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기운이 실제로 바뀐다는 동짓날입니다.
이렇게 기운이 바뀌는 날 사찰을 찾아
한해의 축복을 기원하며 부처님께 기도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올 한해도 ‘원화소복(遠禍召福)’ 하시길 기도하며 축원 올립니다.
문득, ‘기도(祈禱)’라는 용어가 서양종교의 기도를 떠올리게 하여
수행을 말하는 불교에서 쓰기는 좀 적절치 않는 게 아니냐는 어떤 분의 말이 떠올라서,
평소 제가 지니고 있는 기도의 개념에 대해 잠깐 얘기하고자 합니다.
저도 한 때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한자사전을 보면, ‘기(祈;빌다)’, ‘도(禱;빌다)’. 두 글자 모두 ‘빌다’는 의미입니다.
국어사전에서 ‘기도(祈禱)’를 찾아보면,
‘신이나 절대적 존재에게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기를 빎.’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몸소 직접적으로 닦는다는 수행(修行)을 중시하는 불자(佛子)의 입장에서는,
기도는 일종의 ‘비는 행위’로 생각되어질 수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봅니다.
『부처님이시여!
이제 제가 당신이 가리켜준 대로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러니 스승이시여!
제가 당신의 가르침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바르게 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저를 격려해주시고, 때론 매섭게 경책(警責)도 내려주면서
제가 가는 길을 엄하게 증명(證明)해 주소서.
당신 앞에 나 자신을 숙이며 나의 이러한 서원을 당신에게 공양 올립니다.』
기도하면서 제가 갖는 서원(誓願)의 마음을 표현해 보았습니다.
공부수행의 기본이자 생명은 서원(誓願)입니다.
구복(求福)의 원(願)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참 가치’에 대한 눈뜸의 원입니다.
이러한 발원(發願)을 강력하게 일으키고,
어떠한 난관에서도 그것을 지키며 유지해가야 합니다.
그래서 ‘맹세할 서’자(字)를 써서 ‘서원(誓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공부의 시작이자 공부의 맺음이 되는
이러한 ‘서원(誓願)’을 일으키고 유지하고 실천하리라 마음 갖는 것이
바로 ‘기도(祈禱)’입니다.
단지 해달라고 비는 게 아니라, 해보겠다는 의지의 발현이고 실천입니다.
저는 이렇게 정리하면서 기도라는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기도는 곧 믿음이고 수행이고 정진(精進)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기도의 의미가 이렇게 다가갔으면 합니다.
2023년 12월 동짓날
정림사 비구 일행(日行)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