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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운구곡을 아십니까?
모르면
사창리는 아시는가!?
몰라도 상관없을 테죠.
정확히 1981년 도다.
1980년에 전두환이 518을 일으켜
모든 학교를 휴교시키고
그때
정확히 내가 도서관 앞에 위치하고 있는
탱크를 두 대 보았으니,
그때
탱크 운전병은 나보다 몇 년 더 많은 놈이었겠지
그놈 또한
아무 개념 없는 표정으로 서로를
물끄러미 서로 바라보던
그 장면이 내 머릿속에 있다.
신체검사를 먼저 받고
군대를 먼저 간 친구들이
휴가 때
자기네 집 가기 전에 버스가 끊어져
우리 하숙, 자취방에 하루 씩을 걸치며
그때
개가 뿔이 있는 것처럼
개뿔도 모르고
들은 이야기가 있다.
사창리.
이런 이런 이런
아마 15사단이나 화천 7사단에 배치돼 있었던
동창 들이었겠지만,
나는
그때
사창리라고 그러길래
사창가(私娼街)
홍등가(紅燈家)가 그런 촌구석에도 있더냐!
그랬다.
그때
춘천에서는
지금 없어진 요선터널 아래쪽에
젓가락집이 있었을 때인데.
그랬다
각설(却說)하고.
평화의 길을 걸으며
스스로 많이 생각한다.
사창리는
한글로 들으면 부정적인 의미로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사창(史倉).
역사, 내력을 쌓아 보관해 두는 곳(집)
이런 뜻인데
이런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그냥
많이 있을까 마는!?
(본론)
사창리에서
북한강 춘천댐으로 흐르는
지촌천이 있다.
아주 가끔
그 하안 단구를 운전하며
지촌천을 예사롭지 않게 보았는데
맞다.
지금은 예사로운데
옛날은 절대 예사롭지 않은 곳이었다.
엊그제
철원과 화천을 벗어나며,
18세기 이면
1700년도 지도인데
여기에는 보안, 안보리, 공작산, 대룡산도
그대로 적시되어 나온다.
화천은
옛 지명이 낭천(狼川)이었다.
늑대, 이리, 삵 등이 많이 살았던 동네였었기에
붙여진 이름이겠지.
산이 깊기는 깊다.
내가 걸었던 화악산,
두류산, 만산령만 하더라도
두류산 올라가다가 새기고 긁힌 상처가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있다.
가끔
멀꿈이 저 금 간 상처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그 20대 때 바닷가 갯바위가 생각이 난다.
철원 땅에서는
'이태준'을 가끔가끔 떠 올렸다.
그가
왜 월북을 했는지를!
화천으로 들어와서는
이외수가 생각이 나긴 했지만,
이태준에 버금갈 수 있을까? 도.
또 각설(却說)하고.
조선시대
장동김 씨 김수증이
벼슬에서 물러나 찾은 곳이 지금의 사창리 이곳이다.
매월당 김시습이 먼저 머물다 간 곳을
김수증이 와 살았던 곳이다.
아마도,
설악산의 백담사에서 오세암 삼거리까지,
장수대에서 대승폭포를 지나 대승령에 이르기까지
김창협과
김창흡, 이 두 형제가 쓴
철 판때기에 쓰여 있는 한시(漢詩)를 본 적이 있는가!?
국공에서
아주 많이 대략 30개 이상을 달아 놓았다ㆍ
그
김창협과 김창흡이가
사창리에서 살던
김수증의 조카들이다. 다시 말해
김창협과 김창흡의 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김수항이고,
김수항은 김수증의 막내동생으로,
사창리에 살던 김수증은
김창협과 김창흡 형제의 백부(伯夫)이다.
장동김씨의 200년 세도정치에 의한
공과(功過)를 떠나
내가
보기엔
멋진 선비들이다.
한 달 전쯤
좋은 책을 몇 권 만났구나.
그동안
유홍준이 썰레발만 듣다가
이 양반 '최 열'은
젊잖으니 더 양반스럽네.
올여름 저 사람 책,
대략 다섯 권 정도 읽으면
또 어김없이 가을이 오리라.
이게
그 당시 1곡 방화계의
실경산수화라고 하면 믿을 수 있겠는가!
나는 믿는다.
지금
도로와 제방이 없었고
수량(水量)이 옛날과 같다면.
2곡
2곡의 현재
현재
가장 접근하기 쉬운 제3곡
신녀협
매월당
김시습의 호(號)를 딴 청은대(淸隱臺)
제3곡 출렁다리
현재의 3곡 주변
3곡 주변
3곡
실경산수화
3곡 실경
4곡
5곡
6곡
7곡
다행히
화천군에서
김수증로라고 도로명을 명명하여 쓰고 있다.
8곡과 9곡은
지촌천 상류 어디쯤인가 있겠지만
올라갈수록 물이 없어
굳이 더 이상 찾지 않았다.
세월이
이렇게나 무섭다.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그 힘이
힘으로 따지자면 더 좋게 변화시키는 게 아니고
갈수록 본질과는 다르게 퇴색(退色)되는 게
아쉬울 뿐이다.
우연히 길을 가다 만난 곡운구곡이니만큼
한반도 어딘가에
이와 같은 경승이 어디 또 없겠는가!? 마는.
그때 그 사람들과 함께 한
수려(秀麗)한 곳들을 만나는 것은 가슴 떨리는 일이다.
첫댓글 중학교때 곡운구곡으로 소풍가고 했지요 너루바위에 않자서 김밥먹고 노래자랑하고
그때는 지금보다 계곡물이 엄청 깨끗했는데 지금은 많이 오염되었네요.
글쵸
회장님
아직도
글 쓰고 있는중입니다^^
너루바위가 정확히 어딘지는 몰라도
그러셨군요^^
지금은 굳이 지촌천으로
접근하기가 쉽지 않고
도로와 제방이 거의 환경을 변화시켜버린게
좀씁쓸합니다^@^
@유투(U2) 너루바위는김수증길77 앞 개울가에 제일 멋진 바위들이 있지요 부대앞
제가 근무하는 화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곡운구곡을 따라 골짜기로 더 들어가면 반수암터가 있습니다. 금강산 승 홍눌이 김수증을 따라 와 지은 작은 절 입니다 지금은 폐사가 되고 조선시대 종형 부도가 1기 남아 있습니다 정성을 들여 다듬은 잘 생긴 부도 입니다. 언제 같이 답사 하시고 송어집에 들러 회 한 접시 같이 하시지요
사학(史學)도의
진가가 이제 막 보이기 시작하시는군요
너무 좋습니다요 ^@^
진짜로요
👍오호
꼭 그러시자고요^@^
유명한 삼일리 송어횟집 화악산 올라갔다 내려오면서
전에 사청리에 다녀오다가 3곡은 두번 방문헌 적이 있는데 새로운 것을 알게되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