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하는 만능 스포츠맨이다. 그는 축구, 테니스, 탁구, 야구 등 못하는 운동이 없어,
어려서부터 운동을 무척 좋아했다. 특히 축구를 좋아해 초등학교 시절부터 축구선수
였고, 육사의 축구주장이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시절, 육사생도 시절을 일관하여
백넘버1번 이었다. 육사생도시절, 그의 동기들이 그가 군인이 되지 않았다면 아마
축구선수가 되었을 것이라고 할 정도였다. 각하는 처음으로 육사에 축구부를 창설
하였고 4년 동안 주장을 맡았었다. 각하는 생도시절의 동료나 후배를 만날 때면 자주
“축구를 통해 얻은 경험이 육사를 졸업 한 뒤 장교로서 부대를 지휘하는데 이루
말할 수없는 큰 도움이 되었다“고 회상하곤 했다.
생도시절 그와 선수생활을 같이했던 韓정소씨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육사에
입교한 뒤 얼마 뒤인 1952년3월경 이었다. 당시 해사, 공사에는 이미 축구부가 편성
되어있었다. 하루는 전 생도가 축구부를 창설하자는 것이었다. 韓생도는 평양일고에서
축구를 하다가 입대했기 때문에 운동을 하고 싶었던 참이었다. 약 50명 가량이 모였다.
실력을 테스트 해 본 결과 공을 차본 생도는 몇 명이었다. 그러나 약체 팀에 개의치
않고 축구부가 구성 되었다. 이렇게 하여 육사 축구팀이 발족되었고, 이 팀이 최초의
육사 대표축구팀이었던 것이다. 이때 축구 선수들은 6.25동란 중이어서 먹을 것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축구화조차 없었다. 발목까지 오는 목군화를 신고 뛸 정도였다.
그러나 전생도의 축구에 대한열의와 집념은 대단했다. 초장기의 약체 팀을 대학
축구에서 명성을 떨치던 해사(海士), 고려대팀과 용호상박의 혈전을 벌일 수 있도록
키운 것은 全생도의 집념과 끈기, 지도력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주장인 그는 시합에 들어가기 직전에 갖는 스크림 때마다 선수들에게 “최선을 다하자”
게임이 끝난 뒤 후회해도 소용없다. 끝까지 뛰자“고 군인의 감투정신을 강조 했다.
4학년 때인 1955년 서울 운동장에서 열린 전국 대학 선수권 대회였다. 당시 쟁쟁한
국가대표 급 선수들로 구성된 고려대학 팀과 준결승에서 맞붙었다. 육사팀은 이때
고려대학 팀과는 워낙 실력차이가 커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 생도 특유의
정신력으로 버티었다. 무승부로 끌고 가자는 작전이었다. 모두가 최선을 다하여 뛰었다.
全생도가 고대공격진의 공을 수 없이 막아내는데 정신이 없는 그런 경기였다. 전후반
90분 경기에서 85분간을 그런 데로 잘 버티어 냈다. 그러나 마지막 5분을 남겨놓고
한골 차이로 결국1-0으로 지고 말았다. 그러나 다음날 신문에서는 (육사의 투혼)이라는
제목으로 사설을 쓸 만큼, 그날 육사팀은 최선을 다한 경기였다.
全생도가 주장으로 팀을 이끌면서 강조해온 감투 정신이 그대로 나타난 시합이었다.
이날 全주장은 시합이 끝난 뒤 선수들에게 “바로 오늘 같은 정신이 육사 축구팀의
정신이고 군인의 자세“라고 역설했다. 그는 병영 생활에서도 최선을 다했던 것처럼
축구에서도 모든힘을 다했다. 축구를 하느라 뺏긴 시간의 공부를 하는 데는 남보다
더한 노력이 필요로 했다. 남이 쉬는 시간에 운동으로 뒤진 과목을 공부하는데 심혈을
기울어야했다.
한때 세계최강을 자랑했던 스페인의 레얼 마드리드 팀의 명감독 민헤롬.뮤노스는 그의
저서 현대축구에서의 포지션의 기능과 특성에서 골키퍼의 특성은 1.항상 움직여라.
2.수비진과 타이밍을 맞추라. 3.포지션 플레이에 충실하라. 4.전군을 지휘하라-의
4가지로 요약했다.다시 말해서 기동성, 협동, 자기책무 완수, 지휘능력의 4가지를
골키퍼에게 요구되는 자질이라는 것이다. 각하가 항상 골키퍼의 포지션을 맡았던 것은
우연만이 아닌지 모른다.全생도는 경기 때마다 골문에서서 “백은 자리를 지켜라.”
“중간이 비었다“고 소리를 지르며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했다. 경기에 졌을 때는
반드시 페인을 분석해서 다음 경기에 대비했으며, 평소에도 개개선수들의 단점을
메모해 두었다가 고치도록 하는 한마디로 주장이었다. 그러나 시합이 끝난 뒤에는
자기에게 지급된 건빵을 나눠주고 또 도넛을 사서 후배들에게 주는 자상한 형이었다.
이같은 그의 지도력은 축구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는 게임에 졌을 때 동료를 탓하지 않고 골키퍼가 잘못해 골을 먹었다며 늘
자신의 책임을 내세웠다. 1955년도 육, 해, 공 3군 사관학교 체육대회에서 그의
축구팀은 해사와 맞붙었다. 해사에 한골 차로 지고 난 그날 주장 全생도는 선수 중
아무도 탓하지 않았다. 모든 책임은 주장이며 골키퍼인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는 밤중에 공을 막아내지 못한 그 골문 앞에 나가 울음을 터Em렀다. 축구부의
후배들은 아직도 그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 각하는 축구, 야구, 탁구, 테니스, 수영,
스케이트, 달리기 등 못하는 게 없는 만능 스포츠맨이다.
첫댓글 천마님~<자문위원님~> 오늘도 님의 글에서 각하의 더 멋진 모습을 품에 안고갑니다.... 뵐때까징 건강하셔요
위원님...잘 읽고가요....충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