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포 만에 친구가 찾아왔다.
퀭한 눈 야윈 얼굴을 보면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조심스레 물어보자 큰 눈에 금방 이슬이 맺힌다.
“보름 전에 울 엄마가 떠났어.”
친정이 남해 멀리 있어 자주 찾아보지 못한다며 이태 전에 아버지를 보내고 혼자계신 어머니가 못내 걱정이 되어 자주 문안전화를 하는 친구였다.
한참을 흐느끼다가 친구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한편의 소설이었다.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쯤 전화가 와서는 지나가는 말처럼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이불을 모두 확인한 후에 버리라고 하셨다고 한다.
사남매는 도시로 나와 살고 있지만 둘째가 고향을 지키며 옆 동네에 살고 있기에 많은 의지가 되었다.
언제부턴가 고향장이 서는 날에는 친구들에게서
“자식들이 모두 먹고 살만한데 왜 칠순 넘은 노모에게 행상을 시키느냐.”
원망 섞인 전화가 걸려왔다. 무슨 일이냐고 반문 하였더니 시장 한 곳에서 농사지은 야채들을 팔고 있다는 것이다. 고향에 전화를 해서 시장에 나가시지 못하게 만류를 하고 장날이면 조카에게 시장에 가서 할머니가 나오셨는지 확인까지 하라고 단단히 일러두었다. 할머니는 여전히 장에 나갔고 확인하러 오는 손자에게 용돈을 지어주며 시장에 나오지 않는다고 시침을 떼었다.
아버지 기일을 일주일 앞두고 둘째가 집에 들렀더니 몸살기가 있다고 하시며 자리에 누워있어 병원에 모시고 다녀왔는데 갑자기 떠난 것이다.
장례를 마치고 집안 구석구석 배어있는 어머니의 흔적 때문에 부엌에서 밥 짓다가 울고 방안에 걸려있는 가족사진을 보며 울고 옷가지며 이불들을 모두 정리하는데 옷장 안에는 계절 따라 사다준 옷들이 가격표가 부쳐진 그대로 걸려있었다. 이불을 담아서 내어 놓다가 전화 생각이 나서 이불호청을 뜯었더니 여기저기에서 통장이 발견되었다. 다섯 개의 통장에는 자식들 이름으로 이천만원씩 예금이 되어 있었다.
오남매가 보내주는 용돈으로도 혼자 쓰시고도 남았을 것을. 장에 가서 행상을 해가며 통장을 만들어 놓은 것을 보고 자식들은 대성통곡을 했다. 평생을 좋은 옷 한번 입지 않고 고생만 하다가 가셨다며 울었다.
본인의 죽음을 미리 알고 준비하고 계셨을까 전화 받고 바로 달려갔으면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보았을 텐데. 눈치 채지 못한 죄책감으로 친구는 더 힘들어 하고 있었다. 이른 새벽 머리에 채소를 이고 십리 길을 걸어가서 하루 종일 행상을 하며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통장을 만들면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이불호청 속에다가 통장을 보관한 것이다. 나이 많은 어머니들이 흔히 사용하시는 이불호청이나 배게 속에다 보관하는 방법이었다. 돈을 모으시는 것으로 만족 하시는 분이 있고 쓰는 것으로 만족하시는 분이 있다. 친구 어머니는 통장에 숫자가 늘어나는 것으로 살다가 가신 분이다.
나는 친구에게 어머니가 친구를 제일 사랑하셨다고 그래서 당신의 재산을 친구에게 맡긴 것이라고 위로하였다.
어릴 적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전쟁이 막 끝나고 폐허가 된 건물들을 복구하느라 온힘을 쏟을 때였다. 모든 물자가 귀했던 시절 한 청년이 우연히 중고 침낭하나를 구입하였다. 이부자리가 변변찮아 자다가 이불을 빼앗기고 발이시려 잠을 설친 적도 많았지만 침낭 안에 누우면 그만 이었다. 누가 잡아 당겨도 벗겨지지 않고 속에 털이 있어 가볍고 따뜻했다. 찬바람이 분다 싶으면 늦은 봄까지 침낭을 끼고 살았다. 결혼 후에도 자주 애용하던 애물단지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털이 하나씩 빠지더니 실밥도 헤어져 자주 손을 봐야했다. 그래도 버리지 못하고 찬바람이 불면 제일먼저 찾는 것은 침낭이었다. 어느 날 채 식지 않은 다리미를 올려놓아 그 자리가 녹아서 모양이 이상하게 되었다. 버리기로 작정하고 모아놓은 고물들과 함께 고물장수에게 주었는데 돈이 되지 않는지 다시 내어 놓았다. 한참을 대! 청마루 밑에 던져두었더니 강아지가 물고 뜯어 지저분하게 되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저무는 시월에 삼십년 지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개울가에 가지고 와서 성냥불을 댕긴다. 처음에는 금방 타 들어 가더니 쉬이 불씨가 꺼지지 않는다. 바람이 부는지라 혹 불씨라도 날릴까봐 다독이며 한참동안 자리를 지켰다. 갑자기 주위가 어수선하다. 공놀이를 한다고 동네 꼬마들이 모여들고 있다. 서산에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것을 보며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경찰의 방문을 받았다. 조사를 나온 경찰은 침낭을 태운 곳에서 다량의 금이 발견되었다며 여러 차례 금의 출처를 수소문했다. 한참 금괴 밀수가 잦았던 터였다. 침낭 속에 금이 들어있음을 모르는 노인은 삼십 년 전에 구입해 지금까지 사용하다 망가져서 태운 것이라고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되풀이 했다. 며칠을 걸쳐서 수사한 결과 추측컨대 누군가 금을 아주 가늘게 섬유처럼 만들어서 침낭 송에 깔아놓았다. 그 침낭을 누군가 훔치거나 실수로 시장에 내다 팔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그냥 침낭으로 사용한 것이다.
태우지 않았으면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었고 타는 것을 끝까지 지켰다면 재속에서 빛이 나는 금을 발견했을 것이다.
금이 들어있는 침낭을 덥고 자면서 어떤 꿈을 꾸었을까? 매일 밤 돈벼락을 맞는 꿈을 꾸며 행복해 하지는 않았을까? 한치 앞을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는 말이 맞는 말이다. 침낭은 소유했지만 침낭 안에 들어있는 금덩어리는 내 것이 아니었다.
첫댓글 공감이 가는 얘기입니다. 매사에 성실히 임하다 보면 남이 가지고 있는 것도 내것으로 변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습니다. 항상 좋은 글 올려 주셔서 고마워요.