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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茶 공부 스크랩 차명상은 나를 의식하는 것으로 부터
명전 추천 0 조회 132 09.06.16 06:43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차명상은 나를 의식하는 것으로 부터 - 지장스님

 

일반적으로 명상은 나를 알고 찾는 과정이라 한다. 모르던 나를 제대로 알아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것이 그 목적이기도 하다. 평소 우리가 외부의 어떤 대상을 알고자 할 때는 눈으로 관찰하거나 손으로 만져보아 파악하게 된다.

그러나 나를 알아가고자 할 때는 내면을 보고 느끼고 알아야 하는데, 이는 우리가 가진 기본적인 감각기관을 통해서는 결코 알 수가 없다. 우리 내면의 정신세계를 알고자 한다면 특별한 어떤 마음의 기능을 활용해야 되는데, 그 기능은 사실 알고 보면 아주 특별하지는 않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자세로 있는지, 어떤 느낌과 감정 상태에 있는지, 혹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의식하는 기능이다. 이것을 자각 기능, 알아차림, 혹은 내적 통찰 기능이라 부르기도 한다. 내가 나를 의식하는 기능은 아주 당연하고 자연스런 기능이기 때문에, 이런 기능을 써서 무슨 명상을 하고 자아를 찾고 행복을 찾을 수 있겠는가 반문할 수도 있다.

나를 의식하는 기능은, 계발이 되기 전에는 그저 단순히 나의 표면적인 모습을 의식하거나 일시적으로 나를 느끼는 수준에서 끝나버린다. 그러나 이러한 기능이 계발되고 강화되어 통찰의 수준으로 전환된다면, 그때부터 또 다른 차원의 나를 보고 알게 된다. 이 기능은 노력하면 할수록 지속적으로 키워나갈 수 있다.

나를 의식하는 기능은 나를 찾는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기능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누군가를 처음 만나서는 그 사람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없다.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혹은 같이 살면서 시간이 지나야만 서서히 알게 된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도 마찬가지이다. 외부세계에 대한 사고와 판단에 익숙해 있던 정신세계를 변화시켜 나의 존재 그 자체를 느끼고 바라보는 데 익숙해지려면 그만큼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점점 오랫동안 나의 존재하는 모습, 느끼는 모습, 생각하는 모습을 대하다 보면, 자아를 의식하는 데 익숙해지고, 그러면서 이제까지 몰랐던 사실을 깨닫게 된다. 처음 나를 지속적으로 의식하게 되면, 나의 존재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지만 매우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너무 오랫동안 의식하지 않아 온 자아인 데다, 이제까지는 다른 사람에 의해 묘사되는, 거울에 비춰지는 겉모습과 같은 주체를 자신의 모습이라 확신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또 다른 시각에서 느껴지고 바라보이는 자신의 모습에 당황하기도 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냉철하게 자신의 현재 존재하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되면 자신이 지닌 모순과 한계를 깨닫게 된다. 모순과 한계를 깨달았다고 결정적인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제부터는 자신을 올바로 보고 알게 되고, 또 자신을 아는 만큼 다른 사람과 세상을 더 알게 된다. 자신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은 남을 올바로 알 수 없으며,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 또한 올바른 시각으로 볼 수 없다.

자신의 한계와 모순을 모르기 때문에 편견과 고정 관념으로 남을 바라보고 평가하며, 결과적으로 그가 자신의 기준에 많이 접근해 있으면 좋다고 생각하고, 그렇지 않으면 싫다고 반응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한계와 모순을 제대로 보게 되면, 남의 주장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의 장점과 단점을 자연스럽게 인정하게 된다. 자기의 사고방식과 세계관이 완벽한 것은 아니며,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이상하게, 엉뚱하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고, 다른 사람들 또한 그들 나름대로 독특한 사고방식과 세계관, 모순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단순히 아는 수준이 아니라 확실히 인정하고 충분히 받아들이는 수준으로 의식이 전환된다.

또한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힘이 길러지기 때문에 대인 관계에서 갈등과 불화가 현저히 줄어들게 된다.

몇 달 전 사찰에 머무르면서 산책 겸 걷기 명상을 위해 가끔 근처 산의 등산로를 거닌 적이 있다. 이 등산로는 차가 함께 다니는 비포장 도로였다. 걷다 보면 많은 자동차를 만나게 되는데, 열대 중의 여섯 대 정도는 길가에 걷는 사람이 있으면 속도를 줄인 채 지나간다.

그러나 나머지 차량들은 오던 속도 그대로 지나쳐 많은 흙먼지를 일으키고 걷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속도를 줄여 먼지 발생에 신경을 쓰는 사람들은 걷는 사람들의 입장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고, 그 반대의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흙먼지를 피워 산책의 평온함과 조용함을 망가뜨린 차를 보고 좋게 반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적절한 예화였는지는 모르지만, 남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사회적 혹은 개인적 갈등은 줄고, 평화와 조화가 어느덧 성숙되게 된다.

나를 의식하는 것은 결국 나에 대한 진정한 이해로 이어진다. 또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남에 대한 이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되며, 그러한 인식의 전환은 우리를 힘들게 하는 많은 요소들을 없애 나간다. 명심할 것은, 나를 아는 만큼 남과 세상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나를 지속적으로 잘 의식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나를 의식하는 기능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자연스런 기능이며, 내가 나를 의식하고자 할 때 언제든지 바로 할 수 있는 마음의 기능이다.

그러나 그 지속시간이 짧고 얕은 수준의 의식에서 머물러 버리기 때문에, 그 기능이 가진 장점을 아직까지 우리는 활용하고 있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기능은 전략적으로 계발하고 강화시키면 충분히 발전시킬 수 있으며, 노력할수록 지속적으로 키울 수 있게 된다.

우리가 평소 자신을 의식하고자 하면, 처음 얼마 동안은 잘 되지만 곧바로 다른 생각으로 이어져 의식과 자각이 멈추게 된다. 사실 다른 생각 때문에 자각과 의식의 마음을 놓쳐버렸다는 사실 자체도 모르게 된다. 이렇게 오랫동안 그리고 강하게 자신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은 집중력과 정신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집중력과 정신력이 지탱될 때 나를 자각하는, 의식하는 기능이 오래 유지되며, 일정 시간 이상 강하게 작용하면 통찰의 수준으로 변하게 된다. 이 강해진 통찰력을 활용하여 나를 이해하게 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힘들게 하는 정신작용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게 된다.

자각과 의식의 기능은 집중력과 정신력이 함께 작용해 주어야 하는데, 자각과 의식을 강을 건너려는 사람에 비유한다면, 집중력은 그 사람을 실어주는 배와 같고, 정신력은 배의 동력과 같다. 그래서 자각의 기능과 함께 집중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주로 움직이지 않으면서 하나의 대상에 마음을 집중하는 명상을 하게 된다. 또한 정신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움직이며 지속적으로 움직임의 느낌과 형태를 의식하는 명상을 하게 된다.

집중력과 정신력이 적당히 조화를 이루면서 작용하면 나를 의식하는 기능 또한 무난히 지속된다. 그러나 그 조화가 깨져 집중은 강한데 힘이 약하면 졸음과 혼침에 빠지게 되고, 반대로 힘은 강한데 집중력이 약하면 끊임없는 잡념에 시달리게 된다.

집중력을 키우는 대표적인 명상이 앉기 명상이다. 몸에 움직임이 없고 마음을 호흡헤 기울이며 명상하게 되면 차분해지는 호흡과 함께 깊은 집중의 상태를 계발하게 된다. 또한 자각의 강도와 지구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신력은 걷기 명상을 통해 계발된다. 그래서 전문 명상센터에서는 앉기와 걷기를 위주로 하루 온종일 명상하게 된다.

여건이 된다면 전문 수행센터나 선방에 가서 하루 종일 좌선과 행선을 하며 명상에 필요한 마음의 기능을 키우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일과 가정이 있는 보통 사람들에겐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가끔 휴가를 내어 수련대회나 피정을 통해 일시적으로 체험해 보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일상을 떠나지 않으면서 명상센터에 간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면 일석다조가 됨이 분명하다.

나를 의식하는 명상 기법은 집중력 중심 명상과 달리 따로 시간을 내어 할 필요가 없다. 평소 우리의 행위들을 자연스럽게 의식하며 행위는 행위대로, 명상은 명상대로 병행하면 되는데, 어떻게 효과적으로 일상의 행위와 의식하는 기능이 함께 작용하도록 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초의차명상원은 명상과 일상의 가교 역할을 잘 해왔던 차(茶)를 통하여 그 가능성을 확인하고 더욱 세부적으로 원리와 기법을 정리하게 되었다. 차와 명상은 일찍이 차와 수행을 하나로 보고 몸소 실천해 보이신 다성 초의 스님이 그 사상적 근원 및 실천 방법의 토대를 닦아 놓으셨다.

차를 마시며 명상하게 되면 한 번의 명상에 집중력과 힘을 동시에 키워주는 효과가 있다. 차 마시는 행위는 크게 정적인 부분과 동적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정적인 부분은 차 마시기 전, 물이 끓을 때, 물이 식을 때, 찻잔을 들고 있을 때처럼 특별한 동작이 없이 그냥 멈춰 있는 상태이고, 동적인 상태는 이리 저리 손을 움직이며 차 도구를 만지고 차를 우려내는 상태이다.

정적인 상태에 있을 때 앉기 명상의 기법을 활용하여 나를 의식하고 통찰하는 명상을 하면 집중력과 자각력이 키워지고, 동적인 상태에 있을 때 걷기 명상의 기법을 활용하여 통찰하면 정신력과 자각력이 키워진다.

차명상은 일반적으로 하는 여러 명상법에 활용 가능하며, 내적 외적 분위기나 느낌이 현저한 차이가 있어서 짧은 시간 동안이라도 아주 효과적으로 기분 좋게 명상하게 된다.

같은 명상이라도 차를 마시거나 찻잔을 손에 들고 전반적인 분위기를 의식하며 명상하면 더욱 강하게 의식이 주변에 미칠 뿐 아니라, 자신도 또렷하고 맑은 상태로 깨어 있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차의 약리작용으로 인해 정신은 더욱 맑고 진지해져 명상이 순조롭게 진행되기도 한다.

차명상은 기본적으로 차를 마시며 명상하지만, 어떻게 명상할 것인가를 빨리 터득하게 하고, 명상에 꾸준한 흥미를 가지게 만든다. 차명상이 명상의 전부는 아니며, 차명상을 통해 터득한 명상의 기법을 우리의 일상생활에 적용하여,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저녁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가능한 모든 순간들을 명상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명상할 때만 심리가 안정되고 명상을 하지 않을 땐 다시 번잡스런 일상의 마음 상태로 돌아간다면 명상의 참 효과는 없는 것이다. 그런 명상은 잠시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하고 휴식과 활력을 주는 역할에 그칠 뿐이다.

하루 종일 명상하는 마음 상태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지속적으로 나를 의식하고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을 이해하게 되며, 이러한 이해가 마음의 무게를 한결 가볍게 해 삶을 보다 충만되게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명상의 참 효과이다.

일반적인 명상은 주로 집중력을 향상시킨다. 집중력이 향상되면 일에 효율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감정적으로 힘들 때 잠시 주의를 집중할 대상으로 돌려 힘든 상태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집중할 때만 효과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는 원래의 마음 상태로 돌아가 버린다.

힘들게 하는 원인과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바쁜 일상생활에 명상을 접목시키기가 매우 어렵다. 향상된 집중력이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고, 업무 수행에도 큰 효과가 기대되지만 그것을 생활화하기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집중력 중심 수행과 일상생활이 분리된 채 따로따로 진행되고, 명상의 효과를 극히 일부분에 응용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실 자신을 의식하고 자각하고 통찰하는 것은 집중력과는 큰 관계가 없다. 자신의 행위나 모습, 느낌, 감정 등을 바라보고 의식하는 것이므로 자각력에 속한다. 이러한 명상법은 일상의 행위를 해가며 그 자체를 바라보고 의식하는 것이기에 생활과 전혀 분리되지 않는다. 생활이 곧 명상이고 명상이 곧 생활이 될 수 있다.

요즘 기업과 조직에 유행하는 경영 마인드 중에 액티브 러닝(Active Learning)이라는 것이 있다. 일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일한다는 개념이다. 원래는 영어권 나라에 가서 일도 하고 영어도 배운다는 데서 유래하였다고 하는데, 일을 하든 차를 마시든 어느 때고 명상을 병행한다는 차원에서 차명상은 액티브 러닝의 명상버전이라 할 만하다.

차명상은 자각력과 통찰력 그리고 그 기능을 지탱해주는 집중력과 정신력을 함께 키워 나간다고 하였다. 아무리 나를 의식하는 기능과 자각력이 주된 차명상의 활용 기능이라 하더라도 집중력과 정신력이 밑받침되지 않으면 강하고 지속적으로 의식과 자각상태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이 세 가지 기능을 함께 키워 나가야 한다.

그러면서 더욱 효과적으로 명상을 이끌어가지 위해서는 어떻게 명상할 것인지, 또 그러한 명상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원리와 과정에 대한 상세한 이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보통은 원리와 과정이 너무 복잡하고, 자칫 이론적인 논쟁만 하다가 볼일 다 본다는 생각에 쉽게 방법과 결과만을 설명하고 만다.

명상에 대한 확실한 이해가 없다면 기법을 정확히 이해하기 어렵고, 정확히 수행하기도 어렵다. 또한 시작단계가 지나면 큰 변화나 체험이 거의 없는 상태가 지속되게 되는데, 이때 명상에 대한 확신이 없어져버려 대다수가 쉽게 포기하고 만다.

명상의 원리와 과정에 대한 이해는 우리의 마음 작용과 성질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밑받침되어야 한다. 그래서 더욱 어렵게 여겨지고, 다른 차원의 어떤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상식적으로 인정하는 몇 가지 사실과 나중에 명상의 고수가 되어 직접 체험하며 알게 될 몇 가지 사실을 바탕으로 우리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 상태에서 어떤 변화를 얻어 평온과 만족, 더 나아가 깊은 통찰을 통해 정신적인 속박에서 벗어나게 되는지를 알고 명상하게 되면 더욱 정확하게 명상의 기법을 터득하고 활용할 수 있다.

단지 방법과 결과만 알고 하는 것과 원리, 과정, 효과를 두루 알고 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명상은 명상할 때만 효과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 효과가 명상을 하지 않는 상태에서도 지속되고, 혹은 평상시 지속적으로 명상할 수 있어서 그 효과를 계속 체험하게 되는 명상법이 바람직한 명상법이라 하였다. 생활 속에 항상 명상이 필요한 이유는 나를 힘들게 하는 마음 작용이나 상황에 너무 쉽게 우리의 감정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명상을 통해 좋은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한다 하더라도 괴롭거나 거친 마음 작용 한번에 그 이전의 좋았던 감정들이나 마음 상태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아무리 나를 기쁘고 즐겁게 해주는 일들이 수 없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한 번의 짜증나고 괴로운 일이 터져버리면 모두 소용없어져 버린다. ‘이제까지 많은 좋은 일들이 있었으니까 한 번의 나쁜 일은 상관없어’라고 생각하고 넘어간다면야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보통의 우리는 그렇지 않고 당장 눈앞에 나를 힘들게 한 그것에 오랫동안 마음이 짓눌리게 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기분 좋거나 만족스러운 일들이 많이 생기기를 바라며, 또 그렇게 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고 산다. 즐거운 일들이 많이 생길수록 그 만큼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 여긴다. 그러나 냉철히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고 관찰해 보면, 꼭 좋은 일이 많이 있어서 행복한 것은 아닌 듯하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수 백 번의 좋았던 일들이 한 번의 나쁜 경험에 무너져 내리기 때문에, 항상 좋은 일들만 있기를 바라는 대신에 한 번이라도 힘들게 하는 일들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행복 방법론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명상은 항상 지속되어야 하며, 그러면서 우리를 힘들게 하는 마음 작용을 줄이고 외부로부터 발생하는 어려운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때 그 의의를 갖게 되는 것이다.

명상을 통해 내 마음을 힘들지 않고 만족스럽게 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집중력을 아주 강하게 키워 마음을 힘들게 하는 정신작용이 일어날 때 의도적으로 내가 원하는 마음 상태를 만들어서 괴로운 상태로부터 일시적으로 벗어나는 것이다.

마음은 한 순간 하나의 작용만 할 수 있기 때문에 나를 힘들게 하는 마음이 일어나 작용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영구적이라 할 수 없고, 일시적으로 의도된 마음이 작용할 때만 효과가 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요소는 그 에너지가 소멸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회나 자리가 생기는 즉시 다시 마음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두 번째 방법은 깊은 통찰을 통해 나를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나를 힘들게 하는 요소의 작용을 해소시키는 방법이다. 몇 년 전 진주에 있는 모 공군부대에서 군종 장교로 근무할 때 일이다. 잠시 부대 밖에 있는 암자에 거처를 마련해 놓고 출퇴근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암자는 걸어서 30분 정도 등산을 해야 되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가끔 낮에 산길을 다니다 보면 살모사나 까치살모사 같은 크고 독이 강한 뱀들을 보게 된다. 느릿느릿 지나가는 놈들도 있고, 똬리를 틀고 꼼짝도 안하는 놈들도 있고, 화들짝 놀라 잽싸게 도망가는 놈들도 있다. 낮에는 피해 가거나 아니면 돌을 던져 뱀을 쫓은 뒤 길을 지나간다. 문제는 가끔 밤에 산길을 오를 때 뱀을 만나는 경우이다.

보통은 희미한 달빛이 있어 손전등 없이 나무 작대기만 들고 산길을 오르는데, 가다가 기다란 검은 형체를 보면 정신이 바짝 긴장되게 된다. 모르고 밟았다가는 큰일이 생길 수 있기에 아주 조심스럽게 주의를 기울여 가며 길을 가게 된다. 기다란 검은 형체를 보면 당연히 뱀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일단은 작대기로 땅을 소리 내어 치게 된다. 땅에 울리는 소리를 듣고 어서 도망가라는 표시이다.

그런데도 간혹 아무 반응이 없을 때가 있다. 낮에도 그런 경우를 만난 적이 있는데, 뱀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지 멀리서 돌을 던져도 아주 느릿한 속도로 느긋하게 움직인다. 밤에 작대기로 땅을 쳐도 아무 반응이 없으면 할 수 없이 작대기로 직접 건드려 본다. 벌떡 달려들지나 않을까 두렵기도 하지만 길을 가려면 별 도리가 없기에 툭툭 건드려 본다.

건드려 봐서 별 특이한 느낌이 들지 않으면 자세히 확인해 보는데, 결국 길에 버려진 끈 조각이나 호스 동강이일 뿐이다. 뱀이 아니라는 생각에 순식간에 안심을 하게 된다. 이 경우 내가 뱀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기 전까지 나의 마음은 긴장과 우려로 가득 차 있게 된다. 아무리 ‘저것은 분명 뱀이 아닐 거야’라고 속으로 수 백 번 되뇐들 무거운 마음 상태는 사라지지 않는다. 뱀이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된 후에는 순식간에 마음속의 어둠이 가시게 된다.

이와 같은 경우는 훈련을 통해 두려움이 제거된 것은 아니다. 정확히 보고 알았기 때문에 두려운 요소가 제거된 것이다.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평소 우리의 마음은 무수히 많은 형태의 갈망, 공포, 불안 등이 의식의 밑바닥에서 작용하고 있으며, 이것들을 해소하기 위해 안팎으로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든가, 누군가를 찾아 마음속의 부정적 감정을 무시하려 든다. 훈련과 고행을 통해 일시적으로 제압해보기도 하고, 믿음이라는 정신적 방패로 잠시 위안을 삼아 보기도 한다.

그리고 외부에 마음을 끄는 대상이 있어서, 아니면 내부의 즐겁거나 쾌락적인 감정이 생겨 불안과 불만족의 상태를 잊게 되면 마치 그런 것들이 사라진 양 착각하고 살게 된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가장 편안한 상태는 아무 것도 안하고 하루 종일 누워 있거나 자는 것일 수 있다. 만약 누군가에게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집에서 누워 쉬기만 하라고 하면 그 사람은 며칠도 못가 살려 달라고 아우성일 것이다. 객관적으로 가장 편안한 상태임이 분명하지만, 마음은 그 어떤 것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려 하기 때문에 잠시도 가만있을 수가 없다.

무언가 보고, 듣고, 말하고, 만지고 싶은 충동이 나를 그냥 나두지 않는다. 누구나 이러한 원초적인 불만족과 불안을 다 가지고 있으며, 그것들을 해소시켜 나가는 일련의 과정이 인류 역사이고 현재의 사회 모습이기도 하다. 도덕과 철학, 법률, 경제, 군사 등 그 어느 것 하나 연관되지 않은 것은 없으며, 불만족과 불안이 자극과 욕구가 되어 소위 기술 문명이라는 것에 변화가 생기게 된다.

우리가 가진 불만족과 불안의 요소는 사회적으로 건전하게 해소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심한 경우 자신과 타인의 목숨까지도 앗아가는 근본 원인이 되기도 한다. 병으로 치면 너무나 심각한 불치의 병이지만, 제대로 약발이 듣는 처방이 그리 흔치는 않다.

그러나 앞에 이야기한 것처럼 불만족과 불안의 모습을 제대로 보고, 무엇이 원인이 되어 어떤 과정으로 그것들이 야기되는지 올바로 이해한다면, 나의 육신과 정신을 괴롭히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제거할 수 있다. 제대로 모르고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억지로 무시하려 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불만족과 불안을 보고 이해하려면 그것들을 제대로 보는 기능이 먼저 계발되어야 한다. 본다고 표현했지만, 그것은 내면의 나를 의식하는 기능을 써서 있는 그대로 아는 것이며, 점점 깊고 세밀하게 느끼고 파악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저 나를 의식하는 기능, 자각하는 기능, 스스로를 느끼는 기능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해왔기 때문에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겨져 왔지만, 이 기능이 계발되고 훈련되고 강화된다면 나의 근본 무명, 근본 괴로움의 요소를 해결해주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괴로움의 원인은 이해를 통해 제거
앞에서 명상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며 나를 올바로 보고 이해함으로 해서 나를 괴롭게 하는 요소를 해소시켜 나간다고 하였다. 괴롭지 않고 평온한 상태를 항상 즐길 수 있게 되면 그 순간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 하게 된다. 자신을 의식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결국은 만족이라는 마음의 상태로 귀결되게 된다. 만족은 역사를 통틀어 모든 현인들이 역설해왔던 주제며 행복과 건강의 필수 요소이다.

우리가 평소 생각하는 만족은 원하는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얻어지는 상태로 알고 있다. 배가 고플 때 주린 배를 채워 포만감을 느껴야 만족이 되는 것이고 필요한 돈이 생겨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등 해보고 싶은 것 다 해볼 수 있을 때 만족을 느낀다고 한다. 또한 돈 뿐만 아니라 얻고 싶은 지위나 명예, 지식, 사랑, 건강 등을 가졌을 때 만족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우리가 생각하는 만족은 만족 그 자체로 그냥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일단 내가 원하는 것이나 조건을 얻었을 때, 그것으로부터 생겨나는 일시적인 감정상태이다. 만족 자체로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조건에 의해 수반되는 제한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간혹 오해하는 것은 만족이라는 부분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어떤 물질적, 외형적 조건이 만족 그 자체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즉 가지기를 원하는 돈이나 명예, 지식, 사랑, 건강이라는 것 등이 삶의 만족과 행복을 대표하는 것으로 잘못알고 있기에 오직 그 조건과 상태만을 추구하고 살게 되고 만족은 그 조건이 충족되면 당연히 따라오는 어떤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따로 만족이라는 감정상태를 만들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만족을 조건에서만 찾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종교와 철학에서, 혹은 인생의 참맛을 맛본 사람들은 어서 만족해 하는 법을 배워 만족하며 살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충고하고 있다.
만족을 빼고는 절대적으로 행복과 충만, 기쁨을 이야기 할 수 없다. 만족감 그 자체가 달리 표현하면 행복일 수 있고 즐거움 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만족감은 꼭 그것을 생기게 하는 조건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많은 좋은 조건을 가졌다 하더라도 만족을 못 느끼는 사람들이 허다하고 설사 만족의 조건을 이루었다 해도 또다시 또 다른 만족의 대상을 찾아 분주히 노력하며 산다. 하지만 거창한 만족의 조건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 중에서도 얼마든지 만족을 체험하고 그 즐거움을 만끽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몇 년 전 한국에 외환 위기가 찾아와 많은 국민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었다. 이 때 많은 실직자와 노숙자가 생겨났는데 그와 더불어 여려 봉사단체에서 그들을 위한 봉사 프로그램을 실행했었고 지금까지도 이어오고 있다.

몇 몇 성직자들은 아예 노숙자가 되어 노숙자들과 같이 어울려 그들의 동반자가 되어주고 진실되게 이해해주려 노력하였으며 빨리 재활 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실천운동을 피시기도 하였다. 필자 또한 많은 시간은 아니지만 3일 동안 진정 노숙자들의 삶과 심정이 어떠한 지를 체험해 보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 아무도 모르게 헌옷으로 갈아 입고 씻지 않은 체 수염을 기르고 모자 푹 덮어 쓰고 노숙자들의 대열에 합류해 본 경험이 있다.

용산역 근처나 영등표 역 등에서 하루 밥한끼 얻어 먹고 낮에는 공원 벤치에서 잠시 잠을 청하고 밤에는 이리 저리 걸어다녔다. 초겨울 날씨라 제법 쌀쌀했지만 긴 시간이 아니어서 그럭저럭 버틸 만 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불쌍하고 처량해 보였지만 그때 3일 동안의 심정은 솔직히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체험이었다.

불가피한 사정에 의해 어찌할 도리 없이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상태로 노숙자가 된 것이 아니라 내 의지로 잠시 동안 수련삼아 했던것이라 그런지 마음은 오히려 자유스럽고 편안함을 느꼈었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그 누구 알아보는 사람 없이, 어디에 구속되지 않고 하루 밥 한끼 얻어 먹고 밤새 걸으며 명상하고 낮에는 따뜻한 곳을 찾아 단잠을 잤을 때, 다른 노숙자분들에게는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너무나도 평온한 순간순간을 체험할 수 있었다.

아마 그때 아는 사람이 나의 모습을 보았다면 분명 혀를 끌끌차며 어쩌다 이지경이 되었냐고 엄청 나를 불쌓히 여겼을 것이다. 누가봐도 보여지는 나의 모습은 영락없이 가장 비참한 모습을 하고 있고 가장 불행한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면의 나의 마음은 너무나도 만족스럽고 삶에 대한 더욱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아무런 외적 조건 없이 있는 그대로 만족한 상태였다.

짧은 시간의 체험이었지만 결국 만족은 반드시 어떤 조건에서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며 만족의 상태에 오랫동안 있을 수 있거나 아니면 항상 만족한 상태의 마음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해 지는 실질적 방법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외적 조건에 상관없이 만족이라는 상태를 이끌어 내려면 우리 내부에서 우리를 힘들게 하는 불만족과 불안의 요소가 먼저 제거되어야 한다. 불만족과 불안의 요소는 일시적으로 작용을 막고 다른 대상에 몰두하는 방법과 그 작용의 실제 모습과 원인을 보고 이해해서 근본적으로 해소시키는 방법이 있다고 하였다.

초의차명상에서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의식하는 마음의 기능을 계발하고 키워 나의 내면 깊숙이 또 정확히 보는 통찰의 수준으로 발전시키며 그 통찰력을 극대화시켜 정신적인 물질적인 여러 현상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하며 보고 알게 된 지견을 통해 나를 힘들게 하는 요소를 해소시켜 나가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통찰력의 기본단계인 나를 의식하는 기능을 보다 효과적으로 계발하고 각성시키기 위해 차를 마시며 명상하는 기법을 사용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차마시며 명상의 기법을 빨리 터득하고 집중력과 힘을 길러가지만 더 확실한 효과와 진보를 위해서는 일상에서 반드시 명상이 수반되어져야 한다. 그래서 보다 더 빠르게 현실적으로 명상이 진행되며 일상의 생활도 점차 그 의미를 가지게 된다.

왜 차명상이 중요한가?
차마시며 명상을 하게 되면 보다 더 효과적으로 명상의 기법을 터득한다고 하였는데 이 부분을 좀더 자세히 알아보겠다.

나를 의식하는 기능을 계발하고 강화시켜 통찰의 수준으로 변화시키고 그 통찰력으로 나의 존재하는 모습 그대로를 파악하고 알아야 하는데 그냥 나를 알기만 한다고 나의 모습이 파악되는 것은 아니다. 자연스럽게 또한 진지하게 나를 의식하는 기능을 한 차원 다르게 키워나가야 하며 기능이 강화됨에 따라 의식되는 대상이나 느낌이 또 다른 차원으로 받아들여 진다.

처음 나를 의식하게 되면 표면적이고 형태를 기반으로 한 대상을 알게 된다. 즉 몸의 자세나 형태, 움직임, 일반적인 느낌, 감정, 생각 등을 알게 된다. 앉아 있을 때는 앉아 있는 모습, 들어오고 나가는 호흡, 코끝이나 가슴, 배에서 느껴지는 압박감, 다리의 절림, 허리의 통증, 지루함, 졸림, 혹은 걸을 때 양 발의 움직임, 걷는 행위, 발 바닥에 생기는 느낌 등이다. 그러면서 나를 의식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그 힘이 강화되면 이런 외형적이거나 익숙한 느낌들을 의식하는 것에서 전체적인 내적 느낌, 또는 있는 그대로의 순간의 느낌, 상태 등을 의식하게 된다.

이러한 느낌들은 느낌 그 자체를 느끼기 때문에 어떤 형태를 생각하지 않는다. 비유를 들자면 컴퓨터 화면으로 영화를 보다가 전체화면 모드로 전환시키면 화면이 꽉 차면서 주위에 있는 기능 설명이 사라진다. 영화 화면 그 자체만 보이듯이 의식의 강도가 세어지면 어떤 형태를 이루며 느낌이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느낌 그 자체만 의식되게 된다.
이때 의식되는 느낌이나 이미지는 평소 우리의 인식 범위를 넘어서 있기에 딱히 뭐라고 이름을 붙일 수가 없다. 분명 의식은 되는데 상황 그 자체이므로 오직 상황, 느낌 뿐 이라고 만 말할 수 있다. 앉아 있을 때는 앉아 있는 느낌, 움직일 때는 움직이는 느낌, 호흡을 의식할 때는 호흡의 느낌 뿐 이다. 겉 형상이 결부된 느낌에서 형상이 배제된 느낌이라 보면 된다. 또한 느낌 그 자체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름 붙여 알 수 있는 느낌이 아니라 그냥 전체적인 느낌 그 자체이다.

졸리거나 피곤할 때 졸린 느낌이나 피곤함을 있는 그대로 힘을 빼고 의식하면 그 느낌에 푹 빠지게 된다. 이 때 졸리거나 피곤함의 느낌은 그나마 우리에게 익숙한 느낌이기에 느낌 그 자체를 느껴도 알 수 있는 느낌들이다. 그러나 앉아 있는 느낌, 움직이는 느낌, 어떤 감정 상태의 느낌 그 자체는 뭐라 이름 붙일 수 없다. 앉아 있을 때 엉덩이 등에서 발생하는 느낌, 움직일 때 근육이나 피부에서 느껴지는 느낌은 일차적인 느낌이며 이 정도의 느낌 등은 누구나 연습 없이 의식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앉아 있을 때 내부의 전반적 느낌, 움직일 때 내부의 전반적 느낌 등은 그 속성이 같으며 겉으로 보여지는 어떤 모습과 움직임에 상관없이 내부적으로는 같은 느낌으로 의식된다. 이러한 단계로 자신을 의식하려면 평소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의식하는 것과 같은 의식수준으로는 알기 어려우며 좀더 체계적인 의식 능력, 혹은 자각 능력의 강화가 필요한 것이다.

이 단계는 정확히 수행하는 방법을 이해하고 진지하게 실습과 연습을 하면 몇 달 안에 다다르게 된다. 또한 이때부터 명상이 실질적으로 이루어 진다고 볼 수 있다. 그 전까지는 기초적인 힘과 기능을 키우는 단계이다.

의식 능력이 강화되어 자세나 상황에 상관없이 내부의 전반적인 느낌을 있는 그대로, 오로지 느낌 그 자체 만 을 알 수 있게 되면 그 다음으로 그 느낌들을 더 강하게 오랫동안 의식하게 된다. 그러면 또 다른 모습으로 그 느낌들이 변하게 된다. 사실 느낌들이 변한 것은 아니고 그 느낌들을 보거나 아는 의식이 좀더 날카로워지고 강해져서 더 정확히 보게 되는 것이다.
이때는 의식되어지는 느낌들이 무수히 빠른 속도로 흘러가고 있는 듯이 의식된다. 점점 나를 의식하는 또는 통찰하는 기능이 강해지면 질 수록 의식되어지는 느낌들의 성질과 모습은 변해가며 보다 실제적으로 접근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나의 존재하는 모습을 점점 정확히 파악하게 되고 올바른 견해를 갖게 된다. 올바른 견해를 갖는 순간부터 나를 힘들게 했던 불만족과 불안의 요소가 또한 현저히 줄게 된다.

전체적인 명상의 과정을 살펴볼 때 나를 의식하는 기능을 가능한 한 빨리 통찰의 수준으로 전환시켜주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빨리 의식 기능, 자각 기능을 통찰의 수준으로 전환하려면 그 상태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효과적인 방법이 있어야 한다.

보통 명상센터에서는 하루 종일 앉기와 걷기 명상을 하면서 서서히 명상에 필요한 기능을 강화시킨다. 기본적으로 호흡, 자세, 몸, 발 등에 의식을 기울여 아는 마음을 키워나가는데 정확한 이해가 없어 분명 의식의 힘은 커졌는데 겉 모양과 기본 느낌만을 계속해서 의식하거나 아니면 효과적으로 집중과 힘이 계발이 안되어 한 차원 깊은 단계의 느낌을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좋은 스승을 만나 정확히 지도 받고 또한 꾸준히 진지하게 수행하면 별 문제 없이 통찰의 단계로 나아간다.

차를 마시며 명상하게 되면 더욱 진지하게 통찰의 느낌으로 명상을 수행할 수 있어 통찰력 계발에 유리하다. 통찰과 나를 의식하는 것과는 그 깊이에서 차이가 있다. 통찰은 단순히 의식하는 차원에서 발전되어 더 강하면서 내부적인 느낌에 비중을 두며 의식하는 차원이다. 그래서 차를 마시며 혹은 찻 잔을 들고, 차를 마시기 전후에 전반적인 나를 의식하게 되면 통찰의 수준 가깝게 나를 의식할 수 있다. 이때 마음을 기울여 의식해야 될 대상과 기법은 좀더 구체적 설명이 필요한데 요점은 차를 마시며 처음부터 통찰에 가까운 기법으로 나를 의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확실히 차를 마시며 행위와 자세, 상태를 의식하게 되면 더욱 진지하게 맑게 의식이 된다. 오랜 시간 앉아 있는 다고 명상의 진전이 생기는 것은 아니며, 짧은 시간이라도 아주 진지하게 명확하게 수행하게 되면 그만큼 꼭 진전은 생긴다. 차의 각성 기능으로 인해 신체적으로 맑아지고 예민해 지는 부수적 효과도 있으며 우리의 오감을 활발히 깨워 명상하기 때문에 집중과 힘이 자연스럽게 더 강화된다. 물론 졸음과 망상은 현저히 줄게 되며 수행의 큰 장애로 여기지 않을 정도다.

가장 확실히 명상의 기법을 터득하게 하는 것 중에 하나는 차맛을 느낄 때의 감각으로 우리 몸이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느껴나가는 것이다. 차맛을 느끼며 어떤 맛일까 분별하며 마신다면 일차적인 느낌을 의식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 아무 판단과 감정 개입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 통찰의 수준으로 맛을 의식하게 되는데 몸의 느낌을 느낄 때도 이러한 감각으로 의식하면 된다.

우리의 몸에 이상이 생겨 병원에 가면 X-ray 검사부터 시작하여 여러 측정 장비로 우리의 내부를 검사한다. 가장 기초적인 검사는 육안으로 몸의 표면에 나타난 증상이나 환자기 느끼는 통증을 분석하는 것이다. 그 다음 내부를 볼 수 있는 장비를 사용하게 되는데 빛이나 초음파가 우리 몸을 투과하여 나름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자료를 바탕으로 몸의 이상 유무를 판독하게 되는데 명상에 비유하자면 육안 검사는 가장 기본적으로 우리 자신을 의식하는 것과 같고 검사 장비로 몸 내부를 꿰뚫어 보는 것은 통찰의 단계로 나를 의식하는 것과 같다.

통찰의 단계도 명상의 진척여하에 따라 여러 수준으로 더 나뉘어 지는데 점점 정밀하고 강해진다. 검사 결과 자료를 판독하여 병의 유무 및 이름을 알 수 있듯이 나를 통찰하는 기능을 통해 나의 존재하는 모습과 불안 및 불만족의 상태가 지속적으로 발생되고 있는 모습을 파악하게 된다.

나의 존재하는 모습은 끝없이 빠르게 진행되는 정신, 물질 현상과 그 것을 의식하고 있는 것으로 좁혀지며 결국 의식과 그 대상으로 파악된다. 의식은 대상을 알고 있는, 의식하고 있는 작용의 연속이며 대상과 같이 존재한다. 즉 대상을 아는 의식이며 이것을 정신, 혹은 마음이라 여긴다. 이 부분은 뒤편에서 다시 자세히 알아볼 것이다.

어떤 급진적인 체험이 없다 하더라도 통찰을 통해 빠르게 흐르고 있는 정신, 물질 현상으로 나를 보게 되면 나에 대한 인식이 차츰 변화되기 시작하며 이러한 변화는 삶의 괴로움과 공허함을 야기하는 불만족 및 불안의 에너지를 약화시킨다.

결론적으로 차를 마시며 명상하게 되면 통찰의 기법을 빨리 터득하게 되며 실질적 명상의 효과를 바로 체험 할 수 있기에 초의차명상에서는 차를 활용한 명상법을 수행하는 것이다. 꼭 차만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며 자신의 취향에 따라 음악과 운동, 기타 사회적 행위나 예술 활동, 종교 활동 등을 활용하여 명상의 실질적 기법을 터득할 수 있으며 만약 명상의 실질적 기법을 터득하였다면 일상 생활 속에서도 그 기법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네 가지 명상의 대상

이제까지 우리는 차명상이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지 어떤 과정과 방법을 거치는지에 대해 살펴보았고 참 행복의 실현을 위해 나를 의식하는 기능과 통찰이 핵심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또한 이런 기능들은 차 마시면서 더욱 효과적으로 계발하고 강화시킬 수 있으며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아주 적합한 명상 도구임도 알아보았다. 지금부터는 좀더 구체적으로 의식능력, 자각능력을 어떻게 키우고 관리해 나갈 것인가를 알아볼 것이다.

나를 의식하는 기능 혹은 자각능력은 스스로 자기가 무얼 하고 무얼 느끼고 생각하는 지를 알아차리는 정신적인 기능이라고 하였다. 볼 때는 보는 줄 알고 걸을 때는 걷는 줄 알고 차 마실 때는 차 마시는 줄 아는 기능이다. 스스로 그냥 자신을 의식하면 되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자! 눈을 지그시 감고 지금 있는 그대로를 느끼고 알아차려 보라. 처음 얼마 동안은 자신을 의식하는 것이 잘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막상 계속해서 나를 의식 하려고 하면 미꾸라지 빠져 나가 듯 나를 의식하는 마음은 금새 사라지고 이어지는 생각과 감정적인 반응이 자신의 마음 공간을 채울 것이다. 다시 용기와 힘을 내어 시도해 보지만 될 듯 안 되고, 마음이 왜 이리 복잡한지 스스로를 한탄하기까지 이르게 된다. 평소 명상을 하지 않을 때는 자신의 마음이 그리 복잡하고 빠른 생각들이 지나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명상을 시작하여 자신의 내면을 스쳐서라도 보려고 하면 계속 튀어 오르는 생각과 감정적 반응들이 자신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람과 실망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내 마음이 이렇구나 하고 알기만 하여도 명상의 첫 효과는 거둔 것이다.

나를 의식하고 통찰하는 명상의 목적은 나를 아는 힘을 키워 올바로 나를 알아가는 것이고 더욱더 강하고 세밀한 자각능력의 힘으로 철저히 나의 본질을 보고 알아 잘못된 생각에서 벗어나 나를 괴롭히는 생각과 행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어둑해진 무력 숲 속 길 한 가운데에 뱀처럼 보이는 기다란 무엇가가 늘어져 있다고 생각해 보자. 멀리서 그 것을 보고 순간 당황하고 무서워 할 것이다. 길을 지나가야 하는데 무언가 길게 늘어져 있으니 괜히 지나다가 물리지나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생겨 걸음을 주춤하게 된다. 두려운 마음에 조금씩 다가가 가만히 살펴보니 누군가 길에 버린 짧은 수도 호스 토막이었다. 그것을 확인한 순간부터 마음은 금새 두려움에서 안도감으로 바뀐다. 모를 때는 공포심이었지만 아는 순간 공포심에서 벗어나 안도의 마음이 확 생겨버린 것이다.

또 식당에서 음식을 맛있게 먹고 도대체 어떻게 요리를 하였기에 이렇게 맛이 있나 하고 주방에 들어갔다가 주방의 불결함에 소스라치게 놀란 경우를 생각해 보자. 먹을 때는 맛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지만 불결한 곳에서 만들었다는 사실을 안 순간 마음은 바뀌어져서 혐오감이 마음을 지배하게 된다. 억지로 그런 마음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모르는 사실을 알았다는 그 자체로 마음은 변화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명상을 통하여 모르던 나의 본질과 세상의 본질을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생각은 변화되기 마련이다. 억지로 훈련시켜 바꿀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통찰 및 자각능력 키우기 명상은 어떤 대상에 마음을 오래 집중하거나 한 생각을 오랫동안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그냥 아는 것에 비중을 두며 아는 마음이 습관화되면 자연스럽게 힘도 커지고 시간도 늘어나게 된다. 점점 아는 범위와 깊이가 커지게 된다. 그러므로 잡생각이 많이 난다고 실망할 것이 아니라 그런 잡생각을 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므로 생각에 매몰되어 휩쓸려 가지 말고 그저 구경꾼처럼 지나가는 생각들을 바라보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냥 바라보는 것도 테크닉이 필요하고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아무리 싸움을 잘 해도 전략을 세우고 싸움에 임하듯이 나를 의식하는 명상에서도 어떻게 해야 효과적으로 자각능력을 키우고 오래 유지시킬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알고 한다면 더 빨리 수행의 진보를 이룰 것이다.

효과적으로 나를 의식하는 기능을 키우기 위해서는 무작정 아무거나 있는 그대로 의식 하기보다는 알아차리기 쉬운 특정한 대상을 정해 놓고 그것부터 차근차근 의식하는 것이 더 좋다. 대상이 수시로 바뀌면 제대로 알고 있는지도 모르고 금방 지쳐버리게 된다. 그러나 어떤 기준이 되는 대상이 있으면 자신이 어느 만큼 알고 있는지 가늠하기도 쉽고 하나 만 생각하면 되니까 한결 수월해진다.

나를 의식할 때 의식의 대상으로 크게 네 범주로 나 눌 수 있다. 첫째가 몸의 형태나 움직임 등이다. 앉아 있는 모습이나 서 있는 모습, 움직이는 전체적인 형태 등을 주의를 기울여 아는 것이다. 또한 더 세부적으로 머리카락, 눈, 귀, 남자, 여자, 손, 발, 내장, 피, 침, 대소변 등의 모습을 아는 것이다. 모습 뿐 만 아니라 몸과 관련된 동작이나 움직임 등도 의식의 대상이다. 호흡할 때 배나 가슴이 움직이는 모습, 차 마실 때 손의 움직임, 걷는 행위, 손, 발, 입 등 신체 움직임의 전부 다이다.

두 번째 대상으로 느낌과 감정을 자각 한다. 차를 마시며 나 자신을 가만히 느껴보다 보면 우리 몸에서는 항상 어떤 느낌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느낌의 범주로는 좋은 느낌, 좋지 않은 느낌,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느낌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몸에서 생기는 덥고 춥고 고통스럽고 간지러운 느낌 등과 차의 맛과 향, 색깔에 대한 느낌 등이 있다. 정신적으로도 항상 어떤 감정 상태에 놓여 있는데 이것도 좋은 감정 상태, 좋지 않은 감정 상태, 이것도 저것도 아닌 감정 상태가 있다. 예를 들자면 기쁨, 슬픔, 웃음, 분노, 만족감, 불안, 들뜸 등이다.

세 번째 의식의 대상으로는 마음 또는 의식 작용이다. 무언가를 볼 때 또는 차를 마실 때‘내’가 보는 것이며 ‘내’가 차를 마시는 것이다. ‘내’가 어떤 것을 볼 때 본다고 아는 것, ‘내’가 화를 내고 있다고 아는 것 등이 ‘내 마음 또는 의식 작용’을 아는 것이다. 이 부분은 많이 혼동하거나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화를 낼 때 화 그 자체는 감정이다. 감정이기 때문에 만약 화가 나서 부글거리는 마음의 상태를 알고 있으면 두 번째 느낌과 감정의 부류에 속한다. 하지만 지금 ‘내가 화를 내고 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다’,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한다’를 알고 있으면 이 것은 ‘마음과 의식 작용’을 아는 것이다. 행위 또는 생각의 의도나 주체에 초점을 두면 마음과 의식 작용을 아는 것이다.

명상을 하면서 자신이 망상을 피우거나 상상하고 분석하는 마음을 가질 수도 있는데 이때 자신의 이러한 상태를 알면 마음 및 의식 작용의 범주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망상을 일으켰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기준 되는 의식의 대상으로 바로 바꾸지 말고 망상하는 것 자체 또한 자각의 대상이기 때문에 그냥 망상하고 있음을 알고 있으면 된다. 그러면서 망상이 일어나지 않게 되면 다시 본인이 정한 기준이 되는 대상으로 돌아와 의식 하기를 계속 하면 된다.
넷 째 의식의 대상으로는 생각과 사유하는 것의 내용이다. 우리가 머리 속으로 어떤 생각을 떠올리면 그 생각의 내용이 또한 자각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내가 어떤 생각을 일으켰구나를 알고 있을 때 행위 하는 나의 의도에 초점을 두면 ‘마음과 의식 작용’을 자각하는 것이고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런 내용의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자각하면 이때는 ‘생각의 내용’을 자각하는 것이다. 앞에서 망상 피는 것을 예로 들었는데 망상의 내용은 생각의 대상 범주이고 망상하는 행위와 의도는 마음 및 의식 작용 범주이다.

어떤 것이던지 이것이 어느 범주에 속하는 것이라는 생각 없이 그 때 가장 강하고 뚜렷한 대상을 택해 의식 하면 된다. 대상을 네 가지로 나누는 이유는 어떤 것을 의식하여야 될지 처음에는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구별하는 것이지 실질적으로는 나와 관련된 모든 것이 다 의식되어야 할 대상이다.



내가 나를 의식할 때 의식되는 대상을 크게 4가지로 나누어 보았는데 이 네 가지는 결국 나를 깊이 알아 들어가는 문이라고 보면 된다. 어느 문을 통해서든 내 내부의 근본 느낌을 체험하게 해준다. 내 내부의 근본 느낌을 의식하거나 지속적으로 의식하게 되면 통찰의 단계가 시작되었다고 보면 된다.

처음 나를 의식하기 시작할 때는 4가지 의식의 대상들이 잠깐 동안, 그러면서 얕게 의식된다. 자주 나를 의식하는 것이 끊기게 되어 실망을 하거나 효과가 없다고 단정 짓는 경우도 생길 것이다. 큰 부담 갖지 말고 그저 일상의 생활을 자주 의식하도록 습관을 들이면 좋다. 가볍게 즐기듯이 하면 명상이 안 되었다고 해서 또 하나의 스트레스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면서 하루 중 일정 시간은 집중적으로 진지하게 나를 의식하는 기능을 키워주는 시간을 가지면 더욱 효과적이다. 차를 마시며 산책하며, 청소하며, 아니면 잠자기 전에 잠간의 시간을 내어 명상하게 되면 일단은 훈련의 효과는 있다.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어느 일정 시간이 흐르게 되면 자연스럽게 자신을 의식하는 기능이 달라질 것이다. 이 기능은 육체적 훈련과 같아서 매일 조금씩 연습하게 되면 분명히 변화가 찾아오며 그 변화는 특별한 체험이 아니라 나를 의식하는 기회나 시간이 더 많아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녁에 조깅을 할 때 처음에는 500미터도 한 번에 달리지 못한다. 하지만 날마다 조금씩 조금씩 늘려나가면 한 달 사이에 1000미터 이상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다. 한 달 연습했다고 갑자기 마라톤 선수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신체적 기능의 변화는 있었다. 나를 의식하는 명상도 마찬가지로 그 힘과 지속 시간이 조금씩 변화되며 이러한 변화가 쌓여 어느 순간 통찰의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화두와 차명상>
차명상은 나를 의식하는 기능을 보다 효과적으로 통찰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좋은 수단이 된다고 하였다. 명상법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양한 수단과 도구를 활용할 수 있는데 한국의 스님들이 주요하게 그러면서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수행의 도구가 바로 화두를 이용한 수행법이다.

화두는 선 수행자가 수행의 대상으로 삼는 것으로 우리의 근본 물음, 근본 의문을 대체하는 것이다. 화두의 도움을 빌어 강하게 의식을 집중할 뿐 만 아니라 오직 화두라는 의문에 온 의식을 집중하여 판단과 생각 작용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언어와 형상을 뛰어넘는 실제 성품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화두를 들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큰 의심과 분발심이다. 의심과 분발심은 집중과 정신력의 역할을 대신하여 자연스럽게 생각을 하나로 몰아주며 지속되게 해준다. 화두선 수행시 좋은 스승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의심과 분발심을 갖게 해주는 화두를 받아야 한다. 들어도 별 감응이 없는 화두는 억지로 의심과 분발심을 일으켜야 되기 때문에 수행하기도 힘들지만 오래 지속하지 못하고 포기하게 된다. 물론 망념과 졸음 등의 장애도 쉽게 찾아오며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다.

화두라는 것에 초점을 두면 집중력 중심 명상이 되겠지만 화두를 통해 아주 강하고 열렬한 의문과 의욕이 생겨나 그 힘으로 매 순간의 나 자신을 꿰뚫어 보는 수행을 한다면 통찰 및 지혜 명상이 된다. 이때 화두는 의문과 분발심의 불꽃을 만들어 내는 부싯돌 역할을 한다. 또한 강한 의문과 분발심은 통찰 수행에 있어서도 바람과 기름의 역할을 담당해 자신을 알아가려는 열정의 불을 더욱 강하게 한다.

차명상에서는 화두의 역할을 차가 한다. 차를 가지고 의심과 분발심을 일으키라는 것은 아니다. 의심과 분발심이 있어야 더욱 효과적으로 집중적으로 수행을 지속시켜 나갈 수 있듯이 차와 차마시기가 가진 기능적인, 정서적인 요소를 활용하여 수행을 보다 효과적으로 용이하게 하자는 것이다.

의심과 분발심은 끊임 없는 동기 부여 역할과 깊은 집중력을 만들어 내는데, 차 마실 때의 진지함, 차분함, 내적 예민함 등은 기본적으로 명상 분위기를 쉽게 만들어 주며 통찰의 기법을 이해하고 활용할 때의 느낌을 쉽게 터득하게 해준다.

여기서는 명상의 기능적인 측면에서 화두와 차를 살펴보았고 꼭 화두나 차 뿐 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자신의 마음을 보다 효과적으로 집약시키고 내부적 느낌에 보다 충실하게 해주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그 방법을 써서 명상의 촉진제로 활용해 보라. 큰 이익이 있을 것이다.

마음은 순리를 따르고 자연스러울 때 집중이 잘되고 힘이 덜 들어간다. 가령 마음속에 불안이나 분노, 어떤 욕망이 강하게 떠올라 나를 힘들게 해서 그것들로부터 벗어나고자 다른 대상을 찾아 마음을 집중하거나 억지로 잊으려고 한다고 생각해 보자. 기도도 해보고 염불도 해보고 혹은 몸을 혹사 시켜 보기도 하며 더 강한 외부의 자극을 찾아 잠시나마 잊으려고 노력도 해본다.

마음속에 주요하고 강한 작용이 있는 상태에서 그것을 인위적으로 다른 작용으로 바꾸는 것이기에 물이나 바람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거스르는 것과 같아서 몇 배의 노력과 에너지가 요구된다. 그렇다고 제대로 효과를 보는 것도 아니며 너무나 힘들다.

이때 강하고 주요하게 작용하고 있는 마음의 작용을 거부하지 않고 명상에 이용하면 힘들이지 않고 아주 효과적으로 명상을 수행할 수 있다. 만약 불안이 강하게 작용하여 나를 힘들게 하는 경우 애써 불안을 없애려 하지 말고 불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의식하며 명상하면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고 불안을 의식하며 명상할 수 있다.

비록 의식의 대상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가진 에너지가 강하기 때문에 그 에너지를 역으로 이용하여 강하게 집중하는데 사용하는 것이다. 불안을 느끼며 ‘불안’이라고 마음 속으로 이름을 붙여가며 염불 아닌 염불을 하면 불안한 상태가 더욱 의식이 잘 되며 이를 통해 의식하는 기능은 저절로 강화된다. 불안 외에 어떤 욕망이 마음에 자리를 했다면 ‘욕망’, ‘욕망’ 하며 욕망의 상태를 의식하면서 마음속으로 이름 붙여 되뇌인다. 분노나 기타 감정도 마찬가지이다.

대상이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든, 힘들게 하는 것이든 나름대로 그것들이 가진 에너지를 거부하지 않으며 의식하는 기능을 강화시키면 일단 빠른 시간 안에 의식 능력이 강화되는 효과도 있고 벗어나고자 하는 감정의 상태가 빨리 해소되어 또 다른 명상의 효과를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나를 힘들었던 시간이 나를 긍정적으로 발전시켜 주는 시간으로 바꾸어 지기 때문에 세상을 보다 긍정적으로, 희망적으로 바라보며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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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6.17 14:24

    첫댓글 _()()()_

  • 09.06.17 18:11

    매 순간 순간 알아차림으로 생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10.03.10 19:53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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