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향기: 시각장애인들의 자유로운 작품 감상을 꿈꾸다, 서수연 음성해설 작가
“장애 비장애 구분없이 모두 함께 즐기는 콘텐츠를 위해”
음성해설은 시각적 매체에 접근이 어려운 시각장애인을 위한 배리어프리 콘텐츠이지만, 최근 일반 대중에게까지 인기를 얻었다. 코로나 팬데믹 영향으로 오디오 콘텐츠에 익숙해지면서 ‘새로운 감상 기법’으로 음성해설을 손꼽기 시작한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 등 스크린 매체뿐 아니라 무용, 뮤지컬, 연극도 시각․청각 장애인 등 다양한 관객에 맞춰 기획 단계부터 배리어프리 콘텐츠화를 구상하는 경우도 늘었다. 시각장애인 역시 스크린 밖에서의 음성해설을 원하고 있다. 시각장애인 M 씨는 “최근 유명 작가의 문학관에서 영상자료를 본 일이 있었는데, 음성해설이 없어 효과음만 들을 수밖에 없었다”며 음성해설 부재의 아쉬움을 토로했다.
음성해설 콘텐츠 시장이 과도기를 맞은 오늘, KBS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를 시작으로 20여 년간 다양한 작품의 음성해설 대본을 집필하고, 직접 해설도 하고 있는 서수연 음성해설 작가를 만났다.
Q.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음성해설 작가 서수연입니다. 지면으로나마 이렇게 <손끝으로 읽는 국정> 독자 여러분과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소설가는 글로써 자신을 표현하고, 음악가는 연주로 스스로를 소개하듯, 저도 그동안 작업한 작품들로 자기소개를 갈음할까 해요. <불멸의 이순신>, 배리어프리영화제 영화 <블라인드>, 연극 <트랜스 십이야>, 과학수사대 시리즈>, <더킹: 영원의 군주> 등 다양한 분야의 온갖 작품을 음성해설로 전달해왔습니다. 물론 지금도 프리랜서 음성해설 작가로 넷플릭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등의 기관과 함께 계속 작업하고 있고요. 한편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번역학과 박사과정에 있습니다. 최근 스쿨미투를 소재로 한 연극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9. 2.~9. 19. 공연) 음성해설을 맡기도 했어요. 현장에서 배우와 관객들을 지켜보며 직접 해설한 기억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제 마음을 설레게 만들어요.
Q. 방송작가로 활동하셨다고 들었는데요.
A. 케이블 채널이었는데, 기획 및 게스트 섭외, 편집 등 프로그램 제작 과정을 두루두루 경험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여러 일을 맡다 보니 힘들긴 했는데, 프로그램의 이해를 높일 수 있었고 그 경험이 음성해설 콘텐츠 제작에 큰 자산이 된 것 같아요.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에서 낭독봉사를 시작한 건 사명 의식이 있어서라기보다 그저 좋아하는 책 읽기를 좀 더 의미있게 해보자는 생각에서였어요. 그 인연으로 현재 미디어접근센터를 맡고 계신 센터장님께 음성해설 작가 제안까지 받게 되었으니, 지금 보면 낭독봉사가 삶의 전환점이 된 셈입니다.
Q. 첫 작품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을 것 같습니다.
A.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로 처음 음성해설에 참여했는데, 지금이라면 더 좋은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당시 배리어프리 콘텐츠가 첫발을 떼던 시기라 이렇다 할 이론서나 체계가 잡히지 않았거든요. 요즘은 영상을 파일로 제공해주지만 당시에는 방송을 비디오로 녹화해야 음성해설을 시작할 영상을 마련할 수 있었기에 본방 시간 맞춰 칼같이 대기해야 했죠. 음성해설 대본을 작성하기 위해 같은 영상을 연거푸 되돌리다 보니 종종 비디오 장치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수리점에서 “대체 어떻게 했기에 이 정도로 망가지는 거죠?”라는 말을 자주 들었어요. 다소 생소한 작업이다 보니 우왕좌왕하며 헤메기도 했지만, 음성해설 방송을 시청하고 재활 사이트 게시판에 남긴 시각장애인분들의 코맨트를 길잡이 삼아 노하우를 찾고 발견했던 시간들은 제게 큰 성취감과 보람을 안겨주었어요. 음성해설 작가로 방향을 정하는 데 그런 든든한 응원이 큰 힘이 되었고, 지금도 그때 받은 코맨트를 종종 들여다봅니다.
Q. 음성해설의 특징, 가장 중요한 점을 꼽는다면요?
A. 주로 화면해설로 많이 불리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음성해설’이라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하죠. 화면해설이라고 하면 영화나 드라마 등 영상매체만을 두고 말하는 거지만, 사실 뮤지컬이나 사진, 수목원의 식물 설명, 그림책 등 작품․매체의 구분이 없거든요. 가장 중요한 건 ‘정보의 선별’이라고 생각해요. 장면에 모든 부분을 설명하기란 시간상 또 지면상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그 장면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주요 대목은 있기 마련이고, 그것을 간략하지만 이해하기 쉬운 음성해설 대본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죠. 드라마 같은 경우 오프닝 장면에서 목적성이나 주제를 소품이나 글자체 등을 통해 은연중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키포인트는 꼭 짚어줘야 시각장애인도 좀 더 깊게 작품에 몰입할 수 있어요. 또 ‘여백미’도 중요합니다. 특정 장면에서 이야기의 전체를 아우르는 소품이 등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걸 직접적으로 해설하는 것도 좋지만, “ㅇㅇ이 무언가를 바라본다”는 식으로 시각장애인에게 상상의 여지를 주는 것도 중요해요. 그런 걸 더 좋아하시더라고요.
Q. 작가님들은 곧잘 밤샘 작업을 하시던데요.
A. 저 같은 경우 밤을 지새우지는 않아요. 눈을 좀 붙이다가 새벽에 혼자 깨서 작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용한 시간대라 그런지 집중이 잘 되더라고요. 혼자 묵묵하게 작업하기 때문에 시간 분배가 자유로운 건 장점이죠. 가끔 사람이 그리울 때도 있지만, 그때는 얼른 마감을 하자는 생각으로 자신을 다독여요. 아쉬운 점이라면 인력 부족과 공급 부족을 들 수 있겠네요. 각종 기관에서 음성해설 작가를 양성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원하는 전문가가 되기까지는 어쩔 수 없이 시간이 필요하죠. 또 다양한 음성해설 경험을 쌓을 수 있을 만큼 작품 제작이 활발해야 하지만, 아쉽게도 제작비 등의 문제로 인해 소극적으로 제작에 임하는 실정이고요. 지상파 등 방송국은 화면해설방송 의무편성 비율 10%를 겨우 지키거나 넘기는 데 그치고, 다채로운 프로그램도 지원하지 못하고 있어요. 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은 화면해설을 제공하지 않고 있고요. 유학생활을 했던 영국 같은 경우, 화면 및 음성해설이 매우 활발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작품도 제작됩니다. 그만큼 배리어프리 콘텐츠에 관심이 많아요. 우리나라의 여건과 인식도 차츰 나아지고 있지만 제작자분들이 조금만 더 장애인 시청자․관객에게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습니다.
Q. 음성해설의 전망을 어떻게 보시나요?
A. 지난 8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온라인으로 주최한 ‘2021 무장애예술주간 프리뷰’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각 분야에서 활동하시는 창작자 및 문화예술 관계자들이 모여서 더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토론도 나누고, 각종 배리어프리 콘텐츠도 볼 수 있는 시간이었죠. 음성해설이 스크린 밖을 나와 다양한 작품으로 확산되어 가는 것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벅찹니다. 장애로 인해 한정된 콘텐츠만을 볼 수밖에 없는, 같은 작품을 보았으되 부득이하게 벌어지는 격차, 그런 것들이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벽을 쌓는다고 생각해요. 음성해설은 그 단차를 조금이나마 낮추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음성해설이 더욱 상용화되어 장애․비장애의 경계가 허물어졌으면 좋겠어요. 극장에서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나란히 앉아 음성해설이 가미된 연극을 보고, 무대 조명과 효과에 대한 감상을 동등하게 나눌 수 있는 그날을 바라봅니다.
신혜령 기자
* 이 원고는 10월호 <손끝으로 읽는 국정> 168호를 위해 작성한 기사의 초고입니다. 가필첨삭이 되기 전의 글이기 때문에 실제 간행물에 실린 기사와는 차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