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두천 [東豆川, Dongducheon]과 해룡산 [海龍山, Haeryongsan]
경기도 동두천시의 광암동 탑동 동쪽에 위치한 국사봉 · 왕방산 · 해룡산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흘러 탐동 조산에 이르러 북쪽으로 꺾이며 광암동을 지나 동두천동에서 강화천으로 유입하는 하천이다. 지방향토지에 따르면, 이름은 옛날부터 가정자리(柯亭子里)라고 불려오던 것이 경원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일제강점기의 문화말살정책에 의해 우리 조상의 숨결이 담겨있는 가정자리를 동두천리로 바꾸었다. 이는 동쪽에 근원을 두고 냇물이 흐르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며 40여 년 전까지도 일반적으로 '동두내(東頭川)'란 이름으로 불러왔다. 그러던 것이 현재는 '동두천(東豆川)'으로 표기되는데 '두'자의 한자 표기가 바뀌었다. 한자 표기가 변한 시기와 내역에 대하여는 1950년대 초기로만 추정된다. 그러나 『1872년지방지도』 「양주목」 편에는 이담(伊淡)이라는 지명 아래 동두천장(東豆川場)이라는 명칭이 보인다. 따라서 지명은 1872년 이전부터 쓰여 오던 지명임을 알 수 있다.
(한국지명유래집)
▼해룡산
경기도 동두천시의 불현동과 포천시 선단동의 경계에 위치한 산이다(고도:661m).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해룡산(海龍山)은 포천현 서쪽 20리 지점에 있다. 산 위에 물이 거울같이 맑으므로 거울못, 감지(鑑池) 또는 천호(天湖)라 하는 못이 있는데, 비를 빌면 영험이 있다. 속설에 전해 오기로는, 군마(軍馬)가 산 위를 짓밟으면 비가 오거나, 비가 오지 않으면 구름이라도 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회암령인 천보산에서 따로 산계를 형성하고 동북으로 뻗어 탑동 왕방마을 오지재에서 끝나며 왕방산과 접한다. 죽엽산의 내맥(來脈)으로 2,000여 년 전 큰 홍수가 나서 이 산에 살던 이무기가 그 물로 인하여 용이 되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지금도 조개껍질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여지도서』엔 "민간에 전하는 말에 따르면, 태조가 왕위에 오른 후 이 산 아래에서 무예를 닦았다."고 하는데 실은 이동교리에 살 때부터 이곳에서 무술을 연마하였다 한다. 이 산은 예로부터 산림이 울창하여 산수 좋은 곳으로서 산기슭에는 최근 인공호수를 만들어 다목적으로 활용하고 있어 더욱 운치를 돋우어 주고 있다. 조선 시대의 명필 양봉래(楊峯萊)가 자주 올랐다고 전하며 산세 또한, 아름답다.
(한국지명유래집)
2022-10-19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