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포스트는 25일 미국에서 교세가 가장 큰 가톨릭교회와 남침례교단을 포함해 25개 교단 중 21곳이 지난해 교인수가 감소하거나 변동이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2009년도 북미주 교회연감(사진) 발표를 인용해 보도했다. 25개 교단의 총 교인수는 지난해에 비해 0.49% 감소했다.
한국기독교는 ‘추악한’ 해외선교 포기하라| 세상에 이런 일이...
푸른물|조회 35|추천 0|2009.03.04. 10:08
한국기독교는 ‘추악한’ 해외선교 포기하라
아메리카 인디오 학살을 통해본 기독교 선교의 역사
유사 이래 최대, 최악의 학살자는 과연 누구일까 하는 질문에 대부분의 지구촌 사람들은 히틀러라고 답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듯싶다. 우리는 교과서와 영화 등을 통해 1945년 1월 27일 폴란드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포로수용소가 해방될 때까지 약 600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이 인종청소라는 명목 아래 나치스에 의해 학살되었음을 알고 있다.
그러면 다시 질문을 해보기로 하자. 제2차 대전 당시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이 정말 ‘세계사의 전대미문의, 유일한, 최대의 대형 범죄’였을까? 물론 제2차 대전 때 나치스의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학살은 특출하게 끔찍한 것이었음에는 틀림없지만 질문에 대한 정답은 아니다. 이제 필자는 홀로코스트 신화보다 더욱 끔찍하고 처참했던 비극의 현장으로 안내하고자 한다.
1)콜럼버스의 일기장
콜럼버스가 1492년 서인도 제도에 도착했을 부터 인류 최대의 비극은 이미 예고되었다고 판단된다. 그가 남긴 항해 일지의 몇 구절을 인용하겠다.
"배에서 내린 유럽인들을 보고 타이노 원주민들은 호기심에 가득차 기뻐하며 그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다가왔다."
"그들은 무기나 폭력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칼을 처음 보았을 때 이 이상하게 생기고 빛이 나는 물체를 손으로 만져보려고 했다. 타이노 원주민들은 하루 중 불과 몇 시간만을 일하며, 나머지 시간에는 그저 편하게 쉬고, 서로 어울리고,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방식으로 문화를 창조하며 보낸다."
"그들은 벌거벗은 채 돌아다니거나, 원할 때면 아무 때나 사랑을 하기도 했다. 그들은 섬에서 나는 조그만 금 조각으로 장신구를 만들어 몸을 치장했다."
콜럼버스의 관찰과 고백이 진실하다면, 타이노 원주민들이야말로 유토피아에 살고 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원주민들의 행복하게 보이는 삶이 콜럼버스의 질투심을 유발했을까? 그는 일기장에 아래와 같이 토로한다. "50명의 남성만 있으면 원주민 모두를 노예로 만들어서 그들이 가진 황금을 전부 빼앗아버릴 수 있다"
2)콜럼버스의 만행
“백인들은 ‘야만적인’ 타이노 원주민들을 노예로 만들어 버리고, 수많은 원주민들을 고문하고, 노동을 착취하고, 그들의 부(富)를 약탈해서 유럽으로 가는 배에 실었다. 제국주의자들은 원주민들을 착취하는 과정에서, 남성들의 손을 도끼로 자르고, 여성들의 젖가슴을 칼로 도려내고, 임신한 배를 갈라내고, 아기를 공중에 던져서 땅에 떨어뜨리거나, 칼이라는 이름의 그 이상한 빛이 나는 물체에 꽂아버렸다. 그리고 이 모든 행위는 기독교, 문명화, 그리고 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졌다.
타이노 원주민들은 문자 그대로 죽을 때까지 착취당했고, 원주민 대부분이 잔인한 폭력, 과도한 노동, 질병을 견디지 못하고 사망해버려, 종족이 전멸할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댄 브룩(Dan Brook) 교수의 ‘학살을 경축하며(Celebrating Genocide!)’에서 인용)
콜럼버스는 원주민들의 친절과 비폭력에 대한 보답으로 칼과 살육을 선물하였다고 역사는 증거하고 있다. 콜럼버스의 꿈같은, 성공적인 모험담은 무수한 유럽인들에게 전염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이제 살육의 축제가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3)메이플라워호 그리고 원주민 학살
1620년 102명의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 대륙으로 종교적 망명을 했다. 종교적 박해를 피하기 위해 영국에서 아메리카로 피난을 선택했던 백인들이 이제는 박해자의 입장이 되어 종교적 명분이라는 변명 하에 원주민들을 학살하기 시작했음은 역사의 또 다른 아이러니가 아닌가 한다.
콜럼버스의 만행 그리고 청교도들의 학살 이후 약 1세기에 걸쳐 백인들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학살한 숫자는 적게는 6천만 명 많게는 일억 명 정도에 이른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오늘 현재, 원주민들의 숫자는 겨우 25만 명 정도라 하니 미국의 백인 선조들이 저지른 이 만행과 죄악은 누가 책임을 져야만 할까?
매년 11월 넷 째 주 목요일은 미국인들이 최대의 명절의 하나로 꼽고 있는 추수감사절이다.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메이플라워호로 신대륙에 이주한 반(反)영국 국교회파 프로테스탄트교도들(필그림 파더스)이, 첫 수확을 하느님에게 바쳐 감사한 일에서부터 비롯된 국민적 축제일이라고 하는데, 그날 하루 동안 약 5,000만 마리 정도의 칠면조가 소비되고 있다한다. 미국인들은 칠면조를 살육하면서 그들의 조상들이 원주민을 학살하던 그때의 향수를 맛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4)미국 위정자들의 인디언관과 정책
1776년 7월4일은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한 날이다. 이날을 기점으로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발생한 모든 원주민 학살은 미국 정부의 책임이라는 뜻이다. 그러면 미국의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들은 인디언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조지워싱턴: 우리의 당면 목표는 인디언 부락의 전면 파괴와 유린이다. 기본적으로 토지작물을 파괴하고, 더 이상 경작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벤저민 프랭클린: 지상의 문명인들을 위해서 저 미개인들을 근절하는 것이 신의 뜻이라면 술(알콜)이 적절한 수단이 될 것이다.
*존 마셜 대법관: 이 땅에 살았던 인디언부족들은 전쟁을 직업으로 삼고 숲에서 나오는 산물로 생계를 이어온 야만인이었다. 정복자와 피정복자의 관계를 일반적으로 규정하는 법, 그리고 규정해야만 하는 법은 그러한 상황의 사람들에게는 적용될 수 없다. 유럽인에 의한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은 그 대륙을 매입하든 정복하든, 인디언의 점유권을 소멸시킬 수 있는 독점권을 주었다.
*윌리엄 헨리 해리슨: 창조주로부터 많은 사람을 도와 그 지역을 문명화시킬 운명을 부여받은 경우, 과연 소수의 야비한 미개인들이 거주하는 곳을 자연 상태로 남겨두는 것이 가장 공평한 분배일까?
*필립 셰리던 장군: 내가 지금껏 보아온 인디언 중 선량한 자라고는 죽은 인디언뿐이었다.
5)인디언들의 절규
나름대로 자족하며 자연과 평화를 벗 삼으며 살던 아메리카 원주민들도 그때서야 백인들의 정체에 대해 눈을 떴을 거라고 추측된다. 인디언들의 대표적 절규 몇 마디를 모아 보았다.
"이 땅에 들어온 백인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약속을 했다. 그러나 지켜진 것은 단 하나,그들은 우리 땅을 먹는다고 장담했고 정말 우리 땅을 먹어치웠다." (수우족 추장 '붉은 구름')
"백인들은 고유한 생활방식을 가진 우리를 자기네처럼 살게 만들려고 한다. 우리가 백인들에게 인디언처럼 살라고 했더라면 그들도 반발했을 것이다. 왜 바꿔 생각하지 못 하는가" (샌태 수우족의 추장 ‘큰 독수리’)
"자유롭게 태어난 사람이 가고 싶은데 갈 수 있는 자유를 빼앗기고 만족하기를 바란다면 강물이 거꾸로 흐르기를 바라는 것이 더 나을 것" (네즈페르세족의 추장 ‘조셉’)
"백인이란 종족은 둑을 무너뜨리고 모든 것을 앗아 가버리는 봄 홍수와 같다." (수우족 대추장 '앉은소') ....(이상 '디 브라운'의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에서 발췌)
그리고 이 책에서 인디언들을 학살하는 충격적인 한 장면만 인용하겠다.
[1864년 시빙턴 대령은 ‘인디언의 머리 가죽을 모을 계획’을 세웠다. 이것이 ‘샌드 크리크 학살’이다. 미군과의 안전보장 서약에 따라 미국기와 백기를 올리고 있었던 샌드 크리크 지역에는 남부 샤이엔족 600여명이 있었다. “무차별 살육이 눈앞에서 벌어졌다.…여섯살 정도 된 어린 소녀에게 백기를 들려 보냈다. 그 소녀는 몇 발짝도 못가 총에 맞아죽었다. …죽은 사람은 모두 머리가죽이 벗겨졌으며, 한 임신부는 배가 갈라져 있었고 태아가 옆구리에 놓여 있었다. 안전보장 서약을 믿었던 일흔다섯 살의 추장 흰 영양의 시체는 성기가 잘렸다. 나는 한 미군이 그걸 가지고 담배쌈지를 만들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6)아메리카 침략과 가나안 침공 사건
오늘을 살아가는 미국의 위정자들이 그들의 초대 대통령 워싱턴이나 프랭클린 같은 견해를 발표했다가는 언론의 뭇매에 의해 그들의 정치 생명 자체가 존립할 수 없으리라 본다. 대부분의 미국인들 그리고 지구촌 인류들은 미국 옛 선조들의 만행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사과하기를 거절하고 있다. 홀로코스트를 성역화 시켜 배상문제를 야기함으로 거액의 위자료까지 챙긴바 있는 미국인들이 왜 그들의 조상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을 강요하고 있을까? 결국 그들의 마음 밑바탕에는 조상들의 행위에 이미 면죄부를 주었을 뿐 아니라 한편으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드는데, 이러한 합리화를 가능하게 하는 게 그들이 신봉하는 바이블 탓으로 보여 진다.
*즉, 영국 땅을 떠나 신대륙으로 이주한 사건은 출애굽쯤으로
*그들 조상이 신대륙을 침략했던 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여리고 침공쯤으로
*그리고 원주민 학살은 모세와 여호수아가 가나안 민족들을 몰살시킨 전례를 본받아서
가나안땅은 야훼의 약속과는 달리 젖과 꿀이 흐르지 않는 그저 척박한 땅이었지만, 아메리카는 분명 젖과 꿀이 가득한 황금의 땅, 약속의 땅이었다. 그래서일까? 야훼의 은덕에 감사하고 있는 미국인들은 유럽과 달리 아직도 야훼의 비위 맞추기에 여념이 없는 듯하다.
7)남미와 북미
WASP가 주류인 북미와 혼혈 민족이 주류인 남미는 역사에 대한 인식도 그 피부 빛만큼 차이가 다르나 보다. 최근의 두 보도는 인디안 문제에 대한 접근이 어떻게 다른지 그 차이점을 잘 시사해 주고 있다.
“콜럼버스 원정대가 처음 도착한 이후 150여 년 동안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등 서방 침략자들이 10분에 1명꼴로 원주민을 학살했다”면서 “그 결과 원주민 인구는 1492년 1억 명에서 1640년대 300만 명으로 절멸되다시피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 침략자들은 히틀러보다 더 악랄했다”고 비난했다.
차베스는 지난 해 콜럼버스가 1492년 10월 12일 바하마 제도의 산살바도르 섬에 도착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미국과 일부남미 국가에서 제정한 이 날(‘콜럼버스의 날’)을 ‘원주민 저항의 날’로 바꾸는 대통령령을 공표한 바 있다. 그는 특히 35만 원주민에게 토지를 나누어 주고 저리로 사업자금을 빌려주는 ‘과이카이푸로(스페인 침략자에 저항한 원주민 추장 이름)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2003,10,13 한국일보)
"(인디언들과의) 화해 이전에 인정과 참회가 있어야 한다"면서 "그것이 화해를 위한 출발점"
"몰살, 낙태, 강제 이주, 전통종교 불법화, 성지 파괴들을 자행한 협정 위반 및 잘못된 연방 정책 등을 인정하고, 모든 아메리칸 인디언들에게 미 국민들이 저지른 폭력, 학대, 방치 등에 대해 미 국민을 대표해 사과한다. (샘 브라운백(공화. 캔자스) 상원의원/2005,5,26 프레시안)
미국은 아직까지 최소 6천만 명에서 최고 1억 명으로 추산되는 인디언 원주민 학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한 적이 없다. 그저 일부 의원들이 결의안 정도로 왈가왈부하는 중이다.
공격적 선교 행태의 처참한 예로 아메리카 초창기의 역사를 인용하였는데, 기독교의 경우 세계복음화라는 미명하에 로마시대와 중세를 거치면서 거대한 권력으로 자라나게 된다. 특히 중세시대는 이미 분화된 철학, 윤리, 과학 심지어 국가권력 까지 기독교에 예속되어 버리게 되었으며 인류의 역사가 퇴보된 처음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와서 르네상스, 계몽주의, 실존철학, 유물론, 진화론 등 인간의 이성과 오성이 깨어남으로써 종교 특히 기독교의 위치는 크게 변화하게 되었다. 즉 예술, 도덕 등이 분화되어 나가고 정치, 경제, 교육 등의 사회제도에서의 종교의 영향력은 약화되었다. 물론 기독교에 대한 비판과 오류도 지적할 수 있게 되는데 인류가 다수의 공존이라는 거대한 실험을 할 수 있는 시발점이 근세 르네상스의 인간성 회복 운동이 그 단초가 아닌가 한다.
이러한 인류의 노력을 외면하고 종교라는 미망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아직도 있음은 불가사의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첫째가 한국에서의 비정상적인 기독교의 부흥이 되겠고 둘째로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증오의 벽’을 만들고 좀처럼 화해의 길을 찾지 못하는 종교분쟁이다. 종교문제로 인해 전쟁 내지 분쟁을 야기하고 있는 지역을 보자.
1)영국, 북아일랜드(신교, 구교)
2)보스니아, 코소보(기독교, 이슬람교)
3)인도, 파키스탄(힌두교, 이슬람교)
4)나이지리아(기독교, 이슬람교)
5)수단(기독교, 이슬람교)
6)필리핀(가톨릭, 이슬람교)
7)인도네시아(기독교, 이슬람교)
8)동티모르(기독교, 이슬람교)
9)콜롬비아(기독교, 가톨릭)
10)이스라엘, 팔레스타인(유태교, 이슬람교)
종교분쟁은 불특정 다수를 희생의 제물로 삼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쟁은 국가 대 국가 간의 고전적인 전쟁이 아니라 양민학살이 수반되는 게릴라들과 테러분자들의 전쟁양상을 띠고 있다. 여기에는 무고하다는 개념은 사라지고 특정종교, 특정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적으로 간주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얼마나 섬뜩한 현실인가.
물론 기독인들은 항변할 것이다. 제국주의 시대, 침략의 선봉대 노릇을 하던 기독교 선교의 역사와 오지에서 목숨을 담보로 봉사를 하는 한국 기독인들의 봉사는 엄연히 구별되어야 한다고.
그러나 종교분쟁이 사라지지 않는 한 선교는 중단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아무리 선의의 목적으로 봉사 혹은 선교를 한다고 하더라도, 침략선교의 잔인한 역사를 잊을 수 없고 오늘 현재도 종교 분쟁으로 인해 수많은 목숨들이 억울한 원혼이 되고 있는데 어느 누가 순진하게 타종교를 받아들이겠는가?
한국 개신교의 선교 행위는 마땅히 중단되어야 한다. 아무리 그대들이 봉사라고 주장해도 당사자들이 문화 침략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지 말라는 뜻이다. 宣敎란 명사는 ‘종교를 선전하여 널리 폄’이라고 사전에 뜻풀이되어 있는데 宣의 의미는 ‘베풀다’ ‘널리 펴다’ 외 ‘임금의 말’ ‘조칙’ 등의 뜻이 있다.
傳宣 (임금의 명령 따위를 전하여 널리 알림) 宣? (선온, 임금이 신하에게 궁중의 사온서에서 빚은 술을 내리던 일. 또는 그 술) 등의 예를 보듯, 기독인들이 선교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임금이 신하에게 하사하듯 자신들의 종교에 대한 우월함과 선민의식을 바탕에 깔고 있음이 역사와 현실이 증거하고 있다. 특히 경제적으로 불우한 나라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들의 행태는 종종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개항 초기 우리 선조들이 이미 경험하였으며, 얼마 전 필리핀에서의 성추행으로 물의를 빚었던 모 선교사의 예에서 보듯 우리나라의 선교사들 역시 해외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 현재, 해외 선교는 타민족에게 혐오감과 모멸감을 줄지언정 결코 환영의 대상은 안 되리라 본다. 그래도 정말 선의의 뜻으로 봉사하겠다면 무언가 시혜를 준다는 의미의 宣敎란 명사를 포기하고 전교(傳敎) 혹은 포교(布敎)란 단어를 사용할 것을 권유한다. 타종교 용어라 도저히 내키지 않는다면 차라리 전도(傳道)란 말을 사용하던가.
한편, 한국 개신교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개역판 바이블에는 宣敎란 단어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음을 참고로 알려드린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한국의 개신교인들은 바이블의 말씀을 전파한다면서도 바이블에는 없는 신조어와 새로운 제도를 창조해내는 데는 정말 천재적인 소질이 있는 듯하다. 보다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고 싶은 독자들은 필자의 다른 글들을 검색해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