. 둘은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적이 있었던 실력자다. 앞선 국제대회 성적이나 국가대표 경력을 따졌을 때도 대표팀 멤버 중 가장 돋보인다.
하지만 협회는 고민을 거듭하다 내부 경쟁을 거쳐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기로 했다. 지난 23일 도쿄 올림픽 현장에서 열린 랭킹라운드(예선전)를 마지막 선발전으로 삼았다. 그 결과 남자팀 막내 김제덕(17·경북일고)이 688점을 쏘며 선배들을 제치고 전체 1위를 했다. 여자팀 역시 막내인 안산(680점)이 25년 만에 종전 올림픽 기록(673점)을 갈아치우고 1위를 했다.
대표팀에서 가장 경력이 짧은 둘은 랭킹라운드에서 보여줬던 실력을 24일 혼성전까지 이어갔다. 김제덕은 경기장이 떠나갈 정도로 ‘코리아 파이팅’을 외쳤고, 안산은 시시각각 변하는 바닷바람에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 침착함을 보이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들은 국내 최종 평가전에서 각각 3위로 도쿄행 턱걸이를 했다. 양궁협회의 공정 경쟁 원칙이 있었기에 새로운 스타가 탄생한 것이다.
양궁협회는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대표 선발의 공정성을 더 높였다. 2019년 8월에 열린 대표 1차 선발전 때 기존 국가대표 선수도 모두 참가하도록 했다. 이전에는 비(非)국가대표 선수끼리 1·2차 선발전을 거친 다음 국가대표 선수들과 3차 선발전-평가전을 치러 최종 대표를 뽑았다. 1·2차 선발전을 건너뛸 수 있는 기존 국가대표 선수들의 혜택을 없앤 것이다.
국가대표 선발 과정에서 막판 ‘짬짜미’가 벌어질 가능성을 막기 위해 같은 팀 선수끼리 첫 경기에 대결하도록 대진을 짜기도 했다. 난수표처럼 복잡한 선발전 포인트 산정 방식 역시 유지했다. 2016년 리우올림픽 2관왕 장혜진(33·장혜진)도 2차 선발전의 벽을 넘지 못했다.
대표 선발전이 2차까지 끝났던 2020년 3월 코로나 사태로 도쿄올림픽이 1년 연기됐다. 양궁협회는 2020년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올림픽 출전권을 줄지 고심하다 2021년도 대표를 새로 뽑아 도쿄에 보내기로 했다. 모든 선수들은 다시 ‘제로 베이스’에서 경쟁했다. 2020년도 대표 선발전 당시 어깨 부상으로 중도 포기했던 김제덕은 협회의 방침 덕분에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남녀 선수 198명이 작년 10월부터 올해 4월까지 7개월 동안 세 차례 선발전, 두 차례 평가전을 거쳤다. 험난한 여정에서 살아남은 남녀 3명씩이 도쿄행 티켓을 잡았다. 이들 6명이 토너먼트, 리그전, 기록전 등을 치르면서 쏜 화살만 3000여 발이다. 이런 공정이 최강 양궁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히딩크가 박지성을 발굴한 것과 일맥상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