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강선 전철 타고 가서 오른 원적산
1. 일자: 2017. 6. 24 (토)
2. 장소: 원적산 천덕봉(634m)
3. 행로 및 시간
[영원사(08:12~20)
-> 안부(08:40) -> 원적봉(09:14,
564m) -> 천덕봉(09:35~45) -> 주능 3봉(10:34) -> 정개산/소당산(11:23) -> 주능 2봉(11:43)
-> 주능 1봉(11:55) -> 범바위
약수(12:04) -> 신둔도예촌역(12:30)]
< 원적산 산행을 준비하며 >
월간 산 4월호‘경강선 전철 타고 가는 산’편에
소개된 원적산이 마음에 꽂힌 지 오래다. 새로 개통된 전철 타고 쉽게 접근이 가능하고, 정상 일대에 펼쳐진 광활한 초원이 시선을 끈다. 4월 초 여러 산악회에
안내가 올라온다. 산수유 꽃이 활짝 핀 마을사진과 함께 축제산행을 알려왔으나 인연이 닿지 않아 갈무리
해 두다 6월말 다시 기회를 본다.
정보를 정리해 본다.‘원적봉 564m, 천덕봉 632m. 원적산은 동으로는 여주, 서로는 광주와 경계를 이루며 동서로
길게 이어진다. 무적산이라고도 한다. (웬일인지 원적산이란
이름보다 무적산이란 이름이 내게 더 낯익다.) 동쪽 기슭에 638년에
창건된 영원사가 위치해 있으며 사찰 앞에 높이 25m, 둘레 5m 크기의 800년된 은행나무가 있어 일주문 역할을 하고 있고 고풍스런 대웅전과 범종각도 볼 만하다. 주봉인 천덕봉 기슭에는 율수폭이라는 폭포가 있다. 고려말 공민왕이
난을 피해 머물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봉우리 안쪽으로 암벽이 있으며 최고봉인 천덕봉은 이천에서 제일
높다. 산행 들머리 일대는 전국 제일의 산수유 산지로 봄이면 농가울타리와 논밭두렁이 산수유의 노란 물결로
일렁이고, 가을이면 들 곳곳에서 열매를 따는 풍요로운 풍경이 산객들의 마음을 넉넉하게 채워준다.’최신 정보에 의하면 높이가 더 높은 천덕봉이 원적산으로 개명하고 원래 원적산은 원적봉으로 내려앉았다.
코스를 등분해본다. 영원사~천덕봉
약 2.7km는 비고 350m를 이겨내야 하며 90분을 예상한다. 천덕봉~정개산
약 4.3km 2시간을 예상한다. 마지막 정개산~도예촌역은 약 3.5km는 90분
거리다. 10.5kmm 넉넉한 5시간 산행을 예상한다.
< 희망사항 >
산악회 카페에
올라온 사진에 시선이 오래 머문다. 산수유마을 전경이다. 사진의
앞쪽 반이 온통 노랗게 물들어 있다. 그 뒤로는 한적한 마을이 보인다.
화려한 꽃 사진을 믿고 찾은 산행은 대개 실속이 없음을 알기에 대스럽지 않게 여기다 만발한 봄 정취에 이끌려 사진을 폰에 내려 받아
상세히 살폈다. 왠지 이번엔 속지 않을 것 같다. 원적산에
가기로 마음을 굳힌다. 4월 초 이야기다.
한동안 고속도로와 지하철 건설 붐이 일더니 요즘은 하루가 멀다 하고
SRT니 수도권 연장 전철이니 하는 새로운 철길이 놓인다. 경전선은 소리 소문도 없이 완공되었다. 판교~여주, 중간에 광주, 곤지암, 이천을 경유하는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쉽지 않던 곳이 갑자기
가까운 곳으로 다가온다.
평소 마음에는 있어도 교통편이 마땅치 않아 쉬이 마음을
정하지 못한 곳을 가자. 전철 타고.^^
< 영원사 ~ 천덕봉 >
회사 저녁
회식에서 술을 덜 먹은 덕에 일찍 눈을 뜬다. 작은 배낭 메고 집을 나선다. 어젯밤 밴드에 공지를 올려 번개산행을 제안할까 망설였는데, 혼자
근교 산 길을 나서려니 허전하다. 그러나 늦었다. 다음을
기약하자.
버스, 전철, 택시 타고 들머리 영원사에 도착하니 8시가 조금 넘는다. 택시 덕에 시작 고도가 282m다.
정상 높이가 634m 이니 비고가 350m 수준이다. 호사에 이래도 되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호젓한 산사의 아침, 사방이
고요하다. 정자 앞 연못 가운데 돌이 놓여 있고 그 위에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연못에 사찰 건물이 어리는 모습이 멋져 카메라를 누른다. 돌 계단
위에서 바라보는 대웅전의 모습도 근사하다. 800년이 넘은 은행나무와 누군가의 정성 어린 손길로 쌓아
올려진 돌탑까지 사찰 곳곳에 멋스러움이 베어 있다. 천 년이 훌쩍 넘는 역사를 간직한 고찰이 이름 값을
톡톡히 한다. 기대에 몇 갑절 이상이다. 세월은 그냥 흐르는
게 아닌가 보다.
여러 잡생각이 머리에 떠나지 않는다. 지나고 나면 별 일도 아닌데 잊혔다가도 다시 마음이 가는 건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다. 절은 심란을 잠재워 형상 너머 본질을 보는 곳이라 했다. 그냥 마당을
쓸었는데 반가운 이가 찾아오듯, 내 삶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래본다.
< 영원사 경내 모습
>
영원사 우측으로
등산로가 나 있다. 절 뒤편으로도 길은 있을 듯하나 오늘은 왠지 절이 안내하는 길로 가야 할 것 같다. 푸석한 등로 고운 흙이 켜켜이 쌓였다 지나는 걸음에 먼지로 변한다. 여느
때 같았으면 장맛비 걱정할 시절인데…. 가파른 된비알이 제법 길게 이어진다. 산에선 비고 200미터를 오르는 것으로도 그로끼 상태에 빠질 수
있음을 확인한다. 안부에 도착해 물을 연거푸 들이킨다.
원적봉이 1.14km 남았다 한다. 빈 속에 산에 오르니 힘이 더 든다. 원적사 갈림을 지나자 시야가
좀 트인다. 진행 방향으로 높다랗게 솟은 봉우리가 원적봉인가 보다. 정상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진다. 산에서 눈에 들어오면 금방이다. 힘을
내 단숨에 치고 오른다. 원적산이라고 표기된 봉우리가 보인다. 우측
멀리 남한강 줄기 뒤로 산들이 구름 위를 떠다닌다. 둥근 봉우리들이 바다 위에 떠 있는 섬 같다. 흐린 날씨가 아쉽다. 좌측으로는 군부대 포사격장이 길게 이어진다. 곳곳에 ‘불발탄’경고
문구가 붙어 있다. 진행 방향으로는 가르마 같은 누런 흙 길이 길게 이어진다. 그 끝이 정상 천덕봉인가 보다. 광활한 풍경이 저절로 발 길을 정상으로
이끈다.
< 원적산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 >
먼저 온
이들을 앞질러 간다. 평탄할 것 같은 등로는 시야가 확 트였을 뿐 대세 오르막이다. 좌우로 조망되는 이천과 여주, 광주 일대의 너른 평야지대가 광활하나, 흐릿한 날씨로 별 볼거리를 주진 못한다. 길가에 나리꽃이 지천이다. 오랜 가뭄에 색이 선명하지 못하다. 헬기장이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한다. 마지막 힘을 내 원적산 정상에 발을 들여놓는다. 때마침
시원한 바람이 분다. 살 거 같다.
< 원적산~정개산 >
두 개의
정상석이 있다. 각 지자체가 자기 영역을 과시한다. 바닥에
자리를 펴고 앉는다. 준비한 간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운다. 내가
이곳을 다녀갔음을 증명해줄 사진을 찍으려 한참을 기다렸다. 정개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배경으로
증명사진 한 장을 찍고는 원적산과는 멀어진다.
이정표는 정개산 4.3km, 동원대 7.03km를
알린다. 최소 2시간 반은 더 가야 한다. 길이 평탄하기를 바래본다.
가파른 내리막이 한동안 이어진다. 우측으로 골프장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푸른 잔디가 주는 푸르름이 좋다. 이내 숲으로
들어간다. 평탄할 것 같던 등로에는 굴곡이 많다. 잦은 오르내림에
지쳐간다.
봉우리가 보이고 산허리로도 등로가 이어지길래 편한 길을 택했다. 한참을
가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지도를 보니 잘못 왔다. 잔머리 굴리다 더 멀고 높은 오르막을 치고 올라 겨우
제 길에 들어선다. 땀이 삐질삐질… 잔머리에 대한 대가는
혹독했다. ㅋㅋ
만선리 갈림에 선다. 변화 없는 풍경이 오래 지속된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뒤엉킨 어수선한 숲, 반복되는 풍경과 잦은 오르내림에
몸은 천근만근. 여름 원적산 산행은 만만치 않음을 확인한다. 다시
장동리 갈림, 정개산은 아직 2.8km 남았다. 색 고운 나리가 그나마 위안이 되어준다.
< 나리꽃 / 장개산/소당산 정상 >
주능 3봉이라는 이정과 마주한다. 주능 1, 2봉도 있다는 반증이다.
들쑥날쑥 이정표가 가뜩이나 지겨운 등로에 힘을 더 빠지게 한다. 새로 거리를 측정했다면
관계기관끼리 협의하여 하나로 통일시켜 이정표를 만들면 좋으련만…. 헷갈린다.
11:23, 소당산이라고도 불리는 정개산에 정상에 도착했다. 바위 정상에 올라서니 이천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눈 맛이 시원한
곳일진대 오늘은 영 아니다. 트랭글 지도상 정개산과 산길에 표시된 산 위치가 같지 않다. 혼란이 가중된다. 한 가지 사실은 이제까지 많이 걸어왔고 가야 할
길도 멀다는 게다. 벤치에 앉아 남은 간식으로 허기를 채운다. 냉장고에
오래 틀어박혀있어 먹겠나 하고 넣어온 오래된 쿠키가 큰 힘이 돼 준다. 세상사 모를 일이다. 존재하는 건 그 쓰임이 때에 따라 늘 다르니 말이다.
< 정개산~신둔도예촌역 >
궁금했던
주봉 2봉을 지난다. 특별한 그 무엇이 없다. 이제 1봉만 남았다. 아직
습도가 높지 않은데도 여름은 역시 후텁지근하다. 힘겨운 산행이었지만 날머리가 그리 멀지 않다는 사실은
희망을 주기에 충분하다.
1봉은 그리 높은 봉우리가 아니었다. 어지러운 이정표를 뒤로 하고 가파른 내리막을 치고 내리자 범바위약수가 나타난다. 물은 마시지 말라 한다. 손을 씻었다. 물이 놀랄 만큼 시원했다. 내친김에 얼굴까지 씻자 몸이 날라갈 것
같다. 힘겨운 산행에 대한 보상을 시원한 물로 받았다.
등로는 널찍한 임도가 이어지더니 다시 숲으로 들어선다. 그래도
나뭇잎 사이로 건물들이 보인다. 끝이 멀지 않았다. 어수선한
하산 등로, 어찌 내려왔는지 몰라도 웬 공장 건물이 보인다. 이상하리만치
고요하다. 순간 걱정은 현실이 된다. 커다란 개가 짖어댄다. 이런 상황 정말 싫다. 눈을 내리 깔고 조용히 갓길로 걷는다. 놈의 짖는 소리가 잦아든다. 도로가 나타난다. 오늘 산행은 이렇게 끝이 났다. 특별한 것 하나 없는 평범한 산행이었다.
< 하산 길 풍경 / 신둔도예촌
역사 >
< 에필로그 >
주린 배를
불려줄 식당을 찾아 눈을 부릅뜨고 살피지만 마땅한 곳이 없다. 새로 생긴 전철역 인근에도 식당은 없었다. 논밭 사이로 커다란 역사만 덩그러니 있는 꼴이다. 을씨년스러운 소읍의
낡은 풍경이 한동안 이어진다. 그렇게 전철역에 도착했고 다행이 판교로 가는 전철은 그리 오래지 않아
플랫폼에 들어선다. 시원한 전철 안이 천국이다. 종료한 트랭글을
살핀다. 10.53km, 4시간 20분. 고작 15분 쉬고 내리 걷기만 했다. 다시 올 곳은 못 되는 것 같다.
새로운 산 두 곳과 인연을 맺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
< 원적산 산행 궤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