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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 탄 왕자는 없었다 동화를 새롭게 해석하고 수용한 영화들이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이 원전인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013)은 두 공주의 자매애가 왕국을 구한다는 설정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왕자와 공주가 등장하는 동화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게 독일의 그림형제가 유럽 전래 이야기를 정리한 ‘백설공주’다. 스페인의 파블로 베르헤르가 연출한 <백설공주의 마지막 키스 >(2012)도 동화 원작 영화들이 모두 그러하듯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어른을 위한 ‘잔혹 동화’ 변천사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어린이 인권에 눈 뜨면서 착한 동화가 필요해졌고, 안데르센과 그림형제 등의 동화가 순화 과정을 거쳐 디즈니 애니메이션 식 해피엔딩 버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림형제가 수집한 전설을 일부 차용하거나 빼거나 변형시켰으며, 여타 동화의 유명 상징을 섞기도 했다.
1920년대 세빌리아. 유명 투우사 비알타는 아름다운 아내 카르멘의 응원을 받으며 투우 경기를 하던 중 소에 받친다. 이에 충격 받은 만삭의 카르멘은 급작스런 출산 끝에 숨을 거둔다. 하반신이 마비된 비알타는 사랑하는 아내의 목숨과 맞바꿔 태어난 딸 카르멘시타를 외면하고, 간호사와 재혼한다.
계모의 명으로 지하방에서 지내며 하녀처럼 일하던 카르멘시타. 출입금지 명령을 받았던 2층으로 올라가게 된 카르멘시타는 계모에게 학대당하는 휠체어 신세의 아버지를 발견한다. 부녀의 밀회를 눈치 챈 계모가 아버지를 아래층으로 떠밀어 아버지가 숨을 거두고, 카르멘시타는 도망가다 호수에 몸을 던진다. 여섯 난쟁이들에게 발견된 기억 상실의 카르멘은 백설공주로 불리며, 난쟁이들과의 투우 쇼 여행에 나선다. 발군의 투우 실력을 발휘하던 백설공주는 신분과 기억을 되찾지만, 경기장을 찾은 계모가 건넨 독 사과를 먹고 숨을 거두고 만다.
영화는 마지막에 결정적으로 현대 여성과 페미니스트의 기대를 배반한다.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투우사로 성공해 재산과 이름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무력하고 어리석었던 아버지처럼 계모의 계략에 빠져 성공의 순간에 어이없게 숨을 거두기 때문이다. 더구나 글도 모르는 무지한 백설공주 시절에 종신 계약서에 ‘X’ 표시를 남긴 탓에, 시신 상태로 뭇 남자들의 키스 대상이 된다. 길게 줄 선 남녀들이 돈을 내고 백설공주 입술에 입술을 부벼 대는 장면은 단순한 키스라기보다 시신 모욕, 시신 윤간과 다름 없다. 동화로 그칠 수 없는 몹시 불쾌한 장면이며, 감독의 의도에 의문을 갖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감독 파블로 베르헤르는 흑백의 난쟁이 투우사들 사진에 깊은 인상을 받아, 난쟁이들과 함께 한 ‘백설공주’ 이야기를 흑백 무성 영화 스타일로 만들기로 했다고 한다. 컬러로 촬영한 후 후반 작업에서 흑백으로 변화시킨 영화 <백설공주의 마지막 키스>는 산 세바스찬 국제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과 여우주연상 수상 등 무려 39개의 트로피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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