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3명은 창이공항에서 체포될 때 헤로인 2.15㎏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부산에 연고가 있는 자영업자들로, 부동산업자 K(41)씨, 결혼알선업자 H(42)씨, 간판제작업자 G(40)씨다.
태국 등 동남아에서 체류하고 있는 L씨는 K씨에게 "동남아와 호주로 휴가를 오라. 심부름만 해주면 경비 걱정을 안 해도 된다"고 권유했다. 솔깃해진 K씨가 H씨에게 동행을 제안했다. H씨는 다시 G씨를 끌어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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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싱가포르 공항 근처에 있는 창이교도소. 이곳에 수감된 한국인 3명은 건강은 양호하지만 심한 정신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은 변호사 선임을 희망하지만 비용문제가 걸림돌이다. / 로이터
8월 28일 밤 9시쯤 싱가포르에 도착한 이들은 다음날 시내관광을 한 뒤 네팔인 5명에게서 신발을 건네받았다. L씨는 "신발에 마이크로칩을 넣었는데 회사 기밀이니 호주에 갖다주기만 하면 된다"고 K씨에게 말했다.
K씨 등 3명은 30일 호주로 가기 위해 오전 7시쯤 공항에 나타났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K씨 등 3명이 신고 있던 신발 밑창에는 헤로인 700g씩이 발견됐다. 네팔인 5명도 시내에서 체포됐다.
L씨는 싱가포르 당국의 수배를 받고 있다. 한국인들이 체포된 뒤 외교통상부는 싱가포르 주재 대사관을 통해 사태 파악에 나섰다. 현지 총영사와 윤상돈 영사는 사건 초 마약수사청을 찾아가 K씨 등 3명과 10여분 접촉했다.
11일에는 2차 면담을 했다. 윤 영사는 "한국인 3명은 조사를 받고 미결수들이 수용된 교도소 내 유치장으로 이첩됐다"며 "이들을 마약소지나 밀반출 혐의로 기소하려면 별도 기관에서 마약 성분 분석이 끝나야 한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건강과학청이 한국인 3명이 소지했던 게 마약임을 밝혀내면 기소된다. 한국 대사관은 마약 성분 조사에 보통 2~4개월이 걸리며 2심밖에 없는 싱가포르에서의 최종 판결은 9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K씨 등 3명은 변호사 선임을 원하고 있지만 한국의 가족들은 면회 비용 마련도 어려운 데다 개인당 1억원이 드는 변호사 비용 마련에 난색을 표한다고 한다. 이 경우 싱가포르 국선변호사를 선임하는 게 관례다.
싱가포르에는 한국인 3명과 같은 혐의를 받은 외국인 가운데 사형을 면한 경우가 거의 없다. 2007년 1월 나이지리아인 2명이 헤로인 727g을 밀반입한 혐의로, 2005년 12월에도 호주인 1명이 동일한 혐의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호주 정부와 NGO(비정부기구)들이 탄원했지만 싱가포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인구 440만명의 싱가포르는 1991년 이후 400명 이상이 교수형에 처해져 인구 대비 사형집행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1993년 이후 싱가포르에서 사형된 70% 이상이 마약사범이며 외국인이 상당수다. 싱가포르는 1970년대 강력한 마약단속법을 시행했다. 형법에는 헤로인 15g, 코카인 30g, 대마초 500g 이상 소지자는 사형이다.
싱가포르한인회 김무성 사무국장은 "싱가포르에서 한인들이 경찰에 조사를 받는 경우는 음주 운전 수준이었지 마약과 관련된 사건은 처음"이라고 했다.
한국인 마약 사건은 1일 싱가포르 스트레이트 타임스에 보도됐다. 외교통상부는 대안이 없다고 한다. 다만 1명씩 체포됐던 기존 사건과 달리 이번에는 한국인 3명, 네팔인 5명 등 8명이 연루돼 이들을 일괄 사형시키는 게 싱가포르에도 큰 부담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